가우스분포와 스포츠팀 감독들이 왜 선수들을 때리곤 했는가 하는 문제
엄청난 위력으로 등장한 신인 - 1992년의 롯데자이언츠 염종석이 화랑담배 연기처럼 떠오릅니다. 갑자기 바람처럼 나타나 엄청난 대활약을 보여주었던 기막힌 선수 - 1999년의 롯데자이언츠 에밀리아노 기론이 밤바다 물안개 처럼 불현듯 떠오르는 듯 합니다. 이런 선수들은 그 엄청난 솜씨를 보여준 바로 다음 해에는 말아먹어서 실망을 안겨주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어찌 잊으랴 1999년 플레이오프전의 그날들을...)

소위 말하는 2년차 징크스라는 것인데, "평균으로의 회귀(Regression toward the Mean)"에 대한 이야기가 널리 퍼지기 전에는 잘못된 통념이 너무 많이 퍼져 있었습니다. 선수가 너무 엄청난 기록을 세우게 되면 주변에서 주는 부담이 너무 커지기 때문에 다음해에는 심리적인 압막감과 초조함이 커서 도리어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 유행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너무 화려한 모습으로 인기를 끌면 선수가 자만에 빠지고 게으르게 되고 연습을 안하게 되어서 다음 시즌에는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어머 신인왕이다~ 사랑해요~ / 우훗훗 나는 이제부터 자만에 빠질테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대부분 사실이 아닙니다. 이보다 훨씬 더 많은 경우를 설명할 수 있는 보다 설득력 있는 설명이 요즘에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바로 선수들이 어떨 때는 잘할 때도 있고, 어떨 때는 못할 때도 있고, 대체로 보통은 자기 실력 만큼 평균치의 실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어쩌다가 우연히 한 해 굉장히 좋은 성적을 냈다고 한들, 그 다음 해에는 그냥 보통 실력만큼만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겉보기에는 지난 해에 잘했던 기억이 워낙에 강렬하니까, 이번 시즌에서는 보통만 해도 상대적으로 부진해 보이고, 보통 보다 조금만 못해 보여도 엄청나게 부진해 보인다는 것입니다.

물론, 신묘한 변화구를 깨달아서 갑자기 엄청나게 삼진을 많이 잡는 선수가 나타나고 그 선수가 그 신묘한 변화구로 올해 부터 은퇴할 때까지 계속 주욱 괴력을 발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상당수의 경우에 올해에 어떤 선수가 잘 던진 이유는 그냥 그 선수가 올해에 좀 운이 좋았기 때문인 경우도 꽤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비슷비슷한 수준의 신인들 중에서 올해 최고의 신인으로 꼽히는 최고의 신인 선수는 그냥 올해 신인들 중에 단순히 우연히 운이 제일 좋은 선수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 입니다.

혹시나, 올해 등장한 최고의 신인 선수가 손민한의 엑기스 추출물로 이루어진 야구 역사를 새로 쓸 무적의 거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출중한 선수들이 저마다 자기 실력을 뽑내며 여러 구단으로 쏟아지는 이 바닥을 생각하면, 그런 경우 보다는 그냥 비슷비슷한 선수들 중에 올해 들어서 유달리 운이 좋은 선수가 최고의 선수로 보이는 경우가 좀 더 많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음 해에도 또 운이 계속 좋으란 법은 없습니다. 오히려 확률상 다른 선수들이 운이 좋을 확률이 더 높습니다. 즉 2년차 때에는 1년차때 신인왕이었던 선수는 성적이 떨어진 것 처럼 보이기 쉽고, 다른 선수가 1년차때 신인왕이었던 선수만큼 성적이 올라 보이기 쉽습니다.

1~100까지 씌여 있는 카드 중에서 추첨을 해서 올해에 68번 카드를 당첨 카드로 뽑았다면, 다음해에 한 번 더 추첨을 할 때 또 68번 카드를 당첨 카드로 뽑을 확률은 1% 이지만, 68번 카드가 아닌 다른 카드를 뽑을 확률은 99% 라는 이야기 입니다. 한번 당첨 된 카드가 두 번 연속으로 당첨되어서 계속 ""위대하고 실력있고 성적 좋은 번호"로 보이기 보다는, 처음 당첨 된 카드는 잊혀지고 또다른카드가 "올해에는 이 카드가 성적 좋은 번호"로 보일 확률이 훨씬 더 높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사실은 그냥 무작위적이고 우연으로 생기는 일일 뿐인데, 꼭 무슨 인과관계가 있는 듯이 착각되는 문제는, 정말로 그 인과관계를 받아 들이기 시작하면 문제가 좀 더 커집니다.


(내가 게임 볼때는 꼭 이기더라)

고교 야구팀 출신들로 구성된 나름대로 성실한 대학교 야구팀이 있다고 하면, 이 야구팀의 선수들은 이미 어느 정도는 실력이 안정된 선수들일 것입니다. 갑자기 무슨 신윤복에게 김홍도 스승님이 나타나 그림의 신묘한 경지를 새롭게 알려 주듯이 가르침을 받거나, 어느날 갑자기 멋있는 새 차 사면 모든 인생 풀린다는 TV광고처럼 확 실력이 늘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물론 반대로 야구로 먹고 살기로 결심한 멀쩡한 사람들인 만큼 갑자기 에헤라디야 야구가 무슨 소용이냐 탱구나 사랑하자(...)라면서 운동 때려치울 생각도 없을 테니 갑자기 실력이 확 떨어질 가능성도 적습니다.

즉, 어느 정도 갖추어진 이 성실한 야구팀이라면, 한 게임 한 게임 결과가 좋고 나쁜 것은 그냥 그날 그날의 운에 따라 들쭉날쭉한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늘 경기 내용이 유난히 좀 부실했다면 그날 따라 선수들 몸이 좀 안풀렸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일 뿐, 특별히 선수들에게 문제가 없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대로 오늘 경기 내용이 이상하게도 좋았다면 그날 감독님이 늘어놓은 기나긴 연설에 선수들이 감동 받았을 가능성 보다는, 그냥 오늘 따라 행운이 좀 더 따라 줬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물론, 선수들간에 정말로 불화가 생기기 시작해서 팀이 점점 약해질 수도 있고, 일일감독으로 태연이 나타나자 선수들이 온몸에 꿈과 용기와 희망과 사랑이 솟구쳐서 괴력을 발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일보다는, 그냥 운, 우연, 무작위로 어떤 때는 좀 잘하고, 어떤 때는 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앗싸 잘풀리는 게임이로구나!)

그런데, 이때 전모감독과 노모감독. 두 사람이 각각 다른 방식으로 팀을 관리 합니다. 전모 감독은 선수들이 성적이 나쁘면, "이러니 내 재산이 5만원 짜리 여섯 장에서 항상 만원이 모자라는 궁색한 처지인것 아니냐!"라고 버럭 화를 내면서 선수들을 모두 머리로 들이 받아서 두들겨 패버립니다. 반면 노모 감독은 선수들이 성적이 좋으면, 모두 오순도순 물놀이를 가서 물장구를 치면서 물리도록 놀게 해줍니다.

선수들은 어차피 어떨 때는 잘하고, 어떨때는 못합니다. 운이 좋으면 잘하고, 운이 나쁘면 못할 뿐입니다. 세종대왕이 감독으로 나선다거나, 김유신이 팀을 이끄는 주장이 되지 않는 한 어차피 갑자기 확 실력이 변하는 일이 생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전모 감독은 선수들이 어쩌다가 잘못했을 때 두들겨 패버리고 나면, 다음 번 게임에는 선수들이 대충 잘하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사실은 선수들은 그냥 중간만 한 것입니다. 그럴 가능성이 가장 높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전모 감독은 "역시 좀 두들겨 패니까 선수들이 말을 듣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뿌듯해 합니다. 어쩌다가 선수들이 운이 없어서 게임을 망쳤다고 해 봅시다. 그런데, 어지간히 재수가 없지는 않고서야 두 게임 연속으로 운이 없을 수는 없으니까 왠만해서는 다음 게임에서는 중간은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만히 놔 두어도 그냥 알아서 오늘 망친 게임 보다는 내일 더 좋은 게임을 보여줄 것이라는 이야기 입니다. 그런데 전모 감독은 선수들이 게임을 망치면 벌 준다고 두들겨패고, 다음 게임에서 조금 잘 하면 자기가 두들겨 패서 선수들이 정신을 바짝 차려서 잘했다고 좋아합니다.

반면에 노모 감독은 선수들이 잘했다고 칭찬해 주면서 물놀이 보내고 나면, 다음 번 게임에는 선수들이 실력이 더 떨어진 것 처럼 보일 것입니다. 사실은 선수들은 그냥 중간만 한 것입니다. 그럴 가능성이 가장 높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노모 감독은 "물놀이 가서 아리따운 소녀들의 몸매 시대에 노닐었더니 선수들이 모두 다리가 풀려버려 게을러 졌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괜히 칭찬해서 자만하게 했다고 부질 없이 여깁니다. 사실은 그냥 어쩌다가 선수들이 운이 좋아서 좋은 성적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 번에는 어지간히 운이 좋지 않고서야 두 게임 연속으로 운이 좋을 수는 없으니까 왠만해서는 다음 게임에서는 운좋은 이번 보다는 성적이 안좋은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니까 가만히 놔 두어도 그냥 알아서, 오늘 땡 잡은 게임 보다는 다음에는 상대적으로 부진한 게임을 보여줄 것이라는 이야기 입니다. 그런데 노모 감독은 선수들이 잘 했을 때 칭찬을 해줬는데 그래봤자 선수들은 아무 소득 없이 도리어 더 부진한 게임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어차피 선수들이 잘하느냐 못하느냐는 운에 따라 결정될 뿐이지만, 못했을 때 선수를 두들겨 패는 전감독은 자기가 두들겨 패서 선수들의 퇴보를 막았다고 생각하게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점점 더 신나게 선수들이 잘못할 때 마다 두들겨 패며 채찍질하는 놈이 되어가기 쉽습니다. 한편, 역시 어차피 선수들이 잘하느냐 못하느냐는 운에 따라 결정될 뿐이지만, 잘했을 때 칭찬을 해주는 노감독은 자기가 칭찬을 해 줘 봤자 선수들은 배은망덕하게 게을러서 도리어 더 부진해진다고 생각하게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점점 더 자신의 상과 칭찬, 당근이 소용 없는 것이라고 회의를 느끼게 되기 쉽습니다.


(야구 선수들은 이렇게 다루는 거라고!!! 내가 다 경험해 봤어!!!)

물론, 잘못을 한 선수들을 다그치는 것이 실제로 효과가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정말로 선수들을 질책해서 선수들이 정신을 차리는 효과도 있기는 할 것입니다. 반대로 선수들을 칭찬해주고 물놀이 보내주는 것이 효과가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정말로 선수들에게 응원이 되고 활력소가 되어서 선수들의 사기가 높아지는 효과가 있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한 번의 질책이나 그 한 번의 칭찬으로 인해서 갑자기 팀이 확 심하게 변하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질책이나 칭찬으로 팀이 약간 더 나아지기는 하겠지만, 이제 시구 한 번 해본 한채영이 "왜 그렇게 밖에 못 던지냐고" 전감독에게 머리 박치기 한 방씩 맞았다고 내일부터 주형광 선수처럼던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즉, 한번의 질책이나 칭찬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고 해도, 그렇다고 해도 실제 게임 결과에 미치는 영향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냥 그날 운이 얼마나 좋으냐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다시 돌아갑니다. 실상 잘했을 때 칭찬을 하는 것이 다소간 효과가 있다손 치더라도, 그래도 여전히 잘했을 때 칭찬을 해주어 봤자 다음번에는 그저그런 성적 밖에 못 보여줄 가능성이 큽니다. 대신에 못했을 때 질책을 하는 것은 다음번에는 대충 보통의 성적은 보여주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감독으로서는 자꾸 "그래, 선수들 잘 대해줄 필요 없어. 두들겨 패야지 효과가 바로바로 나타나"라고 잘못 생각하게 될 위험이 생깁니다.

설령, 감독의 성격이 칭찬을 좋아하는 사나이라서 두들겨패는 것은 싫어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교묘한 "우연이라는 현상의 특징" 때문에, 자신이 칭찬하는 것은 별 소용이 없어 보이고, 다른 감독이 두들겨 패는 것은 효과가 좋아보이는 유혹에 계속 시달리게 되기 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칭찬의 영향이 얼마나 되느냐, 질책의 영향이 얼마나 되느냐와는 관계 없이 한번 칭찬으로 모든 것을 뒤집어 엎어버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닌 다음에는 인간으로서는 결과적으로는 두들겨 패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가지기 쉽게 되기 마련입니다.


(저도 선수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지 고민은 많이했습니다.)

간단하게 계산해 보면 이렇습니다. 10% 정도의 확률로 가끔 유난히 좋은 성적을 보여주는 팀이 있을 경우, 좋은 성적을 보여줄 때마다 칭찬을 해 주면, 126게임 중 약 11.3게임 정도는 "칭찬해 봤자 아무 소용 없는 결과"를 보게 되고, 오직 1.3게임 정도만 "칭찬해주니까 또 잘하네"하는 결과를 보게 됩니다. 반대로 10% 정도의 확률로 가끔 유난히 나쁜 성적을 보여주는 팀에 대하여 나쁜 성적을 보여줄 때마다 질책을 해 주면, 126게임 중 약 11.3게임 정도는 "역시 욕을 하니까 좀 나아지는 구나"하는 결과를 보게 되고, 오직 1.3 게임 정도만, "욕을 했더니 도리어 더 결과가 나쁘구나" 하는 결과를 보게 됩니다.

심지어, 정말로 칭찬을 할 때마다 실제로 선수들에게 좋은 영향을 일정정도 끼쳐서 1% 정도씩 좋은 성적을 보일 확률이 높아진다고 해도, 칭찬이 의미있게 보이는 경우는 약 6.0 게임 정도 뿐이고, 여전히 칭찬이 쓰잘데 없는 일처럼 보이는 경우는 약 19.0 게임 정도나 됩니다.

요컨데, 실제로 질책이 효과적이건, 칭찬이 효과적이건 관계 없이, 보기에는 질책이 효과적인 듯한 착각이 들기 쉽다는 이야기 입니다. 잘못했을 때 두들겨 패면서 질책하는 감독은 정말로 정말로 재수가 없어서 두번 연속으로 성적이 안좋은 경우가 닥치지 않는 한은 자기가 두들겨 패고 나면 다음번에는 보통은 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잘했을 때 칭찬해 주는 감독은 정말로 정말로 운이 좋아서 두번 연속으로 성적이 좋은 경우가 생기지 않는 한은 좀 잘했다고 칭찬해줘 봤자 다음에는 상대적으로 더 못하게 된다는 느낌을 받고 실망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질책이 효과적이건 칭찬이 효과적이건 관계 없이, 감독 입장에서는 질책을 하는 것이 더 유용해 보이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점을 의식적으로 고려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마음씨 좋은 감독이라고 한들, 보기에는 질책을 매섭게 하는 것이 유용한 전략이라고 생각하기 쉽게 되고, 선수들을 두들겨 패기 쉽게 됩니다. 이것은 반대로 말하면, 이런 효과가 어느 정도 있다는 것을 고려 해야만 정말로 질책과 칭찬의 효과를 정확하게 평가하는 것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현명한 감독이라면, 선수들의 질책은 의식적으로 좀 더 줄여서 신중히 하고, 선수들에 대한 칭찬은 의식적으로 좀 더 늘여서 많이 해야 한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야만 선수들이 잘못했을 때 때려야 일이 잘 풀린다는 그 빠지기 쉬운 함정을 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함정은 특별히 감독이 사악하거나 사람 패는 것을 좋아하는 변태적인 인간이라야 걸려드는 함정이 아닙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는 빠져들 수 밖에 없는 현상입니다.


(내가 인생살아보니까, 말 안통하는 놈에게는 주먹이 약이라니까)

이것은 어느 정도 무작위적인 운이 관여 하는 사건에서는 어느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는 문제 입니다. 즉 어떤 일이 긍정적으로 발전하기를 바라는데, 실제로 일은 우연에 좌우되는 면이 있을 경우에는, 일이 잘될 때 긍정적으로 장려하기 보다는, 일이 못될 때 부정적으로 반려하는 것이 더 유리하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긍정적으로 장려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도, 느끼기에는 부정적으로 반려하는 것이 더 유리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우리는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이것은 보험 영업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상당수의 영업 사원의 실적은 어느 정도는 우연으로 결정되는 경우도 꽤 있을 것입니다. 이 경우에 실적이 나쁜 영업 사원에게 질책을 하게 되면, 두 번 연속으로 운이 없기는 어려우니까 다음 번에는 대충 보통의 영업 실적은 내게 됩니다. 그러면 상사는 질책을 잘했다고 느끼기 쉬울 것입니다. 반대로 실적이 좋은 영업 사원에게 칭찬을 하게 되면, 두 번 연속으로 운이 좋기란 쉽지 않으니까 다음 번에는 상대적으로 영업 실적이 떨어지게 될 것이고 그러면 상사는 괜히 칭찬을 했더니 게을러 졌다고 느끼기 쉬울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상사로서는 점점 더 칭찬에는 인색해지고 질책은 많이 하게 되기 쉽습니다. 실제로는 칭찬이 질책 보다 좀 더 효과가 클지라도, 우연에 의해서 결정되는 부분이 있는 한은 질책이 더 효과적인 것처럼 느껴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얼차려로 다스리면 안된단 말인가...)

이런 생각을 좀 더 심각하게 해 보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 많은 원인들이 개입하게 되는 "복잡한 인과 관계를 갖는 문제" 의 경우 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아이가 착하게 자라나는가?" 하는 문제에는 한 두가지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의 천성부터, 가정환경,친구들, 아이의 건강상태, 아이를 괴롭히는 인종적 편견 등등 수없이 많은 원인 때문에 아이는 착하게 자라나기도 하고, 나쁜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원인이 복합적으로 관계하는 문제에 대해서, 그 한 가지 원인만을 다루는 입장이라면, 이것은 거의 무작위적인 것과 다름 없는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아이의 수학교사는 아이가 착하게 자라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수학교사가 아이가 잘못했을 때 매를 때리는 것이나, 아이가 잘했을 때 칭찬을 해줍니다. 이러한 수학교사의 교육은 아이가 착하게 자라나는 데 분명히 어떤식으로든지 영향을 미치기는 미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만, 이 아이의 겉보기 행동은 수학교사의 매질이나 칭찬만으로 좌우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아이가 수학시간에 좋은 태도를 보이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아이의 가정환경에서부터, 아이가 앉은 자리가 어여쁜 첫사랑의 여학생이 앉은 자리에서 어느 각도에 있느냐 하는 문제까지 수없이 많은 다른 원인 때문에 결정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이가 수학시간에 좋은 태도를 보이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80가지 정도의 이유의 조합으로 그날 그날 다르게 나타나는 일입니다. 80가지 이유 중에는 분명히 수학교사의 칭찬과 매질도 포함되기는 합니다. 하지만, 전체를 놓고 보면, 마치 운에 따라 어떤 때는 조금 잘하고, 어떤 때는 조금 못하는 야구 경기처럼 무작위적으로 우연히 행동하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오늘 수학 시간에는 좀 성실하게 해 볼까나?)

자, 그렇다면. 똑같은 일이 발생합니다. 수학교사는 아이가 여러가지 이유의 조합으로 어느날 유난히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아이를 두들겨 팹니다. 아이는 다음 번에는 보통 정도의 수업태도를 가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이는 원래 보통 정도의 수업태도를 보일 때가 가장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수학교사는 내가 몽둥이로 두들겨 팼더니 아이가 정신을 차렸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반대로 아이가 어느날 갑자기 유난히 괴력의 수학실력을 발휘해서 이항분포를 가우스분포로 연결하는 내용에 폭발적으로 빠져들었다고 했을때, 수학교사가 아이를 칭찬해 주었습니다. 아이는 역시 다음 번에는 보통 정도의 수업태도를 가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칭찬해 주기 전에 열정을 보일 때보다 보통의 시큰둥한 수준으로 퇴보하는 듯 보입니다. 그러면, 수학교사는 내가 칭찬해줘 봤자 아이는 도리어 열정이 줄어든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수학교사가 아이를 두들겨 패는 것 보다 칭찬해주는 것이 심지어 실제로 장기적으로는 좀 더 효과가 있는 것이 명백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수학교사가 느끼기에는 매번 아이를 두들겨 패는 것이 훨씬 더 보람찬 일이라고 느끼기 쉽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반대로 생각하면, 수학교사로서는 이런 느낌 때문에 아이를 칭찬해주는 효과를 과소평가하는지 조심해야 합니다. 또 수학교사는 아이를 두들겨패는 효험을 과대평가하지는 않는지 계속 조심하고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조심해야할 함정은 세상만사에 끝도 없이 널려 있습니다. 상사는 실제효과와 상관 없이 부하직원을 칭찬하는 것보다 문책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시민들이 범죄를 접할 때에는 실제효과와 상관없이 비행청소년을 선도하는 것보다 조직폭력배를 총격전으로 잡아 죽여버리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느끼기 쉽습니다. 어떤 일에 대한 좋은 지지글 보다는 엉성해도 비난을 마구잡이로 쏟아 놓는 악플 논객이 더 인기를 끌기 쉽습니다. 좋은 주장을 나누고 모으는 일 보다는 독재자가 소수의견을 두들겨패서 탄압하는 것이 더 그럴듯한 결과를 가져 오는 듯 보이기 쉽습니다. 이 확률 함정 이야기를 가장 단순하게 꾸미면, 이렇게 됩니다. 소개팅에 나갈 때에는 기대를 낮추고 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좋은 상대를 만나면 기대보다 훨씬 좋은 느낌에 산뜻할 것이고, 나쁜 상대를 만나도 대충 무덤덤하지 않겠습니까.


(싹 쓸어 버리고 두들겨 패버리는게 상책이야!)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 놓았습니다만, 정말로 한 번 짚어 보고 싶은 것은, 바로 대북정책입니다.

휴전선 이북의 저 양반들이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 대응하느냐 하는 것은 그야말로 수많은 이유가 조합된 복잡한 일입니다. 우리는 김대중 대통령이 이런식으로 대응했으니까, 북에서는 요렇게 대응했다고 풀이하고,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식으로 대응하니까, 북에서는 요렇게 대응한다더라... 나름대로 풀이는 합니다. 하지만, 사실 평양에 있는 양반들이 하는 일이 결정되는 것은 한두가지 이유가 아닙니다. 우리 정부의 전략, 중국 정부의 정책, 미국 정부의 압박, 미국 차기 대선 구도, 평안도와 함경도의 농사 작황, 조선노동당의 후계자 구도, 이란-파키스탄의 미사일 수입 물량, 김정일이 오늘 아침 본 영화와 거기에서 느낀 그만의 직감 등등 온갖 원인들이 어지럽게 얽혀서 이렇게 저렇게 저 양반들이 움직일 것입니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우리 정부의 정책이나 태도가 평양에 어떻게든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다양한 원인들이 평양의 대응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막말로, 평양에서는 힐러리 클린턴이 뭐라고 하건 푸틴이 무슨 춤을 추건 간에 아무 상관 없이, 그날 그날 김정일 장군이 아침에 동전 던지기로 "오늘은 강경책이다!" "내일은 온건책이다!" 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되면, 위에서 이야기한 함정과 똑같아집니다.


(별 이유는 없지만 오늘은 저쪽으로 가보거라 아들아)

평양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 규탄하고, 비난하고, 보복하는 "질책" 대응은 효과가 좋아 보이는 착각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질책이 바람직한 것인지 어떤지에 상관 없이, 평양에서 우연히 돌발적으로 위험한 짓을한 번 하고 나면, 다음 번에 대충 멀쩡한 보통 정도의 행동을 할 가능성이 가장 높을 것입니다. 그걸 두고 "보아라, 우리가 강하게 무섭게 하니까 저 놈들도 숙이잖아 우하하하하" 하고 헛바람 들어서 좋아하는 착각을 하게 되기 쉽습니다.

반면에 평양의 바람직한 행동에 대한 "칭찬" 행동은 부질 없어 보이기 쉽습니다. 실제로 우리 정부가 평양에 "칭찬" 비슷한 일을 해주는 것이 정말로 바람직한지 어떤지에 상관 없이, 평양에서 어쩌다가 평화롭고 아름다운 일을 한 번 하고 나면, 다음 번에는 그냥 그저그런 수준의 행동을 할 가능성이 가장 높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걸 보고, "이거 뭐냐.우리가 그렇게 퍼주고 잘한다고 박수 쳐주고 링가링가링 커플 댄스 스텝바이스텝 우우 베이베 밟아 줬는데도 아무런 변화가 없이 살벌하고 썰렁하잖느냐'"하고 허무하다고 배신감 느낀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살벌 하다고요...)

그렇기 때문에, 소위 "햇볕정책"이란, 근본적으로 해내기 어려운 선택이고 그만큼 면밀한 준비가 필요한 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햇볕정책이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래서 평양을 칭찬해 줄 때마다 정말로 남북관계가 조금씩 조금씩 개선된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겉보기에는 도리어 우리를 배신하는 것처럼 보이기 쉽습니다. 매달 약 10%의 확률로 평양에서 남북화해의 몸짓을 보여준다고 하고, 그에 대해 우리가 어떤 칭찬이나 지원을 계속해 나간다고 합시다. 그런 칭찬이나 지원이 정말로 효험이 있어서 한번 마다 1%씩 평양이 화해의 몸짓을 보여줄 확률이 높아지는 정말 좋은 효과가 있다고 합시다. 그래도 10년 동안 그렇게 칭찬하고 지원해준 것이 보람차다고 느끼는 경우는 약 5.3회에 지나지 않고, 반대로 지원해줘 봤자 아무 소용없다고 배반감을 느끼는 경우는 17.7회나 될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관점에서 말하면, 햇볕정책이나 그와 비슷한 화해지원정책을 추진할 때에는 그만큼 더 국민들을 납득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서점에 가면 긍정의 힘 어쩌고 하는 책 많잖아.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잖아. 칭찬은 김정일도 춤추게 할거야" 운운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화해지원정책을 이끌고 나간다면, 반드시 "칭찬이 김정일을 춤추게 하는게 아니라 대포동 미사일을 정열의 쌈바 땐싱에 빠져들게 하는구만"하는 좌절감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 입니다. 정말로 화해지원정책이 효과가 실제로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보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 반드시 미리 대비하고 준비하고 어느 정도 감안하고 대책을 세워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대통령처럼 그저 "실용주의적으로 잘해보겠다"고 의욕만 내세웠다가는, 돌발적인 불상사가 닥치는 그 순간 바로 욕 얻어먹으면서 얼마간 정책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배신당했다, 배반감 느낀다면서, 주저 앉고 실패할 가능성이 큽니다.

반대로 남북관계가 악화 될때 마다 평양을 위협하고 강경책으로 깽판을 치는 것은 얼핏 효과가 좋아 보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는 그런 강경책 때문에 남북관계가 더욱 곪아간다고 하더라도, 겉보기에 당분간은 "보아라 하하하 우리가 어흥하고 위협하니까 김정일도 나를 무서워서 갑자기 고요하고 쫄깃해지지 않았는가?" 라면서 "원칙과 소신의 대응"이 멋있고 좋은 것 같아 보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춤추는 미사일)

평양에 대한 화해지원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더 유의 깊게 나쁜 결과에 준비하고 대책을 세워나가야 할 것입니다. 화해지원정책을 썼지만 아무 효과도 없어보이는 배반감을 느낄 상황에 대해서 어떤식으로 대비해야하는 지를 반드시 고려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는 칭찬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고 질책이 도리어 상황을 조금씩 악화시킨다고 해도, 우연과 무작위의 함정에 잘못걸려들기 쉽기 때문에 감독들은 선수들을 구타하게 됩니다. 교사는 학생에게 매질을 하는 것이 효과적일 뿐 칭찬은 소용 없다는 생각에 자꾸만 빠져들기 쉽습니다. 이런 점을 감독이나 교사는 의식적으로 감안해서 조심스럽게 끊임없이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고보면, 남북관계에 대해서 화해지원정책에 대해서는 정책에 좌절감을 느낄 가능성에 미리 대비하고, 강경대응정책에 대해서는 정책이 쓸데 없이 과대 평가될 가능성에 조심햐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떠올려 볼만한 주의사항입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고 따져 보는 데에 무슨 뜨거운 동포애라든가, 한민족간의 평화에 대한 감개무량한 염원, 혹은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대한 신념이나 불타는 애국심 같은 것이 딱히 중요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잠깐 듭니다. 그런 것들 보다 남북관계에 대한 계획을 준비할 때 더 중요하게 우리가 정말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것은 고등학교 수학 시간에 배웠던 가우스 분포일 수도 있습니다.


* 인용된 사진들은 CC를 따르는 사진들로 rassam1999님, MPR529님, yeowatzup님, (stephan)님, Matthijs Gall님등의 flickr 페이지를 출처로 합니다. 6월 한 달 동안 블로그 활동이 너무 뜸했던 것에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영화, 책에 관한 글들을 중심으로 다시 조금씩 활동해 보겠습니다.
by 게렉터 | 2009/07/01 11:26 | 기타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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