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백과 사전 증보편 51~60

이 글은 괴물 백과 사전 시리즈로, 이전에 정리하지 못한 괴물들을 추가로 정리한 증보 51~60편 항목으로 올리는 한국의 괴물 들입니다.

괴물을 정리한 기준은 이전과 같습니다. 즉, 기록과 기록자, 기록시기가 분명한 18세기 이전에 확인된 각종 괴물들만을 정리했습니다. 따라서, 19세기 이후에 기록된 괴물, 작자가 불분명한 문헌에 기록된 괴물, 소설 속에 등장하는 괴물, 기록 없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온 괴물 등등은 모두 뺐습니다.

비슷한 괴물들끼리는 기록을 합쳐서 하나의 보다 묘사가 풍부한 괴물로 정리했고, 반대로 이름이 같은 괴물이라도 현격히 모습과 습성이 다른 경우에는 다른 괴물로 분리해서 싣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괴물에 대한 설명은, 책에 언급된 그대로의 설명을 옮기는 것에 더하여, 다른 기록에 나오는 비슷한 괴물의 묘사, 비슷한 전설, 비슷한 괴물의 그림, 공예품의 모양 등등을 참조하여 덧붙인 것들이 있습니다.

괴물들에 대한 이야기는 설화를 연구하는 중요한 단초가 되기도 하고, 시대 상황을 파악하는 상징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토론하거나 주석, 해설을 달아볼만한 부분도 많을 것입니다. 아쉬운대로, 일단은 일부에만 간단한 주석을 달았습니다. 대신 모든 괴물들의 그 기록 출전을 밝히고, 언제 어디서 목격되었는지를 최대한 알 수 있게 하였습니다.

괴물의 이름이 불분명한 경우에는 제가 임의로 이름을 붙이는 것은 피했습니다. 대신에 원전에서 괴물의 모습을 묘사하는 대목에 나오는 말을 최대한 그대로 발췌해서 옮겨 쓴 것을 항목의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가능한 한 한자도 같이 표기했습니다.

이 자료에 괴물들을 사실적으로 잘 그려낸 그림을 곁들였다면 더 재미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쉬운대로, 일단은 조선시대 이전의 유물들 중에서 분위기가 비슷하게 맞는 부분 일부를 발췌하여 참고해 볼 만한 자료로 같이 실었습니다.


51. 신유육면 (身有六面: 몸에 얼굴이 여섯개가 있다는 말)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시왕도 중 도시대왕 그림 중 발췌)
커다란 물고기인데 몸에 얼굴이 여섯이 달려 있다. 길이는 사람 키의 두 배가 넘을 정도이다. 12개의 눈이 있는데 그 눈이 꽤 큰 편이어서 소의 눈과 비슷하게 생겼다. 이 물고기가 나타난 것은 흉한 징조로 생각한다. 황해도에서 1606년 발견되었다는 소문이 “고대일록”에 나와 있는데, 병자호란 무렵의 흉흉한 분위기를 나타내는 징조로 언급 되어 있다.

* 괴상한 생물이 나타난 것이 전쟁의 징조라는 형태의 이야기인데, 다른 기록에는 비슷한 것이 보이지 않고 한 사람의 일기인 “고대일록”에 나와 있는 것을 보면 실제로 비슷한 것이 잡힌 사건에 가까운 이야기 보다는, 그런 사건과 관련해 사람들이 부풀리고 지어낸 뜬소문에 더 가까운 이야기였을 것으로 상상해 봅니다. 흉한 징조에 대한 이야기이고, 물고기의 크기가 크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 생각해 보면, 사람을 공격한다거나 악한 일을 하는 것으로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머리가 여섯 개가 아니라 얼굴이 여섯 개라는 묘사를 생각해 본다면, 히드라처럼 머리가 여러 갈래인 물고기라기 보다는 몸 이곳저곳에 눈과 입이 많이 달린 형태에 더 가까울 것입니다. 특히 눈이 소의 눈과 같다는 묘사는 커다란 눈을 나타내는 것으로 짐작되는데, 몸 이곳 저곳에 달린 열 두 개의 눈이 껌뻑거리는 모습이 징그러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52. 대인 (大人)

(분황사 모전석탑 부조)
눈이 하나 밖에 없는 흉폭한 거인으로, 이것이 사는 나라를 가리켜 “대인국(大人國)”이라고 불렀다. 네 다섯 사람을 한 팔에 매달리게 할 수 있다는 묘사로 미루어 보아, 크기는 사람의 세네 배 정도로 상상해 볼 수 있다. 사는 곳에 화로가 있어서 쇠꼬챙이로 불을 뒤적거리는데 여기에 사람을 구워 먹는다. 사람을 굴 같은 곳에 가두어 두고 무게를 가늠해서 무거운 사람부터 잡아 먹는 것을 즐기며, 이때 별다른 양념을 하지는 않는 듯 하다. 몸이 강하여 어지간한 급소는 찔러도 잠을 깨울 수조차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눈이 약점이다. 물 속에서도 매우 잘 다녀서 이것으로부터 탈출할 때 배를 타거나 헤엄쳐 도망치기도 어렵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물건을 제자리에 정리정돈하는 것을 아주 중요시 하기 때문에, 집안 물건을 훔쳐서 도망치면서 여기저기에 내던지면 그것을 정리정돈하는데 바빠서 따라오지 못할 지경이 된다. 남자의 경우, 보통 사람 여자와 혼인해서 지내는 경우도 있고 자식을 낳을 수도 있다. 대인국에서는 한 사람씩의 파수꾼을 외딴 섬에 보내어 지키게 하므로, 만약 이것에 붙잡힌다면 본토로 연락이 가기 전에 도망쳐야만 그나마 빠져나올 수 있다. 흑산도에서 표류한 사람이 이것이 사는 섬에 갔다가 이것에게 잡혀서 12명의 자식을 낳았던 조선 여자의 도움으로 탈출한 일이 유만주의 “통원고” 중” 기문”에 나와 있다.

* 어우야담의 “괴외촉천” 대목과 비슷한 바다 바깥의 낯선 섬에서 무서운 거인을 만나는 이야기 틀을 그대로 유지하는 이야기입니다. 좀 더 후대의 “청구야담”에도 먼 바다에서 만나는 거인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그 경우는 “오디세이”의 퀴클롭스 이야기와도 매우 비슷합니다. 청구야담 쪽 이야기가 “오디세이”와 도망치는 장면까지 비슷한 것과 비교해 보자면, 통원고에 실린 이 이야기는 아직 거기까지 닮지는 않았고, 그냥 눈이 하나라는 묘사 정도만 비슷한 수준입니다. 바다에서 만나는 한국의 거인 괴물에 대한 기록 치고는 크기가 그다지 크지는 않은 것도 특징입니다. 상상해 보자면, 나라를 이루고 파수꾼 조직을 만들어 배치해 둔다는 묘사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거인의 나라에도 그 나라만의 문화가 있어서 이 거인들 나라만의 옷, 장신구, 무기 같은 것이 있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편 그에 비해 거인 자체가 물에서 아주 잘 다닌다는 묘사가 있는 것으로 보아 수영을 잘 할 뿐 대단한 배는 갖고 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대인국이라는 말 자체는 커다란 사람들이 사는 나라라는 뜻일 뿐으로, 비교적 오래전부터 사용된 사례가 있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삼국사기”에도 바다 건너 “대인국”이 있다는 소문이 있다는 언급은 나옵니다. “삼국사기”에서는 허황된 소문일뿐인 것으로 치부하고 있습니다.


53. 서천객 (西川客)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 부조)
온 몸이 깃털로 뒤덮혀 있는 새처럼 자유롭게 날 수 있는 것인데 한편으로는 사람과 비슷하게 생겼고 크기도 보통 사람 크기이다. 얼굴까지 깃털로 덮혀 있다. 날개를 펼치고 건물의 지붕 밑에 자연스럽게 날아 들 수 있다. 어디서 나타나는지 모르지만, 영원히 살거나 천년 이상의 세월 동안 장수한다. 항상 큰 눈이 오기 전에 산 속의 사람이 있는 곳에 나타나서 돌아 다니다가 사라진다. 그래서 사람들이 큰 눈이 올 징조라고 생각할 정도다. 특별히 많은 말을 하지는 않지만 얼굴을 보면 눈빛만은 그윽한 사람의 눈 그대로이다. “증보 해동이적”에 금강산에 매번 큰 눈이 오기 전에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나와 있다.

* “증보 해동이적”에는 “안시객(安市客)”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지역에서 뭔가가 나타난 사례도 같이 나와 있어서 둘이 비슷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안시객”의 경우에는 원래 사람이었다가 이런 모습으로 변한 형태로 되어 있는데, 고구려와 당나라의 전쟁 때 당 태종 이세민을 따라 안시성 전투에 참여했던 당나라 병사가 그곳에 남았다가 어찌저찌 장생의 술법을 익히면서 몸이 변해서 날아갈 수 있는 새 같은 모습이 되었고, 천년이 지난 조선시대까지 살아 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자기 입으로 눈물을 흘리며 해 줍니다. 안시객의 경우에는 대한 절기 즈음이 되면 추위를 견디다 못해 민가에 나타나 곁불을 쬔다고 합니다. 이것은 중국에서도 오래전부터 널리 퍼져 있었던 몸에 털이 난 모습으로 변한 영원히 살 수 있는 사람이나, 몸에 깃털이 있는 신선 이야기의 형태를 따르는 이야기로 분류할 수 있겠습니다.
그에 비해, “서천객”은 왜 “서천객”이라고 하는지도 알 수 없다고 되어 있고, 특별히 연원을 말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처음부터 평범한 사람이었는지 어떤지도 알 수 없는 훨씬 더 수수께끼 같은 형태입니다. 안시객과 비슷한 쪽으로 생각해 보면, 서천객의 그윽한 눈빛이라는 것도 슬픈 눈빛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날개 달린 사람과 비슷한 이야기로, 앞서서 “삼국사기”에 실린 “양액유우”와 “소여수오승”을 소개 했는데, “양액유우”는 보통 사람의 몸에 깃털 또는 날개만 달린 형태이고, “소여수오승”은 부리가 있는 사람 아이 크기 만한 새인데 얼굴의 일부 모양이 사람과 비슷한 흉한 것의 형태입니다. “서천객”은 흉한 것 보다는 길한 것에 가깝고 모습도 보통 사람과 새의 중간 형태라서 또 다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54. 무두귀 (無頭鬼)

(상주 남장사 감로왕도 중 발췌)
머리가 없는 사람 모양의 귀신으로, 아마도 목이 잘려 죽은 사람이 귀신이 된 것으로 짐작된다. 근처에 있는 사람을 병들어 죽게 만드는 힘도 갖고 있다. 그러므로 남을 저주하는 주술을 거는 사람들이 이것을 이용하기도 한다. “묵재일기”에 언급되어 있다.

* 다쳐서 죽은 사람이 죽을 때의 모습 그대로 귀신으로 나타난다는 식의 이야기는 한국과 중국 옛 이야기에서 무척 자주 나오는 편입니다. 특히 소설화된 이야기에 그런 사례가 많은데, 조선시대 글 중에서는 “달천몽유록”이나 “강도몽유록” 같은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달천몽유록”에는 임진왜란 중에 죽은 남자 병사들의 귀신이 어느날 밤 나타나는 장면이 묘사 되어 있고, “강도몽유록”에는 병자호란 중에 죽은 여자들의 귀신이 어느날 밤 나타나는 장면이 묘사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에 따르면, 목이 잘려 사형을 당하거나 전쟁 때 목이 잘려 죽은 사람이 귀신이 되면 머리 없는 귀신이 될 것입니다.
머리 없는 귀신은 그 중에서도 특히 “무두귀”라는 이름으로 언급이 될 때가 있습니다. “묵재일기”, “인조실록”이나 “연려실기술”에도 나와 있는 신숙녀와 이해에 관한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상세한 전말이 정확하게 밝혀 있는 사건은 아닙니다만, 이 사건은 집안에서 누군가 저주하려는 목적으로 머리 없는 아이의 시체를 구해 와서 어딘가에 놓아 두고 주술을 걸었다는 이야기와 그에 얽힌 사연에 대한 것입니다. 이 집안 사람들이 이상한 병으로 줄줄이 죽어 나가자, 이 머리 없는 시체를 이용한 저주의 결과라는 식으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두고 긴 논쟁과 수사가 이어졌습니다만, 저는 남아 있는 기록에서 확실한 진상이나 사건의 결론을 찾아내지는 못했습니다.
비슷한 다른 이야기로는 “기묘록속집”에 소개된 1528년, 성운이 겪었던 일도 있습니다. 이것은 성운이 기묘사화 때 사람을 죽게 했는데, 그후 어느날 눈, 코, 입, 머리카락, 이마가 없는 형체에 팔, 다리도 없는 귀신 모양을 보게 되고 이후로 계속 그 모습이 보여서 겁에 질린 채 10여일 동안 발광하여 괴로워하다가 사망했다는 이야기입니다.


55. 부유면 (復有面: 얼굴이 또 하나 더 있다는 뜻)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팔부중 석탑 면석)
사람인데 얼굴이 두 개가 달려 있어서 목 부분에 얼굴이 하나가 더 있다. 또는 이마 혹은 정수리 부분에 얼굴이 하나가 더 있는 수도 있다. 동해 방향으로 멀리 떨어진 이상한 바다 건너 나라에 사는 족속이다. 배를 타고 다니는 것을 잘 하며, 말을 할 줄 알고 사납지 않은 어느 정도 발달된 족속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알려진 말과 말이 통하지는 않는다. 음식에 대해 특이한 예의를 갖추는 습속이 있기 때문인지, 혹은 보통 사람들이 잘 먹지 않는 음식만을 먹고 살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보통 사람들이 주는 음식은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먹을 수 없다.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먹는 음식만 있는 곳에서는 굶어 죽게 된다. 3세기 무렵에 옥저 지역에서 목격된 이야기가 “지봉유설”에 나와 있다.

* 한국사의 옥저에서 신기한 것이 목격 되었다는 이야기는 본래 중국의 역사서 “삼국지”에 가장 먼저 실려 있는 것입니다. 서기 245년 무렵 무렵 고구려는 조조, 조비, 조예 등 무리의 부하였던 위나라 관구검 무리의 침입을 받습니다. 이 무리는 당시 고구려의 세력이 미치던 지역의 동쪽 끝이라고 할 수 있는 옥저까지 쳐들어 오게 됩니다. 이들은 동쪽 세상 끝까지 왔다고 생각한 것인지, 그곳에서 사람들에게 동쪽 바다 건너에는 무엇이 있는지 물어 보는데, 그때 옥저의 한 노인이, 여인들만 사는 나라, 거인들의 나라, 매년 7월 여자를 제물로 물에 빠뜨리는 나라 등이 있다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난파되어 해안에 밀려온 배 한 척이 있었는데, 그것을 타고 있는 사람의 목 부분에 얼굴이 하나 더 달려 있었다는 말을 하고, 말이 통하지 않았고, 음식을 먹지 않다가 죽었다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이 중국 기록 속의 이야기는 제법 알려져서 “지봉유설”이라든가 “연려실기술” 같은 한국계 기록에도 알려져 실려 있게 된 것입니다.
다만 본래 “삼국지”에서는 목이라는 뜻의 “항(項)”자를 써서, 목에 얼굴이 하나 더 있다고 했는데, 이것이 글자가 잘못 읽힌 탓인지 “후한서” 등 이후 문헌에서는 흔히 이마, 정수리라는 뜻의 “정(頂)”자를 써서, 이마 또는 정수리에 얼굴이 하나 더 있다고 쓴 경우가 있습니다. “지봉유설”의 경우에도 “이마 또는 정수리에 얼굴이 하나 더 있다”는 쪽 글을 옮겨 놓고 있습니다.
괴상한 모양의 이상한 종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특이한 형태로 되어 있어 얼굴 모양처럼 보이는 투구나 장신구를 목이나 이마에 두른 사람을 보고 착각한 것이라거나, 혹은 이마나 목에 정교한 문신 같은 것을 새긴 사람을 보고 착각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56. 서묘 (鼠猫)

(김준근 그림 중 오소리 그림)
흉폭한 쥐의 모습을 한 쥐 종류인데, 가장 공격해서 먹기 좋아하는 것은 다른 쥐이다. 쥐를 잘 잡는 솜씨가 뛰어나서 고양이보다도 쥐를 잘 잡는다. 그래서 쥐 중에서 고양이 같은 것이라는 뜻으로 “서묘”라고 한다. 이것을 만드는 방법은 쥐들을 붙잡아 놓고 먹을 것을 주지 않고 가두어 놓으면 결국 쥐들끼리 서로 잡아 먹기 시작하는데, 그렇게 해서 살아 남은 쥐에게 비슷한 방식으로 계속 쥐만 잡아 먹게 하면, 결국 자신이 쥐면서도 다른 쥐를 아주 잘 잡게 되어 이것이 된다. 조선후기에 같은 동족으로서 다른 동족을 못 살게 구는 사람, 같은 부류로서 비슷한 처지의 사람을 못 살게 구는 사람을 비유하여 “서묘”라고 욕했다고 한다. “영조실록”에 언급 되어 있다.

* 다른 쥐를 잘 잡아 먹는다고 했으므로, 아마 보통 쥐들보다 좀 더 크고, 이빨과 발톱이 날카롭고 공격을 잘 하는 종류일 것으로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대개, 누군가를 괴롭히는 일에서는,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같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공격하고 괴롭히게 되면, 그 사람의 생각과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있으므로 더 철저하게 괴롭히는 방법을 아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이런 경우에는 그 괴롭히는 사람이 더욱 얄밉게 보이기 마련이라서, 이런 부류의 사람은 예로부터 “앞잡이”라든가 하는 식으로 특별히 비난 받곤 했다는 생각입니다. “서묘”는 그런 경우를 일컬어서 한 가지 이상한 짐승 이야기로 꾸며 상징한 사례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57. 희랑 (希郞)

(해인사 목조 희랑대사 상)
희랑은 한 사람의 칭호로, 이 사람, 희랑은 심성이 관대하고 보통사람과 다른 신비한 힘을 갖고 있다. 특히 가슴 한 가운데에 손가락 굵기만한 구멍이 뻥 뚫려 있는데, 이 구멍이 몸 속까지 연결되어 있다. 얼굴과 손은 모두 까맣고 힘줄과 뼈가 유독 울퉁불퉁 튀어 나와 있는 모양이다. 원래 머나먼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이었는데 신라시대에 신라로 건너왔다고 한다. 이 사람은 해인사의 승려로 지냈는데, 가슴에 구멍이 뚫려 있는 승려라고 하여 “천흉승(穿胸僧)”이라고도 한다. 이덕무의 “가야산기”에 나와 있다.

* 중국 고전에서는 “천흉국(穿胸國)”이라고 하여 예로부터 가슴 한 가운데에 구멍이 뻥 뚫려 있는 이상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높은 사람이 바깥 외출을 할 때에는 가마를 태우는 대신에 가슴에 막대기를 끼워 넣고 막대기를 하인들이 메서 들고 다닌다는 식의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청나라 시대의 소설 “경화연”에는 너무 일을 하기 싫어하는 성품을 가진 사람들이 그런 심성 때문에 심장이 한쪽으로 점점 쏠리게 되고 그러다가 가슴에 구멍이 뚫려 버렸다는 설명도 덧붙여져 있습니다. 과거 한의학에서는 사람의 심성과 관계 있는 장기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상상을 했던 것입니다.
그에 비해 승려 희랑조사에 관한 이야기는 아마도 가야산 해인사에 있는 희랑조사 모양의 조각상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조각상에는 왜인지 가슴 중앙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무슨 이유로 뚫은 것인지, 아니면 벌레 먹거나 다른 잘못으로 뚫린 것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만, 조선시대부터 이러한 구멍은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거기다가 희랑조사가 당나라 등의 먼 곳에서 온 외국사람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보니, 아예 가슴에 구멍 뚫린 사람들이 사는 나라에서 희랑조사가 찾아 왔다는 식의 이야기가 생긴 듯 합니다.
희랑조사가 가슴에서 구멍 뚫린 사람들이 사는 나라에서 왔다는 전설은 이덕무, 박지원, 성해응 등 조선시대 여러 사람의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천흉승”이라는 말은 박지원의 “영대정잡영” 중 “해인사”편에 나와 있는 것입니다. 이덕무는 중국의 천흉국 이야기에 비해서는 구멍이 너무 작아 보여서 사실은 아닌 것 같고, 아마 벌레 먹은 구멍을 두고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는 아닌가 추측하기도 했습니다.
현대에 채록된 전설로는 다른 재미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산에 모기가 많아 사람들이 너무 고생하자, 희랑조사가 자신을 희생하여 다른 사람 피는 빨아 먹지 말고 자기 피만 빨아 먹으라고 자기 가슴에 일부러 구멍을 나게 했고 그곳으로 모기들을 초대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기들을 불러 모으고 몰고 다니는 사람이 희랑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고, 희랑을 그만한 희생의 상징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조각상은 색깔은 조금 바뀐 듯 합니다만, 현재에도 남아 있습니다.


58. 어룡 (魚龍)

(유릉 석물)
제주도의 우도에 있는 어룡은 어룡굴이라는 곳에 깃들어 사는데, 그곳은 바다 속에 잠겨 있고 가끔 썰물 때에만 굴 안에 들어 갈 수 있다. 굴에 들어가면 낮인데도 굴 속 세상에는 밤하늘 풍경이 펼쳐져 있어서 별과 달이 굴 안에 떠 있다. 이곳에 어룡이 살고 있는데 신비한 힘을 갖고 있어서 근처에 사람의 배가 함부로 접근하면 천둥과 비바람을 일으킨다. 어룡의 모습은 네 다리가 달린 말과 비슷한 것으로 매우 잘 달리는데, 말의 머리가 보통 말보다 낮은 위치에 달렸고 배는 넙적해서 전체적으로 잉어와 비슷한 면도 있는 모습으로 되어 있다. 사람이 타고 다니기는 어려울 정도로 난폭하게 날뛰어서, 사람에게 발길질을 잘 하고 아주 잘 물어 뜯는다. “탐라순력도” 에 나와 있다.

* 어룡이라는 말은 보통 물고기를 신령스럽게 비유하여 쓰는 말이거나, 아니면 물고기와 용을 같이 일컫는 말, 또는 물고기 같은 용, 용 같은 물고기를 일컫는 말로 흔히 쓰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탐라순력도”에는 우도에 있는 동안경굴의 이름을 어룡굴이라고 하여, 이곳을 우도에 사는 용이 있는 굴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우도에 사는 용에 대해서는 “신룡”이라는 이름으로도 다른 문헌에 여럿 나와 있는 사례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항목에서는 특별히 우도에 사는 어룡, 우도에 사는 신룡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어 보았습니다.
우도의 용과 말을 연결시키는 것은 예로부터 우도에 말을 키우는 목장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우도에 사는 어룡에 대한 겉모습 묘사는 찾아 보기 어렵습니다. 다만, 19세기 초의 기록인 “난실담총”에 어떤 사람이 우도에서 용을 말 종류로 착각하고 구해서 타고 다니려다가 낭패를 본 이야기가 언급 되어 있는데, 여기에 독특한 묘사가 있어서 그것을 반영하여 위 항목에 포함시켰습니다.
굴 속에 들어가면 낮인데도 밤하늘 풍경이 보인다는 것은, 동안경굴 내부의 무늬와 외부에서 새어드는 빛이 동굴 벽면에 비치는 것이 교묘하게 되어 있어서 마치 낮인데도 달과 별이 뜬 것 비슷한 무늬가 나타나는 것을 과장하여 옛 사람들이 표현하던 것입니다.


59. 춘천구 (春川嫗)

(경기도 박물관 소장 요지연도 중 발췌)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이고 젊어 보이는 듯하기도 있지만 한 편으로는 아주 나이가 많다는 점은 느낄 수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사람으로서의 욕망을 완전히 버리고 고고하게 살고 있는데, 바로 그 때문에 장수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마음이 흔들려 사람으로서의 욕망을 조금이라도 느끼게 되면, 그 순간 그 세월에 걸맞는 완연한 늙은 모습으로 돌변하게 되고 이내 병들고 썩은 모습이 되어 죽어 버리게 된다. 춘천에서 어떤 할머니가 스님이 된 그 아들 곁에서 지냈는데 스님이 사망한 후에 오히려 할머니는 득도하여 아주 오래 장수하다가 이런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춘천 부사의 아들이 이 할머니에게 도전하기 위해 그 앞에서 온갖 세속의 시끌벅적하고 음란한 놀이를 10일 동안 보여주었는데, 10일째 되던 날 마침내 할머니가 순간 마음이 잠깐 흔들리자, 단숨에 늙은 모습이 되어 죽어 버렸다는 이야기가, “증보 해동이적”에 나와 있다.

* 백제 때 의자왕을 모시던 사람이 우연히 살아 남았는데 어쩌다 보니 장생하게 되어 그 후 천년이 넘게 동안 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다가 속세 사람과 교류한지 잠깐 만에 늙어 죽어버렸다는 “순오지”의 “백제 궁인” 이야기와 아주 비슷한 형태입니다. 다만 늙은 듯 젊은 듯 하다는 모습에 대한 오묘한 묘사라든가, 속세에 대한 욕망을 품고 있는지의 여부가 젊음과 늙음을 좌우한다는 구도적인 이야기 형태라든가 하는 면에서 이 이야기가 괴물 이야기로 뽑기에는 훨씬 더 특징이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춘천구”라는 제목은 원전에 실린 것인데, 그냥 “춘천의 할머니”라는 뜻입니다.


60. 동악신 (東岳神)

(석굴암 인왕상)
몸의 뼈 길이가 보통 사람 키의 한 배 반 정도인 커다란 사람 모양인 것으로 머리는 특별히 커서 두개골 둘레만 한 아름이다. 특이 치아와 뼈가 한 덩어리로 이어져 있는 형상이다. 그래서 이 골격은 “천하무적역사(天下無敵力士)” 즉 세상에 당해낼 자가 없는 힘이 센 사람의 뼈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대단히 힘이 세고 싸움에 능하다. 그러면서도 꾀가 많고, 속임수에 능하며, 풍수지리에도 밝으며, 한편으로는 스스로를 대장장이로 칭하기도 한다. 물을 마시는 잔에 물 마시는 사람의 입이 달라 붙게 하는 등의 간단하지만 신기한 술법을 부리기도 한다.
아버지는 동해 먼 곳에 있는 용성국이라는 곳의 용왕인 함달파 (含達婆)이고, 어머니는 여자들만 사는 나라의 공주다. 처음 신라에 나타날 때 자신의 부하인 노비들과 일곱가지 호화로운 보물들을 가지고 배를 타고 건너 왔다고 한다. 죽어서 신라의 동악(東岳), 즉 토함산의 신이 되었으므로 동악신이라고 한다. 신라의 임금인 탈해 이사금이 동악신이라는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나와 있다.

* 석탈해의 골격이 대단히 강해 보였다든가, 석탈해가 속임수로 집자리를 빼앗는 이야기, 풍수지리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는 이야기, 물잔에 입을 붙게한 이야기 등은 “삼국유사”에 그대로 나오는 것들입니다. "삼국유사”에는 석탈해가 속임수를 쓸 때 자신을 대장장이라고 소개하는 대목이 있는데, 이런 것을 보면, 동악신을 대장장이의 신, 쇠의 신으로 상상해 볼 여지도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석탈해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삼국유사”에는 “적녀국”의 공주라고 되어 있는데, "삼국사기”에서는 “여국”의 공주라고 되어 있습니다. 동해 쪽에 있는 위치라든가 이름으로 미루어 보아, 여자들만 사는 나라인 “여인국”과 같은 것을 말했다고 보고 위 항목에서는 그렇게 서술했습니다.


소두무족 (小頭無足)

(십신사지 석불)
세상의 종말, 말세, 세상이 멸망할 정도로 큰 난리가 일어날 때 나타나는 것으로 그 난리가 나면 매우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된다. 이것이 나타나는 것을 징조로 난리가 일어나는 것일 수도 있고, 난리가 났을 때 이것이 돌아다니면서 사람을 죽이는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이것은 말세에 일어나는 아주 큰 난리의 상징이다. 그 정확한 모양은 아무도 모르는데, 다만 머리가 작고 발이 없는 모양이라는 말로 암시되어 있을 뿐이다. “정감록”에 나와 있다.

* “정감록”은 18세기 무렵부터 조선을 돌아 다니던 예언서로 기준 판본이 정해져 있지 않고, 후대에 수많은 변형과 위작이 나왔습니다. 그렇습니다만, 이씨가 임금인 조선시대가 끝나고 “정도령”이 나타나 새 시대를 연다는 골자는 널리 알려져서 조선말기의 대표적인 예언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애매하고 믿을 수 없는 예언과 비결들이 담긴 책입니다만, 워낙 관심을 많이 끌어서, 심지어 현대에 들어 와서도 “정감록”의 예언에 진지한 관심을 갖는 사람은 제법 있었습니다.
“정감록”의 여러 판본들에서 떠도는 많은 이야기들 중에 비교적 널리 알려진 내용 중에 세상에 마지막으로 큰 난리가 날 때에 “나를 죽이는 자가 누구인고 하니, ‘소두무족’으로 귀신도 모른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여기서 바로 “소두무족”, 즉 머리가 작고 발이 없는 것이 바로 마지막 난리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는 뜻인데, 위 항목에서는 그 자체를 어떤 괴물 같은 것으로 보고 편성했습니다. 그러나, “정감록” 같은 조선시대 예언서의 특징을 고려해 보면, 정말로 머리가 작고 발이 없는 모양의 어떤 것이라기 보다는, 그 말이 나타내는 성격을 지닌 상징적인 것, 혹은 그런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어떤 한자 글자 같은 것을 의미하고자 “소두무족”이라는 말을 썼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감록”은 작자와 연대를 특정하기는 어려운 불확실한 기록이므로, 정식으로 항목에 편성하지는 않고 그냥 덧붙이겠습니다.

신라의 신과 마귀들, 삼국유사 속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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