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멸 (La Rupture, 1970)

영화의 반전에 여러 가지 경우가 있겠습니다만, 1970년작 “파멸”은 이 영화가 도대체 무슨 장르에 속하는 영화인지가 반전이 되는 영화입니다. 포스터만 보면 악당의 공격과 음모에 휘말린 한 여자의 모험을 다루는 영화로, 범죄물, 추리물 좀 더 나아가면 공포물, 활극이 아닐까 싶습니다. 처음 시작 장면을 보면 무시무시한 가정 폭력을 저지르는 인간이 나오므로, 아닌게 아니라 범죄물 내지는 공포물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갈수록 그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 영화의 독특한 재미였습니다. 어쩐지 어둡고 으스스한 느낌으로 가지만, 이상한 넋나간 꿈 같은 느낌이 같이 흘러서 묘한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포스터)

시작되는 상황은 망나니 남편이 집안에서 행패 부리다가 꼬마인 자신의 아들을 집어 던지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보고 놀란 애 엄마는 남편을 온힘을 다해 난타해서 쓰러뜨리고 쓰러진 아들을 끌어 안습니다. 그리고 혹시 살릴 수 있을까 싶어 전속력으로 병원을 향해 달립니다.

과격한 내용으로 시작하고, 화면에 보여주는 방식도 자극적이고 무섭습니다. 이런 불길한 공포 영화 느낌은 계속 남아 감돕니다. 병원에 도착한 주인공은 엄격한 병원 정책 때문에 아들 곁에 계속 있을 수가 없습니다. 병원 밖에 나가 혼자 불안해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괜히 불길한 느낌이 듭니다. 세상 전체가 주인공을 속이고 매정하게 함정에 밀어 넣고 떠나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눈 속에 흘린 피의 흔적” 같은 소설 느낌마저 감도는 것 같았습니다.

이 영화에는 끝까지 이런 공포 영화 비스무레한 분위기가 서려 있어서, 오묘한 환상적인 맛을 살려 주고 있었습니다.


(엘렌 역의 스테판느 오드랑)

그리고나서 구체적으로 펼쳐지는 사연은 주인공의 망나니 남편이 사실 갑부집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내용은 한국 아침 일일 연속극이나 저녁 일일 연속극이나 주말 연속극이나 수목 드라마나 특선 미니시리즈나 특별기획 드라마나 하여간 그런데서 나오는 것과 아주 비슷합니다. 갑부집 아들이 예술하겠다고 설치다가 뒷골목에서 우연히 가난한 주인공과 만나 결혼했는데,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이 결혼을 인정하지 않아 시댁에서 주인공 여자를 아들 망친 원수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이야기 본론은 남편과 이혼을 결심한 주인공과 그 아들 양육권을 빼앗으려는 시댁의 싸움 구도로 진행 됩니다. 법정 다툼을 하면서, 차근차근 주장에 대한 근거를 내밀고 그에 대해 입증하는 이야기로 갈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무릇 도서관은 멀고 막장은 가까운 법 아니겠습니까? 그리하여 이야기는, 갑부집 시댁에서는 돈을 펑펑 써서 여러 음모를 꾸미고, 주인공이 양육권을 가질 자격이 없는 사람이 되도록 만드려는 것으로 흘러 갑니다.


(변호사와 엘렌)

여기까지는 범죄물, 공포물 분위기가 완연했습니다. 소리지르며 싸우는 장면이나 얼굴에 컵에 든 물 뿌리는 장면 많이 나오는 한국 연속극 중에도 왜 좀 어둡게 나가는 것들과 가깝습니다. 그런데, 초반이 대강 지나갈 때 즈음 이 영화의 이야기는 확 특이하게 변해 갑니다.

주인공은 아들이 입원한 병원 가까운 곳에서 지내기 위해 병원에서 길 건너에 있는 하숙집에서 살기로 합니다. 그런데 이 하숙집은 딱 봐도 이상한 곳입니다. 특이하고 괴상한 사람들만 모여 살고 있고, 뭔가 이상한 규칙이 있는 곳 같기도 합니다. 흰 옷을 입은 병원의 의사가 주인공을 이 하숙집에 소개해 주는 장면은 토끼를 따라 이상한 굴 속으로 들어 가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을 정도였습니다. 불길한 초반 이야기에 괴이한 하숙집 공기가 겹치면, 이 하숙집이 무서운 사람들이 모여 있는 마귀의 집 같은 곳 아닐까 싶은 생각도 잠깐 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반전과 줄거리를 모두 다 밝혀 설명해 보자면 이렇습니다.

이야기가 후반으로 갈 수록, 사실은 이게 다 코미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장르는 범죄물의 무서운 느낌이 꽤 많이 서려 있는 코미디였습니다.

중반 정도만 해도 이게 코미디로 기울어질지 어떨지 애매한 면이 있었습니다. 주인공에게 접근한 시아버지의 졸개 악당은 주인공을 약쟁이 중독자로 몰아 버릴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이때만 해도 내용은 무섭고 암담한 쪽으로 확 내달릴 것 같기도 합니다.

이 졸개 악당은 아주 비열한 놈이라서 뭔가 나쁜 짓을 터뜨릴 것 같습니다. 이 영화의 시작이 불길하고 분위기도 계속해서 어두컴컴하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영화 제목이 “파멸”이란 말입니다. 우리의 주인공은 돈도 십원 한 푼 없는데, 어떻게든 다친 아들을 간호해서 다시 잘 살아 보려고 갖은 애를 쓰고 있습니다. 이 모든 노력이 다 물거품이 되고, 모든 것이 망하고, 주인공은 저주 같은 몰락에 빠지는 무시무시한 공포극으로 이야기가 치달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악당과 엘렌)

이 아슬아슬한 느낌은 후반부에 들어 서면서 멋지게 깨어져 나갑니다. 주인공이 악당의 음모에서 성공적으로 탈출하는 것입니다.

음모를 벗어나는 모습도 독특하며 멋집니다. 이 영화에서 악당의 음모가 분쇄 되는 것은 어떤 영웅의 활약이나 주인공의 천재적인 재능 때문이 아닙니다. 이 악당의 음모는 여러 사람이 그냥 상식적으로 하는 평범한 행동들이 하나둘 차곡차곡 모여 깨어집니다. 괴상하고 음침하기만 했던 하숙집 사람들이 다들 그 과정에서 한몫하면서 악당을 망하게 합니다.

영화 속, 소설 속에서라면 잘 일어나지만 현실적으로는 일어나기 힘든 일이 바로 그 단초가 됩니다. 그런 것들이 모여서 악당의 음모가 망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 영화의 악당은 어리숙한 사람을 납치해 다가 추잡한 짓거리를 하고, 이 모든 나쁜짓을 주인공 “엘렌”이 했다고 말해 주며 그 이름을 반복해서 언급해 세뇌 시키려 합니다. 나중에 사람들이 모여 누가 나쁜 짓을 했냐고 묻자, “엘렌”이 했다고 대답합니다. 순간, 악당은 이제 음모가 성공했구나 하고 좋아합니다. 아닌게 아니라 흔한 영화, 소설, 연속극 속에서는 이런 음모가 맨날 먹혀서 주인공이 누명 쓰고 한 10회에서 20회 정도 고생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고 그 뒤에 이어지는 대답이 있습니다. “저 엘렌 말고 동명이인 다른 엘렌이요.” 어리숙한 사람이라도 동명이인 정도는 따질 줄 아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간단히 악당의 음모는 분쇄 됩니다.

이런 것도 있습니다. 하숙집에는 배우로서의 자존심만 불타는 무명 배우가 있습니다. 악당 일당은 무명배우에게 좋은 출연 기회를 주어 성공하게 해주겠다면서 대신 음모에 협조하라고 제안합니다. 보통 소설이나 연속극에서는 여기에 말려 들어 주인공을 망하게 하는 길을 깔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기서 무명배우는 협조를 거절합니다. 워낙 자존심이 세서 그런 식으로 성공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지저분한 일에 일부러 골치 아프게 끼어들고 싶어하지 않는 겁니다.

다 이런 식으로 당연한 상식이 하나 둘 섞여 들어서 통쾌하게 이끕니다. 악당은 주인공에게 마약이 든 사탕을 주고 그걸 받아 먹으면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무슨 애도 아니고, 사탕을 왜 먹어요?” 라면서 아주 상식적으로 거절 합니다. 또, 주인공은 자동차가 없습니다. 악당은 주인공이 공항에 가야 할 때 주인공을 태워서 데려다 준다는 핑계로 납치할 계획입니다. 그런데 주인공은 그냥 택시를 타고 가버리는 겁니다. 음모에 걸려들 아슬아슬한 순간, 호쾌하게 주인공이 택시를 타고 이 모두를 그냥 떠나갑니다.

이 영화의 결말도 기억에 남습니다.영화의 맨 마지막은 끝까지 미련을 못버린 악당이 주인공이 아침에 먹는 오렌지 주스에 환각제를 넣어서 주인공을 어떻게 해 보려는 겁니다.

주인공은 환각제를 먹고, 정신이 점점 이상해져 가는 것을 느낍니다. 주인공은 자신이 환각제를 멋었음을 직감하고 곧 자신이 이상하게 변할 것을 예상합니다. 그리고 이게 다 악당의 수작이라는 것도 간파하고 주위에 외칩니다. 이 장면의 연출은 기가 막힙니다. 그냥 자리에 앉아 주스를 먹는 장면이지만, 주변사람의 대화와 주인공의 말 소리, 생각을 표현하는데 쓰는 울리는 소리 등등이 섞이고 주인공의 시선과 표정이 오묘하게 겹쳐지며 서서히 제정신이 아니게 서서히 변하는 느낌을 무슨 터널 속으로 빨려들듯이 표현합니다.

주인공이 약을 먹었다는것을 알게 되자, 지금껏 헛소리하며 하루 종일 카드 놀이 하는 것 밖에 일이 없던 한심한 듯 했던 하숙집의 할머니 세 명이 주인공을 보호하기 위해 주인공 곁에 붙습니다. 주인공은 환각이 보이고 약기운이 올라 길거리로 웃으며 춤추듯이 뛰쳐 나가고, 하숙집 할머니들은 주인공을 보호하기 위해 따라 가며 뛰어 다닙니다. 주인공이 환상에 빠진 이 마지막 모습은 옛날 사이키델릭 분위기까지 확확 불어 넣으며 말그대로 환상적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하숙집의 할머니 3인조)

주인공은 퇴원한 아들과 함께 파리로 떠날 예정이었습니다. 이 모든 인생의 고난과 역경의 구덩이에서 빠져 나올 주인공의 마지막 장면이 이런 환상 장면으로 꾸며져 있는 것은 악몽에서 깨어나기 직전이 가장 말이 안되는 장면인 것과도 비슷합니다. 한편으로는 초장부터 이어온 을씨년스러운 마귀들린 느낌이 끝까지 남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환상에 빠진 주인공은 공원에서 종종 마주치던 풍선 장수를 보고 하느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얽매여 있는 천사들을 풀어 주라고 합니다. 주인공은 풍선 장수가 들고 있는 풍선을 모조리 하늘 높이 날아 오르게 합니다. 뒤따라 온 할머니들은 풍선 값은 자기들이 물어 준다고 합니다.


(공원의 엘렌과 풍선장수)

정체 불명의 알 수 없는 느낌을 따라 가면서, 뭐가 될지 모를 다음 이야기를 아슬아슬하게 기다리는 재미가 좋은 영화였습니다. 그러면서도 특이한 장면, 통쾌한 대목도 충분한 영화였습니다. 여느 TV 연속극처럼 우리의 주인공이 시아버지를 찾아가서 후련하게 이딴 짓 집어 치우라고 퍼부어 주는 대목은 정석대로 즐거웠습니다.

다만 무시무시한 느낌에서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로 아주 부드럽게 연결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연결이 조금 지루할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하숙집 사람들 개성이 좋은 코미디에 걸맞은 만큼 충분히 많이 살지도 않았습니다. 주인공 입장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이다보니, 악당의 음모가 주변사람들의 사소한 비협조가 모여 산산히 깨어진다는 핵심 아이디어 역시, 악당 입장에서 속이 터질만큼 잘 표현되지는 못했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공포, 범죄, 환상, 코미디 성격의 사이 비중 조절은 균형이 무너져 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어긋난 점들조차도 괴상하게 뒤집히는 이야기로 나아가는 이런 영화에는 오히려 맛을 더하는 면도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 밖에...
배경 사연을 알려 주는 것을 그냥 주인공이 버스 타고 가면서 주절주절 긴 이야기하는 장면으로 때워 버리고 있었습니다. 대강 제작비 아끼자고 말로 때우고 넘어 가는 것일 수도 있었는데, 스테판느 오드랑의 이야기하는 것이 워낙 몰입감을 잘 끌어내고 자연스러운데다가, 버스 바깥 풍경 보여 주다가 주인공 얼굴 보여 주다가 버스 안을 비춰주다가 하는 화면 전환도 잘 따라다니고 있어서, 도리어 기억에 남을 좋은 연기로 보일 지경이었습니다.

스테판느 오드랑이 하필이면 “엘렌(Hélène)”이라는 이름의 인물을 연기하고 당시 그 남편이었던 클로드 샤브롤이 감독을 맡은 영화로 60년대말 70년대초에 몰려 나온 4편의 영화 중 세번째 편입니다. 대강 엘렌 시리즈라고 부를 만한 영화들인데, 흔히 엘렌 사이클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네 편은 나온 차례대로, “부정한 여인”, “도살자”, “파멸”, “어두워지기 전에” 입니다.

엘렌 시리즈 첫 편인 “부정한 여인”과 마지막 편인 “어두워지기 전에”에서 스테판느 오드랑의 남편으로 나왔던 미셀 부케가 여기서는 스테판느 오드랑의 시아버지로 나옵니다.

부정한 여인 (La Femme Infidele, 1969)

1969년작 “부정한 여인”은 제목과는 달리 남편이 주인공인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아주 행복해 보이게 잘 사는 것 같은 부유하고 평화로운 가정의 남편이 있는데, 우연히 부인이 바람 났는지 의심하게 되고 그것을 점점 따라가다가 범죄도 한 건 저지르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남편에게 집중해서 간단하게 하나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따라 가는 방식입니다만, 그 과정... » 내용보기

한 밤의 암살자 (Le Samouraï, 1967)

1967년작 “한 밤의 암살자”는 알랭 들롱이 연기하는 살인 청부 업자가 한 건을 벌이고, 경찰에게 추적 당하고, 동시에 범죄 조직으로부터 추적 당하는 이야기를 하는 영화입니다. 내용은 천천히 차분하게 진행되고, 말이 없고, 알랭 들롱은 차갑고 강한 눈빛을 뿜으며 쓸쓸하게 혼자 싸돌아 다닙니다. 중요한 일 뿐만 아니라 그 앞뒤의 그냥 걸어 다니고 주변 ... » 내용보기

레드 퀸은 일곱 번 죽인다 (La Dama rossa uccide sette volte, 1972)

이탈리아산 연쇄살인마 영화의 유행기에 나온 영화, “레드퀸은 일곱번 죽인다”는 비교적 전통적인 공포물과 당시 유행하던 이탈리아산 연쇄살인마 영화, 그러니까 소위 지알로라는 것의 중간 정도에 자리 잡은 영화입니다. 내용은 성채에서 살고 있는 한 귀족 갑부의 후손 손녀가 있는데, 죽은 자기 동생이 되살아 나서 “레드퀸”의 전설 대로 살인을 하는 것 같다는 ... » 내용보기

에블린이 무덤에서 나온 밤 (La Notte che Evelyn uscì dalla tomba, 1971)

1971년작 이탈리아산 연쇄살인마 영화 “에블린이 무덤에서 나온 밤”은 당시 유행하던 비슷한 부류의 영화들, 그러니까 지알로 분위기가 슬쩍 가미되어 있습니다. 완전한 지알로 영화라기 보다는 지알로가 섞인 전통 공포물에 가깝긴 합니다. 내용은 큰 성채에 사는 좀 맛이 간 귀족 갑부 남자가 있는데, 돈으로 여자를 사서 끌어 들인 뒤 살인하는 놈이라는 것으... »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