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백과 사전 증보편 31~40

이 글은 괴물 백과 사전 시리즈로, 이전에 정리하지 못한 괴물들을 추가로 정리한 증보 31~40편 항목으로 올리는 한국의 괴물 들입니다.

괴물을 정리한 기준은 이전과 같습니다. 즉, 기록과 기록자, 기록시기가 분명한 18세기 이전에 확인된 각종 괴물들만을 정리했습니다. 따라서, 19세기 이후에 기록된 괴물, 작자가 불분명한 문헌에 기록된 괴물, 소설 속에 등장하는 괴물, 기록 없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온 괴물 등등은 모두 뺐습니다.

비슷한 괴물들끼리는 기록을 합쳐서 하나의 보다 묘사가 풍부한 괴물로 정리했고, 반대로 이름이 같은 괴물이라도 현격히 모습과 습성이 다른 경우에는 다른 괴물로 분리해서 싣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괴물에 대한 설명은, 책에 언급된 그대로의 설명을 옮기는 것에 더하여, 다른 기록에 나오는 비슷한 괴물의 묘사, 비슷한 전설, 비슷한 괴물의 그림, 공예품의 모양 등등을 참조하여 덧붙인 것들이 있습니다.

괴물들에 대한 이야기는 설화를 연구하는 중요한 단초가 되기도 하고, 시대 상황을 파악하는 상징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토론하거나 주석, 해설을 달아볼만한 부분도 많을 것입니다. 아쉬운대로, 일단은 일부에만 간단한 주석을 달았습니다. 대신 모든 괴물들의 그 기록 출전을 밝히고, 언제 어디서 목격되었는지를 최대한 알 수 있게 하였습니다.

괴물의 이름이 불분명한 경우에는 제가 임의로 이름을 붙이는 것은 피했습니다. 대신에 원전에서 괴물의 모습을 묘사하는 대목에 나오는 말을 최대한 그대로 발췌해서 옮겨 쓴 것을 항목의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가능한 한 한자도 같이 표기했습니다.

이 자료에 괴물들을 사실적으로 잘 그려낸 그림을 곁들였다면 더 재미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쉬운대로, 일단은 조선시대 이전의 유물들 중에서 분위기가 비슷하게 맞는 부분 일부를 발췌하여 참고해 볼 만한 자료로 같이 실었습니다.


31. 녹족부인 (鹿足夫人)

(하동 쌍계사 감로왕도 중 발췌)

사람의 모습인데 발 부분은 사슴의 발인 것이다. 산 속에서 살지만 고귀한 사람과 교류하며 지내기도 한다. 한 번에 열 두명에게 젖을 먹일 수 있다. 한 번에 아홉에서 열 두 명 정도의 자식을 낳는다. "광법사사적비명", "여지도서"에 황해도, 평안도 지역의 전설로 나와 있다.

- "광법사사적비명"의 기록에는 "녹족부인"이라는 이름과 한 번에 아홉명의 자식을 낳았는데, 자식이 불길하여 버리자 나중에 그 버린 자식들이 외국에서 장수가 되어 병사들을 이끌고 고향으로 쳐들어 왔고, 이때 어머니인 녹족부인을 알아 보자 싸움을 중지하고 불교에 귀의했다는 이야기가 나와 있습니다. "여지도서"에는 배경이 고(구)려로 구체화 되었고, 녹족부인의 젖이 열 둘이라는 묘사가 추가 되었습니다. 이후 채록된 기록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묘사가 덧붙여졌고, 1940년대에 나온 "조선전래동화집"에서는 완연히 동화풍으로 이야기가 꾸며지기도 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세심폭포 주변에서 이암대사를 사모하던 암사슴이 낳은 딸이 녹족부인이라는 말이 실려 있습니다.

19세기, 송병선의 기록인 "지장수산기"에는 장수산 녹족정의 전설이라면서, 특별히 성별을 언급하지 않은 신선으로 "녹족선(鹿足仙)"이 있었다고 나와 있기도 합니다. 체로키 등 북아메리카 원주민 전설에 나오는 사슴 여인(deer woman)과 비슷한 점이 있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32. 독흑리 (禿黑狸)

(곡성 태안사 적인선사탑 조각)

살쾡이 같은 것인데 온몸이 새까맣고 머리에는 털이 없다. 혹은 온몸에 털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 모양은 여우를 닮은 점도 있다. 3천살 이상 장수하며, 사람 보다 지혜로워서 앞일을 내다 본다. 모습을 숨긴 채 사람에게 말을 할 수 있다. 신령스러운 것으로 사람에게 환상을 보여 줄 수 있으며, 동산을 무너뜨려 사람과 집을 흙에 묻히게 만들기도 한다. 삶에 대한 깨달음을 간절히 원하기도 한다. 깨달음을 얻으면 기력을 다하여 죽는다. "해동고승전"에 나와 있다.

- "해동고승전"에는 이것이 "독흑리"라고 되어 있는데, 같은 이야기를 옮겨 놓은 "삼국유사"의 기록에는 이것을 "칠한 것처럼 까만 여우"라고만 해 놓았습니다. 삼기산을 배경으로 원광법사에게 불교에 대한 지식을 구할 것을 추천하고 지시하며 스스로도 깨달음을 얻기를 원하는 것으로 등장합니다.


대비관운 (大臂貫雲: 큰 팔이 구름을 꿰뚫었다는 말)

(창원 성주사 감로왕도 중 발췌)

매우 거대한 사람의 팔 모양인 것으로 그 크기가 아주 커서 하늘 위 구름을 뚫을 정도이다. 산 속에서 나타나는데 다른 부위의 모습이 있는 지 없는 지는 명확하지 않다. "해동고승전"에 나와 있다.

- "해동고승전"의 원광법사 이야기 대목의 "독흑리" 부분에서 "독흑리"가 자기 모습을 보여 달라고 했을 때 원광법사에게 보여 준 모습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묘사가 무척 신비롭습니다만, 이야기 내용상 단순히 독흑리가 보여준 환상, 또는 독흑리의 다른 모습으로 볼 수 있으므로 별도의 항목으로 뽑지 않고 한 항목에 묶었습니다.


33. 선할선속 (旋割旋續: 여러 번 베어도 여러 번 다시 이어진다는 말)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노리개)

거문고 줄 같은 같은 끈 모양이다. 사람의 배를 묶고 꽉 조여서 죽이려고 한다. 칼로 끊으면 끊을 수 있으나, 여러번 시도해도 저절로 다시 연결 된다. 여자의 목소리를 내어 사람의 말을 할 수 있다. 사악한 것이므로 주술로 몰아 낼 수 있다. "월정집"의 "만록"에 곽산에서 벌어진 정희량에 관한 이야기로 나와 있다.


34. 엽인족항 (獵人足項)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려 서조문팔화형경)

후투티 종류인 오디 새와 비슷한 산새인데 그와는 다르게 부리가 길고 검다. "엽인족항"이라는 이름은 그 울음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붙인 것이다. 산에서 사는 것인데, 가끔 사람들이 사는 성 안으로 떼지어 올 때가 있다. 그러면 불길한 것으로 여긴다. 이 새는 "병조(兵鳥)"라고 하여, 군사들이 싸우는 일을 암시하는 새, 또는 병졸처럼 싸우는 새라고 한다. 1197년 음력 5월에 발견된 일이 "고려사"에 나와 있다.


35. 육덕위 (肉德威)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전 정홍래 욱응도)

독수리와 비슷한 종류인데 크기가 아주 커서 호랑이도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을 업고 날아갈 수도 있다. 호랑이를 보면 호랑이의 머리 위에 앉아 그 눈동자를 쪼아서 먹으며 공격을 한다. "한죽당섭필"에 나와 있다.

- "한죽당섭필"에서 "육덕위"를 소개하는 대목에서 여러 독수리, 매 종류를 같이 이야기하는데, 보라매, 송골매, 수지니, 산지니 등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한자 표기를 쓰지만 대부분 한국어의 소리 나는 것을 따서 표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육덕위"라는 이름도 아마 "고기뜯기", "육뜯이" 정도의 이름을 표기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36. 장인 (長人)

(외규장각 의궤의 방상씨 그림들 중 발췌)

신라 동쪽의 장인국이라는 나라에 사는 것으로, 키가 세 길, 그러니까 사람 키의 다섯 배, 여섯 배 정도이고 이빨은 톱과 같고, 손톱은 갈고리 같으며, 벌거 벗고 사는데 몸은 검은 털이 많이 나 있다. 동물을 익히지 않고 먹고, 가끔 사람도 잡아 먹는다. 신라 사람들은 산골짜기를 철문으로 봉쇄하여 “철관”을 만들어 놓고 항상 쇠뇌 쏘는 병사 수천명을 배치해 지키고 있다. "삼국사기"에 나와 있다.

- "삼국사기"에는 "기문", "신당서" 등의 중국 기록에 이 장인국 이야기가 나온 것이 헛소문이라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소문이 있다는 자체는 이야기했습니다. 이후에도 비슷한 거인 이야기가 많이 나왔습니다. 이 기록은 역시 헛소문인 듯 하다는 내용으로 조선 후기 "동사강목"등에도 인용 되었습니다.


37. 하늘로 올라 가는 긴 물고기

(영천 은해사 백흥암 수미단 조각 장식)

산 가까운 곳의 연못 속에서 사는 물고기로 사람이 먹이를 주어 키울 수 있다. 길다란 모양인데 크기는 사람의 키와 비슷한 길이까지 자란다. 어느 정도가 되면 연못 깊숙한 곳으로 숨어서 나타나지 않는데, 때가 되면 용과 같은 모습으로 하늘 위로 올라 가며, 이때 비를 뿌린다. 신령스러운 것으로 바다, 파도의 형세를 잘 알아 보며, 사람에게 위험을 미리 알려 도움을 주기도 한다.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학산한언"에 김육이 만난 이야기로 나와 있다.

- 물고기가 용으로 승천하는 형태의 이야기인데, 물고기의 모습 묘사와 행태는 특색이 있습니다.


38. 내투지응 (渤海國來投之應: 누구인가 와서 의탁할 징조라는 말)

(광주 칠석 고싸움놀이 고)

거대한 지렁이로 길이가 70척으로, 사람 키의 10배, 20배 정도의 크기이다. 굉장한 크기 이외에 특별한 특징이나 습성은 없다. 925년 음력 3월에 개성에서 나타난 일이 "고려사"에 실려 있다. 이때에는 발해에서 고려로 사람들이 와서 의탁할 징조라는 뜻으로 해석했다고 한다.


39. 천모호 (淺毛虎)

(융릉 돌호랑이)

털이 듬성듬성 나 있는 모양의 호랑이 같은 것으로, 털이 빠진 부분의 가죽은 징그럽게 생겼다. 매우 포악하고 무서우며 날쌔고 가죽도 두껍고 잘 견디는 편이어서 사냥하기가 매우 어렵다. 어지간히 뛰어난 사냥꾼 조차도 총알이 명중 했는데 바로 죽지 않는 것을 보면 겁을 먹고 도망친다. 함경도 지역에서 한 마리가 400명의 사람을 죽거나 다치게 했다고 하는데, 40명의 포수를 동원했는 데에도 잡는데 실패했다. 결국 뛰어난 포수로 이름난 김파총이 자신의 아들과 힘을 합쳐 16발의 총알을 명중시킨 끝에 겨우 사냥에 성공한 이야기가 "고운당필기"에 나와 있다.

- "고운당필기"를 쓴 유득공이 호랑이 이야기만 모아서 썼다는 "속백호통"에도 실려 있을 법한 이야기입니다. "속백호통"은 현재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40. 목랑 (木郞 또는 두두리(豆豆里))

(경주 왕룡사 목조문무인상)

나무 토막 모양으로 된 것인데 사람과 비슷한 면도 있어서, 말을 타고 무기를 사용할 수도 있다. 사람과 말을 주고 받을 수도 있다. 사람이 섬기고 떠 받들면 그 사람을 신령스러운 힘으로 돕기도 한다. 여럿이서 몰려 다니며 행동하는 일도 많고, 건물을 짓거나 공사하는 일에도 뛰어나다. 경주 지역에서 믿고 떠받든 사람들이 많은 편이었으며, 말과 무기를 주면 몽골군을 몰아내주겠다고 말했다는 일이 "고려사"에 나와 있다. 한편 신라의 비형랑과 관계가 있다거나, 고려의 이의민이 섬겼는데 이의민이 패망하기 직전에 이것이 미리 예상하고 한탄했다는 말이 "동국여지승람"에 나와 있다.

- "목랑"은 고려사에 나와 있는 말인데, "동국여지승람"은 "두두리"라는 이름으로 이것을 지칭하면서, 신라의 비형랑 이야기와 이의민의 "두두을(豆豆乙)" 이야기도 모두 "두두리"라는 이름으로 소개 했습니다. 고려사에 이것이 "목매(木魅)" 즉 나무 귀신이라는 설명은 있으나 구체적인 겉모습에 대한 묘사는 부족한데, 이의민이 집에 두고 모셨다는 설명이나, "두두리"라는 발음에 착안하여 전체적으로 몽둥이 비슷한 모양으로 추측하는 현대의 연구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마 나무를 깎아 원통형으로 만든 사람 조각상 비슷한 것이지 싶습니다. 위에서는, 무기와 말을 달라고 했다는 이야기와 비슷한 성격으로 추측되는 경주 왕룡사 목조문무인상 유물 모습을 참고하여 모습을 서술 했습니다.

비형랑 이야기가 도깨비 이야기와 닮은 점이 있는 점, 목랑이 나무의 귀신이라는 점에서 추측하여, 현재 우리가 도깨비라고 부르는 것의 한 형태가 과거에는 목랑 또는 두두리라고 추측하는 연구도 많이 알려진 편입니다.


영등 (靈登 , 또는 영동(靈童))

(제주 내왓당 무신도 중 상군위)

바람의 신으로 음력 2월에 사람 사는 곳에 내려 왔다가 다시 돌아 간다. 그 모습은 할머니라고도 하고, 어린 아이라고도 한다. 이때 겪은 일에 따라, 비를 내려 줄 지, 바람을 내려 줄 지 결정하므로, 사람들이 농사나 항해에 도움을 받기 위해 제물을 바치면서 떠받들고, 영등의 마음에 들고자 노력한다. 제주도와 경상도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널리 믿었다는 이야기가, "일성록"의 1785년 기록에 나와 있다.

- 흔히 현대에 "영등신", "영등할머니" 등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현재의 "영등"에 대한 민속과 흡사한 것이 "동국여지승람"에서는 제주도의 "연등" 풍습으로 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는 등을 밝히는 조선초 또는 고려시대의 행사였던 것이 주술적인 신앙으로 발전하면서 와전되어 신의 이름이 "영등" 또는 "영동"이 된 듯 합니다. 18, 19세기에는 "영동"이라고 하여 신령스러운 아이 형태의 신이라고도 생각했으며 현대처럼 "할머니" 신이라고 생각한 기록도 보입니다. 현대에 조사된 민속에서는 영등 할머니가 딸을 데리고 오면 날씨가 어떻게 되고, 며느리를 데리고 오면 날씨가 어떻게 된다는 등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겉모습에 대한 묘사 기록이 부족하여 별도의 항목으로 뽑지는 않았습니다. 19세기의 "낙하생집"에 할머니 모습인지, 아이 모습인지, 혼란스러워 하는 말이 있는 것에 착안하여 상상해 본다면, 아이와 할머니를 묘하게 닮은 모습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겁니다. 그 외에 19세기 "탐라지"의 기록이나 현대에 조사된 제주도의 무속 기록에서는 세 조각 또는 네 조각으로 나뉜 사람의 시체가 신이 되었다는 말도 나오고, 경남 민속에서는 세 발이 달린 나무를 거꾸로 매달아 놓은 것을 신의 몸체로 삼았기도 합니다. 현대에 조사된 제주도 무속 기록에는 외눈박이 괴물의 공격을 받아서 영등이 몸이 여러 조각으로 나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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