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마군영 (獵魔群英, 폴리스 마담4, Devil Hunters, 1989)

"엽마군영"은 위장한 경찰들이 멀리서 감시하는 가운데 조직 폭력배 두목 둘이 거래를 하는 장면으로 출발합니다. 거래하는 장소가 대낮의 사람 많은 놀이공원 한 켠이라서 아무것도 모르고 즐겁게 노는 사람, 사람들과 긴장감 넘치는 거래가 대조되면 재미를 불러 일으킵니다. 그런데 이 장면은 일이 엉뚱하게 꼬이며 서로서로가 믿지 못하고 싸우는 혼란스러운 난장판으로 이어지고, 놀이공원의 총격전으로 넘어가며 난리가 납니다. 도대체 뭐가 꼬여 있고 누가 누구를 속이고 있기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입니까?


(포스터)

흥미로운 문제를 던지는 시작 장면입니다. 문제는 이 영화에서 이 문제를 제대로 잘 안 전달하면서 중반까지 계속 혼란스럽게 간다는 겁니다.

영화 포스터만 보면 이 영화에서 강조되어 있는 배우들은 호혜중과 이새봉입니다. 호혜중은 조직 폭력배를 검거해야 하는 경찰 역할을 맡았고, 이새봉은 조직 폭력배 다툼 사이에 끼어든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의 인물을 맡았으니, 둘이 싸우기도 하고 협력도 하면서 문제를 풀어 나가는 영화인 듯 보입니다.

"예스 마담"의 흥행 이후, 80년대 후반 한국에는 여성 주인공이 악당들을 다 박살낸다는 영화의 열풍이 불었고 이런 영화들은 소위 "마담 액션"이라고 불리웠습니다. 그러니 "땡큐 마담"시리즈의 주인공으로 선전되었던 호혜중과 "폴리스 마담"시리즈의 주인공으로 선전되었던 이새봉이 동시에 같이 나오는 꿈의 영화가 바로 이 영화 "엽마군영"인 듯이 보일 법도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땡규 마담과 폴리스 마담이 싸우면 누가 이김?)

그렇습니다만, 영화를 보다 보면, 호혜중이나 이새봉 외에 악당 폭력배 두목이나 졸개들의 이야기가 계속 적지 않은 비중으로 나오고, 특히 악당 폭력배 중 하나의 아들인 여량위는 호혜중 보다도 분량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여량위가 도대체 이게 다 무슨 꼬인 사연인지 추적하는 이야기, 호혜중이 추적하는 이야기, 중간중간 나오는 이새봉이 "당신에게 정보를 드리지요" 어쩌고 하면서 뭔가 알고 있는 듯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면서 사연을 안 가르쳐 주는 이야기가 혼란스럽게 섞여 가며 나옵니다.

그러다가 중간 쯤에 이르면, 아주 비중이 작은 단역인 줄로만 알았던 폭력배 부하 한 사람인 진혜민의 배역 이야기가 갑자기 길게 나옵니다. 진혜민은 밖에서는 무서운 폭력배들과 엉켜 사는 사람이지만 집에 가면 아내와 자식들에게 자상한 남편인데, 아내와 자식들이 납치를 당해서 협박을 당하고, 그런데도 두목에 대한 충성과 의리를 버릴 수는 없고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겪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게 뜬금 없이 나온 장면치고 내용도 진지하고 이상하게도 진혜민의 연기도 참 좋습니다.

그러니까 중간에 갑자기 진혜민 혼자 당시 유행하던 홍콩 느와르 영화를 찍고 있는 겁니다. 홍콩 느와르 영화답게, 혼자 적진에 뛰어들어 쌍권총을 쏘며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수십명을 쓰러뜨리는 장면도 나옵니다. 본론과 별 관계 없는 장면치고는 연출도 참 잘 되어 있어서, 아슬아슬하게 총탄을 피하는 느낌, 과감하게 돌격해 들어가며 총을 쏘며 덤비는 느낌이 사람을 따라 화면이 움직이고 리듬 좋게 나뉘어 편집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이상한 영화 중에는 촬영이 부실해서 당혹스러운 경우도 있습니다만, 이 영화의 경우에는 촬영이 너무 잘 되어 있어서 무척 당혹스럽습니다. 이런 단역의 사연이 이렇게 길게, 좋은 촬영으로 나올 일인가 싶다는 겁니다. 왜 이런 곁가지 이야기가 이렇게 길게 잘 자리잡고 있는 겁니까?


(혼자서 홍콩 느와르 영화를 중간에 찍고 있으면서 시간을 한참 떄우는 진혜민)

과연 그 좋은 장면들은 전체 이야기 앞 뒤에 별 영향을 안 미치는 내용이라서 통으로 다 잘라서 들어 내 버려도 이야기 연결에 큰 상관은 없을 정도입니다. 이외에도 괜히 쓸데 없이 잔인하고 보기 싫은 악당들의 고문 장면 같은 것들이 중간에 간간히 나와서, 영화의 시간을 때웁니다. 이게 또 별로입니다. 이새봉 쪽의 즐겁고 경쾌한 활극과 안 어울리는 칙칙한 이야기로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듭니다.

막판 결전 장면은 폭력배 두목이 숨겨 놓은 보석을 찾으러 가는 폭력배 두목의 배신한 부하를 습격하러 우리의 주인공들이 쳐들어 가는 것입니다. 시간을 맞춘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결정적인 순간에 딱 맞춰 공격하러 갈 수 있는 지 모르겠습니다만, 호혜중, 이새봉, 여량위가 한 팀이 되어 자동소총 수류탄 등등 온갖 무기를 짊어 지고 악당들을 쳐 부수러 떠납니다. 왜 이 세 사람이 한 팀이 되는 지, 경찰의 지원 병력 없이 이 세 사람만 달랑 가는 지, 그런데 그러면서도 또 무기는 왜 이렇게 어마어마한지, 그런 것일랑은 적당한 핑계로 대충 때우고 넘어 갑니다.

부서져 가는 낡은 건물에 세 방향에서 주인공들이 습격하여 쳐들어 가면서 자동소총을 마구 쏘아 대고, 아슬아슬하게 악당들의 총을 피해가며 육박해 들어가는 이 결전 장면은 제법 뛰어나게 잘 잡혀 있었습니다. 게다가 보석을 찾기 위해 온갖 비열한 짓을 했던 악당 두령이 마지막까지 보석을 챙기기 위해 연연하는 모습의 추하고 악한 모습도 잘 잡혀 있었습니다.

부하들을 시켜 보석 상자를 챙겨 떠나려고 하는데, 주인공들의 공격에 부하들이 다 죽고, 잠깐 사이에 보석 상자도 박살이 나 빛나는 보석들은 부서져 가는 더러운 건물 바닥에 널브러집니다.

약아 빠진 냉혈한 악당이었던 오진우는 탄환이 빗발치지만 그대로 갈 수가 없어서 바닥에서 보석을 닥치는대로 집어 대충 주머니에 쑤셔 넣은 뒤 죽은 부하들을 남겨 두고 혼자서라도 도망치려 합니다. 허겁지겁하는 오진우의 표정과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화면에 스쳐 지나갑니다. 영화 전체 내내 더러운 악역 연기를 인상적으로 보여준 오진우의 연기가 훌륭해서 이 대목은 영화 전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입니다.

막판 결전에서 혼란한 가운데 총격전을 펼치고 나중에는 여러가지 발차기를 하며 열심히 싸우는 이새봉과 호혜중의 모습은 훌륭합니다. 최고의 수준이라고 하기에는 약간씩 비는 부분은 보이지만 박력은 충분합니다. 싸우는 배우들의 연기도 참 좋아서, 한 손에 총을 들고 한 손으로 수류탄을 던져야 하니 호혜중은 입으로 물어서 안전핀을 뽑는데 그냥 스윽 지나가는 장면이지만 이때 동작과 표정은 안전핀이 달콤해 보일 정도로 강렬합니다.


(전성기의 호혜중)

이 결전의 마지막은 이 무렵 홍콩 마담 액션이라면 항상 그러하듯이 대폭발 장면 폭발을 뒤로하고 아슬아슬하게 주인공들은 뛰어 내리는 장면으로 끝이 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폭발, 탈출 장면에서 세 배우 중 두 배우가 제대로 못 뛰어내렸는데 너무 빨리 뒤에서 폭발이 터져 버렸습니다.

이새봉도 불길에 휘말렸고 호혜중은 보고 있으면 너무 심하다 할 정도로 아예 불길에 확 파묻혀 버립니다. 그리고 영화가 대뜸 확 끝이 나는데, 이새봉과 호혜중이 실제로 이 장면을 찍다가 사고로 화상을 입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이 사실을 크게 보도한 당시 살제 신문 기사를 보여 주는 게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아무리 급하게 찍고, 험하게 찍는 것이 당시 홍콩 영화판 분위기였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위험한 일도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 영화의 중반부가 그렇게 혼란스러웠던 것, 특히 호혜중, 이새봉의 비중이 지나치게 적고 이상한 악당 부하들의 이야기가 길게 나오고, 뜬금 없이 한참 진혜민 혼자 느와르 영화 시간을 보낸 것 등등은 이 장면을 찍을 때 배우들이 부상을 크게 당했기 때문에 제대로 출연시킬 수가 없어서, 어떻게든 촬영된 영상을 이어붙이며 상영 시간을 때워야 했기 때문으로 저는 추정하고 있습니다.


(맨 왼쪽이 이새봉, 중간에 불길에 아직 갇혀 있는 사람이 호혜중입니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중반이 좀 갈팡질팡 하는 영화였습니다. 예를 들어, 부하들에게 냉소적이고 비열한 소리 잘 하는 경찰서의 상사로 나오던 만자량은, 중간에 갑자기 부하의 죽음에 진심으로 슬퍼하면서 눈물을 글썽이며 감상적인 대사를 길게 하는 장면이 두 장면이나 나오는데, 대단히 이상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대목에 가면 다시 냉소적이고 비열한 소리 잘하는 상사로 변해 버리는 겁니다. 이때 그 상대역으로 나온 호혜중도 그 갑작스런 변화에 당황하고 있어서 보고 있으면 좀 웃길 정도입니다. 만자량은 멀끔해 보이는 사람으로 나와서 막판해 배신하는 역할로 참 많이 나왔는데, 이 영화에서는 배반은 안 하고 그냥 계속 사나운 상사로 나오기는 합니다만.

이새봉은 겉모습만 보면 이런 살벌한 싸움에 잘 어울리지 않을 것처럼 몸집도 유난히 작아 보이고 얼굴도 이제 막 학교를 졸업한 순박한 사람 같은데가 있어 보이는 배우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문득 돌변에서 화려한 싸움 장면을 보여 줄 수 있다는 데에 이 무렵 이새봉 출연작들의 묘미가 있었습니다.


(기관총들고 악당 소굴로 달려 드는 이새봉)

이 영화의 초반부에서 이새봉은 모금 활동을 하는 학생으로 변장하고 놀이공원을 돌아다니는 사람으로 등장했다가 상황이 돌변하면 격투를 하면서 추격전을 헝클어 놓는 역할인데, 이 장면에서 긴장감을 쌓아 올리면서 모금하는 척하는 모습이나, 돌변 이후 그 복장 그대로 이리저리 점프하고 발차기 하며 싸우는 모습이나, 모두 대단히 훌륭해서 바로 이런 것이 이새봉의 싸움이다, 라고 할만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분량은 너무 적었고 이새봉의 인물이 뭐하려고 왜 저러는 지 너무 안 가르쳐 줘서 깊게 빠져서 재미를 즐기기도 어려운 문제도 있었습니다.

다음 장면에서도 정말 "미녀 삼총사" 이야기처럼 이새봉은 경찰로 변장하고 잠입하기도 하고, 또 다른 장면에서는 다른 화려한 옷차림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계속 사람들을 속이는 수수께끼의 인물을 보여 주며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드는 영화가 될 수도 있었지 싶습니다. 그렇습니다만, 이야기가 부드럽게 이어진다고 하기에는 왔다갔다 하는 영화 편집도 좀 알아 보기 어렵게 끊겨 있고, 다른 잡다한 이야기도 너무 많이 나와서 이새봉의 이야기는 그냥저냥 재미 없게 "사실은 누구 딸이라서 아버지 구하려고 그랬음" 툭 치고 정체를 드러내는 것으로 끝나서 싱거웠습니다.


(경찰 변장 이새봉)

그런 식으로 여러 배우들이 나눠 찍은 여러 이야기들을 억지로 군데군데 겨우 연결해 붙인 기색이 많이 나는 영화였습니다.

정보를 전해 준답시고 다음 장면 연결에 별 도움이 안 되는 정보만 전해주는 이새봉을 무슨 이유로 호혜중이 믿고 만나는 지 모르겠는데 계속 만나 보는 장면이 나온다든가, 영화 후반부 내내 뒤에서 엿보면서 다른 사람이 뭐하는 지 계속 지켜 보며 숨어서 따라 가는 역할만 지겹도록 반복하는 여량위의 모습은 그렇게 이야기를 억지로 붙인 꿰멘 자국처럼 보였습니다.

폭력배 두목의 딸이 인질로 잡히는 이야기를 하려는 듯 하다가, 어디에 몰래 숨어 있다는 듯이 하다가, 나중에 "사실은 딸이 두 명이 있다" 어쩌고 하는 대사가 나오며 둘러대는 대목은 참 급작스럽기도 했습니다. 그게 따지고 보면 이 영화 초반부 수수께끼의 핵심이기도 한데 말입니다.

그러니, 초반 놀이 공원 추격전, 막판 결전 외에는 제한된 공간인 배 위에서 총격전과 맨손 격투를 섞어 가며 싸움을 벌이는 재치 있는 장면이라든가, 도시의 큰 길에서 홍콩의 시장통으로 넘어 서며 다양한 물체를 피하고 이용하며 악당을 좇는 호혜중의 달리는 모습의 현란함 등등의 짤막짤막한 순간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 밖에...

이새봉이 주인공 급이라서 한국에서는 "폴리스 마담4"로도 소개 되었습니다만, 한국에서 폴리스 마담 시리즈 1,2,3편으로 소개된 "천사행동" 시리즈와는 내용상 아무 상관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 속 영상만 보면 호혜중이 폭발 장면 사고 때에 목숨이라도 건질 수 있을까 싶게 심각해 보이고, 실제로 온몸 곳곳에 화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호혜중은 잘 회복해서 당장 다음 해에 바로 또 무술 장면 나오는 영화를 찍었습니다.

호혜중은 국립대만대학 출신에, 연애물에서의 매력과 활극에서의 화려한 동작 모두로 인정 받은 인기배우였고, 지금은 사회사업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그 남편은 홍콩의 최고위급 공직자가 되기도 하는 하지평인데 지금까지 해로하고 있으니, 일 잘하는 사람의 운수는 하늘도 막지 못한다는 것이 이런 경우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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