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괴물 백과 사전 시리즈로, 이전에 정리하지 못한 괴물들을 추가로 정리한 증보 91~100편 항목으로 올리는 한국의 괴물 이야기들입니다.
괴물을 정리한 기준은 이전과 같습니다. 즉, 기록과 기록자, 기록시기가 분명한 18세기 이전에 확인된 각종 괴물들만을 정리했습니다. 따라서, 19세기 이후에 기록된 괴물, 작자가 불분명한 문헌에 기록된 괴물, 소설 속에 등장하는 괴물, 기록 없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온 괴물 등등은 모두 뺐습니다.
비슷한 괴물들끼리는 기록을 합쳐서 하나의 보다 묘사가 풍부한 괴물로 정리했고, 반대로 이름이 같은 괴물이라도 현격히 모습과 습성이 다른 경우에는 다른 괴물로 분리해서 싣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괴물에 대한 설명은, 책에 언급된 그대로의 설명을 옮기는 것에 더하여, 다른 기록에 나오는 비슷한 괴물의 묘사, 비슷한 전설, 비슷한 괴물의 그림, 공예품의 모양 등등을 참조하여 덧붙인 것들이 있습니다.
괴물들에 대한 이야기는 설화를 연구하는 중요한 단초가 되기도 하고, 시대 상황을 파악하는 상징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토론하거나 주석, 해설을 달아볼만한 부분도 많을 것입니다. 아쉬운대로, 제가 아는 선에서 최대한 이런저런 설명을 해 보려고 했습니다. 대신 모든 괴물들의 그 기록 출전을 밝히고자 했습니다.
괴물의 이름이 불분명한 경우에는 제가 임의로 이름을 붙이는 것은 피했습니다. 대신에 원전에서 괴물의 모습을 묘사하는 대목에 나오는 말을 최대한 그대로 발췌해서 옮겨 쓴 것을 항목의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가능한 한 한자도 같이 표기했습니다.
이 자료에 괴물들을 사실적으로 잘 그려낸 그림을 곁들였다면 더 재미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쉬운대로, 일단은 조선시대 이전의 유물들 중에서 분위기가 비슷하게 맞는 부분 일부를 발췌하여 참고해 볼 만한 자료로 같이 실었습니다.
91. 성귀 (聖鬼), 용녀부인 (龍女夫人)

(국립민속박물관 벅수, 공공누리1)
성귀는 대단히 뛰어난 신령으로 과거와 미래를 내다보고 온 세상을 꿰뚫고 있다. 그 모습은 눈이 손바닥 만큼 크고, 금실로 수놓은 옷을 입었으며, 손에는 커다란 징을 들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조선 후기, 용녀부인의 무리와 그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믿던 이야기다.
용녀부인과 그 무리에 관한 사건은 1688년 무렵 조선에서 꽤 큰 화제가 되었던 일로 숙종실록에도 실려 있으며 용녀부인이라는 사람을 내세우면서 미래에 대한 예언을 안다는 사람들이 나라를 차지할 거라고 세력을 모으려 했기에 조정에서 중범죄로 다루었다. 세력이 컸을 때는 황해도 문화를 중심으로 황해도 지역과 경기도 양주 인근 지역까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용녀부인 일당의 예언에 따르면, 예언한 시기에 큰 비가 내려서 서울에서 홍수 때문에 혼란이 생길텐데 그러면 그 틈을 타서 소수의 병력만으로도 조선을 차지해 임금이 될 수 있다고 했고, 이것을 믿고 일을 벌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예언한 날짜에 비가 내리지 않았고 이후 사건은 흐지부지 되어 일당은 검거되어 처형되었다. 사건 발생후 상당한 세월이 지난 후 영조 실록에서도 이 사건이 회고되고 있고, “성호사설”에도 이 사건이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무렵 조선 사회에 꽤 영향이 있었던 사건이었던 듯 하다.
사건에 대한 기록은 “추안급국안”의 내용이 상세하다. 이에 따르면 중심인물은 여환이라는 인물로, “석가의 시대는 가고 미륵의 시대가 온다”라고 하면서, 앞으로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그것을 미륵불이 주관하는데 그 전혀 다른 질서에서 자신이 예언한 세력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말했다. 전형적인 미륵불 계통의 예언자 무리들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데, 사실 내용을 보면 불교적인 느낌은 약한 편이라, 미륵은 어떤 신령인 것처럼 취급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여러 기록에서 이 사건이 용녀부인이라는 여성 지도자를 중심으로 언급되고 있다는 점이다. 용녀부인은 여환의 부인이었는데, 두 사람 외에도 여러 다른 무당, 술법사 등의 사람들이 사건에 엮여 있었다.
성귀라는 말은 성스러운 귀신, 성인의 귀신이라는 뜻으로 이 무리가 받들던 신령을 일컫는 말로 “추안급국안”에서 자주 사용된 용어다. 결국 이 무리의 이론에 따르면 이것이 이들에게는 미륵인 셈이다. 그렇다면 조선 사람들 사이에 돌던 이야기 속에서는 이 이상한 무리를 이끄는 대장에 해당하는 인물이 용녀부인이고, 용녀부인과 가장 가까운 관계의 강력한 신령이 성귀라고 할 수 있겠다.
용녀부인 무리의 믿음은 “추안급국안”에 실린 여환에 대한 4차 형신에 가장 자세하다.
이들의 이야기는 여환의 아버지가 김화 천불산에 세 번 치성을 드리고 자식으로 여환을 얻었는데, 천불산에 미륵이 있으므로 자신은 운명적으로 미륵과 통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는 듯한 출생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여환에게 어느날 칠성주(主) 즉, 북두칠성님이 자기에게 찾아 와 누룩 세 덩어리를 주었는데, 누룩을 한자로 쓰면 “국”이 되어, 나라 국자와 발음이 같으므로 그것이 자기에게 나라를 준다는 예언이라고 여환은 받아 들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여환은 천불산 제일봉에 올라가는데 그러자 구름 비슷한 신비로운 기운이 사방에 있었고 북쪽에서 특히 상서로운 기운이 몰려 왔다고 한다. 사흘이 지나니 “사주지군(四洲之君)”이 찾아 왔다고 한다. 불교 용어에 비추어 해석해 보면 사주지군은 우리 주변 우주의 임금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선인(仙人)이 나타나 “부책(符冊)”이라는 신비로운 책을 읽어 주기도 하고, 바위에 “영측(盈昃)” 두 글자를 세겨서 달이 차면 기울 듯이 나라의 운수도 바뀐다는 이야기를 상징하기도 했다고 한다. “자영(紫纓)”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검은 구름 속에서 나타났다 사라졌다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자영은 보라색 갓끈이라는 뜻으로 번역되니 고귀한 사람들이라는 뜻일 것이고, 보라색 갓끈을 실제로 달고 있는 사람들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공중에서 음악이 연주되고 자기도 그 공중에 같이 머무는 등의 일이 펼쳐졌다고 한다.
그 밖에 북쪽으로부터 큰 물이 흘러나왔는데 수중노인, 즉 물 속에 사는 노인이라는 사람들로 늙은 승려와 노인이 물 속에서 이야기하면서, 해제(海帝), 순왕(順王) 등을 언급하며 미래에 그런 사람들이 임금이 될 거라는 이야기를 했다든가, 지신(地神) 즉 땅의 신이 등장해 큰 글씨를 써서 무엇인가를 알려 주었다든가, 하는 내용도 있다. 또한 자기를 신비로운 기운이 감싸면서 남쪽으로 끌고 가더니 아주 깊은 골짜기에 떨어뜨렸다든가, 기운이 몸을 감싸더니 물 속으로 자신을 보냈다든가 하는 이야기도 하고 있다.
땅의 신이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흙바닥에 글자 모양을 자꾸 만들어 보여 주며 말을 한다는 식으로 생각하면 그 장면도 재미있어 보인다.
묘사가 재미난 대목으로는 일당이 가장 높게 생각하던 미륵에 대한 묘사와, 흑룡에 대한 묘사가 있다. 미륵에 대한 묘사는 앞에서 설명한 성귀에 대한 내용이 그것이다.
흑룡은 북쪽으로부터 검은 물줄기가 나타나 땅에 가득해 졌다면서 그 등장이 설명되고 있다. 이후 수많은 군사와 함께 머리에 전모를 쓴 듯한 특이한 복장의 여성들이 대단히 많이 나타나 “이것이 흑룡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단순히 흑룡이 검은 용이라는 뜻이 아니고, 검은 색 물, 수많은 군대, 많은 기이한 여성의 무리가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세상을 공격하거나 지배할 위력, 군사를 의미하는 듯 한데, 말하자면, 이들에게 흑룡이라는 말은 흑룡부대, 흑룡군 같은 뜻이다. 거기다가 전모를 쓴 여성들의 집단 내지는 무슨 선녀 부대, 여성 도술사 부대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이 독특한 특징이다. 아닌게 아니라 사건 조사 내용을 보면 정계화라는 여성 무당도 중요하게 등장하는데, 이 사람은 자신을 정씨 성을 가진 성스러운 사람이라는 뜻으로 정성인(聖人)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흑룡처럼 이들은 간간히 자신들의 활동과, 용, 여성을 연결시키고 있다. 그래서 이들이 용녀부인을 중심으로 한 무리라는 소문을 얻은 듯하다. “성호사설”의 용녀부인에 대한 기록에도 사람들을 홀리는 말을 잘 한 것이 용녀부인이라고 되어 있고, “연려실기술”의 용녀부인 사건 설명을 보면, 여환은 붙잡혀 와도 말을 잘 못했는데 용녀부인의 말은 강물처럼 줄줄 흘러 나왔다고 되어 있어 용녀부인이 중심이었던 사건이라 보고 있다.
한가지 이상한 것은 정작 사건에 대해 가장 내용이 풍부한 실제 범죄자 조사 기록인 “추안급국안”의 내용을 보면, 용녀부인이 중심이기는 커녕, 용녀부인, 그러니까 여환의 부인은 사건에 대해 가장 잘 모른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 기록을 보면 여환의 부인은 자신은 그저 자기 남편이 이상한 예언에 관심이 많고, 무당들의 일 같은 것에 휘말려 있구나, 정도로 생각했을 뿐, 이 모든 것에 대해 자기는 잘 알지도 못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남들이 자기를 용녀부인이라고 종종 불렀을 뿐, 자기 스스로 “내가 용녀부인이다”라고 말하고 다닌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진실이야 어찌 되었건, 조선 시대의 법에 남편이 역적이면 하여튼 아내도 처형되게 되어 있으므로 용녀부인이라고 불리우던 본명 원향(遠香)이라는 여성은 1688년 음력 7월 말 경 결국 처형 당하고 말았다.
92. 묘수좌 (猫首座)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회화, 공공누리1)
수좌는 가장 높은 자리를 말하니 묘수좌라는 말은 “높은 고양이 선생님”이라는 뜻인데, 조선시대 표현으로는 “고양이 스님”이라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그래서 묘수좌는 머리카락을 삭발하고 고고하게 도 닦는 사람 처럼 꾸미고 있는 고양이를 말한다. 이것은 16세기 초반 기묘사화 이후 조선에서 돌던 우스개 소리 비슷한 우화 속에 등장하는 말로 1530년대 중반의 유행어다.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인 늙은 고양이가 기력이 쇠하고 발톱, 이빨도 상해 쥐를 못 잡게 되자 귓속의 털없는 부분을 머리가죽 쪽으로 뒤집어 삭발한 머리 모양처럼 만들고 자신은 이제 스님이 되어 고기는 먹지 않는다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쥐들을 제자로 거두어 두고는 종교 행사를 한다고 하면서 몰래 한 마리 씩 잡아 먹는다. 이 고양이를 일컫는 말이 묘수좌다.
영리하면서도 겉다르고 속다르고 위선적이고 속임수에 능한 스님 모습의 고양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조선왕조실록” 1534년 음력 7월 22일 기록에 당시 김안로를 비판하기 위한 이야기로 유행했다고 하고 있다.
93. 휴유 (鑴[木劉])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공공누리1)
휴유는 불길하고 괴이한 부엉이, 올빼미 류의 새를 상징하는 말이다. 이런 불길한 새가 나타나 울면 불길한 일이 생기고, 그 새가 나타난 집에 사는 사람이 망하거나 죽는다는 식의 생각이 조선시대에는 많이 퍼져 있었다. 즉 이것은 죽음, 패배를 알리는 울음을 우는 새다.
휴유라는 말은 사악한 것이라는 뜻으로 17세기 후반에 조선의 일부 정파에서 사용하던 단어다. 이 말은 윤휴, 이유, 두 사람을 비난하기 위해, 윤휴의 휴, 이유의 유에서 각각 한 글자 씩 따온 말에서 탄생했다. 예로부터 불길하던 새라고 하던 부엉이, 올빼미를 흔히 휴류(鵂鶹)라고 썼기 때문에 발음이 비슷한 휴유를 불길한 단어로 만든 것이다. 이런 새가 일으키는 나쁜 현상을 휴류지변(鵂鶹之變)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런 표현은 “송자대전”에 실린 송시열이 송시도에게 보낸 편지 등에 은어처럼 보인다.
기괴한 부엉이의 형상을 표현한 글로는 조선후기 이덕무의 “이목구심서”에 나온 “몸의 4할이 고양이 모양”이라는 서술이 있다. 현대의 생물 지식과는 차이가 나는 부엉이에 대한 과장된 생각인데 이덕무는 부엉이는 완전한 음의 기운, 즉 전음지기(全陰之氣)를 받은 동물이라고 하면서 그 때문에 밤에 활동한다고 서술했다. 다른 묘사로는 “동국여지승람”에 직산의 휴류암에 대해서 묘사한 기록도 짚어 볼 만하다. 여기에서는 휴류암이 양, 말, 사람의 형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휴류암은 부엉이바위라는 뜻인데도 그 모습은 보통 부엉이와는 별 관계가 없다는 것을 두고 조선시대 사람들도 이상스레 여겼다는 것이 “여암유고”등에 보인다. 그러므로 조금 더 상상해 보자면, 양, 말, 사람과 닮은 점이 있는 기괴한 부엉이의 형상을 떠올려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올빼미가 불길한 동물이라는 생각이 깊게 남은 기록으로는 고려가 멸망하던 무렵도 언급해 볼 만 하다. 고려가 멸망할 징조가 뚜렷했다는 예로 조선을 건국한 사람들은 올빼미 울음을 꼽았기 때문이다. “고려사절요” 1389년 기록을 보면 고려 멸망기의 임금인 우왕이 종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 올빼미 소리가 천지를 울렸다고 쓰고 있다. “이러니 나라가 망할 때가 되었다”는 식으로 조선의 건국자들은 말하고 다닌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그런 사건을 빌미 삼아 이성계 일파는 고려를 멸망시켰다고 볼 수도 있다. 그 때문인지 조선이 건국된 후, 조선 초기의 임금들은 올빼미 우는 소리를 대단히 두려워 했던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자주 보인다. 올빼미, 부엉이가 울면 궁중에서 허구헌날 해괴제라고 하여 제사를 지내면서 불길함이 사라지기를 애써 기원할 정도였다. 말하자면 마음이 찔린 셈인데, 그도 그럴 것이 그 올빼미 울음소리를 듣고 이번에는 조선의 임금들을 싫어한 누구인가가 “저 임금도 망할 때가 되었나 보네”라고 과거의 자신들 처럼 생각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 중기가 다 되어서야 이런 풍습은 멈추었다.
애당초 부엉이, 올빼미 류의 새에 대한 믿음이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중국 고전에서 올빼미가 나쁜 뜻으로 사용된 경우가 있었던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중국 고전에서는 효(梟)라고 하는 올빼미가 어미를 잡아 먹는 습성이 있는 새라는 말이 나온다. 이런 이야기들이 효도를 중시하는 조선에서 특별히 올빼미를 더 잔혹하고 사악한 생물로 취급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참고로 중국 고전에서 나온 불길한 올빼미, 부엉이를 가리키는 말과 비슷한 뜻의 단어로 복조(鵩鳥)라는 말도 쓰였다.
재미있는 기록으로 “조선왕조실록” 1407년 음력 9월 18일 기록에 태종 임금이 부인 원경왕후와 다투면서 자기 정책을 원경왕후가 섬기는 민속신앙의 귀신이 비판한 것 같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하는 대목이 있다. 그러면서 태종 임금은 자기가 잠자는 건물에 복조, 즉 괴이한 올빼미, 부엉이류 새의 울음소리가 들렸는데 그 올빼미는 원경왕후가 섬기는 귀신이 변신해서 날아 온 것이고, 그 올빼미 울음소리가 바로 그런 비판의 의미를 품고 있었던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이런 생각을 받아 들인다면 조선 초기 사람들의 믿음 속에서는 괴상한 올빼미, 부엉이가 신령처럼 행동하며 사람의 기도를 듣기도 하고, 또 남을 저주하거나 비판하는 뜻으로 그 사람 옆에서 울기도 한다고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94. 서도신 (鼠島神)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공공누리1)
황해도 서흥의 서도(鼠島), 즉 쥐 섬의 신이라고 하여 조선 초 주민들의 섬김을 받았다는 신령이다. 형상은 하얀 쥐의 형상인데 날쌔고 빠르다. 이야기 정황을 보면 사람과도 닮은 정황이 있다고 보아야할 듯 싶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옛날 서흥 근처에 적군이 침입했는데, 한 사람이 흰 쥐로 변해서 적진으로 들어 갔다고 한다. 고작 쥐 한 마리가 적군을 물리치는데 무슨 공을 세울 수 있을까 싶지만, 그 흰 쥐가 적의 화살 시위를 몰래 다 갉아 끊어 놓는 방법으로 적의 무기를 망쳐 놓아 적이 싸울 수 없게 만들어 지역을 지켰다고 한다. 재미난 것은 왜인지 그러고 나서도 영웅 대접을 받은 것이 아니라 나장산의 바위 구멍으로 들어 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1년 동안 있다가 신령으로 변해 이후 서도신으로 섬김을 받았다고 한다. 하필 바위 구멍으로 들어 갔다는 것을 보면 그때에도 쥐와 비슷한 모습, 쥐와 닮은 점이 있지 않았나 싶다.
말하자면 서도신은 흰 쥐와 비슷한 모습으로 수많은 적을 물리치고도 표표히 사라진 영웅 용사라고 할 수 있는데, 기록에서는 서도신을 모시는 곳을 서도신사(鼠島神祠)라고 불렀다고 한다. 주민들이 제사를 지내고 있고 가뭄이 들 때 비를 내려 달라고 빌면 문득 소원을 들어 주기도 했다고 한다.
95. 악지어 (岳只魚)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공공누리1)
북방 먼 지역의 강물에 사는 물고기로 길이가 약 15미터에 달하며 덩치도 매우 큰 거대한 물고기이다. 그러나 특별히 사악하거나 성질이 무섭다는 서술은 없어 지나칠 정도로 온순한 물고기인 듯 하며, 사람이 길다란 창으로 공격해 잡을 수 있고, 그렇게 잡으면 많은 사람들이 잘 먹을 수 있는 좋은 식량이다.
조선 시대에는 17세기에 소위 “나선정벌”이라고 하여 조선 군사들이 청나라 군사와 함께 지금의 흑룡강 인근에서 러시아 군사와 전투를 벌인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에 대한 기록 중에 “북정록”을 보면 흑룡강 인근으로 멀리 갔을 때 강물에서 무척 큰 물고기를 보았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것이 “배시황전”등 소설에 가까운 글에서는 더욱 과장되어 비현실적으로 묘사 되어 있는데, “악지어”라는 이름과 묘사는 “배시황전” 쪽의 과장된 내용에서 가져 온 것이다.
믿음직한 기록에도 등장하는 물고기이므로 이야기의 단초가 되는 꽤 큰 물고기가 실제로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한 가지 예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철갑상어 류의 물고기다. 철갑상어는 강물에서 발견될 수 있는데 실제로 중국 동북 지역에서 발견되는 사례도 있으며, 그 중에는 크기가 2 미터에 달하는 아주 큰 것도 있다. 또한 철갑상어는 특이하게 생겼으므로 강한 인상을 남길만한 물고기다. 최근 인터넷에는 사람이 철갑상어를 타고 있는 듯한 사진도 돈 적이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악지어”의 모습과 습성 역시 철갑상어와 닮았다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철갑상어의 알이 캐비어라는 고급 식재료로 취급되므로 악지어의 알이 귀중하고 맛있는 재료라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철갑상어는 이빨이 없는 물고기이므로 악지어 역시 온순한 동물이고 사람이 길들여 물에서 타고 다닐 수도 있는 동물이라는 식의 이야기도 만들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철갑상어는 입 주변에 수염이 달려 있는 것도 겉모습의 특징인데 그렇다면 악지어도 수염이 있고 그 수염에 어떤 특징이 있다는 이야기를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배시황전" 등에는 악지어와는 다르지만 붉은 물고기 "적어"가 큰 물고기였다는 기록도 있고 흑룡강 주변의 동물, 식물은 색깔이 검었다는 이야기도 있으므로 악지어 역시 검정색 또는 붉은 색을 띄고 있다는 생각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96. 사각승선 (四角承宣)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청동십이지미상, 공공누리1)
뿔 넷 달린 양으로 희귀한 짐승이다. 또는 뿔이 넷 달린 벼슬아치를 뜻하는 말이다. “고려사절요” 1169년 기록에 보면 금나라에서 고려에 양 2천 마리를 선물로 주었는데 그 중 한 마리가 뿔 넷 달린 양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을 두고 대단히 좋은 징조라고 하여 신하 이공승이 엄청나게 화려한 글을 지어 임금에게 바치며 칭송했다고 하는데, 사람들에게 이것이 조롱거리가 되어 이공승을 “사각승선” 즉, 뿔 넷 달린 승선 벼슬을 사는 사람이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것이 유행했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사각승선은 뿔 넷 달린 양을 칭송하는 사람을 일컫기 위해 탄생한 말이다. 사각승선은 보통 사람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고 실용적으로 별 쓸모도 없는 짐승이지만, 가치를 높게 치는 사람들은 한 없이 높게 치는 짐승이라고 풀이 해 볼 수도 있겠다. 또 한편으로는 심하게 윗사람에게 아부하는 것을 상징하는 짐승인 셈이다.
이공승은 임금에게 아부를 잘하고 임금과 어울려 놀다가 술에 취해 거꾸로 수레에 실려 왔다는 기록도 있을 정도인 인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글 쓰는 재주가 뛰어나고 또한 젊은 시절 딱히 비리를 저지르지 않은 인물로 칭찬받을 점도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보면, 사각승선은 그저 모든 부정부패 전반을 말한다기 보다는 지나친 칭송, 과도한 칭찬, 별 것 아닌 것을 높게 평가해서 거품이 끼는 것, 아첨, 아부를 상징한다고 보는 것이 좋겠다.
97. 견부락 (犬部落)

(국립중앙박물관 십이지신도, 공공누리1)
견부락은 먼 곳에 있는 나라로 개들을 아주 중시하는 나라, 개들의 나라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중국 고전에서는 예로부터 구국(狗國)이라고 하여, 개들의 나라라고 하는 나라가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하늘의 별들 중에도 구국성이 있었다. 중국에서는 외국 사람들을 욕하거나 조롱할 때, 너네 나라는 개들의 나라다, 너희는 구국 사람이라는 식으로 지목한 일도 과거에 있었다.
이런 이야기는 한반도로도 전해졌다. 비교적 초기 기록 중에 한반도와 관계 있는 기록을 짚어 본다면, 중국 당나라 때의 글인 “영표록이”다. 여기에는 주우라는 중국 당나라 사람의 짤막한 모험담 이야기가 실려 있었는데, 주우는 신라 뱃사람들이 타고 있는 배를 타고 바다에 나왔다가 표류 하면서 구국(狗國), 모인국(毛人國), 야차국(野叉國), 대인국(大人國), 유규국(流虬国), 소인국(小人國) 등 기괴한 여섯 나라를 떠돌다 겨우 살아 왔다고 한다. 이때 신라 뱃사람은 구국이 어디인지 알아 보았다고 하며, 유규국 사람과는 의사 소통도 어느 정도 할 수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로 보아, 항해에 밝은 신라 뱃사람들 사이에는 이들 나라들이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다는 듯한 전설이 있었다고 추정해 볼 수 있다.
“영표록이”에 실린 구국에 대한 내용은 조선의 책인 “해동역사”에도 그대로 인용되어 소개되어 있다. 여기에는 구국의 사람, 즉 구국인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사람과 비슷해 보이는 벌거벗은 형체가 개를 안은 모습으로 나타났다가 배를 보고 놀라서 도망쳤다.” 이것으로 보아, 구국인들은 개를 중시하거나 개를 아주 좋아하고, 어떻게 보면 사람이라고 보기는 조금 애매한 종족이다. 또한 옷을 입을 줄 아는 문화나 기술은 없고, 또한 겁이 많거나 사람을 싫어한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신라 사람들과 구국인들 사이에 어떤 사건이 있었다고 상상해 볼 여지도 있다. 예를 들면, 과거에 신라 뱃사람들이나 신라 해적들이 구국인들이 갖고 있는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구국인들을 공격한 적이 있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생각해 봄 직하다.
“영표록이”의 구국 이야기는 짧고 막연한 편인데, 조선 후기의 글인 “앙엽기”에는 구국에 대한 중국의 다른 전설 몇 개가 인용되어 실려 있다. 그 내용 중에는, 머나먼 어느 나라에 가면 몸은 사람이고 머리는 개인 종족이 있었다는 것도 있다.
“앙엽기”에 실린 특이한 기록으로는 조선의 김육이 쓴 “잠곡필담”에 실려 있다면서 통역관 김희삼(金希三)이 전해 준 이야기를 소개해 놓은 것이 있다. 이에 따르면, 어느 먼 섬에 가면 이상한 개들을 중시하는 나라가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는 아름다운 여성들이 수영을 하고 있는 섬이 있는데 그 사람들은 옷을 입을 줄 모른다고 한다. 이 여성들에게 보통 사람이 다가가면 원숭이나 개처럼 사람을 물려고 한다. 그리고 그 여성을 구하기 위해 커다란 수캐들이 떼를 지어 온다고 한다. “앙엽기”의 서술을 보면, 전체적으로 남성은 개와 비슷하고 여성은 사람 여성과 비슷한 종족이 있다는 이야기를 나타내는 것이다. 만약 그 둘이 짝지어 친밀하게 다닌다고 보면 그 내용은 앞서 이야기한 “영표록이”의 구국 이야기와도 통한다.
정리하자면 “영표록이”, “잠곡필담” 계통의 구국 이야기는 중국에서 전해진 이야기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섬나라에 사는 종족 중에는 남자는 개와 비슷하게, 여자는 보통 사람과 비슷하게 태어나는 종족이 있어 서로 짝을 지어 살며, 기술이 발전한 것 같지는 않고, 사람을 싫어 한다는 이야기다.
조금 더 현실적인 개들의 나라에 대한 이야기로는 조선시대에 소위 “나선정벌”이라고 하여 조선 군사가 청나라 군사와 함께 러시아 군사와 전투를 벌인 사건 기록 중에 “북정록”에 실린 이야기를 꼽아 볼 수도 있다. 여기에는 흑룡강 근처의 머나먼 땅으로 떠난 조선의 신류가 현지에서 견부락(犬部落) 또는 개부락(介部落)이라고 하는 낯선 민족을 접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견부락은 번역하자면 개들의 마을, 개들의 부족이라는 뜻이다.
이훈 선생의 글, “조선의 나선정벌군이 본 허저족”에 따르면, 이들을 신류가 견부락이라고 부른 것은 이들이 개썰매를 타고 다니는 습성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보면, 견부락인들은 특별히 이상한 종족은 아니며 그냥 개를 중시하는 문화를 가진 사람들일 뿐이다. 이들은 현대 러시아의 나나이족 조상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반대로 북방 이민족들은 조선인들을 대두인(大頭人), 즉 머리 큰 사람들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조선시대 무렵의 청나라에서는 지금의 러시아에 가까운 지역의 이민족 중에 어피달자(魚皮㺚子), 대비달자(大鼻韃子)가 있다고 보았다. 이런 말은 조선왕조실록에도 보인다. 이 중에 대비달자는 코가 큰 이민족이라는 뜻으로 지금의 러시아인을 뜻하는 말이다. 대비달자가 러시아인이라는 사실은 숙종실록을 보면 이미 17세기에 조선인들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에 비해 어피달자는 물고기 껍질을 옷감으로 이용하는 이민족이라는 뜻으로, 현대에는 어피달자라는 민족이 바로 견부락인, 나나이족과 가까운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이에 대해서 좀 혼동도 있었는지, 인조실록을 보면 어피달자가 조선에 복속하기도 하고 충돌하기도 했던 여진족 계통의 사람들인 홀온(忽溫)으로 보기도 했던 것 같다.
정리해 보자면, “북정록” 등에 보이는 비교적 사실적인 견부락인은 전설 속의 종족이라기보다는 실제 역사에 등장하는 민족으로, 북부의 머나먼 땅에 사는 개를 아주 중시하는 사람들로 개썰매를 타고 다니고 물고기 껍질로 만든 옷을 입고 다니는 풍속을 갖고 있다.
98. 절불가식 (切不可食: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는 뜻)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노리개, 공공누리1)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의 "이목구심서"에 적혀 있는 당시 사람들 사이에 돌던 이야기에 따르면 복어의 독을 일으키는 벌레가 따로 있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나비와 비슷한 아주 작은 벌레가 주로 복어의 눈에 붙어 있고, 그 외에도 몸 여기저기에 붙어 있는게 그게 독이 있어 사람을 죽인다고 한다. 그러면서, 복어는 원래 독이 없어서 그것을 잘 떼어 내고 먹으면 안전하다고 한다. 한편 두꺼비가 변해서 복어가 되므로 복어는 독이 있다는 이야기도 같이 실려 있는데, 그렇다면 이 복어에 붙어 있는 이상한 독벌레는 두꺼비와도 관련이 있다고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정리해 보면, 이것은 복어의 눈에서 주로 산다는 아주 미세한 나비를 닮은 물 속에서도 살 수 있는 강력한 독벌레며 무엇인가 두꺼비와도 인연이 있는 벌레다.
이상한 나비 같은 벌레가 복어 몸에 살기에 독이 생긴다는 것은 전혀 현실과는 다른 이야기다. 재미있는 것이, 현대의 연구에 따르면 복어 독은 복어 몸에서 사는 세균이 만들어 낸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그래서 태어날 때부터 멸균 상태에서 분리해서 따로 기른 복어는 독이 없다고 한다. 비교적 세균이 없는 곳에서 기른 양식 복어도 위험할 수 있는 있지만 그래도 자연산 복어에 비해서는 독이 약한 경우가 있다고 한다.
99. 소인국 (小人國)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 백자인형, 공공누리1)
소인국은 아주 작은 사람 모습의 종족이 사는 나라를 말한다. 이 종족은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옷을 입을 줄 모르는 정도다.
소인국은 중국 고전에서 언급되기도 하는 만큼 소인국에 관한 언급은 한국 옛 기록에도 가끔 등장한다. 특별히 언급해 볼만한 것으로는 중국 당나라 때의 글인 “영표록이”에 실린 주우라는 사람의 짤막한 모험담 이야기가 있는데, 여기서 주우는 신라 뱃사람들이 타고 있는 배를 타고 바다에 나왔다가 표류 하면서 구국(狗國), 모인국(毛人國), 야차국(野叉國), 대인국(大人國), 유규국(流虬国), 소인국(小人國) 등 여섯 나라를 떠돌다 살아 왔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때 신라 뱃사람은 구국이 어디인지 알아 보았고, 유규국 사람과는 의사 소통도 어느 정도 할 수 있다고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항해에 밝은 신라 뱃사람들 사이에는 이들 나라들이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다고 추정해 볼 수 있다.
“영표록이”에 실린 이야기는 “태평광기” 등의 문헌에도 수록 되었으므로 예로부터 고려, 조선에도 전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이야기에는 소인국 사람들이 옷을 입지 않고 있었다는 언급과 함께, 주인공 일행이 식량이 떨어지자 소인국 사람들을 공격해 잡아 먹었다는 무서운 내용도 같이 실려 있다.
조금 더 사실적인 기록이면서 한국 옛 문헌에 직접 내용이 남아 있는 것으로는 “북정록”을 꼽아 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 소위 “나선정벌”이라고 하여 조선 군사가 청나라 군사와 함께 러시아 군사와 전투를 벌인 사건이 있었다. "북정록"은 그 일을 신류가 기록한 것이다. “북정록”을 보면 전투를 위해 지금의 흑룡강 지역 깊숙한 곳, 춥고 거친 영토로 진입하는 도중에, 그 지역이 소인국과 가깝다는 것을 저자인 신류가 파악하는 대목이 있다. 소인국이라는 말이 한 번 등장하는 짧은 기록일 뿐이지만, 여기에서는 바다 먼 곳에 있는 섬나라가 아니라 육지 대륙 깊숙한 추운 지역 먼 곳에 등장하는 나라가 소인국인 것처럼 언급되어 있다.
종합해 보자면, 옛 이야기 속에서 소인국은 머나먼 외딴 곳에 있는 문화, 기술이 거의 발달하지 않은 사람과 닮은 크기가 작은 종족이다. “영표록이”의 내용을 살려 보자면, 소인국인은 사람과 아주 비슷해 보이지만 사람은 아닌 종족이고 지능이 부족한 동물이라고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보자면 사람 중에서 소인국인을 공격해서 잡아 먹는 것을 별미로 생각하거나 중요한 약이 되는 재료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어서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 상황을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100. 송신 (送神), 타방지신 (他方之神)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주형토기, 공공누리1)
송신은 신을 보낸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주로 신령이 타고 가는 배, 귀신이 떠나가는 배, 유령선 같은 배, 도깨비배에 초점을 두어 설명하고자 한다.
신령의 배에 대한 묘사는 “초사담헌”에 실린 조완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자세하다. 이에 따르면 신령의 배는 크기가 작아서 손으로 들 수 있을 정도의 작은 크기인데 그러면서도 돛이 달려 있고 그 돛이 저절로 움직이며 배가 움직인다고 한다. 그러다가 필요할 때는 저절로 멈추기도 한다. 바다에 갑자기 사람이 타고 있지 않고 사람이 탈 수도 없는 작은 크기의 텅빈 배가 유령처럼 나타나 이상한 일을 벌인다는 식의 이야기다. 이야기의 본 내용은 조완이라는 사람이 제주에 유배를 당했다가 사망했는데, 사망한 후에도 “유배기간을 다 채운 후에 떠나겠다”면서 버티다가 결국 떠날 때는 신령의 배를 만들어 달라고 해서 그것과 함께 떠났다는 이야기다.
17세기 자료인 "남사록"에서는 제주도에서 바람의 신 "연등"을 숭배하는 2월 의식에 대해 설명하면서, "동국여지승람" 등에 실린 일반적인 설명에 추가하여 신령을 떠나 보내는 "송신" 단계가 있다고 "송신"이라는 말을 언급하면서, 이때 배 모양 배 모양에 돛대를 갖춘 모양을 만들어 포구에서 뜨워 보낸다고 되어 있다. 정월 그믐 때 서풍이 불면 "타방지신(他方之神)" 오셨다고 하고, 배 모양을 보낼 때 동북풍이 불면 "타방지신(他方之神)"이 가셨다라고 해서 이런 배를 타고 드나드는 신령을 "타방지신"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현대까지 이어진 해안 지방에서 굿을 하고 마지막 단계에 바다 먼 곳으로 조그마한 배 모양을 만들어 보내는 의식과 닮았다. 또한 “한국민속신앙사전”의 “띠배” 항목을 보면, 현대에 전해진 신령의 배에 대한 이야기 중에는 도깨비불을 반짝이며 밤에 사람도 없이 혼자 떠도는 배, 어민들을 홀리거나 반대로 도움을 주는 신령의 배 등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이런 이야기까지 합해서 생각해 보면 송신 의식에 등장하는 귀신의 배는, 조선의 유령선 이야기인데, 유령선 이야기와는 다르게 크기가 작은 모형 크기의 작은 배가 유령 그 자체의 역할을 하는 배로 등장한다는 점이 요즘 영화에서 자주 다루어진 유령선 이야기와 다른 점이다.
“고려도경”에서는 중국 송나라에서 고려로 오는 길에 중국 사신이 이런 행사를 한 기록도 남아 있다. “동국여지승람” 등에 서해신사를 세워 두고 서해의 신을 섬기는 곳이 있었다고 하므로 비슷한 계통의 믿음은 있었을 것이다.
현대에는 바다의 신령에게 작은 배 모양을 만드는 것을 띠배, 매생이배 등으로 부르고 있다. 전라남도 고흥 나로도에서는 매생이배 띄우기를 정월 대보름 밤 자정 즈음에 하며, 배에 불을 켜 놓은 뒤에 배를 밤 바다에 떠나 보내며 “매생아, 매생아 -”라고 말을 한 뒤에 소원을 비는 것으로 되어 있다. 원래 매생이라는 것은 “마상”, “마상이배”라고 하여 예로부터 사용되던 배의 일종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보통 조선시대 기록에는 마상선(麻尙船, 馬尙船)으로 표기된 경우가 많다.
조선 시대에 마상선이라고 하면, 이런 형식으로 만드는 배를 두루 일컫는 것으로 보아야겠지만, 마상선이라는 것이 거의 잊힌 요즘은 작고 간단한 통나무 속을 파내서 만든 배 내지는 정월대보름 매생이배 풍속에 나오는 배와 다를 바 없는 간단한 배 정도로 의미가 줄어 든 듯 하다. “공주풍토기”에 실린 독특한 표기인 “마상주(亇尙舟)”라는 말도 짚어 볼만한데, "공주풍토기" 내용은 실제로 사용되는 보통의 마상주를 말한 것이지 송신에 쓰이는 마상주를 특별히 지칭해서 말한 것은 아니나, 표기가 독특하므로 이런 귀신의 배를 마상주라고 불러도 재미있을 듯 하다.
범위를 넓혀 따져 보자면, 조선 시대에 널리 퍼져 있는 송신 의식은 바다에서 이루어지는 송신 의식 보다도 육지에서 보통 제사를 지낼 때 흔히 시행하는 송신 의식이 훨씬 더 일상적이었다.
그런데 여러 송신 의식 중에 작은 배를 만드는 송신 의식과 유사한 것으로는 마마, 즉 두창/천연두 귀신을 보내기 위해 수행하는 의식을 꼽아 볼 수 있다. 보통 지푸라기 등으로 말 모양을 만들어 바치면서 그 말을 타고 마마 귀신이 떠나가라고 하는 것은 마마 귀신에 대해 널리 퍼진 송신 의식이었다. "일성록"을 보면 1796년 음력 10월 4일 정조 임금 때 궁중에서 진행된 마마 귀신에 대한 송신 의식이 실려 있으며, 말 두 개를 사용하는 것으로 되어 있고 음식, 술, 촛불 등을 사용했다고 한다. 무당이 들어 와서 수행하는 마마 귀신에 대한 송신이 숙종 시기에 문제가 되기도 했던 것과 비교해 보면 18세기 말에 이르면 마마 귀신에 대한 송신 의식이 아주 널리 퍼져 자리 잡은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마마귀신을 흔히 서쪽에서 온 귀신, 외국에서 들어 온 귀신이라고 생각한 것과 제주의 연등 풍속에서 신령을 "타방지신(他方之神)"이라고 부른 것이 통한다는 생각도 든다.
요즘에는 보통 송신때 하는 굿을 송신굿이라고 하며, 배송(拜送)굿이라고도 한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마마 귀신에 대해 설명하면서 쓴 말도 "배송"이다.
괴물을 정리한 기준은 이전과 같습니다. 즉, 기록과 기록자, 기록시기가 분명한 18세기 이전에 확인된 각종 괴물들만을 정리했습니다. 따라서, 19세기 이후에 기록된 괴물, 작자가 불분명한 문헌에 기록된 괴물, 소설 속에 등장하는 괴물, 기록 없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온 괴물 등등은 모두 뺐습니다.
비슷한 괴물들끼리는 기록을 합쳐서 하나의 보다 묘사가 풍부한 괴물로 정리했고, 반대로 이름이 같은 괴물이라도 현격히 모습과 습성이 다른 경우에는 다른 괴물로 분리해서 싣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괴물에 대한 설명은, 책에 언급된 그대로의 설명을 옮기는 것에 더하여, 다른 기록에 나오는 비슷한 괴물의 묘사, 비슷한 전설, 비슷한 괴물의 그림, 공예품의 모양 등등을 참조하여 덧붙인 것들이 있습니다.
괴물들에 대한 이야기는 설화를 연구하는 중요한 단초가 되기도 하고, 시대 상황을 파악하는 상징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토론하거나 주석, 해설을 달아볼만한 부분도 많을 것입니다. 아쉬운대로, 제가 아는 선에서 최대한 이런저런 설명을 해 보려고 했습니다. 대신 모든 괴물들의 그 기록 출전을 밝히고자 했습니다.
괴물의 이름이 불분명한 경우에는 제가 임의로 이름을 붙이는 것은 피했습니다. 대신에 원전에서 괴물의 모습을 묘사하는 대목에 나오는 말을 최대한 그대로 발췌해서 옮겨 쓴 것을 항목의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가능한 한 한자도 같이 표기했습니다.
이 자료에 괴물들을 사실적으로 잘 그려낸 그림을 곁들였다면 더 재미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쉬운대로, 일단은 조선시대 이전의 유물들 중에서 분위기가 비슷하게 맞는 부분 일부를 발췌하여 참고해 볼 만한 자료로 같이 실었습니다.
91. 성귀 (聖鬼), 용녀부인 (龍女夫人)

(국립민속박물관 벅수, 공공누리1)
성귀는 대단히 뛰어난 신령으로 과거와 미래를 내다보고 온 세상을 꿰뚫고 있다. 그 모습은 눈이 손바닥 만큼 크고, 금실로 수놓은 옷을 입었으며, 손에는 커다란 징을 들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조선 후기, 용녀부인의 무리와 그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믿던 이야기다.
용녀부인과 그 무리에 관한 사건은 1688년 무렵 조선에서 꽤 큰 화제가 되었던 일로 숙종실록에도 실려 있으며 용녀부인이라는 사람을 내세우면서 미래에 대한 예언을 안다는 사람들이 나라를 차지할 거라고 세력을 모으려 했기에 조정에서 중범죄로 다루었다. 세력이 컸을 때는 황해도 문화를 중심으로 황해도 지역과 경기도 양주 인근 지역까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용녀부인 일당의 예언에 따르면, 예언한 시기에 큰 비가 내려서 서울에서 홍수 때문에 혼란이 생길텐데 그러면 그 틈을 타서 소수의 병력만으로도 조선을 차지해 임금이 될 수 있다고 했고, 이것을 믿고 일을 벌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예언한 날짜에 비가 내리지 않았고 이후 사건은 흐지부지 되어 일당은 검거되어 처형되었다. 사건 발생후 상당한 세월이 지난 후 영조 실록에서도 이 사건이 회고되고 있고, “성호사설”에도 이 사건이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무렵 조선 사회에 꽤 영향이 있었던 사건이었던 듯 하다.
사건에 대한 기록은 “추안급국안”의 내용이 상세하다. 이에 따르면 중심인물은 여환이라는 인물로, “석가의 시대는 가고 미륵의 시대가 온다”라고 하면서, 앞으로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그것을 미륵불이 주관하는데 그 전혀 다른 질서에서 자신이 예언한 세력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말했다. 전형적인 미륵불 계통의 예언자 무리들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데, 사실 내용을 보면 불교적인 느낌은 약한 편이라, 미륵은 어떤 신령인 것처럼 취급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여러 기록에서 이 사건이 용녀부인이라는 여성 지도자를 중심으로 언급되고 있다는 점이다. 용녀부인은 여환의 부인이었는데, 두 사람 외에도 여러 다른 무당, 술법사 등의 사람들이 사건에 엮여 있었다.
성귀라는 말은 성스러운 귀신, 성인의 귀신이라는 뜻으로 이 무리가 받들던 신령을 일컫는 말로 “추안급국안”에서 자주 사용된 용어다. 결국 이 무리의 이론에 따르면 이것이 이들에게는 미륵인 셈이다. 그렇다면 조선 사람들 사이에 돌던 이야기 속에서는 이 이상한 무리를 이끄는 대장에 해당하는 인물이 용녀부인이고, 용녀부인과 가장 가까운 관계의 강력한 신령이 성귀라고 할 수 있겠다.
용녀부인 무리의 믿음은 “추안급국안”에 실린 여환에 대한 4차 형신에 가장 자세하다.
이들의 이야기는 여환의 아버지가 김화 천불산에 세 번 치성을 드리고 자식으로 여환을 얻었는데, 천불산에 미륵이 있으므로 자신은 운명적으로 미륵과 통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는 듯한 출생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여환에게 어느날 칠성주(主) 즉, 북두칠성님이 자기에게 찾아 와 누룩 세 덩어리를 주었는데, 누룩을 한자로 쓰면 “국”이 되어, 나라 국자와 발음이 같으므로 그것이 자기에게 나라를 준다는 예언이라고 여환은 받아 들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여환은 천불산 제일봉에 올라가는데 그러자 구름 비슷한 신비로운 기운이 사방에 있었고 북쪽에서 특히 상서로운 기운이 몰려 왔다고 한다. 사흘이 지나니 “사주지군(四洲之君)”이 찾아 왔다고 한다. 불교 용어에 비추어 해석해 보면 사주지군은 우리 주변 우주의 임금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선인(仙人)이 나타나 “부책(符冊)”이라는 신비로운 책을 읽어 주기도 하고, 바위에 “영측(盈昃)” 두 글자를 세겨서 달이 차면 기울 듯이 나라의 운수도 바뀐다는 이야기를 상징하기도 했다고 한다. “자영(紫纓)”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검은 구름 속에서 나타났다 사라졌다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자영은 보라색 갓끈이라는 뜻으로 번역되니 고귀한 사람들이라는 뜻일 것이고, 보라색 갓끈을 실제로 달고 있는 사람들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공중에서 음악이 연주되고 자기도 그 공중에 같이 머무는 등의 일이 펼쳐졌다고 한다.
그 밖에 북쪽으로부터 큰 물이 흘러나왔는데 수중노인, 즉 물 속에 사는 노인이라는 사람들로 늙은 승려와 노인이 물 속에서 이야기하면서, 해제(海帝), 순왕(順王) 등을 언급하며 미래에 그런 사람들이 임금이 될 거라는 이야기를 했다든가, 지신(地神) 즉 땅의 신이 등장해 큰 글씨를 써서 무엇인가를 알려 주었다든가, 하는 내용도 있다. 또한 자기를 신비로운 기운이 감싸면서 남쪽으로 끌고 가더니 아주 깊은 골짜기에 떨어뜨렸다든가, 기운이 몸을 감싸더니 물 속으로 자신을 보냈다든가 하는 이야기도 하고 있다.
땅의 신이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흙바닥에 글자 모양을 자꾸 만들어 보여 주며 말을 한다는 식으로 생각하면 그 장면도 재미있어 보인다.
묘사가 재미난 대목으로는 일당이 가장 높게 생각하던 미륵에 대한 묘사와, 흑룡에 대한 묘사가 있다. 미륵에 대한 묘사는 앞에서 설명한 성귀에 대한 내용이 그것이다.
흑룡은 북쪽으로부터 검은 물줄기가 나타나 땅에 가득해 졌다면서 그 등장이 설명되고 있다. 이후 수많은 군사와 함께 머리에 전모를 쓴 듯한 특이한 복장의 여성들이 대단히 많이 나타나 “이것이 흑룡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단순히 흑룡이 검은 용이라는 뜻이 아니고, 검은 색 물, 수많은 군대, 많은 기이한 여성의 무리가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세상을 공격하거나 지배할 위력, 군사를 의미하는 듯 한데, 말하자면, 이들에게 흑룡이라는 말은 흑룡부대, 흑룡군 같은 뜻이다. 거기다가 전모를 쓴 여성들의 집단 내지는 무슨 선녀 부대, 여성 도술사 부대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이 독특한 특징이다. 아닌게 아니라 사건 조사 내용을 보면 정계화라는 여성 무당도 중요하게 등장하는데, 이 사람은 자신을 정씨 성을 가진 성스러운 사람이라는 뜻으로 정성인(聖人)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흑룡처럼 이들은 간간히 자신들의 활동과, 용, 여성을 연결시키고 있다. 그래서 이들이 용녀부인을 중심으로 한 무리라는 소문을 얻은 듯하다. “성호사설”의 용녀부인에 대한 기록에도 사람들을 홀리는 말을 잘 한 것이 용녀부인이라고 되어 있고, “연려실기술”의 용녀부인 사건 설명을 보면, 여환은 붙잡혀 와도 말을 잘 못했는데 용녀부인의 말은 강물처럼 줄줄 흘러 나왔다고 되어 있어 용녀부인이 중심이었던 사건이라 보고 있다.
한가지 이상한 것은 정작 사건에 대해 가장 내용이 풍부한 실제 범죄자 조사 기록인 “추안급국안”의 내용을 보면, 용녀부인이 중심이기는 커녕, 용녀부인, 그러니까 여환의 부인은 사건에 대해 가장 잘 모른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 기록을 보면 여환의 부인은 자신은 그저 자기 남편이 이상한 예언에 관심이 많고, 무당들의 일 같은 것에 휘말려 있구나, 정도로 생각했을 뿐, 이 모든 것에 대해 자기는 잘 알지도 못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남들이 자기를 용녀부인이라고 종종 불렀을 뿐, 자기 스스로 “내가 용녀부인이다”라고 말하고 다닌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진실이야 어찌 되었건, 조선 시대의 법에 남편이 역적이면 하여튼 아내도 처형되게 되어 있으므로 용녀부인이라고 불리우던 본명 원향(遠香)이라는 여성은 1688년 음력 7월 말 경 결국 처형 당하고 말았다.
92. 묘수좌 (猫首座)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회화, 공공누리1)
수좌는 가장 높은 자리를 말하니 묘수좌라는 말은 “높은 고양이 선생님”이라는 뜻인데, 조선시대 표현으로는 “고양이 스님”이라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그래서 묘수좌는 머리카락을 삭발하고 고고하게 도 닦는 사람 처럼 꾸미고 있는 고양이를 말한다. 이것은 16세기 초반 기묘사화 이후 조선에서 돌던 우스개 소리 비슷한 우화 속에 등장하는 말로 1530년대 중반의 유행어다.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인 늙은 고양이가 기력이 쇠하고 발톱, 이빨도 상해 쥐를 못 잡게 되자 귓속의 털없는 부분을 머리가죽 쪽으로 뒤집어 삭발한 머리 모양처럼 만들고 자신은 이제 스님이 되어 고기는 먹지 않는다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쥐들을 제자로 거두어 두고는 종교 행사를 한다고 하면서 몰래 한 마리 씩 잡아 먹는다. 이 고양이를 일컫는 말이 묘수좌다.
영리하면서도 겉다르고 속다르고 위선적이고 속임수에 능한 스님 모습의 고양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조선왕조실록” 1534년 음력 7월 22일 기록에 당시 김안로를 비판하기 위한 이야기로 유행했다고 하고 있다.
93. 휴유 (鑴[木劉])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공공누리1)
휴유는 불길하고 괴이한 부엉이, 올빼미 류의 새를 상징하는 말이다. 이런 불길한 새가 나타나 울면 불길한 일이 생기고, 그 새가 나타난 집에 사는 사람이 망하거나 죽는다는 식의 생각이 조선시대에는 많이 퍼져 있었다. 즉 이것은 죽음, 패배를 알리는 울음을 우는 새다.
휴유라는 말은 사악한 것이라는 뜻으로 17세기 후반에 조선의 일부 정파에서 사용하던 단어다. 이 말은 윤휴, 이유, 두 사람을 비난하기 위해, 윤휴의 휴, 이유의 유에서 각각 한 글자 씩 따온 말에서 탄생했다. 예로부터 불길하던 새라고 하던 부엉이, 올빼미를 흔히 휴류(鵂鶹)라고 썼기 때문에 발음이 비슷한 휴유를 불길한 단어로 만든 것이다. 이런 새가 일으키는 나쁜 현상을 휴류지변(鵂鶹之變)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런 표현은 “송자대전”에 실린 송시열이 송시도에게 보낸 편지 등에 은어처럼 보인다.
기괴한 부엉이의 형상을 표현한 글로는 조선후기 이덕무의 “이목구심서”에 나온 “몸의 4할이 고양이 모양”이라는 서술이 있다. 현대의 생물 지식과는 차이가 나는 부엉이에 대한 과장된 생각인데 이덕무는 부엉이는 완전한 음의 기운, 즉 전음지기(全陰之氣)를 받은 동물이라고 하면서 그 때문에 밤에 활동한다고 서술했다. 다른 묘사로는 “동국여지승람”에 직산의 휴류암에 대해서 묘사한 기록도 짚어 볼 만하다. 여기에서는 휴류암이 양, 말, 사람의 형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휴류암은 부엉이바위라는 뜻인데도 그 모습은 보통 부엉이와는 별 관계가 없다는 것을 두고 조선시대 사람들도 이상스레 여겼다는 것이 “여암유고”등에 보인다. 그러므로 조금 더 상상해 보자면, 양, 말, 사람과 닮은 점이 있는 기괴한 부엉이의 형상을 떠올려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올빼미가 불길한 동물이라는 생각이 깊게 남은 기록으로는 고려가 멸망하던 무렵도 언급해 볼 만 하다. 고려가 멸망할 징조가 뚜렷했다는 예로 조선을 건국한 사람들은 올빼미 울음을 꼽았기 때문이다. “고려사절요” 1389년 기록을 보면 고려 멸망기의 임금인 우왕이 종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 올빼미 소리가 천지를 울렸다고 쓰고 있다. “이러니 나라가 망할 때가 되었다”는 식으로 조선의 건국자들은 말하고 다닌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그런 사건을 빌미 삼아 이성계 일파는 고려를 멸망시켰다고 볼 수도 있다. 그 때문인지 조선이 건국된 후, 조선 초기의 임금들은 올빼미 우는 소리를 대단히 두려워 했던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자주 보인다. 올빼미, 부엉이가 울면 궁중에서 허구헌날 해괴제라고 하여 제사를 지내면서 불길함이 사라지기를 애써 기원할 정도였다. 말하자면 마음이 찔린 셈인데, 그도 그럴 것이 그 올빼미 울음소리를 듣고 이번에는 조선의 임금들을 싫어한 누구인가가 “저 임금도 망할 때가 되었나 보네”라고 과거의 자신들 처럼 생각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 중기가 다 되어서야 이런 풍습은 멈추었다.
애당초 부엉이, 올빼미 류의 새에 대한 믿음이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중국 고전에서 올빼미가 나쁜 뜻으로 사용된 경우가 있었던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중국 고전에서는 효(梟)라고 하는 올빼미가 어미를 잡아 먹는 습성이 있는 새라는 말이 나온다. 이런 이야기들이 효도를 중시하는 조선에서 특별히 올빼미를 더 잔혹하고 사악한 생물로 취급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참고로 중국 고전에서 나온 불길한 올빼미, 부엉이를 가리키는 말과 비슷한 뜻의 단어로 복조(鵩鳥)라는 말도 쓰였다.
재미있는 기록으로 “조선왕조실록” 1407년 음력 9월 18일 기록에 태종 임금이 부인 원경왕후와 다투면서 자기 정책을 원경왕후가 섬기는 민속신앙의 귀신이 비판한 것 같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하는 대목이 있다. 그러면서 태종 임금은 자기가 잠자는 건물에 복조, 즉 괴이한 올빼미, 부엉이류 새의 울음소리가 들렸는데 그 올빼미는 원경왕후가 섬기는 귀신이 변신해서 날아 온 것이고, 그 올빼미 울음소리가 바로 그런 비판의 의미를 품고 있었던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이런 생각을 받아 들인다면 조선 초기 사람들의 믿음 속에서는 괴상한 올빼미, 부엉이가 신령처럼 행동하며 사람의 기도를 듣기도 하고, 또 남을 저주하거나 비판하는 뜻으로 그 사람 옆에서 울기도 한다고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94. 서도신 (鼠島神)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공공누리1)
황해도 서흥의 서도(鼠島), 즉 쥐 섬의 신이라고 하여 조선 초 주민들의 섬김을 받았다는 신령이다. 형상은 하얀 쥐의 형상인데 날쌔고 빠르다. 이야기 정황을 보면 사람과도 닮은 정황이 있다고 보아야할 듯 싶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옛날 서흥 근처에 적군이 침입했는데, 한 사람이 흰 쥐로 변해서 적진으로 들어 갔다고 한다. 고작 쥐 한 마리가 적군을 물리치는데 무슨 공을 세울 수 있을까 싶지만, 그 흰 쥐가 적의 화살 시위를 몰래 다 갉아 끊어 놓는 방법으로 적의 무기를 망쳐 놓아 적이 싸울 수 없게 만들어 지역을 지켰다고 한다. 재미난 것은 왜인지 그러고 나서도 영웅 대접을 받은 것이 아니라 나장산의 바위 구멍으로 들어 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1년 동안 있다가 신령으로 변해 이후 서도신으로 섬김을 받았다고 한다. 하필 바위 구멍으로 들어 갔다는 것을 보면 그때에도 쥐와 비슷한 모습, 쥐와 닮은 점이 있지 않았나 싶다.
말하자면 서도신은 흰 쥐와 비슷한 모습으로 수많은 적을 물리치고도 표표히 사라진 영웅 용사라고 할 수 있는데, 기록에서는 서도신을 모시는 곳을 서도신사(鼠島神祠)라고 불렀다고 한다. 주민들이 제사를 지내고 있고 가뭄이 들 때 비를 내려 달라고 빌면 문득 소원을 들어 주기도 했다고 한다.
95. 악지어 (岳只魚)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공공누리1)
북방 먼 지역의 강물에 사는 물고기로 길이가 약 15미터에 달하며 덩치도 매우 큰 거대한 물고기이다. 그러나 특별히 사악하거나 성질이 무섭다는 서술은 없어 지나칠 정도로 온순한 물고기인 듯 하며, 사람이 길다란 창으로 공격해 잡을 수 있고, 그렇게 잡으면 많은 사람들이 잘 먹을 수 있는 좋은 식량이다.
조선 시대에는 17세기에 소위 “나선정벌”이라고 하여 조선 군사들이 청나라 군사와 함께 지금의 흑룡강 인근에서 러시아 군사와 전투를 벌인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에 대한 기록 중에 “북정록”을 보면 흑룡강 인근으로 멀리 갔을 때 강물에서 무척 큰 물고기를 보았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것이 “배시황전”등 소설에 가까운 글에서는 더욱 과장되어 비현실적으로 묘사 되어 있는데, “악지어”라는 이름과 묘사는 “배시황전” 쪽의 과장된 내용에서 가져 온 것이다.
믿음직한 기록에도 등장하는 물고기이므로 이야기의 단초가 되는 꽤 큰 물고기가 실제로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한 가지 예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철갑상어 류의 물고기다. 철갑상어는 강물에서 발견될 수 있는데 실제로 중국 동북 지역에서 발견되는 사례도 있으며, 그 중에는 크기가 2 미터에 달하는 아주 큰 것도 있다. 또한 철갑상어는 특이하게 생겼으므로 강한 인상을 남길만한 물고기다. 최근 인터넷에는 사람이 철갑상어를 타고 있는 듯한 사진도 돈 적이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악지어”의 모습과 습성 역시 철갑상어와 닮았다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철갑상어의 알이 캐비어라는 고급 식재료로 취급되므로 악지어의 알이 귀중하고 맛있는 재료라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철갑상어는 이빨이 없는 물고기이므로 악지어 역시 온순한 동물이고 사람이 길들여 물에서 타고 다닐 수도 있는 동물이라는 식의 이야기도 만들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철갑상어는 입 주변에 수염이 달려 있는 것도 겉모습의 특징인데 그렇다면 악지어도 수염이 있고 그 수염에 어떤 특징이 있다는 이야기를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배시황전" 등에는 악지어와는 다르지만 붉은 물고기 "적어"가 큰 물고기였다는 기록도 있고 흑룡강 주변의 동물, 식물은 색깔이 검었다는 이야기도 있으므로 악지어 역시 검정색 또는 붉은 색을 띄고 있다는 생각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96. 사각승선 (四角承宣)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청동십이지미상, 공공누리1)
뿔 넷 달린 양으로 희귀한 짐승이다. 또는 뿔이 넷 달린 벼슬아치를 뜻하는 말이다. “고려사절요” 1169년 기록에 보면 금나라에서 고려에 양 2천 마리를 선물로 주었는데 그 중 한 마리가 뿔 넷 달린 양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을 두고 대단히 좋은 징조라고 하여 신하 이공승이 엄청나게 화려한 글을 지어 임금에게 바치며 칭송했다고 하는데, 사람들에게 이것이 조롱거리가 되어 이공승을 “사각승선” 즉, 뿔 넷 달린 승선 벼슬을 사는 사람이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것이 유행했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사각승선은 뿔 넷 달린 양을 칭송하는 사람을 일컫기 위해 탄생한 말이다. 사각승선은 보통 사람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고 실용적으로 별 쓸모도 없는 짐승이지만, 가치를 높게 치는 사람들은 한 없이 높게 치는 짐승이라고 풀이 해 볼 수도 있겠다. 또 한편으로는 심하게 윗사람에게 아부하는 것을 상징하는 짐승인 셈이다.
이공승은 임금에게 아부를 잘하고 임금과 어울려 놀다가 술에 취해 거꾸로 수레에 실려 왔다는 기록도 있을 정도인 인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글 쓰는 재주가 뛰어나고 또한 젊은 시절 딱히 비리를 저지르지 않은 인물로 칭찬받을 점도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보면, 사각승선은 그저 모든 부정부패 전반을 말한다기 보다는 지나친 칭송, 과도한 칭찬, 별 것 아닌 것을 높게 평가해서 거품이 끼는 것, 아첨, 아부를 상징한다고 보는 것이 좋겠다.
97. 견부락 (犬部落)

(국립중앙박물관 십이지신도, 공공누리1)
견부락은 먼 곳에 있는 나라로 개들을 아주 중시하는 나라, 개들의 나라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중국 고전에서는 예로부터 구국(狗國)이라고 하여, 개들의 나라라고 하는 나라가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하늘의 별들 중에도 구국성이 있었다. 중국에서는 외국 사람들을 욕하거나 조롱할 때, 너네 나라는 개들의 나라다, 너희는 구국 사람이라는 식으로 지목한 일도 과거에 있었다.
이런 이야기는 한반도로도 전해졌다. 비교적 초기 기록 중에 한반도와 관계 있는 기록을 짚어 본다면, 중국 당나라 때의 글인 “영표록이”다. 여기에는 주우라는 중국 당나라 사람의 짤막한 모험담 이야기가 실려 있었는데, 주우는 신라 뱃사람들이 타고 있는 배를 타고 바다에 나왔다가 표류 하면서 구국(狗國), 모인국(毛人國), 야차국(野叉國), 대인국(大人國), 유규국(流虬国), 소인국(小人國) 등 기괴한 여섯 나라를 떠돌다 겨우 살아 왔다고 한다. 이때 신라 뱃사람은 구국이 어디인지 알아 보았다고 하며, 유규국 사람과는 의사 소통도 어느 정도 할 수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로 보아, 항해에 밝은 신라 뱃사람들 사이에는 이들 나라들이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다는 듯한 전설이 있었다고 추정해 볼 수 있다.
“영표록이”에 실린 구국에 대한 내용은 조선의 책인 “해동역사”에도 그대로 인용되어 소개되어 있다. 여기에는 구국의 사람, 즉 구국인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사람과 비슷해 보이는 벌거벗은 형체가 개를 안은 모습으로 나타났다가 배를 보고 놀라서 도망쳤다.” 이것으로 보아, 구국인들은 개를 중시하거나 개를 아주 좋아하고, 어떻게 보면 사람이라고 보기는 조금 애매한 종족이다. 또한 옷을 입을 줄 아는 문화나 기술은 없고, 또한 겁이 많거나 사람을 싫어한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신라 사람들과 구국인들 사이에 어떤 사건이 있었다고 상상해 볼 여지도 있다. 예를 들면, 과거에 신라 뱃사람들이나 신라 해적들이 구국인들이 갖고 있는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구국인들을 공격한 적이 있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생각해 봄 직하다.
“영표록이”의 구국 이야기는 짧고 막연한 편인데, 조선 후기의 글인 “앙엽기”에는 구국에 대한 중국의 다른 전설 몇 개가 인용되어 실려 있다. 그 내용 중에는, 머나먼 어느 나라에 가면 몸은 사람이고 머리는 개인 종족이 있었다는 것도 있다.
“앙엽기”에 실린 특이한 기록으로는 조선의 김육이 쓴 “잠곡필담”에 실려 있다면서 통역관 김희삼(金希三)이 전해 준 이야기를 소개해 놓은 것이 있다. 이에 따르면, 어느 먼 섬에 가면 이상한 개들을 중시하는 나라가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는 아름다운 여성들이 수영을 하고 있는 섬이 있는데 그 사람들은 옷을 입을 줄 모른다고 한다. 이 여성들에게 보통 사람이 다가가면 원숭이나 개처럼 사람을 물려고 한다. 그리고 그 여성을 구하기 위해 커다란 수캐들이 떼를 지어 온다고 한다. “앙엽기”의 서술을 보면, 전체적으로 남성은 개와 비슷하고 여성은 사람 여성과 비슷한 종족이 있다는 이야기를 나타내는 것이다. 만약 그 둘이 짝지어 친밀하게 다닌다고 보면 그 내용은 앞서 이야기한 “영표록이”의 구국 이야기와도 통한다.
정리하자면 “영표록이”, “잠곡필담” 계통의 구국 이야기는 중국에서 전해진 이야기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섬나라에 사는 종족 중에는 남자는 개와 비슷하게, 여자는 보통 사람과 비슷하게 태어나는 종족이 있어 서로 짝을 지어 살며, 기술이 발전한 것 같지는 않고, 사람을 싫어 한다는 이야기다.
조금 더 현실적인 개들의 나라에 대한 이야기로는 조선시대에 소위 “나선정벌”이라고 하여 조선 군사가 청나라 군사와 함께 러시아 군사와 전투를 벌인 사건 기록 중에 “북정록”에 실린 이야기를 꼽아 볼 수도 있다. 여기에는 흑룡강 근처의 머나먼 땅으로 떠난 조선의 신류가 현지에서 견부락(犬部落) 또는 개부락(介部落)이라고 하는 낯선 민족을 접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견부락은 번역하자면 개들의 마을, 개들의 부족이라는 뜻이다.
이훈 선생의 글, “조선의 나선정벌군이 본 허저족”에 따르면, 이들을 신류가 견부락이라고 부른 것은 이들이 개썰매를 타고 다니는 습성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보면, 견부락인들은 특별히 이상한 종족은 아니며 그냥 개를 중시하는 문화를 가진 사람들일 뿐이다. 이들은 현대 러시아의 나나이족 조상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반대로 북방 이민족들은 조선인들을 대두인(大頭人), 즉 머리 큰 사람들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조선시대 무렵의 청나라에서는 지금의 러시아에 가까운 지역의 이민족 중에 어피달자(魚皮㺚子), 대비달자(大鼻韃子)가 있다고 보았다. 이런 말은 조선왕조실록에도 보인다. 이 중에 대비달자는 코가 큰 이민족이라는 뜻으로 지금의 러시아인을 뜻하는 말이다. 대비달자가 러시아인이라는 사실은 숙종실록을 보면 이미 17세기에 조선인들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에 비해 어피달자는 물고기 껍질을 옷감으로 이용하는 이민족이라는 뜻으로, 현대에는 어피달자라는 민족이 바로 견부락인, 나나이족과 가까운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이에 대해서 좀 혼동도 있었는지, 인조실록을 보면 어피달자가 조선에 복속하기도 하고 충돌하기도 했던 여진족 계통의 사람들인 홀온(忽溫)으로 보기도 했던 것 같다.
정리해 보자면, “북정록” 등에 보이는 비교적 사실적인 견부락인은 전설 속의 종족이라기보다는 실제 역사에 등장하는 민족으로, 북부의 머나먼 땅에 사는 개를 아주 중시하는 사람들로 개썰매를 타고 다니고 물고기 껍질로 만든 옷을 입고 다니는 풍속을 갖고 있다.
98. 절불가식 (切不可食: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는 뜻)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노리개, 공공누리1)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의 "이목구심서"에 적혀 있는 당시 사람들 사이에 돌던 이야기에 따르면 복어의 독을 일으키는 벌레가 따로 있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나비와 비슷한 아주 작은 벌레가 주로 복어의 눈에 붙어 있고, 그 외에도 몸 여기저기에 붙어 있는게 그게 독이 있어 사람을 죽인다고 한다. 그러면서, 복어는 원래 독이 없어서 그것을 잘 떼어 내고 먹으면 안전하다고 한다. 한편 두꺼비가 변해서 복어가 되므로 복어는 독이 있다는 이야기도 같이 실려 있는데, 그렇다면 이 복어에 붙어 있는 이상한 독벌레는 두꺼비와도 관련이 있다고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정리해 보면, 이것은 복어의 눈에서 주로 산다는 아주 미세한 나비를 닮은 물 속에서도 살 수 있는 강력한 독벌레며 무엇인가 두꺼비와도 인연이 있는 벌레다.
이상한 나비 같은 벌레가 복어 몸에 살기에 독이 생긴다는 것은 전혀 현실과는 다른 이야기다. 재미있는 것이, 현대의 연구에 따르면 복어 독은 복어 몸에서 사는 세균이 만들어 낸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그래서 태어날 때부터 멸균 상태에서 분리해서 따로 기른 복어는 독이 없다고 한다. 비교적 세균이 없는 곳에서 기른 양식 복어도 위험할 수 있는 있지만 그래도 자연산 복어에 비해서는 독이 약한 경우가 있다고 한다.
99. 소인국 (小人國)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 백자인형, 공공누리1)
소인국은 아주 작은 사람 모습의 종족이 사는 나라를 말한다. 이 종족은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옷을 입을 줄 모르는 정도다.
소인국은 중국 고전에서 언급되기도 하는 만큼 소인국에 관한 언급은 한국 옛 기록에도 가끔 등장한다. 특별히 언급해 볼만한 것으로는 중국 당나라 때의 글인 “영표록이”에 실린 주우라는 사람의 짤막한 모험담 이야기가 있는데, 여기서 주우는 신라 뱃사람들이 타고 있는 배를 타고 바다에 나왔다가 표류 하면서 구국(狗國), 모인국(毛人國), 야차국(野叉國), 대인국(大人國), 유규국(流虬国), 소인국(小人國) 등 여섯 나라를 떠돌다 살아 왔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때 신라 뱃사람은 구국이 어디인지 알아 보았고, 유규국 사람과는 의사 소통도 어느 정도 할 수 있다고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항해에 밝은 신라 뱃사람들 사이에는 이들 나라들이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다고 추정해 볼 수 있다.
“영표록이”에 실린 이야기는 “태평광기” 등의 문헌에도 수록 되었으므로 예로부터 고려, 조선에도 전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이야기에는 소인국 사람들이 옷을 입지 않고 있었다는 언급과 함께, 주인공 일행이 식량이 떨어지자 소인국 사람들을 공격해 잡아 먹었다는 무서운 내용도 같이 실려 있다.
조금 더 사실적인 기록이면서 한국 옛 문헌에 직접 내용이 남아 있는 것으로는 “북정록”을 꼽아 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 소위 “나선정벌”이라고 하여 조선 군사가 청나라 군사와 함께 러시아 군사와 전투를 벌인 사건이 있었다. "북정록"은 그 일을 신류가 기록한 것이다. “북정록”을 보면 전투를 위해 지금의 흑룡강 지역 깊숙한 곳, 춥고 거친 영토로 진입하는 도중에, 그 지역이 소인국과 가깝다는 것을 저자인 신류가 파악하는 대목이 있다. 소인국이라는 말이 한 번 등장하는 짧은 기록일 뿐이지만, 여기에서는 바다 먼 곳에 있는 섬나라가 아니라 육지 대륙 깊숙한 추운 지역 먼 곳에 등장하는 나라가 소인국인 것처럼 언급되어 있다.
종합해 보자면, 옛 이야기 속에서 소인국은 머나먼 외딴 곳에 있는 문화, 기술이 거의 발달하지 않은 사람과 닮은 크기가 작은 종족이다. “영표록이”의 내용을 살려 보자면, 소인국인은 사람과 아주 비슷해 보이지만 사람은 아닌 종족이고 지능이 부족한 동물이라고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보자면 사람 중에서 소인국인을 공격해서 잡아 먹는 것을 별미로 생각하거나 중요한 약이 되는 재료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어서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 상황을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100. 송신 (送神), 타방지신 (他方之神)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주형토기, 공공누리1)
송신은 신을 보낸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주로 신령이 타고 가는 배, 귀신이 떠나가는 배, 유령선 같은 배, 도깨비배에 초점을 두어 설명하고자 한다.
신령의 배에 대한 묘사는 “초사담헌”에 실린 조완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자세하다. 이에 따르면 신령의 배는 크기가 작아서 손으로 들 수 있을 정도의 작은 크기인데 그러면서도 돛이 달려 있고 그 돛이 저절로 움직이며 배가 움직인다고 한다. 그러다가 필요할 때는 저절로 멈추기도 한다. 바다에 갑자기 사람이 타고 있지 않고 사람이 탈 수도 없는 작은 크기의 텅빈 배가 유령처럼 나타나 이상한 일을 벌인다는 식의 이야기다. 이야기의 본 내용은 조완이라는 사람이 제주에 유배를 당했다가 사망했는데, 사망한 후에도 “유배기간을 다 채운 후에 떠나겠다”면서 버티다가 결국 떠날 때는 신령의 배를 만들어 달라고 해서 그것과 함께 떠났다는 이야기다.
17세기 자료인 "남사록"에서는 제주도에서 바람의 신 "연등"을 숭배하는 2월 의식에 대해 설명하면서, "동국여지승람" 등에 실린 일반적인 설명에 추가하여 신령을 떠나 보내는 "송신" 단계가 있다고 "송신"이라는 말을 언급하면서, 이때 배 모양 배 모양에 돛대를 갖춘 모양을 만들어 포구에서 뜨워 보낸다고 되어 있다. 정월 그믐 때 서풍이 불면 "타방지신(他方之神)" 오셨다고 하고, 배 모양을 보낼 때 동북풍이 불면 "타방지신(他方之神)"이 가셨다라고 해서 이런 배를 타고 드나드는 신령을 "타방지신"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현대까지 이어진 해안 지방에서 굿을 하고 마지막 단계에 바다 먼 곳으로 조그마한 배 모양을 만들어 보내는 의식과 닮았다. 또한 “한국민속신앙사전”의 “띠배” 항목을 보면, 현대에 전해진 신령의 배에 대한 이야기 중에는 도깨비불을 반짝이며 밤에 사람도 없이 혼자 떠도는 배, 어민들을 홀리거나 반대로 도움을 주는 신령의 배 등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이런 이야기까지 합해서 생각해 보면 송신 의식에 등장하는 귀신의 배는, 조선의 유령선 이야기인데, 유령선 이야기와는 다르게 크기가 작은 모형 크기의 작은 배가 유령 그 자체의 역할을 하는 배로 등장한다는 점이 요즘 영화에서 자주 다루어진 유령선 이야기와 다른 점이다.
“고려도경”에서는 중국 송나라에서 고려로 오는 길에 중국 사신이 이런 행사를 한 기록도 남아 있다. “동국여지승람” 등에 서해신사를 세워 두고 서해의 신을 섬기는 곳이 있었다고 하므로 비슷한 계통의 믿음은 있었을 것이다.
현대에는 바다의 신령에게 작은 배 모양을 만드는 것을 띠배, 매생이배 등으로 부르고 있다. 전라남도 고흥 나로도에서는 매생이배 띄우기를 정월 대보름 밤 자정 즈음에 하며, 배에 불을 켜 놓은 뒤에 배를 밤 바다에 떠나 보내며 “매생아, 매생아 -”라고 말을 한 뒤에 소원을 비는 것으로 되어 있다. 원래 매생이라는 것은 “마상”, “마상이배”라고 하여 예로부터 사용되던 배의 일종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보통 조선시대 기록에는 마상선(麻尙船, 馬尙船)으로 표기된 경우가 많다.
조선 시대에 마상선이라고 하면, 이런 형식으로 만드는 배를 두루 일컫는 것으로 보아야겠지만, 마상선이라는 것이 거의 잊힌 요즘은 작고 간단한 통나무 속을 파내서 만든 배 내지는 정월대보름 매생이배 풍속에 나오는 배와 다를 바 없는 간단한 배 정도로 의미가 줄어 든 듯 하다. “공주풍토기”에 실린 독특한 표기인 “마상주(亇尙舟)”라는 말도 짚어 볼만한데, "공주풍토기" 내용은 실제로 사용되는 보통의 마상주를 말한 것이지 송신에 쓰이는 마상주를 특별히 지칭해서 말한 것은 아니나, 표기가 독특하므로 이런 귀신의 배를 마상주라고 불러도 재미있을 듯 하다.
범위를 넓혀 따져 보자면, 조선 시대에 널리 퍼져 있는 송신 의식은 바다에서 이루어지는 송신 의식 보다도 육지에서 보통 제사를 지낼 때 흔히 시행하는 송신 의식이 훨씬 더 일상적이었다.
그런데 여러 송신 의식 중에 작은 배를 만드는 송신 의식과 유사한 것으로는 마마, 즉 두창/천연두 귀신을 보내기 위해 수행하는 의식을 꼽아 볼 수 있다. 보통 지푸라기 등으로 말 모양을 만들어 바치면서 그 말을 타고 마마 귀신이 떠나가라고 하는 것은 마마 귀신에 대해 널리 퍼진 송신 의식이었다. "일성록"을 보면 1796년 음력 10월 4일 정조 임금 때 궁중에서 진행된 마마 귀신에 대한 송신 의식이 실려 있으며, 말 두 개를 사용하는 것으로 되어 있고 음식, 술, 촛불 등을 사용했다고 한다. 무당이 들어 와서 수행하는 마마 귀신에 대한 송신이 숙종 시기에 문제가 되기도 했던 것과 비교해 보면 18세기 말에 이르면 마마 귀신에 대한 송신 의식이 아주 널리 퍼져 자리 잡은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마마귀신을 흔히 서쪽에서 온 귀신, 외국에서 들어 온 귀신이라고 생각한 것과 제주의 연등 풍속에서 신령을 "타방지신(他方之神)"이라고 부른 것이 통한다는 생각도 든다.
요즘에는 보통 송신때 하는 굿을 송신굿이라고 하며, 배송(拜送)굿이라고도 한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마마 귀신에 대해 설명하면서 쓴 말도 "배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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