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멋진 날 영화



"One Fine Day"는 흔히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에 나오는 소프라노 아리아의 영어제목으로 사용되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어떤 개인 날"이라고 번역한다. 영화에서 실제로 이 푸치니 아리아도 한 번 나오기도 한다. 이 노래를 "어느 멋진 날"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더군다나 영화에서는 비가 온 젖은 도시의 모습과, 비가 그치고 개인 날씨의 깨끗하고 환한 인상을 아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여러모로 볼 때, 영화 제목은 "어떤 개인 날"로 하는 것이 더 좋았지 싶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번역까지 가지 않더라도 꼭 "뉴욕의 가을"이나 "남자가 사랑할 때"를 연상시키는 영화 포스터도 약간 아쉽다. 이 영화는 그 보다는 "프렌치 키스"나 "참을 수 없는 사랑" 쪽에 가깝다.

미셸 파이퍼와 조지 클루니가 등장하는 이 영화는 전형적인 "로맨스로 가득찬 뉴욕" 영화이다. 그 옛날 클래식 버전 "러브 어페어"나, 아카데미 작품상을 탄 몇 안되는 코메디 중 하나인 "아파트를 빌려드립니다"부터 유구하게 연결되는 전통을 잘 따르고 있다.

전형적이고도 전형적이다. 높은 빌딩에서 정장을 입고 거대 기업을 위해 일하는 주인공들이 나오고, 배경음악은 밝고 빠른 재즈고, 뉴욕의 명소들을 보여주고, 뉴욕 야경을 섞어서 마지막 장면을 만든다.

영화를 특이하고도 재미있게 만드는 것은 우선은 주인공의 두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은 주인공을 연결해주는 일단의 원인이 된다. 보통 이런 로맨틱 코메디에서 아이들은 "조숙한 사랑의 메신저"로 나오는 것이 정석공식으로 자리잡아 있다. - "닥터 봉" 같은 영화에서는 낯간지럽게 지긋지긋할 정도 였다.

참신한 점 1: 이 영화의 아이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주인공들을 괴롭히는 거대한 시련이다. 티격태격하는 주인공이 시련을 겪으면서 가까워진다는 것은 진부한 플롯일 진데, 이 진부함의 원인을 아이들로 하니 일단 이야기 전개가 색다르고, 보여줄 수 있는 인물들도 다채로워 진다.

더군다나 이 아이들은 다른 많은 아이들 나오는 영화들처럼 그저 괴로운 악당들로 낭비되지도 않는다. 정말로 이해해주고 위해줘야할 사랑스러운 대상이다. 영화는 어른을 괴롭히는 아이들을 정말로 소중한 대상으로 다루고 있는 몇 안되는 영화다. 그렇기에 일단 주인공을 괴롭히는 시련의 위상이 현실감을 얻고 또 색깔이 화려해 진다. 그러면서도 영화는 가족 사랑물에 지나치게 경도되기보다는 균형감각을 잘 유지하는 편이다.

조지 클루니는 딱 조지 클루니로서 역할을 정확하게 하고 있고, 아역들도 적당한 호연을 보여주고 있다. 멋진 것은 미셸 파이퍼인데, 초반에 미셸 파이퍼가 보여주는 젊은 완벽주의자 홀어머니의 모습은 설득력있으면서도 결코 전형적이지 않고 아주 독특하다.

이 인물로 미셸 파이퍼는 다른 사람은 흉내낼 수 없는 자기만의 위력을 백분 발휘한다. 다만 중반 이후 영화의 각본이 너무나 전형적으로 굳으면서, 미셸 파이퍼가 연기하는 캐릭터는 전성기 맥 라이언 코메디 주인공의 가짜 모방품으로 전락해 버린다. 그러면서 미셸 파이퍼가 나타낸 그 절묘한 인상은 서서히 사라져 버린다. 그러면서 영화 전체도 그냥 그저 그런 또 하나의 로맨틱 코메디로 줄어든다.

그러나 영화에는 무시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미셸 파이퍼의 인물은 초기에는 아주 보기 좋고, 영화가 이용하고 있는 비오는 도시의 심상과 비오고 개인 뒤의 청량감은 "뉴욕 영화" 중에서도 또 색다른 가치가 있다. 축구장 앞에서 비올 때 고인 물을 튀기는 장난 장면은 좀 티가 나지만, 티나는 장면 중에서도 비오는 거리의 택시 위에 미셸 파이퍼가 올라서서 두리번 거리는 것 같은 것은 여전히 극적으로, 미술적으로 보기 좋다.

나 역시, 비오는 도시의 모습과 비온 뒤의 개인 날씨를 사랑한다. 중학교 무렵쯤에는 비온 뒤 개인 날씨라는 그 모습에 괜히 열광해서, 그걸 주제로 이야기를 만들고, 그림을 그린다고 설치고 그럴 정도였으니.

훨씬 더 독특할 수 있었던 각본이 가라앉는 것은 아쉬웠지만, 음악도 무난했고, 더군다나 속옷 색깔 묻기 전화나, 철자를 부르는 일레인 같은 농담들은 리듬감이 완벽했다. 나는 애초에 사소하게 헝클어지는 듯하게 시작했던 하루가 엄청난 소동으로 일파만파 커져서 주인공이 "다이하드"를 하는 영화를 사랑하는지라, 아주 즐겁게 보았다.

덧글

  • 소년 2007/12/21 14:53 # 답글

    저도 무척 좋았습니다. 가끔은 이런 전형성으로 승부를 봐도 좋더군요.
    미셸은 정말 최고였죠. 아들땜에 매번 폭발 일보 직전, 화를 삼키는 그녀의 표정...ㅋㅋ
  • 2010/02/18 14:23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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