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터강 Der Untergang (몰락) 영화


(굴속의 히틀러와 그 측근들)

나치 독일이 몰락하는 마지막 순간을 그린 이 독일 영화는, 프랑스 개봉 당시 히틀러에 대한 미화 영화라며 거센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히틀러 미화 영화"라는 평가에서 느껴질 고정 관념과는 달리, 이 영화는 분명한 군국주의에 대한 반대 의식을 표명하고 있다. 영화는 제작진 스스로 그러한 미화에 대한 논란을 의식한 듯, 아예 첫장면부터 노골적으로 군국주의에 대한 반성 메세지를 대사로 직접 말하면서 시작한다. 이야기의 큰 줄기와 간접적으로 관련시킨 한 히틀러 소년단원의 이야기를 짧게 삽입해서, 분명하고도 직선적으로 군국주의를 꾸짖고, 인간의 생명과 가족애를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오직 독일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이 편견을 불러온 것일 뿐, 영화와 히틀러에 대한 시각은 4부작 케이블TV 히틀러 미니시리즈 보다도 훨씬 어둡다.

제목처럼 영화는 한 때 세계 정복을 꿈꾸었던 군단의 심장부가 몰락직전의 순간에 몰렸을 때, 느끼는 절망감과 공포감 그리고 거기에서 비롯된 광기와 공황의 분위기를 그리고 있다. 한 때 지상에서 가장 호사스러운 권력을 누렸던 그 도도한 인사들이 어두컴컴한 굴속에 숨어서 상실감에 광분하기도 하고, 두려움에 고개를 처박기도 하며, 그러는 사이에 아예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쾌락과 헛된 망상에 탐닉하기도 한다. 영화속에서 이러한 장면들은 비참하며, 서글프고, 또 기괴하다.


(잠시 후 단체로 목숨을 끊을, 나치스 제2인자 괴벨스 일가족)

이러한 내용은 기술적으로 완성도가 높게 표현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꽤 재미있게 영화가 전개되어 나간다. 고관대작들의 위엄있는 분위기를 역설적이고 반어적으로 이용해서 그대로 파괴된 베를린의 비참한 구덩이에 집어 넣는 극적인 구도 자체의 힘을 잘 살리고 있으며, 영화는 "시민 케인"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온 이런 영화 특유의 시각적 화려함과 극적인 공황 분위기를 섞은 묘미를 잘 답습하고 있다.

게중에서 주인공격이라 할 수 있는 히틀러역의 연기도 훌륭하다. 이것은 "여인의 향기"에서 볼 수 있었던 연기와 일맥상통한다. 한 때 자신감에 가득찼던 자가 몰락하여 패배감, 아집, 광기가 얽힌 인물로 변했으며, 이는 알 파치노 스러운 과시적이고 단선적인 연기로 깨끗하게 표현되어 있다. 연극적인 과장과 남동부 독일어 악센트며 제스처를 흉내내는 기교는 훌륭하게 조화되어 있다.

인물들의 절망감에 대한 이야기와 전쟁영화 특유의 스펙터클한 총격과 폭발장면을 유려하게 섞는 방법도 괜찮았다. 한때 웅장한 나라의 상징이었던 거대한 제국의사당 건물에 아무렇게나 기밀 문서들이 널브러진채 텅텅비어 있는 모습은 그 한 장면만으로 그 어떤 영화의 비슷한 연출과도 견줄만 했다.

이런 연출들은 "오메가 맨"을 위시한 많은 지구 종말물의 기술을 잘 본 받아, 묵시록적인 "텅빈 도시"를 호소력 있게 그려낸다. 여기에 박진감있고 극적 박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삽입된 다른 몇몇 전쟁관련 내용도 경제적으로 연출되었으면서도 박자감각이 좋아서 무난했다.


(멸망을 목전에 둔 베를린의 거리)

내용상으로 볼 때, 영화는 히틀러와 측근 인사들에 대해 가장 사실적으로 그린 영화 중 하나에 속한다. 많은 영화들이 히틀러를 단순한 미치광이나 변태적인 악마로 묘사하는 것과 달리, 이 영화는 히틀러를 잘못된 신념에 모든 것을 걸었던 한 명의 인간과 정치가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하여, 거의 모든 영화 중에서 최초로 히틀러의 사회진화론에 대한 믿음과 민족주의적인 제국에 대한 망상을 정식으로 언급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영화속의 인간간의 관계와 사상적인 흐름도 생동감을 얻고 극적인 명암도 분명해 진다. 보다 진지하게 확대해석하면, 이러한 지적은 단순히 "나치에 대한 증오"만을 자극하는 많은 2차대전 영화들과는 달리, 전쟁과 독재가 어떻게 수많은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얻어가는지 어느 정도 지목해 주기까지 한다.


(파멸을 앞둔 자들이 즐기는 현실도피의 광연)

영화는 슬프게 또 우스꽝스럽게 망가지는 인간들을 통해, 그 모든 것의 원인이 잘못된 신념의 전체주의와 군국주의임을 제시하고 있다. 어쩌면, 연합국 권장 TV프로그램 1위쯤이 될 "밴드 오브 브라더스"보다, 이 "운터강"이 훨씬 더 반군국주의적인 영화일지도 모른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는 정복과 승리, 군사적 기동력에 대한 묘한 동경을 불러일으키는 영화지만, "운터강"은 비참하게 쪼그라든 히틀러와 모든 파국의 원인이 된 전체주의와 전쟁의 망령을 두려워하게 하는 영화다.

P.S. 이 영화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은 그 당시 남아 있는 사진을 참조해서 최대한 비슷하게 배우들을 기용하고 있습니다. 하인리히 히믈러는 잠깐 동안만 나오고, 또 그다지 그 죄악이 부각되어 있지도 않습니다만, 이상하게 저는 그 놈이 제일 밉게 보였습니다. 사진속의 히믈러와 꼭 닮게 분장한 그 영화속의 히믈러가 "잘난 표정"으로 나오면, 어찌나 부아가 치밀어 오르던지.

- 2회에 계속-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