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사람들 영화



극장 개봉판을 기준으로, 이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시작은 대통령의 술자리 준비 담당으로 전락한, 소위 중앙정보부 "의전과장"이라는 사람의 신세에 대한 짜증이다. 한석규가 연기하는 이 의전과장을 먼저 제시하고 이 사람 근처에 있는 사람들인 중앙정보부장, 경호실장, 비서실장, 동료 중정 요원들, 경호원들, 대통령등등을 차차 소개하는 것이 영화의 초반부이다.

소개가 끝나면 텔레비전 재연극과 비슷하게 대통령 암살사건을 보여주고, 암살사건 이후의 경과는 대체로 백윤식이 연기하는 중앙정보부장을 중심으로 따라가면서 역시 텔레비전 재연극의 구도로 보여준다. 영화의 사건전개 자체는 중앙정보부장이 군 보안사령부에 잡혀 가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진다. 이후, 영화 극초반에 가장 한심한 인물로 잠시 등장한 윤여정이, 목소리로 나래이션을 하고, 그러면서, 모든 등장 인물들의 그 순간의 행동들을 주욱 비춰주고, 최후를 간략히 설명하면서 끝을 맺는다.

영화의 전체적인 틀은 소위 말하는 블랙코메디이다.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은 희극적으로 다소간 과장되어 있고, 의도적으로 구성된 희극적인 몸동작을 보여주고, 대사를 들려준다. 이 영화의 좋은 미덕 중에 하나는 이러한 희극적 설정이 사실감을 중대하게 헤치지 않는 선에서 충분히 절제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절제는 영화의 어두운 분위기와 결합하면서, 이러한 희극적 설정에 극적 과장이 아니라, 정신병리적인 느낌의 부정적인 현실감을 강하게 준다.

예를 들면 중앙정보부의 과장 쯤 되는 인물이 껌을 질겅질겅 씹으면서 열받을 때는 가끔 거친 말도 내뱉는 모습은, 분명히 희극적인 기능이 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은 투캅스의 경찰서장이나 화성침공의 잭니콜슨 같은 것처럼 희화를 위해서 충분히 나가지는 않는다. 덕분에, 흔히 피노 눈물도 없는 목석으로 생각되는 중정 요원이지만, 실은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있는, 살아 있는 인간이라는 식의, 현실감을 갖게 한다. 이러한 희극적 과장과 현실 사이의 조율은 아메리칸 뷰티에 근접할 정도로 뛰어나다.

그때 그 사람들은 이처럼 훌륭한 블랙 코메디 감각을 갖고 있는데, 그 중에서 영화가 보다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코메디" 보다는 "블랙"이다. 단적인 것은 음악이다. "닥터 스트레인지스 러브" 같은 영화는 말도 안되게 처참한 상황으로 극이 치닫지만, 줄기차게 희극적인 음악 사용을 고수하며, "아메리칸 뷰티"만해도, 희비극이 교차하는 중에 희극의 냄새가 강하게 풍기는 비교적 중립적인 음악을 사용한다. 그에 비해, 그 때 그 사람들은 처음 시작 장면부터, 끝까지 줄기차게 다소 애상감이 있는 비극적인 느낌이 강한 음악을 이용할 뿐이다. 이런 음악은 극중의 기괴한 상황이 단순한 희극적 과장이 아니라, "이건 미친 짓이다"라는 식의 꽤 강한 비판의 느낌을 주게 된다.

예를 들면 극중에 중정 요원들이 사람 하나 간첩 만들기 일도 아니라며 이죽거리는 장면의 이야기들은, 분명히 황당하고도 희극적인 것이다. (사실 여부는 논외로 하고라도.) 실제로 찰리 채플린은 "모던 타임즈" 같은 영화에서 지독하게 가난해서 손 대면 톡하고 무너질 것 같은 집에서 사는 사람의 모습을 멋진 희극의 소재로 사용했기도 하다. 하지만, "그 때 그사람들"에서 간첩 농담 장면은 그런식의 농담이나 웃기는 장면에 그치기 보다는, 되려 당시 사회에 대한 분노 섞인 일갈과 심각한 비판처럼 보일 수도 있다. 덕분에, 많은 우리 나라의 평론가와 관객들에게, 이 희극적일 수 있었던 장면이, 도리어 지나치게 공격적인 사상표현처럼 지적 받기도 했다.

영화는 어느 정도의 고어 장면을 갖고 있기도 하다. 총을 맞으면 "으악" 한 뒤 잠자듯 엎어지는 액션 영화속 "적"들과 달리, 이 영화에서 죽는 사람들은 시체1, 시체2들 까지도 모두 피를 콸콸 쏟으며 바닥을 기다가 죽는다. 그렇게 잔인하지는 않지만, 이 영화에서 날아다니다 박히는 총알은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들 못지 않은 분명한 파괴력을 갖고 화면을 지친다. 경호실장과 관련된 고어 장면 하나는 짧지만 잘 짜여진 것도 있다. 이런 요소들은 대통령 저격 순간과 직후에 긴장감과 영상에 자극적인 강세를 주는 요소로 적당히 잘 활용되고 있으며, 또 영화 전체에 흐르는 어두운 정서를 살리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 약간 아쉬운 점은 많은 사람들의 지적처럼 후반부의 처리다. 중앙정보부장을 사실상의 주인공으로한 영화에서 이 사람이 어벙벙하게 있다가 군당국에 잡히고 보안사 사령관에 의해 조사받는 게, 역사적인 사건의 결말이다. 이런 결말을 가진 사건을 흥미진진하게 연출하는 것은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 저격 직후, 중정 과장과 경호원 직원의 일촉즉발 대치 상황이 주는 긴장감을 줄 때만해도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잘 끌어 오다가, "그 때 그사람들"은 그 이후가 너무 심심해진다. 전대미문의 사건을 겪으면서 사실상의 "와트슨 박사" 역인 중정 과장이, 미쳐 날뛰는 파국을 겪는 다거나, 성격 상의 큰 변화를 겪게 되는 식으로, 보다 선명한 극적인 전환점과 그에 따른 부드러운 결말을 주었다면, 영화의 흡인력은 더 강해지지 않았을까.

물론 기도하는 가족들 틈에 섞인 중정 과장이 영화 결말부분에 보여주는 모습도 아주 긴장감 넘치고 흥미로웠지만, 그것만으로는 전체적인 극의 힘을 이끌기에는 약간은 부족하다. 이때문에 영화는 전체적으로 박진감넘치는 일막의 극이라기 보다는, 지나간 시대의 추했던 모습 모음집 선물 세트 처럼만 보일 위험도 있다. 그리고 그 위험이, 영화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작용하여, 충분히 보편적인 블랙코메디일 수 있는 영화가, 굉장히 정치적인 선전물로 보이게 되었으며, 결국에는 흥행을 막기도 했다. 여기에는 법정 소송이 기여한 바도 컷겠지만.

백윤식과 송재호는 중정부장과 대통령의 실제 모습과는 별개로, 영화에서 의도한 하드 보일드 느와르스러움이 깔려 있는 블랙코메디에 아주 잘 어울린다. 특히 백윤식은 이 사람의 굳어진 이미지쯤 되는 희극, 광기, 차분함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사실감있게 끌어가는데, 주인공으로서 영화전체의 분위기를 주도하며, 영화의 성격을 결정지을 정도다. 한석규는 한석규라는 배우에서 기대할 수 있는 그대로의 연기를 충분히 보여준다. 저격 직전, 집에 전화를 걸어서 이유는 묻지말고 기도 열심히 해달라고 하는 모습과 말투나, 영화자체의 일차 정점에 해당하는 대통령 저격 직후에서 한석규의 액션은, 그의 장기를 잘 살리면서, 인물의 성격을 충분히 연결해 가고 동시에 꽤 신나는 긴장을 준다.

말이 많았던 김윤아는 비중이 그다지 높지 않아서 큰 무리없이 넘어갈 수 있을 법했다. 사실 그녀의 캐스팅은 다른 것 보다도, 영화의 블랙코메디 분위기에 맞는 "자우림 메인보컬"의 이미지를 끌어 쓰는게 영화의 목적이었을 것이다. 영화 제목 "그때 그사람들"처럼 심수봉을 연기한 그녀의 목소리로, 영화 마지막 엔드 크레딧을 장식하는 장면까치 합쳐 놓고 보면, 김윤아는 적당히 재역할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엄청난 무엇인가가 있는 영화가 되기에는 조금 못미치지만, 그래도 잘 만든 흥미진진한 블랙코메디 영화다. 70년대 지만, 여러모로 60년대 문화 분위기와 통하는 듯한 느낌에, 영화 전반에 흐르는 느와르 정서와 탱고리듬이 섞인 배경음악도 독특한 분위기로 즐겁다. 여기에 보여주는 재미와 기교적 과시 사이에서 중용을 취한 카메라의 움직임과, 선과 구도가 살아나도록 거대한 위엄있는 건축물들을 보여주는 방식도 멀끔하다. (육본 건물의 위압감있는 수백개의 계단을, 바빠 죽겠는데 하나하나 밟고 다그닥거리며 내려와야 하는 저 불쌍한 중정요원의 모습 같은 것들.)

영화의 정치적인 의도는 다소간 탈색되어 건조한 편이다. (대부분의 인물들은 결코 악인의 비열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식은 아니다. 단, 경호실장만은 절대 제외.) 그저 인간 본연의 추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과, 거대한 파국의 소용돌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군상을 그리고 있을 뿐이다. 법원 결정 덕분에 의도적으로 다큐멘터리 필름이 잘린 덕분에 이런 차가운 느낌은 더 강화 되었다.

제작사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법정 공방의 와중에서 영화의 정치적인 목소리가 굉장히 확대되어서 보도 되었다. 이점은 "영화 제목"의 홍보에는 도움이 되었을 지언정, 오히려 영화의 흥행과 감상에는 방해가 되지 않았나 싶다. 정치 선전물의 분위기로 선입견이 굳은 역효과 였을 것이다.

선악과 호불호를 떠나, 어느 노인 딱 한 명의 좀 썰렁한 죽음이, 수십명의 거창한 고관들과 온 나라를 소용돌이에 빠지게 되는 모습은, 굉장한 구경거리이다. 그리고 그 혼란은 보기에 따라서, 추석 귀성길 고속도로의 오징어 장사꾼처럼, 분명히 우습고 재미난 부분이 많다. 이런 점을 적당히 유려한 솜씨로 큰 실수 없이 만든 코메디 영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못한 점은 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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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강건너 2006/07/08 20:24 # 삭제 답글

    김윤아가 부른 일본노래 제목이나 가수이름을 알려주시면 감사합니다
  • 게렉터 2006/08/07 12:17 # 답글

    네이버 지식인의 jorgedonn님의 글에 따르면, 재일교포 가수, 미야코 하루미(본명 이춘미)가 76년 12월 발표해 크게 인기를 모은 ‘北の宿から’(기타노야도가라) 라고 합니다.
  • 시마팬 2008/11/30 08:07 # 삭제 답글

    늦은 답글입니다만... 원래 감독의 의도가 '이런 거대한 사건이 참 얼마나 한심한 의도로 한심하게 이루어져 세상을 바꾸어 버렸는가' 를 보여주는 거라고 하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의도대로라면 끝맺음이 제대로 되지 않았나 싶네요. 오히려 뭔가 거창한 결말이라면 영화적으로는 성공이겠지만, 감독의 의도, 내지는 현실의 묘사에서는 문제가 되었을지도 모르지요. :)
  • 게렉터 2009/01/01 13:02 # 답글

    시마펜/ 굳이 이야기 내용이나 대사가 장엄하고 웅장한 결말로 치닫는 것은 저도 매우 이상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는 지금 영화 보다는, 결말 즈음해서 코메디극 다운 대소동 난리를 화려하게 연출하거나, 아니면 같은 내용이라도 연출수법을 요란하게 해서 거창한 결말로 극적구조를 탄탄하게 하는 방법을 쓰는 것이 더 좋지 않았겠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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