씬 시티 영화



이 영화의 줄거리는 한 문장으로 이렇다. "폭력적이고 변태가 아닌 사람들이 폭력적이고 변태인 사람들을 혼내준다." 무엇보다 씬 시티는 충실한 하드 보일드 느와르 영화이며, 영화의 흑백 색감은 원작 만화의 색채를 생각하게 하는 것 만큼이나, 클래식 시대 미국 느와르 영화를 기억나게 한다.

씬 시티는 21세기 식으로 업데이트되어 잔뜩 높아진 특수효과와 폭력의 수위를 갖고 있고, 옛 느와르 영화에서 우리가 특징적으로 여기는 요소를 더 강화해 놓고 있다. 예를 들면 많은 옛 느와르 영화에는 빨간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도시의 밤을 뚫고 나타나는 장면 있다. 씬 시티에서도 이것은 어김없는데, 이 영화에서는 가득한 흑백 화면에서 오직 여인의 드레스만이 붉게 색칠하는 호기를 부리고 있다.

씬 시티의 특징은, 이렇게 장르 특성을, 그것도 수십년전에 유행이 지나버린 장르의 특성을 전면에 드러내고 있으면서도, 결코 그런 특성을 놀리거나 빈정되지는 않는다는데 있다. 크리스토퍼 리브와 마리오 푸조가 참여한 영화는, 빨간 망토에 스판덱스 유니폼을 입은 외계인 영웅을 진지하고도 장엄하게 표현하려고 했다. 그 만큼이나, 씬 시티는 독백 나래이션이 깔린 채 트렌치 코트를 입고 어둠속에서 총을 겨누며 지옥 끝까지 폼을 잡는, 범죄물 속의 인물을 정식으로 표현하려 하고 있다.

그 결과는 아주 볼만한 것이다. 영화의 이야기들은 대체로 여러번 보았음직한 전형적이고 단선적인 것이지만, 그만큼이나 흡인력있고, 호기심 생기게 하는 이야기들이다. 하나 같이 영화 속 인물들이 처한 상황은 서스펜스 넘치는 극단적인 것에서 출발하기에, 나른한 담배 연기가 올라오는 어두운 밤에 독백이 가득찬 영화면서도 영화 전체에 흥미진진한 긴장감이 흐른다.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게 보이는 것은 아무래도 지극히 회화적인 영상일 것이다. "널리 퍼진 선전 문구처럼, 만화책의 그림들을 그대로 스크린위에 표현했다"는 이 영화의 화면들은, 과연 커다란 스크린위에 펼쳐지면, 가끔은 루벤스 쯤이 그린, 미술관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는 초대형 대작 회화를 떠오르게 하기도 한다. "씬 시티"에서 깊은 웅덩이에 빠진채 잠겨가는 한 주인공의 독백과, 그와 함께 흘러가는 흑백 대비가 철철넘치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이런 회화적인 연출은 가끔 지나친 고어 장면을 가려주는 기능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한편으로 단순히 회화적인 영상미 외에, 또한 씬 시티는 시간을 따라 흘러가는 영화만의 묘미를 잘 살리고 있기도 하다.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은 영화가 "보이지 않음"으로서 흥미진진해질 수 있는 장면을 종종 멋지게 보여주곤 했다. 데스페라도에서 악당들의 움직이는 그림자들이라든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멕시코에서 눈이 먼 조니 뎁과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예가 된다. 씬 시티에서는 하얗게 밝은 이어지는 흑백영화 장면들 사이에, 좋은 타이밍으로 아무것도 없는 깜깜한 화면과 나래이션을 끼워 넣는다. 일시에 영화관 전체가 깜깜해지며, 극중 인물의 나래이션에 순간적으로 완전히 몰입시키는 이 감각은, 영화 매체의 재미를 아주 잘 살리고 있다.

수미쌍관은 방만해질만한 영화의 결말을 다듬는 가장 손쉬운 수법 중에 하나다. 씬 시티 역시 그런 방법을 사용하고 있으며, 두 겹으로 사용된 이 수미쌍관법은 영화를 깔끔하게 마무리한다. 전통적이고 중량감있는 극영화다운 결말의 무게감을 준다. 이런 성격이 대변하듯이 이 영화는 뒤틀린 심사로 기묘한 볼거리를 만들기 보다는, 정석으로 진지하게 영화 내용을 관리한다.

물론 씬 시티는 강한 폭력과 고어 장면이 만화에서 따온 영상 감각으로 넘실거리는 영화며, 신화적이고 동화적인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영화다. 그렇지만, 50년전 건물을 부수는 고질라를 한없이 진지하게 생각했던 것 만큼이나, 진지하게 그런 내용들을 전개하고 있다.

이 점은 팀 버튼의 배트맨 영화나 딕트레이스에서 과시적으로 화면을 장식했던 일곱색깔 무지개 빛 옷차림 색깔과는 뚜렷하게 다른 점이다. 덕분에 이런 전통을 적당히 비웃는 이야기를 하는게 무슨 폼나는 유행처럼 되어버린 21세기 영화들 사이에서, 이 영화는 개성을 갖는다. (이 영화는 코트 이야기를 그렇게 많이 하면서도, 맨날 코트를 입고다니는 느와르 영화의 전통을 결코 비웃지 않는다.)

"씬 시티"는 옛 심상 대로, 배우들을 안전하게 섭외해서 진행해 나간다. 데본 아오키나 브루스 윌리스는 자기가 가진 대표적인 인상을, 수백개 쌓여 있는 3분 컵라면에 물 붓듯이 만들어 가져 온다. 가장 극적이고, 과장된 모습을 그려내는 배우인 미키 루크는, 영화속의 인상 보다는 영화 밖에서 대중들에게 쌓아간 이 사람의 인상과 권투 선수의 삶에 이 사람이 갖고 있었던 애정을 가져와서 활용하고 있다.

미키 루크의 연기에 대해서는, 비슷한 배경의 에로 영화에서 삼류 배우들이 보여주는 연기들 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라고 폄하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그의 배역은 단선적인 연기로 충분한 역할이다. 그의 인물은 아놀드 슈월츠제네거가 터미네이터나 코난을 연기했던 것과 비슷한 정도로, 짧은 연기면 충분하다. 그러나 미키 루크는 굉장히 열심히 액션을 연기하고 나래이션을 녹음했다. 그 덕분에, 그의 연기는 아놀드 슈월츠제네거와 터미네이터를 분리할 수 없는 것만큼, 좋아 보인다.

미키 루크가 트래쉬 무비들을 수없이 찍으며 연기했던 값싼 역할들의 목소리들이, 절묘하게 쌓여서, 흉내내기 어려운 약간의 더하기가 있던 것이다. 반쯤 미쳐서 인생의 종착역을 향해 거침없이 성큼성큼 걸어가는 그의 배역에, 짧은 연기 이상의 감상이 섞여들었다. 이것은 데스페라도의 단순한 배역을 통해 안토니오 반데라스를 자리잡게 한 것을 생각나게 하기도 한다.

정통 느와르 영화가 먼 옛날의 유행으로 날아가 버린 요즘, 씬 시티는 훌륭하게 그 옛 정통을 업데이트해서 다시 불러왔다. 이것은 뮤지컬 영화를 다시 가져와 보려는 "시카고"나 "물랑루즈"보다 훨씬 더 성공적으로 보인다.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계획대로, 시리즈를 계속 만들 때마다, 그 전통의 각양각색이 다르게 잘 살아나면 한동안 기대되는 볼거리가 될 듯하다. 그리고, 씬 시티라는 도시의 각양각색을 담은 영화의 조각조각들이, 시리즈의 마지막에서, "안녕, 프란체스카"의 12각관계처럼 장엄하고도 화려하게 엮이며 엔딩을 보여주면 꽤 재미있을 듯 하다.

그 밖에...
제가 한가지 아쉬웠던 것은, 로버트 로드리게즈 특유의 유머 감각을 찾아 보기가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영화에는 대체로,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 같은 어둡고 꼬인 유머가 아니라, 갑자기 아주 순수한 유머를 끼워 넣는 이상한 재미가 있습니다. (데스페라도의 저 유명한 다리 굽혀 로켓포 쏘기를 보십시오!) 이 영화에는 적당히 농담들이 섞여있긴 합니다만, 로드리게즈 감독만의 개성이 철철 넘친 그런 유머감각은 아니었습다. 거기다 로드리게즈 영화라면 으례 기대하게 되는 영화전면에 나서는 음악도, 이번에는 화려한 시각효과 뒤에 좀 가려진 듯 합니다.

씬 시티에는 박찬욱 감독의 "쓰리, 몬스터"에 대한 오마주 비슷한 장면이 하나 나옵니다. 매트릭스 레볼루션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와 똑같은 장면이 나왔던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박찬욱-쿠엔틴 타란티노-로버트 로드리게즈로 연결되는 선을 생각해보면, 진짜 오마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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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렉터블로그 : 원스 어폰 어 타임 2008-03-06 00:01:20 #

    ... 들은 "다리가 길어지는 학생복"과 같은 복장이고, 거리의 자동차들이나, 사람들의 옷차림, 들고다니는 가방 같은 것도 시대를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씬 시티" http://gerecter.egloos.com/1503272 나 "슛뎀업" http://gerecter.egloos.com/3447047 처럼 시간적인 배경이 모호한 줄거리가 아닙니다. 이 영화의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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