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 룸 Four Rooms 영화



1.

할리우드 체제내에 깊이 편입되지 않으면서도, 꽤 명망을 얻고 있던 감독 네 명이 함께 모여 만든 영화가 "포 룸"이다. 펄프 픽션 이후, 살림살이가 꽤 많이 나아진 쿠엔틴 타란티노가 전체의 두목쯤을 맡아 제작을 하면서, 네 명의 감독들이 각각 한 에피소드를 맡아서 네 개의 에피소드로 만들었다.

포 룸은 한 해의 마지막날이자, 새해의 첫날이 되는 밤에, 한 호텔 직원이 겪는 일을 내용으로 한다. 제목처럼, 이 호텔 직원은 네 개의 방에 이런 저런일로 들락거리면서, 각 방 하나하나마다 무척 당황스러운 일을 겪게 된다.

첫번째 에피소드는 단체로 묶는 여성 투숙객들이 알고 보니 마녀였다는 것이고, 두번째 에피소드는 방을 잘못 찾은 탓에, 술먹고 총을 든 남자에게 아내랑 바람난 상대로 오해 받는 다는 것이다. 세번째 에피소드는 투숙객 부모의 부탁으로 두 아이를 맡게 되면서 겪는 소동이고, 네번째 에피소드는 술취해서 좀 맛이간 내기를 하려는 할리우드 인사의 방에 술병들고 가서 겪는 소동이다.

첫번째 에피소드는 "환상특급"의 에피소드 하나와 같은 설정인데, 그 극적인 질은 평균적인 "환상특급" 에피소드 수준이거나 조금 떨어지는 수준이다. 흥미로운 설정과 인물들을 제시했지만, 극적인 절정도 없고, 재미있는 결말도 없다. 두번째 에피소드 역시 비슷한데, 이것은 "기묘한 이야기"의 에피소드 하나와 비슷한 분위기다. 역시, 호기심과 흥미는 생기게 하지만 극의 전개는 밋밋하다. 다만 결말 부분에 벌어지는 어휘목록의 대향연은 "오스틴 파워즈"의 같은 장면을 떠오르게 하면서 좀 웃기긴 한다.

앞의 두 이야기는 이야기의 결말이 좀 심심해서, 쿠엔틴 타란티노의 전작 "펄프픽션"을 떠올리는 사람들이라면 이 에피소드들이 어떻게 섞이고 얽혀서 영화의 마지막에 대단한 결말을 가져오지 않을까 기대할 정도다. 사실 이야기들은 조금 섞이게 되긴 하는데, 끝까지 봐도 별 대단한 결말 따위가 있지는 않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쿠엔틴 타란티노가 감독하고 직접 출연하며, 첫번째 에피소드에 출연한 마돈나와 함께 최고의 거물쯤이라 할만한 브루스 윌리스가 나온다. 브루스 윌리스와 쿠엔틴 타란티노의 인물은 재미있고, 쿠엔틴 타란티노가 가장 주특기로 다루곤 하는 "잡담하고 다니는 도덕심 약간 부족하고 약간 막나가는 사람"의 전형이기도 하기에, 인상적으로 움직인다. 벌어지는 사건도 영화의 결말에 적합할만큼 자극적인 것이다. 그러나 역시, 큰 굴곡없이 전개된 이야기가 당연한 귀결로 끝을 맺고, 극적인 요소를 충분히 갖고 있지는 않다.




2.

"포 룸"의 유일한 볼거리는 나머지 하나, 세번째 에피소드 뿐이다. 무진장 폼을 잡는 남자와 굉장히 차갑고 날카로워 보이는 여자의 부부, 그리고 똘똘한 누나와 좀 악동이지만 어린아이다운 얼빵함이 있는 남동생. 이런 가족이 있다. 부부가 없는 틈을 타서 아이들은 좀 "자유"를 누려보고자 하는데, 이게 뭔가 점점 꼬이게 되면서, 결국은 약간은 화려하기까지한 대소동으로 일파만파 확대된다는게 이야기의 내용이다. 이 인물들은 감독인 로버트 로드리게즈가 나중에 장편 가족 영화 시리즈인 "스파이 키드" 시리즈에서 확대해서 다시 쓰는데, 포 룸 세번째 에피소드의 직접적인 인용장면 하나가 스파이 키드 2편에서 등장하기도 한다.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이 에피소드는 여러모로 멋진 구석이 많다. 아마도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유행을 이어가는 장르에 속한다할만한 이 일파만파 대소동극은, 우선은 순수한 코메디이다. 안토니오 반데라스라는 배우의 특기와 개성을 완벽히 살려서, "폼 잡는 터프가이"의 희화화판을 모범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안토니오 반데라스를 거쳐, 로버트 로드리게즈 특유의 코메디 감각이 넘실거리게 되면, "엘레베이터에서 문닫고 머리모양 매만지기" 장면 같은 리듬감이 완벽한 코메디가 나온다. ("데스페라도"의 명장면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엘레베이터 문닫는 장면을 박자감각 있게 묘사하는 것 하나만으로 이정도의 코메디를 만들다니.)

이 코메디의 효과를 강화하고, 동시에 이야기 전개를 박진감 넘치게 하는 것은 긴박감있게 넘어가는 장면들이다. 사물의 클로즈업과 사람 얼굴의 클로즈업을 입체적인 뜀뛰기 식으로 왔다갔다하는 것은 "엘 마리아치" 시절부터 로버트 로드리게즈가 자주 써먹던 수법이었다. 이 수법을 필두로 알프레드 히치콕 영화의 모든 그럴듯한 연출들을 엑기스 추출본으로 보여주듯이 다 써먹는다. 10살전후쯤의 아이가 전화 다이얼을 돌리는 장면으로 강력한 박력을 보여주는 것은 재치있게 보이고, 이 에피소드의 유일한 잔인한 - 혹은 공포스런 - (이라고는 하지만 수위는 아주 낮다) 장면을 구성하는 수법은 모범적이고도 모범적이다.

많은 영화들이 소위 "그럴듯한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별별 과시적인 장면 이어붙이기, 카메라 날아다니기를 하는데,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이 에피소드는 이렇게 현란한 장면들을 이어가면서도 결코 그 장면들이 눈에 튀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극의 흐름과 이야기가 갖는 감정에 몰입되도록 자연스럽게 연결될 뿐이다. 이것은 영화평론가들이 "스타일리스트" 어쩌고 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잘 이루지 못하는,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다.

개성있는 코메디와 모범적인 서스펜스 연출을 로버트 로드리게즈만의 경지(라면 경지)로 승화시키는 것은 기막힌 음악의 조화다. 이것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서 종교기관 학살 장면이나, "페이스 오프"에서 "Somewhere Over The Rainbow" 총격전장면 같은 대놓고 감독 폼잡기 음악과는 많이 다르다. 포 룸의 세번째 에피소드는 영화 장면들과 똑떨어지게 박자를 맞춘다. 그리하여 음악은 극전개를 유연하게 하는 쪽으로 흘러서, 이야기나 현란한 장면 연출과도 잘 들어맞는다. 그리하여 이 영화는 좋은 뮤지컬이나 발레 못지 않은 음악의 생동감이 살게 된다. 어지럽게 화면을 잡고는 빨리빨리 장면 끊어먹기만 많이 하면 왕인줄 아는 무성의한 뮤직비디오 연출자들이 마땅히 살펴봐야할만 하다.

배역설정과 각본도 수준급이다. 안토니오 반데라스는 로버트 로드리게즈가 애초에 각본을 쓸 때 부터 안토니오 반데라스를 잘 살릴 수 있도록 했으니 더할 나위가 없다. "투 머치" 같은 코메디 영화를 나름대로 열심히 찍은 안토니오 반데라스이다만, 이 영화에서는 자기가 가장 손쉽게 해낼 수 있는 코메디역할을 그만큼이나 유려하게 보여준다.

아내 역의 토미타는 연기할 구석이 많지는 않은 작은 배역이긴 했지만, 그 작은 연기의 폭 속에서 차갑고 뭔가 숨겨진 듯한 이 불길한 가족의 인상을 단적으로 대표한다. 아역들은 아역배우들의 가장 널리 퍼진 장기 중에 하나인 "조숙해 보이기", "귀여워 보이기"를 갖다쓰는 것이기에 애초에 별 어려움 없이 배역을 설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거기다 아역들의 덜컹거릴 수 있는 연기 부분을 로버트 로드리게즈식 장면 전환이 잘 가리고 있기도 하고, 이 아역배우들이 잠깐잠깐 보여주는 특징적인 좋은 연기는 결코 놓치지 않고 잡아내기도 한다. 누나역을 맡은 라나 맥키삭의 윙크 장면이나, 동생의 리모콘 숨기기 장면 같은 것은 좋은 예이다. 이런 장면들은 아역만의 장기를 잡아내고 있으면서도,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광고처럼 막나가는 것과는 현격한 차이가 난다.

로버트 로드리게즈는 항상 절대적으로 혹은 상대적으로 저예산 영화만 만들며, 또 그런 감각으로 일인다역을 하면서 영화를 일필휘지로 확 만들어 버리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 세심하게 이리저리 세공을 하거나 꼼꼼하게 계산적으로 챙기는 데는 좀 재주가 없는 듯 하다. 그렇기에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멕시코"처럼 영화가 좀 커지면 덜컹덜컹 충돌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특히 각본이 여기저기에 좀 어색한 구멍이 생기곤 했다. "데스페라도"의 "이야기 막건너뛰기"는 그런 구멍의 상징이다. "씬 시티"가 좋은 원작의 도움으로 그런 단점을 피해갔다면, 포 룸의 이 에피소드는 이야기 자체가 짧고 간결하고 작기에, 그런 구멍이 생기지 않은 셈이다.

그래서, 이 각본은 "스파이 키드 3D"나 "데스페라도"의 작가(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 자신)가 쓴 각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극전개에 부합하고 또 꽤 정교하다. 어떤 추리물이나 액션물이 아이들 발냄새로 이정도의 호기심, 서스펜스 거기다 장쾌한 파국까지 이끌어 낼 수 있겠는가?

"포 룸"은, 그 만든 사람들의 애초 의도야 어떻든, 결과적으로 "어메이징 스토리" 시리즈 같은, "환상특급" 후배 단막극 모음집의 "약간 더 현실화"판으로 보인다. 제대로 말하면, 그런 분위기가 나는, 잘나가는 듯 하다가 이도저도 아니게 주저 앉은 영화다. 그러나 에피소드 하나하나마다 한 두 장면쯤 들어간 웃을거리들과, 세번째 에피소드의 구성 덕분에, 영화는 대체로 볼만하기는 하다. 특히, 좀 일이 꼬여서, 한 해의 마지막 날을 무진장 재미없고 심심하게 보내서 약간 짜증이 난다면, 그런날 밤에 보기에는 꽤 좋은 영화가 될 수도 있다.

에피소드 하나하나를 다듬어서 "환상특급" 에피소드 처럼 기승전결이 뚜렷하게 했어도 재밌었을 것이고, 아니면 많은 관객들의 기대처럼, 정말로 마지막 에피소드 쯤에서 지금까지 나온 에피소드가 어지럽게 얽히는 흥미있는 장난을 쳐도 더 재미있었을 것이다. 다만 전자처럼 했다면, 꽤 자의식 강한 감독들의 개성이 죽은채로 그저그런 단만극 에피소드처럼 되기 쉬웠을 것이고, 후자처럼 했으면 쿠엔틴 타란티노 히트작의 어설픈 아류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 밖에...

왜 제목이 "포 '룸' "인 겁니까. 앞에 떡 하니 "포" 까지 있는 제목이니 굉장히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동아TV에서 "Friends"를 "시트콤 프렌드"라는 제목으로 방송했지만, 아무도 이 시트콤을 "프렌드"라고 표기하지는 않습니다. 더군다나, 얼마전에 원빈 나온 드라마는 한일 합작 드라마인데도, 요즘엔 제목이 "프렌즈" 아니었습니까? 좀 어색하다 싶은 "변호사들" 이라는 제목도 쓰는 마당에.

왜, 뚝 잘라 먹은 "포 룸"인겁니까. "라 트라비아타"나 "일 트로바토레" 같은 건 또 관사까지 꼭꼭 붙이는 게 관례이면서도... 갈팡 질팡 합니다. 그러고 보니 "스파이 '키드'"이기도 합니다. 이걸 복수로 쓰면 못알아 들을까봐? 설마... 옛날옛날부터에 "펄시스터즈"나 "키보이스" 같은데도 있었지 않습니까?

어떤 우리나라 인터넷 데이터베이스에는 여기에 셀마 헤이엑을 크레딧에 올려놓은 곳도 있기도 합니다. 셀마 헤이엑이 극중 텔레비전 화면속에 모습을 비춘다는 정보가 IMDB에 있긴 하고, 맞는 것 같습니다만, 제가 보기에 눈으로 그 사람인지 확인하기도 어려울 정도 입니다. 셀마 헤이엑 나온다는 말에 이 영화 보지는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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