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전쟁 War of The Worlds 영화

("우주전쟁", "인디펜던스 데이"에 대한 스포일러가 조금 있습니다. 보는데 큰 방해는 없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는 정도의 스포일러 입니다.)




굳이 말이 안될 건 또 뭔가. 저 악명 높은 "인디펜던스 데이"의 외계인 컴퓨터 바이러스 걸리기 장면만 해도 그렇게 말이 안될 것도 없다.

외계 우주선의 네트워크 시스템에 대한 인터페이스는, 로스웰에 착륙한 옛날 우주선에서 알아냈을 것이다. 외계 우주선의 보안체계가 그렇게 허술한 이유는? 이 외계인은 너무나 네트워크 예절이 똑바르기 때문에, 보안체계 같은 것을 꾸밀 이유를 모르고 살아왔던 것이다. 우리는 거리를 다닐 때 철판으로 갑옷을 만들어 입고다니지는 않지만, 누가 잘 드는 칼을 듣고 있다고 해도, 길에서 갑자기 급습해서 길가는 사람의 장기를 떼어가서 밀매해 간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비슷하게, 외계인들은 보안체계를 전혀 꾸미고 있지 않아도, 감히 남의 네트워크 권한을 침범하는 일은 꿈도 못꾸면서 살기에 아무 대비를 못했던 것이다.(정녕?)

원작 "우주전쟁"도 마찬가지다. 마침 주변 다른 행성 몇 개를 침공해 본적이 있는 외계인(화성인)인데, 그 행성들에 하나같이 공교롭게도 치명적인 미생물들이라고는 전혀 살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실제로도 화성 근처에는 미생물이 발견 안되고 있지 않은가? 그리하여 이들은 외계 침공에 미생물 대비는 대강해도 된다는 방심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말인즉슨, 애초에 광속을 초월한 속도로 어마어마한 장비를 끌고 나타나서 기껏 한다는 것이, 하필이면 드넓은 지구 중에서도, 구석구석에 조금 조금 모여 있는 도시에 굳이 가서 불장난이나 한다는 게 중심내용인 영화 아닌가. 이런 영화를 두고 과학적이니 말이 되니 하는 것을 너무 따지는 것은, 흡혈귀 영화에서 구강위생학을 논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극적인 개연성을 위한 최소선만 확보하면, 논리성은 충분하다. 송곳니가 목의 대동맥을 찌를 수 있는 배열이냐 어쩌냐 하는게 중요한 게 아니라, 영구이빨 같이 생기지만 않았으면 된다.

그리하여, 원작이든 영화든, 독립적인 과학적이니, 논리적이니 하는 말은 일단 한 수 접어두고, 그런 극 속에서 어쨌든 만든 내부 설정하에서, 얼마나 충분히 흥미있게 그 나름의 과학과 이야기를 펼쳐가는지를 살펴보면 충분 할 것이다.

"우주전쟁"은 소위 말하는 여름 블록버스터 영화라기보다는, 재난 영화를 적당히 표방한 공포영화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평하자면 "우주전쟁"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솜씨와 개성은 딱히 찾아보기 힘들다. 이 영화는 많은 다른 영화에서 따온 장면, 본 듯한 장면으로 가득차 있다.

전체적으로 이 영화의 분위기는 조지 로메로의 시체 삼부작을 연상케 한다. 좀비들을, 좀 더 화끈한 거대 트라이포드 외계 기계로 바꾸고, 잔인한 장면들은 전체 관람가 등급을 위해 교묘히 숨겼다는 차이는 있다. 끝없이 덤벼드는 초현실적인 존재들과 여기에 승산없이 공포에 떨며 구석진 집에서 버티는 주인공들의 설정부터가 그렇다. 여기에 외부의 적보다도, 공황에 빠진 사람들의 광기 그 자체도 무섭다는 점을 표현하는 방식도 여러모로 시체 삼부작과 통하는 데가 있다.

트라이포드의 디자인은 50년대 "우주전쟁"을 오마주 하고 있고, 특히 외계인의 최후 묘사 같은 장면은 그대로 따온듯 하다. (약간 불확실합니다. 기억이 희미합니다. 적어도 그 손으로 바닥 때리기 장면이 나온 것은 확실한데.) 외계인의 촉수와 눈이 들어오는 장면은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어비스"가 기억나지 않을 수 없다. 어비스가 여러모로 스티븐 스필버그의 "미지와의 만남"에 대한 장군멍군인 셈이라는 점을 기억해보면, 역시나 세상사는 돌고 도는 것인지 하는 생각도 든다. 톰크루즈가 일격을 날리는 장면은 "인디펜던스 데이"의 일격과 다를바 없는데, 다만 이 영화는 술취한 노인이 아니라, 톰크루즈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약간 세부사항이 달라진 것 뿐이다. "맨인블랙"의 일격과는 아예 똑같아 보일 수 있는 장면도 있다.

심지어 이 영화에는 오우삼 감독 영화와 비슷한 장면도 찾을 수 있다. 외계인의 거울 장면과 귀막고 자장가 부르기 장면은 "페이스 오프"를 떠오르게 한다. 좀 막나가는 예까지 들자면, 이토 준지 공포만화 단편선의 "부유물"편과 "혈옥수"편도 떠올릴 수 있겠다. 소총을 든 팀 로빈스를 보면 찰톤 헤스톤의 "오메가 맨"이 떠오를 것이고, 보다 보면 "쇼생크 탈출"까지 생각날 것이다. 외계인의 모양새는 심형래 감독의 "용가리" 외계인과 비슷하기도 하다. (그러고보니, 고대에 묻혀 있던 살인 병기를 외계인이 번개로 깨우면, 도시를 부수기 시작한다는 설정은 용가리와 똑같다.)

어차피 SF의 고전 중에 고전을 갖고 와서 영화화 하는 만큼, 이 고전 이후에 나온 다른 수많은 영화들과 겹치지 않는 장면을 만들어 내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외계 우주선과 미군 전투기의 어지로운 군무를 보여준 "인디펜던스 데이"나, 레이더에 점으로 표시되는 괴물들이 차츰차츰 특공대쪽으로 몰려드는 장면에서 압도적인 긴장감을 보여준 "에일리언2"에 비하면, 이 영화는 창의적인 장면이 극히 부족하다. 그렇다고 무슨 현란한 극사실주의 특수효과의 과시가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시민들이 대피할 동안, 온갖 헬기와 비행기, 전차, 장갑차, 보병들이 그냥 운동회 기마전 마냥 아무렇게나 뛰어가는 장면은 사실감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대표적인 연출이다. 이 군인들에 대한 초라한 연출과 어림없는 모양새는 코메디물인 팀버튼의 "화성 침공"의 군인들 수준이다. 마지막에 다죽어가는 외계인에게 굳이 한 대 더 때리라고 팁을 알려주는 톰 크루즈 장면은, 비싼돈 주고 기용한 스타에게 대사 한 마디 더하게 해주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외계인의 최후에 대한 표현도 좀 부족해 보인다. 우선 절망한 사람들이 길에 몰려나와 떼지어 무거운 발걸음을 걷는 지구 종말 분위기로 가다가, 보스턴에 들어와 보니, 불과 필름 몇 프레임 도는 사이에 갑자기 모든게 해결되었다는 식의 박자감각도 해괴하다. "트위스터" 같은 영화도 아무 하는 일 없이 저절로 문제가 해결되는 영화지면, 이 영화는 해결 바로 직전에 클라이막스를 주는 격렬한 화면 연출과 배우들이 극단으로 뿜어내는 감정이 있다. 하지만 "우주전쟁"의 감정분출은 그보다 꽤 앞에 자리 하고 있다. 극적인 절정구조가 남아 있지 못하다.

더군다나 외계인의 멸망에 대한 설명 방식도 어림없다. "아웃 브레이크" 같은 영화는 별로 잘만든 영화도 아니지만, 공기중으로 바이러스가 전파된다는 내용을 관객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카메라를 환자의 코와 통풍구 사이로 날아다니게 하면서 나름대로 최대한 노력이라도 했다. 그러나 "우주전쟁"은 "맨인블랙" 마지막 장면을 뒤로 돌린 것을 대강 끼워 넣어놓고, 목소리 좋은 사람이 나래이션으로 세 문장쯤으로 읽고 만다.

원작을 옮긴다는 핑계를 갖고 있으니, 이 정도 영화야 말로, "용가리"정도의 솜씨로 못만들 이유가 없을 정도다.

이 영화에서 굉장한 공포감이나 긴장감을 느꼈다면 이유는 대략 다음 두 가지 정도일 것이다.

첫째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톰 크루즈"를 데리고 만들었다고 하기에, 누구나 다 볼 정통 "여름 블록버스터"로 믿고 온 관객들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관객들은 보편적인 스펙터클물을 원했지, 공포 영화를 기대하지도 않은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이런류의 공포 영화를 극장에서 본 경험이 많지 않았다. 그리하여, 의외로 펼쳐진 "시체삼부작"식 연출과 "극장용 공포영화" 특유의 덥쳐오는 화면과 놀래키기 사운드가 위력을 발휘했을 것이다.

아마 다리오 아르젠토의 "오페라"에서 옆에 있는 관객이 빙그레 웃음을 지을만한 장면이, "우주전쟁"에서 나오면, 극장은 관객들의 비명으로 가득찰 것이다.

둘째는 "다코타 패닝" 덕분에 감정 이입 효과가 커졌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이는 언제나 먹힌다. ("시체 삼부작"식으로 생각하면 오해가 생길 문장임.) 이 귀엽고 이쁘장하게 생긴 아이가, 처음에는 똘망똘망하게 귀여운척하다가, 무서워서 벌벌 떨다가, 별별 고생을 다하고, 나중에는 반쯤 맛이가는 모습을 볼작시면, 어떤 나이든 관객들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겠는가.

그러기 위해서 다코타 패닝이 하는 일은 적절한 타이밍에 소리를 좀 질러주고, 가끔 특유의 커다랗고 파란 눈동자를 멍하게 크게 뜨고 아무생각도 안하는 것이다. 효과는 좋았지만, 이런 걸 하라는 각본은 "아이 앰 샘"의 "여주인공"을 너무 작게 써먹은 일이다. 이 정도 재주야, 세네 살 무렵의 심혜원이 CF에서 벌써 다 해본 것 아닌가.



그랬거나 말거나, 다코타 패닝은 그 작은 역할을 100퍼센트 충실히, 혹은 그 기대 이상으로 잘 소화해 내고 있다. "시체 삼부작"의 잔인한 장면이 갖는 충격감 대신에, 관객들은 이 아이를 감상하고 느껴지는 측은한 마음 때문에, 극중 주인공들의 운명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런 점은 "어린 신부"의 극중에서 문근영이 한 일과 비슷하고, "댄서의 순정"의 마케팅에서 그녀과 한 일과도 본질적으로 같은 일이다.

"우주전쟁"은 충분히 볼만한 영화기는 하지만, 저예산의 번득이는 재치로 만든 결과물일 때 더 어울리는 모양새다. 결코 톰 크루즈, 다코타 패닝, 팀 로빈스를 기용해서,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들 영화는 아니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독창적이고도 신선하게 보였던 것은, 톰 크루즈의 식빵 패돌리기 같은 알 수 없는 이상한 유머 감각이었다. 유머는 아니고. 블랙 유머도 아니고. 분명히 아버지답지 않은 아버지라는 캐리커쳐를 표현하기 위한 기능을 위해 넣은 것 같긴 한데, 그러기에는 또 분위기가 좀 이상해 보였다.


그밖에...

"인디펜던스 데이"와 "우주전쟁"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차라리 "인디펜던스 데이"를 고르겠습니다. "인디펜더스 데이"는 대통령 연설장면 처럼 여러사람 신경 긁을 장면이 가득한 영화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뉴욕을 뒤덮는 초대형 우주선이나, 저 유명한 불기둥 대포로 백악관부터 맨하탄까지 다 태우기 장면 같은 미술적으로 볼만한 요소들이 분명히 신이 납니다. "우주전쟁"에는 그런 영화에는 없는 보다 현실적이고 절제된 맛이 있다고 한다면... 글쎄... 비디오를 느린장면으로 재생하면 보이는, 번개타고 있는 외계인의 모습은 뭐란 말입니까? 좋아 보이는 장면은 다코다 패닝의 강물바라보기 장면 정도 였습니다.

"인디펜던스 데이"는 지금부터 꼭 10년전에 제작해서 1996년에 개봉했습니다. "우주전쟁"은 제작비로 1억3천만 달러에 가까운 돈을 썼는데, "인디펜던스 데이"는 그 절반 정도인 7천 5백만 달러만 쓰고도 그 장면들을 다 찍고, 윌 스미스를 기용했습니다. 아시는대로,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은 10만달러가 좀 넘는 초저예산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우주 전쟁"과 비슷하지만, 더 잘된 영화로, 저는 "28일후"를 꼽겠습니다. 마지막 장면의 "여보세요"는 간단한 것이었지만, 연출도 극적이고, 심금을 울리는 깊이도 있었습니다.

팀 로빈스가 굉장히 불쌍했습니다. 죽기 직전의 부녀를 구해주고 물도 주고 밥도 줬는데. 따지고 보면 팀 로빈스가 그 꼴을 당했든 안 당했든, 결국 일은 그렇게 진행되었을거지 않습니까?

혹시나 원작 내용의 대강이 궁금하시다면, 아쉬운 대로, http://www.sfjikji.org/book/b37.html 이 링크를 방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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