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The Island 영화



"아마게돈"에서 영웅을 만들기 위해 지나치게 우연과 눈물을 남발한 것이나, "진주만"에서 억지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서 섞여 들지 않는 에피소드들을 아무렇게나 엮어 놓은 것은 문제가 많았다. 그냥 현실감이 떨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영화의 다른 부분에서 사람들이 주목한 감상을 오히려 무너져 내리게 했다. 거기다가 영화의 긴장감과 속도감을 멍청하게 떨어뜨려서 액션을 심심하게 만들었고, 인물들의 성격은 어처구니 없이 묽어져 버렸다.

“아일랜드”는 적어도 그런 함정에서는 벗어났다. 장황한 설교는 찾아 볼 수 없고, 어색한 신파극은 드러나지 않는다. “아일랜드”는 마이클 베이 감독의 흥행대작들에서 가끔 나타난 서툰 복고적 감상주의 흉내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비교적 편안하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적어도 “아닌 건 아니다”라는 교훈은 깨달은 듯 하다.

“아일랜드”의 내용은,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나오는 5년전쯤의 B급 향취가 강한 영화, “여섯번째 날”과 같다. 비교적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기억을 이식 받고 존재를 착각하고 있던 복제인간이 자기 인권을 찾아 나서서 액션을 펼친다는 이야기다. 세트의 구성이나 마지막 장면의 연출, 액션의 방식도 대체로 무대의 규모를 좀 더 넓히고 스타를 좀 더 기용했을 뿐, “여섯번째 날”과 “아일랜드”는 많은 부분에서 같은 영화다.

한 가지 차이점은 “아일랜드”는 복제인간이라는 소재에 대한 SF물의 습관을 그냥 털어버렸다는 것이다. 기억이 이식된 복제인간이라면, 존재론이나 인식론, 음모론에 대한 몇 가지 철학적인 재담들을 섞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것은 복제인간을 다룰 때 가장 중심에 서는 소재가 되기에, 굳이 “블레이드러너”까지 가지 않더라도 “여섯번째 날”만 해도 꽤 재주를 부리며 그런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아일랜드는 그런 문제에 별로 집착하지 않는다. 그나마 음모론 분위기는 좀 열심히 다루긴 한다만, 자아 정체성이나 존재의 실체에 대한 전형적인 물음은 대강 “나도 그런 게 있다는 건 알거든”하는 정도로 한 마디 언급하고 넘어가 버린다. 이 영화에서 복제인간을 다루는 방식은 기본 인권에 대한 이야기와 같은 방식이며, 영화는 영혼의 의미가 복잡하게 뒤섞이는 복제인간 이야기라기보다는, 그냥 일반적인 노예해방 이야기이다. 이런 방향은 영화를 결과적으로 심심하게 만들었긴 하지만, 그래도 진부한 틀에서 벗어나고 어줍잖은 사상 선동으로 빠지는 길을 피한다는 면에서 시도 자체가 나쁘지는 않았다.

문제는 이 액션 영화의 인물 설정이다. 이 영화속의 인물들은 행동에 개성이 없고, 개성이 없다 보니 재미난 액션을 펼치지도 못한다. 그러다보니, 영화에서 아슬아슬하게 인물들이 살아남고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이유는, 그저 계속 줄기차게 운이 좋을 뿐이다. 수십층 높이 건물에서 떨어져서 살아남는 것이 말도 안되는 것은 성룡 영화들도 마찬가다. 그렇지만 성룡 영화는 성룡의 많은 곡예 액션들을 통해 그런 스턴트를 잘 활용하고 지나가는데 비해, “아일랜드”는 로또가 연속으로 당첨되는 확률을 타고 지나갈 뿐이다.

그나마 액션과 별로 결부되지 않는 방식으로 인물의 성격이 뚜렷하기라도 하면, “캐리비언의 해적: 블랙펄의 저주”처럼 신나게 웃기기라도 할 것이다. 그러나 아일랜드의 악당 두목은 너무나 전형적인 “박사 악당”이고, 악당 부두목은 무서운 표정만 줄기차게 짓고 무전기에다 대고 부하직원들 닥달만 좀 할 뿐 하는 일도 없기에 이야기가 살 지가 않는다.

“아무 생각 없는”이라는 수식어구로 흔히 폄하 당하는 블록버스터 액션 장르에서, 뚜렷하고 재미있는 인물의 성격이야말로 이야기에 흡인력을 주고 주제를 이끄는 중심이기 마련인데, “아일랜드”는 그런 면에서 꽤 큰 단점을 갖고 있는 셈이다.

주인공인 유안 맥그리거의 배역은 초반에는 “호기심 많은 어린이” 캐릭터의 발전한 양상을 충실히 수행하긴 한다. 그러나 이런 캐릭터만으로 액션을 전개하기에 한계가 느껴졌는지, 대강 얼버무려가게 되고, 결국 발차기 자제하는 장끌로드 반담 쯤으로 바뀌게 된다. 그러고나면 이 캐릭터의 성격은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는다.

스칼렛 요한슨의 배역은 80년대 제임스 본드 영화 여주인공들과 다를 바 없다. 외모를 돋보이게 하는 옷을 입고 주인공 손을 잡고 뛰어다닌다. 대사는 최대한 삼가고 있다가 마지막에 화려한 악당 기지에 주인공과 같이 붙잡히는 게 전부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재미난 인물들은 스티브 부세미의 인물과 복제인간이 아닌 유안 맥그리거의 배역이다. 처한 상황 자체가 재미있고, 배우들도 그 상황에 맞는 연기를 배우 자신의 이미지를 재활용하면서 잘 해낸다. 그러나, 영화 전체를 이끌어 나가기에 두 인물이 나오는 시간은 너무 짧다. 이렇게 인물들이 살지를 않으니, 영화의 유머들도 단타성으로 그쳐 버리고, 이야기 자체의 흥미나 인물 성격으로 연결되지가 않는다.

“Dude” 유머나 스코틀랜드 액센트 유머, 대통령 유머 같은 것은 그 자체로는 상당히 웃기고 재밌긴 했지만, 영화 전체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래서 그런 유머들을 다 합쳐 봤자, 영화 전체에 대해서는 “빽 투 더 퓨처 3”의 “사격 연습한 장소” 유머만큼의 기능도 하지 못한다.

물론 영화에는 좋은 점들이 많이 눈에 띄기도 한다. "아일랜드"의 이러한 좋은 점들은 대체로 다른 영화에서 보아왔던 장점들을 열심히 공부해서 배운 부분들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우주전쟁” 때 처럼.) 복제인간들이 사는 곳의 디자인과 그 곳에서 빠져 나온 직후의 분위기는, “여인의 음모” “블레이드러너” “토탈리콜” “매트릭스” 부터 좀 나가기 시작하면 왕년의 “매트로폴리스” 같은 영화들까지를 잘 섞어서 그럴듯하게 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임산부를 이용해서 동정심을 자아내는 연출 같은 것은, 원초적인 수법이긴 해도 “우주전쟁”의 다코타 패닝 이용법처럼 대체로 먹힌다. 이런 부류의 연출들은 영화의 중심 반전이라면 반전을 노골적으로 공개해 놓고 들어간 영화 홍보 방법을 잘 써먹은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영리한 방법이긴 해도, “트루먼 쇼”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특히 “음모 드러남”을 통해서 국면 전환을 이끌어나갈 때의 전개는, 상투적이고 개연성이 없고 유안 맥그리거는 짐 캐리 보다 못한 모습을 보여준다.

도시에서 벌이지는 액션들은 “스타워즈” 시리즈의 직접적인 자손이다. 전체적인 틀은 “스타워즈: 클론의 습격”의 도시 액션과 비슷하고, “스타워즈: 제다이의 귀환”에 나오는 스피더 바이크 액션과는 거의 같은 액션도 하나 나온다. 자동차들이 파괴될 때의 충격감은 여기에 새로운 느낌을 더하긴 하는데, 이것 역시 “본 슈프리머시”나 “에비에이터” 같은 영화의 기술적 후계자들이다.

그 밖에 영화의 신선한 아이디어가 낭비된 구석도 많다. 예를 들면 영화속의 미세 로봇은 시각적으로 굉장히 신선하고 만들어낼 수 있는 이야기도 많을 것 같다. 그러나 루치오 풀치 감독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는 신선한 도입부에도 불구하고, 또한 “이너스페이스”나 “판타스틱 보이지” 같은 모범적인 선배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있는 둥 마는 둥 흐지부지 된다. 그 낭비되는 정도는 “춤추는 대수사선: 레인보우 브릿지를 봉쇄하라”의 구내 감시 시스템을 생각나게 한다.

영화 속의 간접광고들도 의외로 신선한 재미거리가 될 가능성이 보인다. 그러나 이 역시 “프렌즈”의 “랄프 로렌”이나 “세렌디피티”의 “프라다”처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대신에, 잠깐 웃기고 만다. 제복을 입은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과 자연경관을 이용하는 결말 부분의 장면도 분명히 훨씬 더 그럴듯하게 연출하는 방법이 꼭 있었을 것만 같다.

“아일랜드”는 “아마게돈”이나 “진주만”의 신경 건드리는 부분들을 발라내서, 누구나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로 만든 것에 가깝다. 그러나, “아마게돈”에서는 철지난 유행처럼 되어 버린 우주활극에 하드SF에서 가져온 몇 가지 요소를 아주 조금 뿌려 넣어서 그래도 호기심 가득한 액션을 꾸려 나갔고, “진주만”에서는 특수효과의 표현력과 사실주의를 버무린 기막힌 공습 연출이 있었다. 그에 비해 “아일랜드”에는 소위 말하는 “특장점”이 약하다.

영화 자체의 소재와, 표현의 세부들은 사실 충분히 따져볼 구석이 군데 군데 숨어 있기도 하다. 그래서 결국 “아일랜드”는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블록버스터이긴 하나, 아쉽게 가능성을 놓친 부분이 많은 영화로 보인다.


그 밖에…

영화 중간의 인포메이션 디렉토리에서, 왜 스칼렛 요한슨은 전화번호를 찾았는데, 유안 맥그리거는 실패했던 겁니까? MSN으로 검색하면 한계가 있다는 점을 사실감 있게 보여주는 겁니까?

영화대로라면, 켈빈 클라인은 굉장히 유구하게, 또 지속적이고도, 엄격하게, 모델의 이미지를 유지해 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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