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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베르디의 출세
"오페라의 왕"이라 불리우는 베르디의 출세작이 바로 "나부코"입니다. 유능한 작곡가이기는 했지만, 열심히 만든 작품들이 심심한 반응을 얻는 데 그쳤던 좌절의 시기를 지나면서 어느새 나이 서른. 그냥 잊혀지는가 했더니, 베르디가 갑자기 흥행돌풍을 일으키며 흥행 작곡가로 자리잡은 "큰 거 한 방"이 바로 나부코 였습니다. 나부코는 1842년에 여름과 가을 내내 이탈리아 정통의 스칼라 극장에서 상연되어 무려 57회 연속 공연으로 스칼라 극장 최다 연속 공연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래서인지 나부코는 아주 전형적인 내용과 전형적인 음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음악의 특징은 다른 유명한 이탈리아 오페라에 비해서 합창의 비중이 높다는 정도 외에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19세기 후반형 곡조 들입니다. 90년대 후반 이후 쏟아져 나온 댄스 음악의 전형적인 음악들과 비교하면 비슷한 느낌일 겁니다. ![]()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나부코 공연) 그런 "나부코"가 인기를 끈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우선, 전형적인 노래로 화려한 장면들을 보여주는 그 무렵 오페라의 유형을 가장 충실히 따른 그냥 정석대로 잘만든 솜씨가 뛰어났다는 점이 첫번째입니다. 딱히 굉장히 특별한 점은 없어도, 모든 면에 있어서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켜준 빼어난 안전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름때마다 잘 팔리던 "쿨"의 음반들을 생각하면 비슷합니다. 두번째 이유는, 저 유명한 괴력의 명곡,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입니다. 외국왕의 침공을 받아 노예가된 유태인들이 옛날 고향을 그리워 하고, 자신들의 신세를 한탄하는 이 노래는 오페라 전체의 분위기를 대표합니다. 고대 유태인이 겪었던 고향과 나라를 잃은 설움과 자유를 갈망하는 오페라 배경에 깔린 사건을 나타내고, 정석 방법대로 작곡된 대중적인 음악이 합창곡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노래의 성격을 나타냅니다. 이 노래는 당시, 외국의 핍박을 받고 있으면서, 이탈리아 통일 및 독립운동 분위기에 젖어 있던 이탈리아인들에게 굉장한 자극을 주었습니다. 이 점은 이 노래와, 나부코라는 오페라를 처음 흥행시킨 이유로 간과하기 어려울 만큼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베르디는 이탈리아 통일-독립 운동에서 가리발디 못지 않은 상징적인 인물로 떠올랐고, 베르디 스스로도 이탈리아 통일 운동의 지지자로서 많은 활동을 펼쳤습니다. 지금까지도 이탈리아에서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을 시위나 데모할 때 자주 사용합니다. 2. 느부갓네살 나부코의 줄거리는 "매트릭스"에서도 언급되었던, 성경의 "느부갓네살"왕의 이야기 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나부코도노조르 왕이고, 곧 나부코 왕입니다. 아주 아주 간단하게 압축하면, 나부코가 유태인들을 정복하고 스스로 신을 칭한 뒤, 저주를 받아 돌아버렸다가, 나중에 맨정신으로 돌아오면서 유태인들을 풀어주고 성경의 신을 찬양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는 와중에 유태인과 사랑에 빠진 나부코의 딸과, 혼란통에 왕위를 노리고 질투에 빠진 나부코의 또다른 딸의 이야기도 뒤섞입니다. 노래가 많은 인물들을 꼽자면, 나부코와, 왕위를 노리는 질투심 많은 딸인 아비가일레, 유태인의 지도자인 자카리아, 가 3대 주인공이라 할만합니다. 여기에, 유태인 청녀과 사랑에 빠진 또다른 딸 페네나, 그 사랑받은 유태인인 이스마엘레, 나부코 측의 종교인 대제사장 등등이 주요 조연입니다. 그렇긴 합니다만, 사실 나부코와반란을 일으키는 딸 아비가일레가 부각될 뿐, 전체적으로 군중들의 합창이 많은 부분을 차지 하는 오페라 입니다. ![]() (고대 바빌로니아의 유적) 놀랍게도, 이 유명한 오페라는 지금껏 한국에서 거의 공연된 적이 없는 듯합니다. (초연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1986년에 서울 시립 오페라단이 초연했다는 이야기를 발견해서 수정합니다.) 이번 주말에 공연된 나부코가 아마 두번째 공연일 겁니다. 몇 번 공연해 보지 않은 오페라에서는 여러 소동들이 생기기 마련인데, 이번 공연 역시 개막을 앞두고 지휘자와 출연진이 갑자기 교체되는등 연습에 지장을 줄만한 불안한 점들이 많았습니다. 이번 공연의 주목할만큼 참신한 오페라의 연출은, 프랑스인인 "다니엘 브누앙"이 맡았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느부갓네셀 왕의 이야기가 성경의 "다니엘기"에 나온다는 점입니다. 3. 서울 공연 이번 공연에 대해서 평은 엇갈리는 편입니다만, 저는 적어도 최근 몇년간 제가 국내외에서 본 오페라 공연 중에 최고급이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연출은 미비한 점이 없지는 않습니다만, 적어도 참신함이 넘치면서도, 그냥 신기한 것을 과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감정의 정통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음악의 면은 그 이상으로 세계적인 녹음과 비교해 봐도 빠지지 않을 만한 장면들이 꽤 많았습니다. 많은 오페라들이 중세와 고대의 화려한 왕과 귀족들의 모습을 소재로 삼습니다. 그래서 그 화려한 모습들을 꾸며서 보여주면서 오페라의 보는 즐거움을 더합니다. 그런데, 헐리우드 영화의 화려함에 물든 현대 관객들에게는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왠만큼 돈을 때려 넣지 않아서는 고대의 왕실이나 중세의 저택을 표현한 무대가 유치해 보이기 쉽습니다. 고대의 왕들이 심심하면 만들어서 썼던 금은 장식을 적당한 금박지나 노란칠한 쇳조각으로 대신하면 요즘 관객들은 반사적으로 유치함을 느낍니다. ![]() (극중에서도 등장하는 바빌로니아의 공중정원과 주변 도시들) 베르디 오페라 중에서 예를 들자면, 고대 이집트 파라오를 소재로한 "아이다"에서도 왠만한 무대 미술로는 유치하지 않게 이집트를 표현하기가 쉽지 않고, "잔다르크"나 "아틸라"에서 전쟁터를 표현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결국 한가지 방법은 현대 추상 미술의 자산을 도용하는 방법입니다. 정말로 화려한 칼을 만들기 어렵다면, 대신 그냥 매끈하게 빛나는 쇳조각을 하나 쥐어줍니다. 귀족들의 화려한 옷을 만들기 어렵다면, 귀족들의 옷은 흰색 옷을 사용하고 평민들의 옷은 검은 색 옷을 사용해서 추상과 상징으로 "때웁니다." 이런 방식은 유치함을 피할 수는 있지만, 또한 현실감있는 무대 표현을 기대하는 관객들이게는 실망감을 줍니다. 그보다 더 자주 발생하는 더 큰 문제점은, 그런 추상과 상징을 대단한 것인냥 스스로 감격에 빠진 연출가와 미술가들이 스스로 자아도취에 빠져서 솔직하지 못한 연출을 하기 쉽다는 겁니다. 이번 공연에서 연출가 다니엘 브누앙은 사실적인 연출과 변형적인 연출을 반반 섞어서 교묘한 수법을 사용했습니다. 그것은 유태인의 박해와 극복을 다루는 이 오페라의 무대를 40년대 중반 나치 독일 점령지로 바꿔 버린 겁니다. 그래서 홀로코스트 당시에 게토에 갖힌 유태인들을 오페라의 주인공으로 했습니다. 그래서 오페라의 내용을 게토에 갖힌 유태인들이 한을 담아 게토 안에서 자신의 처지에서 처연한 감정을 추스르며 "나부코"를 공연하고, 관객들은 게토의 다른 유태인들과 함께 그 오페라를 보게 된다는 식으로 구성했습니다. 말하자면 오페라 속의 오페라입니다. 게토의 유태인들은 관객들 처럼 무대 위에 앉아서 오페라 속의 오페라를 봅니다. 이들은 다분히 저항적인 이 공연을 방해하려는 나치의 친위대원들에게 핍박을 받기도 합니다. 이런 장면들은 "나부코"원래의 이야기와 충돌을 피하기 위해 주로 서곡과 간주곡을 위주로 삽입됩니다. 여기에 자유를 갈망하는 장면에서는 오페라 속의 오페라의 인물들 이외에 그것을 보고 있는 오페라속의 관객들도 같이 노래를 부르며 감격하는 장면을 넣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선택은 일단 꽤 지능적입니다. 우선 2차대전 유태인 게토안에서 펼치는 공연인만큼, 오페라 속의 오페라에 나오는 무대장치와 의상을 화려하고 사실적으로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당시의 유태인 게토안에서 어떻게 황금 소품과 초대형 이동식 무대를 마음대로 사용했겠습니까? 그러니까, 대충 추상적인 방식으로 때워도 용서가 됩니다. 느부갓네살의 왕좌나 유태 성전의 모습은 이런식으로 표현 합니다. 그렇다면, 관객들의 사실적인 표현에 대한 기대는? 그것은 유태인들과 나치스 친위대원들로 충족시켜 줍니다. 수천년전 고대의 왕족과 궁전을 표현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수십년전 현대의 궁핍한 군중과 군인을 표현하기는 쉽습니다. 가장 "싼 옷" 중 하나인 넝마와 군복으로 가장 사실적인 복장을 만들 수 있습니다. 루거 권총 플라스틱 모델 하나면, 굉장히 공들여 만든 왕의 검과 갑옷보다 훨씬 정교한 소품이 됩니다. 그래서 이 오페라는 경제성과 사실성을 좀 얍삽한 방식으로 동시에 노립니다. 사실 그래서 저는 이 오페라 연출을 그다지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너무 얍삽한 속보이는 방법이라서 말입니다. 그리고 저는 좀 유치할 망정, 열심히 사실적으로 보이려고 노력하는 무대를 좋아하지, 괜히 자의식에 가득차서 어설픈 상징주의를 남발하며 엄청나게 지적인 척하는 무대를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그래서, 유태인 게토로 시대를 옮긴 연출을 아주 혁신적이라느니, 감정의 현실감을 극대화 했다느니 하는 필요 이상의 평가에 대해 약간 우려하기도 했습니다. ![]() (이번 공연에서, 가사 한 마디 없이 매우 중요한 역을 수행하는 나치 친위대 병사들) 그러나, 막상 실제로 오페라를 보고 나니, 생각했던 우려와는 다른 느낌이 많이 듭니다. 무엇인고하니, 이러한 연출이 단지 사실성과 추상성을 동시에 이용하는 경제적인 이익에 그친 것이 아니라, 아예 오페라 자체의 성격을 굉장히 많이 바꾸어 버렸다는 점입니다. 나부코가 유태인들의 수난을 다루고 있고, 또 이탈리아 독립에 대한 정치적인 화제와 연결되어 등장해서 사용되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 허구헌날 시위때마다 울려퍼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긴 하지만, "나부코"는 "밝은 오페라"입니다. 어디까지나 왕실의 화려한 사람들이 주인공이고 내용전개는 권선징악적이며, 대규모 군중 장면이 장쾌한 맛을 더합니다. 음악 역시 그런 성격을 대표합니다. 장면들은 대부분 낮에 펼쳐지는 장면들이고, 노래 가사는 대체로 밝고 맑은 심상들을 주로 가져다 씁니다. 퇴폐적인 느낌이 개입된 꼽추 광대의 처절한 이야기인 "리골레토"나, 유령처럼 내려오는 저주를 노래하는 "일 트로바토레"와 비교하면 확실히, "나부코"는 확실히 밝고 편한 오페라 입니다. 바그너의 심각한 오페라들이나 "마탄의 사수"와 비교하자면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 공연의 "나부코"는 아주 어둡습니다. 유태인들이 게토에서 야간에 시간을 내어 모여서 오페라를 공연하고 관람한다는 배경에 일단 한정되어 있습니다. 오페라가 막이 오르자마자 어디서 거지꼴을 한 아이들이 몰래 구한 식량 자루를 들고 개구멍을 통과하고 심심하면 무시무시한 나치 친위대원이 나타나 총을 쏴 "같이 앞에서 오페라를 보고 있는 관객을 죽입니다." 덕분에 "나부코"는 원형적인 권성징악 신화의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인이 펼치는 처절한 항거의 이야기가 됩니다. 그래서인지, "나부코"에서 원래 중심에 서는 이야기인, 유태인과 나부코의 딸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질투에 대한 이야기는 이번 공연에서는 굉장히 죽어 버렸습니다. 그대신, 요즘 "나부코"가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는 대로, 자유에 대한 갈구와 저항이라는 요소를 극대화 해버린 것입니다. ![]() (이번 공연의 철조망 속 게토에서 펼쳐지는 극중극, 나부코) 이러한 연출에는 호오가 엇갈릴 수 있습니다. 깔리는 배경인 유태인이 정복당하고 해방되는 이야기가 오페라 흥행에 도움이 되었고 지금까지 활용된다고 해서, 과연 원래 중심 이야기였던 사랑이야기와 사람간의 갈등을 이렇게 확 무시해도 되는 것입니까? 이것은 "시민 케인"을 보면서 이야기와 극적 전개에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으면서, 다만 카메라 구도니 조명이니 편집이니 하는 점만 죽어라 신기하다고 떠드는 모습과 어딘지 비슷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번 이번 공연의 연출에는 그러한 시도가 유일한 최고는 아니더라도, 분명히 해볼만한 독특한 것이었다고 하고 싶습니다. 약간 미흡한 면이 없잖아 있긴 하지만, 공연을 진행하면서 극중의 관객들이 공감하는 모습과 탄압하는 나치 친위대들과의 갈등은 꽤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탄압을 이겨내면서 끈기있게 공연을 계속해나가려는 유태인들의 노력과 집념도, 오페라 원래의 이야기와 어우러져서 잘 이어집니다. 결국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드디어 나치 친위대도 모든 걸 포기했는지 어딘가 가서 보이지 않고, 오페라 속 오페라의 출연진이나 관객들 모두 한데 어울려 노래하면서, 이 오페라의 공연을 마친 것을 감격적으로 노래합니다. 가슴 찡한 순간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막이 내려오기 2초전에 시작되는 기막힌 막판 반전이 있습니다. 공연을 끝내 감격에 빠진 이 유태인 게토에, 분노한 나치 친위대의 독가스가 대량 살포되면서 관객, 가수, 어른, 아이들 모두가 괴로워 하면서, 이 오페라를 마지막으로 전멸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반전은 이 오페라의 어두운 분위기를 잘 활용하고 있고, 자유를 노래하는 처절한 분위기를 극대화 합니다. 안타까운 감정을 이용하여 깊은 여운을 남기기도 합니다. 손뼉 치는 것을 아끼기 힘들었습니다. 4. 연주한 사람들 이 공연에서 연출은 참신했고, 그 참신함이 깊이도 갖는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음악을 말하자면, 앞서 말했던대로, 그저 정통적인 의미에서 봐도 분명히 일정 수준 이상의 공연이었습니다. 이점은 개막을 앞두고 지휘자가 교체되고 배역들이 엇갈린 소동을 생각하면 가히 놀라운 수준이었습니다. ![]() (위대한 대타, 리날드 조반니네티) 나부코는 정석에 충실한 발성을 잘 지켜나가면서 오케스트라를 여유있게 타고 충분히 감정을 잘 발산했습니다. 아비가일레는 처음 부분에서 꼭 마리아 칼라스 성대 모사하는 코메디언인냥 노래에 좀 실패하는 부분이 있어서 아주 위험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꼭 MP3P에서 이퀄라이져 프리셋이 조정되는양 갑자기 잘하기 시작합니다. 결과적으로 아비가일레의 노래는 어려운 부분을 멋지게 소화하는 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 훌륭했습니다. 유태인들의 지도자인 자카리아는 노래 역시 충실했지만, 연극적인 해석력이 넘치는 연기가 일품이었습니다. 이번, 다니엘 브누앙본 유태인 게토 버전 나부코에서는 자카리아 배역이 나치 친위대원들과도 대결하게 되는 만큼, 직설적인 강한 연기가 중요하게 활용되는 데, 이부분에서 명쾌했습니다. 이스마엘레는 평범한 한국 오페라 가수들이 갖고 있는 부족한 부분들을 조금 내비쳐서 좀 정 다운데가 있었으나(?), 이스마엘레 역시 많은 부분에서 좋은 실력을 보여주었고, 무엇보다 가사를 또박또박 정확히 발음하는 가사에 대한 표현력이 좋았습니다. 대부분의 관객들이 듣고 이해하기 힘든 이탈리아어로 노래를 하는 통에 오페라 가수들은 가사를 대강 떼우고 넘어가기가 예사인데, 사실 많은 오페라 대본들은 대구라든가 운율이 아주 듣기 재미있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가사를 분명히 발음하는 것도 "분명히" 중요한 일입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거의 실수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좋았습니다. 합창단은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오페라 실황 CD/DVD만을 대상으로 비교해 본다면 분명히 빠질 데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전체적인 음색의 조화면에서 이번 공연은 만족스러웠습니다. 평범한 오페라단의 공연을 듣다보면, 오케스트라와 가수들의 노래가 따로 논다든지, 한 부분의 소리가 안들리게 죽는다든지, 어려운 부분에서 많은 사람들 중에 한 둘이 실수를 한다든지 하는 일이 비일비재 합니다. 그런데, 이번 공연에서는 꽤 많은 부분에서 어느 한 군데 조화에서 어긋나는 일이 없이 딱 듣기 좋게 어울렸습니다. 이번 공연 실황의 녹음을 CD로 발매하면 외국에 나가도, 적어도 비웃음을 사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전체적으로 이번 공연을 좀 추켜세웠습니다. 분명 제가 처음에 약간 못마땅했던 "교활한 연출방식"이 의외로 아주 성공적인 것을 보고 느껴서 평가한 "반사 이익"이 있을 겁니다. 왜 하나도 재미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영화나 드라마를 봤는데, 의외로 좀 재밌으면 굉장히 기억에 남지 않습니까? 그런 점 때문에 좋게 느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원래 워낙에 전형적인 "나부코"이다보니, 연주하기가 다른 것들보다 혹시 쉬운점이 있어서 잘한 것처럼 들렸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유명세에 비해서는 자주 상연되지 않는 탓에 정말로 위대한 비교 대상이 많지 않아서 좋게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외국에서 데려온 연출자와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수입된 솜씨가 잘 겉포장을 해준 것도 짚어 볼만한 요소 일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립 오페라단의 공연을 관심있게 지켜본 저로서는 근래 공연중에서 가장 보고 듣기 좋았다는 사실은 사실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이화영, 함석헌 같은 분은 제가 가장 자주 본 오페라 가수로 자리 잡았습니다만, 두 분의 실력이 잘 발휘되어서 팬이라면 팬으로 기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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