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드무비 영화


(임수정과 정우성)

"새드 무비"는 "테마 게임"이나 "반전 드라마" 같은 수준의 작은 이야기들을 여러 편 보여 주는 영화다. 실제로 이런 TV쇼들은 하나의 이야기가 보통 30분정도의 분량인데, 새드 무비에서는 네 쌍의 이야기가 펼쳐지니 상영 시간으로 끼워 맞춰도 얼추 들어 맞는다.

이상의 네 이야기는 공통점이 있는데, 하나는 넷 다 사람들이 이별하게 되는 이야기라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넷 다 초보 텔레비전 단만극 작가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이상향으로서, 분위기 잡기 장면들로 일관한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이 네 이야기들은 TV드라마 이별의 가장 전형적인 네 가지 방식을 다루고 있다. 각각 시한부 인생, 갑작스런 사고, 부자집 자식이 뺏아가기, 유학. 그런즉 자주쓰이는 수법들은 다 다루고 있다.

이야기들은 장과 절로 나뉘어 있지 않고, 서로 동시에 교차되면서 펼쳐진다. 그러는 만큼 "러브 액추얼리"나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혹은 "일리아드"-"오디세이아"처럼 각 사연의 등장인물이 약간씩 서로의 이야기에 참여하면서 얽혀 있다.

영화의 제목이 "슬픈 영화"가 아니라, "새드 무비"인 것 처럼. 홍보 문구에 "나는, 당신이, 슬프다"라고 문법파괴의 한 마디에 쉼표 두 개를 찍어 놓고 멋스럽게 여기는 것 처럼, 영화는 좀 답답하게 허영에 휘둘리는 구석이 많다.

장면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파트 광고 처럼 예쁜척으로 일관하고 있고, 배우들이 하는 대사들은 감상에 취한 10대의 일기처럼 폼잡음으로 일관되어 있다. 놀이 공원의 일곱난장이 캐릭터들을 등장시켜서 귀여움 보여주기 잔치를 펼치는 것은 그 극단이다. 여기에 꽤 자주 과시적으로 흘러나오는 배경음악은 이런 예쁜척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관객들과 친할만한 전형적인 21세기식 20대 음악이다.

중간중간에 삽입된 대다수의 유머들은 진부한 수법을 사용하는 와중에 리듬감까지 엉성하다. 젊은 남녀가 처음 만나서 엮이기 위해 "한 사람이 들고가던 소지품을 와르르 떨어뜨리고 다른 사람이 주워 준다"는 수법은 그나마 참고 넘어갈만 하다. 그러나 차가운 느낌을 준답시고 김수현 드라마의 사설시조 대사를 자랑하는 할인점 계산원이나, 신민아의 대사에 상대방을 "쨔샤"라고 부르는 말을 많이 넣으면 생기발랄한 느낌이 날거라고 각본을 썼던 것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염정아와 여진구)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드 무비는 이런 요소들을 모아서 버무려 놓은 것이라고 하기에는 기대 이상이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야기에 합치되는 배우들의 연기와 기존 인상이다.

이야기 자체가 네 개의 테마 게임 에피소드 연결이라는 사실에 충실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 각본의 깊이를 알고 짧게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한다. 그래서 지겹거나 어줍잖아 보이지는 않는다. 영화는 영화가 작고 평범한 테마 게임 에피소드 같은 이야기라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으며, 괜히 거기에 비약이나 헛감정을 위한 이야기를 지나치게 섞지는 않는다.

이런 익숙하고 많이 해먹었던 판세에, 그걸 익숙하고 많이 했던 배우들이 등장한다. 모든 주연 배우들은 전부다 자기들의 가장 전형적인 장기를 써먹는다.

정우성은 폼잡는 장면에서 살아나는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터프 가이고, 임수정은 어려보이면서 똘똘한 인물이다. 손태영은 남자에게 이별을 통고하는 말하는 인형이고, 차태현은 딱히 잘하는 것은 없지만 좀 까불대고 일견 순박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다. 신민아는 의사소통이 잘 안되는 이국적인 소녀고, 이기우는 멀건 얼굴 잘생긴 피상적인 소년이다. 염정아는 신경질적이지만 머리 좋은 사람이고, 아역 여진구는 요즘의 모든 아역들이 주특기로 내세우는 어른인척 어긋나게 흉내내는 것으로 관객에게 귀엽다는 생각을 주입하는 역할을 한다. 신민아 같은 경우는, 다른 곳에서 보여준 많은 모습들에 비해 월등할 정도로 어느 영화에서보다 잘 어울리게 꾸며져 있다.


(신민아)

배우들은 자기가 잘하는 역할을 맡아서 전형적인 이야기대로 하기 때문에 잘 할 수 밖에 없다. 거기다 그 전형적인 이야기라는 것들이 나름대로, 짧은 에피소드에 어울릴만한 독특한 장치들 한 두 개는 갖고 넘어가기 때문에 계속 이목을 끈다.

이를테면, 차태현과 손태영의 이야기는 "그림동화"나 "심슨 가족 - Treehouse of Horror" 같은 곳에서 비슷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을 그 중심소재를 바꿔서 이야기를 만들어 내서 이런 단편 특유의 공상적인 느낌이 재미있다. 신민아와 이기우의 이야기는, 왜 결정적으로 정체를 드러낼 결심을 하는지, 어떻게 관계가 발전하고 있는지에 대한 아무런 이해되는 설명은 없지만 그래도 알렉산드르 뒤마의 유명한 소설 소재를 팬시 소품화한 아이디어 자체는 흥미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장식하는 것은 정우성과 임수정이다. 그런데, 그 바로 앞 장면에 내리는 비속에서 이별을 경험하는 차태현, 손태영, 신민아, 이기우, 염정아, 여진구의 이야기가 다 얽혀 있는 최후 장면이 더 무게도 무겁게 느껴지고 참여하는 사람들도 많다. 비도 비지만, 그 마지막을 장식하는 꽤 역동적인 시각, 청각 전개도 종막에 어울리는 것이기에 진짜 결말에 어울리는 것은 정우성-임수정이 등장하기 직전 장면이다.

더군다나 정우성과 임수정의 마지막 장면은 이미 유명한 슬픈 한국 영화가 한 번 잘 써먹은 적 있기 때문에 좀 따라하기 갖고, 그나마 사용된 컴퓨터 그래픽 - 특수 효과도 좀 어줍잖아 보인다. 영화의 마지막 감상을 좀 정돈된 여운으로 끌고나가기 위해 그랬겠지만, 거기에다 가장 출연료를 많이 준 커플에게 마지막을 맡겨야 겠다는 것도 그 이유겠지만, 좀 더 개선하는 방법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 밖에...

정말로, 재미 하나도 없는 영화일 줄 알고 갔습니다. 포스터 부터 좀 재미 없는데 재미있는 척 하는 거 같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포스터 속 몇몇 사람들의 표정은 너무 괴기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볼 때 임수정 나오는 장면만 보고 그냥 조용히 자리에서 자려고 했는데, 이야기들이 교차되면서 임수정이 띠엄띠엄 나오기에 어쩔 수 없이 끝까지 봤습니다. 그렇게 재미 없음을 각오한 데 대한 반사 효과인지, 괜히 영화가 더 재미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을 못하는 사람을 다루는 방법이 약간씩 어색한 구석이 있습니다. 물론 많은 TV물, 영화들에 비해 심하게 거슬리는 데가 있을 수준은 아니지만, "무언의 목격자"처럼 기막힌 수준에 도달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장르가 달라서 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수화에 대해서도 좀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어서 약간씩 어색하기도 합니다. "제리 맥과이어"에서 사용한 식으로 다루는 것이 더 좋지 싶습니다.

눈물을 언제 흘렸느냐..로 이야기해 본다면, 실제 이별의 서글픈 장면보다, 영화 중간의 "돌아와 나타난 염정아" 장면이 굉장히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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