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래스앤그로밋 거대 토끼의 저주 Wallace & Gromit: The Curse of the Were-Rabbit 영화

월래스앤그로밋 거대 토끼의 저주 / 마다가스카 크리스마스 특선 에피소드
Wallace & Gromit: The Curse of the Were-Rabbit / The Madagascar Penguins in a Christmas Caper



어차피 굉장한 인기를 끌었던 월래스앤그로밋 첫번째 편도 그렇게 재미있게 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제 감상에서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월래스앤그로밋 거대 토끼의 저주편 보다, 그 직전에 일종의 팬서비스로 짧게 틀어준 마다가스카 크리스마스 특선편이 더 재미있었습니다.

월래스앤그로밋의 이야기는 적당히 할로윈 특선에 가깝습니다. 내용인 즉슨: 농작물을 망치는 토끼들을 잡는 것이 월래스와 그로밋의 직업입니다. 그런데, 어마어마한 거대 토끼가 밤마다 출현해 쑥대밭을 만들게 되면서 소동을 겪습니다. 늑대인간 대신 거대토끼가 보름달을 보며 울부짖는다는 이런 할로윈 특선 애니메이션은 이미 심슨가족의 "Treehouse of Horror"에서 벌써 16편째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대체로 할로윈 특선 이야기라는 것이 공포물과 맞닿아 있는 면이 많은 만큼, 도덕과 규율에서 자유로운 심슨 가족이 월래스앤그로밋보다는 훨씬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특히 올해에 나온 "Treehouse of Horror XVI"편에 비하면 월래스앤그로밋의 이야기는 싱거울 정도 입니다.

월래스앤그로밋은 자잘한 장면들에서 전작과 같은 스팀펑크 분위기의 말도 안되는 자그마한 장치들을 펼쳐보이는 유머 수법들을 다시 한 번 사용합니다. 전작의 정통이라면 정통을 이어 가는 겁니다. 한편으로, 이번 "거대 토끼의 저주"편은 ZAZ나, 총알탄사나이 류의 레슬리 닐슨 패러디 영화들의 방식을 전면적으로 깔고 있습니다. 비행기 같은 것 위에서 벌어지는 그로밋의 액션 유머 하나는 정말 아주 똑같은 것을 한 번 본듯하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이러한 내용들은 대체로 재미있고, 몇몇 장면들은 올해 연말 개봉될 영화를 생각해보면, "시의적절" 하기도 합니다.

여전히 점토애니메이션으로 꾸며낸 영상들은 놀랄만큼 생동감있고, 그 기술적인 성취는 감탄할만한 장면들도 많습니다. 자동차 추격이나 비행기 액션이 펼쳐지는 속도감은 점토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했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 입니다. 컴퓨터 그래픽이 사이사이에 어떤식으로든 쓰이지 않았나 하는 의심도 듭니다.

그런데도, 이 미친듯한 고전적 노력의 결집물이 짤막한 마다가스카 특선 에피소드의 단편만도 못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월래스앤그로밋은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명확하지도 않고 입체적이지도 않습니다. "에어플레인" 같은 영화는 어처구니 없음의 극을 달리지만, 득장하는 많은 주조연들은 너무나 명확한 성격들을 갖고 있었습니다. 심슨가족은 말할 것도 없을 겁니다. 한편 비슷한 종류의 가족 애니메이션인, "니모를 찾아서" 같은 영화에서 니모 아버지같은 생물은 성격이 분명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감정이입하기 좋은 배경과 사건을 겪는 꽤 입체적인 진짜 같은 면이 있습니다.

월래스앤그로밋은, 물론, 두 주인공 중에 더 주인공인, 그로밋은 생생한 편입니다. 스누피하고 비슷하게, 놀랄만큼 영리해서, 웃음을 자아내는 개지만, 스누피에 비해서는 훨씬 충직하고 건실하고 지혜로운 R2D2 같은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 비해 월래스는 평범하면서도 별 재미가 없는 인물이고, 다른 등장인물들은 너무 뻔한 설정이거나, 지나치게 비중이 작습니다. 그렇다고 그로밋이 모든 재미를 이끌고 나간다고 하기에는 월래스나 그 주변 인간들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한국판 홍보 사진)

마다가스카르는 이런 면에서 전통적인 개그 애니메이션의 정석 그대로 극단적인 성격의 과장된 인물들을 분명히 설정했습니다. 낡은 수법이고 이제는 좀 지루하기도 하지만, 적어도 그나마 하지 못해서 엉성했던 월래스앤그로밋의 인물 설정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밋밋한 인물들 외에 다른 한 가지 문제는, 앞서서는 칭찬해 마지 않았던 월래스앤그로밋의 영상기술 입니다.

한마디로 점토애니메이션이 컴퓨터그래픽 애니메이션과 별 차별화를 보이지 못하는 영상을 따라가려고만 합니다. 그러다보니 동작이 답답하고 내용이 느릿느릿 둔중하게 전개되는 느낌이 있습니다. 3차원 애니메이션 속 펭귄과 강아지들의 동작은 아주 부드러우면서도 번쩍번쩍 빠르고, 컴퓨터로 빚어낸 색채는 특히 야경을 그려내기에 휘황찬란 요란한 색채감이 있습니다.

사실 90년대 말의 월래스앤그로밋 오리지널이나, "치킨런" 같은 영화만 해도, 같은 영상을 만들면 컴퓨터 그래픽 영화보다는 점토 애니메이션 쪽이 훨씬 더 정교하고 보기 좋았습니다. 그러나, "파이널 판타지" 같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3차원 컴퓨터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고 이제는 같은 영상을 꾸밀경우에는 보통 3차원 애니메이션이 점토 애니메이션보다 나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만큼, 점토 애니메이션은 인건비가 싼 제3세계에서 막노동 형식으로 만들지 않는 한은, 점토 애니메이션 특유의 차별성을 보여주는 영상 연출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실사 물체, 소도구를 그대로 애니메이션 중에 등장시켜서 점토 인물들과 어울리게 하는 것, 혹은 자연광의 색감을 활용하는 방법 같은 것들이 쉬운 시도들이 될 것입니다.


그밖에...
스투디오가 화재를 당한 것을 생각해 보면, 어쩌면 점토 애니메이션의 짧은 부활시대의 최후로 남을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덧글

  • punctual 2005/11/15 14:36 # 답글

    전작의 정통이라면 정통을 ==>전통?

    잘 읽었습니다...^^
  • 게렉터 2005/11/16 12:28 # 답글

    감사합니다. 정통~ 이라고 쓴거 맞는데, "전통"이 더 어울리는 단어라는 생각도 약간 듭니다.
  • 써머즈 2005/11/17 02:15 # 삭제 답글

    드림웍스와 손을 잡았다는 것과 전작들에 비해 패러디의 성격이 강해졌다는 것(제목부터!)이 심상치 않아 보입니다. 장편으로 만들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는지 원래 컨셉이었는지 드림웍스의 영향이었는지는 며느리도 모르겠지만요.
    개인적으로 이번 영화는 전작들의 후속편이라는 성격이 강한 것 같습니다. 월레스의 로맨스와 마지막 비행기씬도 전작인 양털도둑을 떠올리게 만들었거든요. 시리즈가 거듭되면서 전형이 생기는 건지도 모르죠.
  • 게렉터 2005/11/18 02:26 # 삭제 답글

    동감합니다. 그 패러디란 것이 참신하고 점토애니메이션의 특징을 잘 살리는 것이었으면 더욱 좋았을 텐데, 점토 애니메이션의 묘미는 주로 다른 곳에서 보이고, 패러디 코메디는 그냥 레슬리 닐슨 영화들과 별 다를바 없어서 약간 부족한 면이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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