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연 영화



청연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비행에 대한 동경만으로 맨주먹으로 노력한 박경원이라는 인물이 성공을 거두고 좌절도 겪습니다. 그 과정에서 대장금의 지진희 역 비슷한 걸 맡아주는 든든한 마음의 후원자, 팬이라며 졸졸 따라다니는 후배 비행사, 정계 고위층과 줄을 대고 있는 라이벌 비행사 등등의 인물이 한가닥씩 에피소드를 남깁니다.

애초에 영화는 60, 70년대 쯤의 대작 할리우드 영화를 의도한 것처럼 보입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나 "닥터 지바고" 같은 영화 말입니다. 장중한 낭만파 풍의 오케스트라 연주 배경음악이 실리고, 넓고 멀게 잡은 경치 보여주기 화면에, 많은 엑스트라들 동원 장비들로 화면의 화려함은 넘쳐 납니다. 역사적인 배경과 영웅적인 주인공들이 묵직한 전형적인 대사들을 읊는 영화를 따라합니다. 비슷한 시대, 비슷한 소재의 인물 전기를 다루고 있는 "에비에이터" 같은 영화는 뒤틀린 시각과 기묘한 분위기를 이어붙이는 고 있습니다. "청연"은 그와 대조를 이루는 전통적인 영웅담 분위기 입니다.



영화는 중반부까지는 빠르게 사건들을 전개시켜 나가면서 이런 요소들을 듬뿍듬뿍 보여 줍니다. 장진영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소리 한 번 지르고, 코피 한 번 흘리고 나면, 무일푼으로 일본에 건너온 조선인 날품팔이가 최고수준의 비행사로 변해 갑니다. 설득력은 없고 약간 싱거워서 사건은 전형적이고 참신한 면도 없습니다. 하지만 뮤직비디오에서 이효리가 아르바이트하는 장면 보여주는 식으로 발빠르게 넘어가기 때문에 지루함이 없고 이야기를 따라가는 재미는 있습니다.

중간 중간에 보여주는 20년대 클럽에서 30년대 분위기를 내면서 어울리는 장면도 말끔하고, 우리나라 드라마, 영화, 뮤직비디오, 광고에서 일본풍을 다루는 데 맨날 사용하곤 하는 "눈오는 거리"나 "겨울 선술집" 장면 같은 것들도 잘 만들어져서 유려한 솜씨로 펼쳐져 있습니다. 자칫 우스꽝스럽기 쉬운 클럽 장면 같은 것은 - 심지어 춤 못추는 여주인공에게 부자짓 도련님 남자 주인공이 춤 추는 법을 가르쳐 주는 장면도 또 등장 합니다 - 마틴 스콜세지 영화의 비슷한 장면 연출을 은근슬쩍 따라갈만큼 의외로 잘만들어져 있기도 합니다.




항 공 영화인 만큼, 청연에서는 몇몇 속도감 넘치는 비행 장면들은 잘짜여져 있습니다. 항공 영화의 특수촬영 기술이 낯선 만큼, 어쩔 수 없는 특수촬영 상의 한계는 간간히 보입니다. 하지만, 대체로 큰 무리는 없어 보이고, 이런 장면들을 잘 짜고 배치해서 속도감있고도 화려하게 화면을 구성한 것은 신나고 재미있습니다. "에비에이터"의 폭발적인 속도감과 사고 장면의 강렬한 충격감 같은 노련함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몇몇 어설픈 제트기 타고 다니는 블록버스터 영화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잘 만들어진 부분은 비행대회 연출입니다. 전후 사건이 분위기 조성을 잘 해주고 있어서 비행대회 자체가 중요해 보이고, 의미 깊게 여겨지며, 또 멋있고도 위험하게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음악과 장면전환, 완급 조절의 속도감은 적당하고, 무엇보다 비행대회를 중계하는 아나운서가 기막힌 솜씨로 스릴 넘치게 마이크를 잡고 소리지릅니다. 이 아나운서는 어디 경마장이나 갑자원 라디오 중계 아나운서를 해도 꽤 성공할 듯 할 정도 입니다.

청연은 비행에 대한 낭만을 표현하는 장면에서 좀 답답하게 맨날 다른 영화들이 써먹는 것들을 또 써먹어서 진부한 맛이 없잖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멋있는거 보여 줄까?" 하고는 조종사가 자기 실력을 과시하면서 하필 또 회전비행을 하는 것 따위 말입니다. "탑건" 전후로 유행했던 디즈니 영화사나 비슷한 부류의 이런저런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항공 영화의 "하늘 낭만 장면"이 별 다를바 없이 다 펼쳐 집니다. 그래서 뻔한 면이 있습니다.



앞 서 말한 비행대회 장면은 20세기 초의 비행대회/비행쇼 유행의 분위기, 복엽기 시대의 분위기를 독특하게 잘 살리고 있어서 잠시 그런 뻔함에서 벗어나 있어서 더 좋았지 싶습니다. 그런 예외를 제외하고 나면, 전체적으로는 어쩔 수 없습니다. 항공 영화의 묘미를 잘 담아 소재를 독특하게 살리는 시각이라는 점에서는 오히려 훨씬 작은 시각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비행 Fly Away Home" 이 비할바 없이 돋보일 정도 입니다. "청연"처럼 최고의 비행사를 소재로 다루는 영화였다면, 보다 적극적으로 비행술이나 조종술의 기술적인 면을 조금은 더 부각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것입니다.

중반이후 영화는 분위기가 급반전 합니다. 밝고 명랑한 전형적인 성공담 이야기로 펼쳐지던 이야기가 갑자기 심각하고 쓸쓸하게 처집니다. 특히 별 이유도 없이 갑자기 좀 잔인한 장면 몇 장면이 강렬하게 끼어든 것은 아무래도 좀 어색해 보입니다. 장진영과 김주혁이 열심히 연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심각하게 어긋나 보이지는 않지만 분위기가 좀 이질적으로 변하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어쩌면, 일본 제국주의 선전에 참여한 박경원이라는 인물의 실상을 덮어둘 수는 없다는 자의식이 의무적으로 작용한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의 결말도 그 연장선상에서 별 이유없이 장중한 이야기로 억지로 끌어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결말의 드라마가 그나마 힘을 얻기 위해서는 한지민이 맡은 배역의 역할이 중요한데, 표정 변화와 비오는 데 비 맡고 분위기 잡는 장면으로 대강 때우면서 한지민 배역의 심경 변화나 행동을 다 설명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볼만했던 전반부의 화려한 비행장면에 비해서는 마지막 비행은 좀 싱겁기도 합니다.

특히, 이 영화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좀 튀게 못만들어졌습니다. 황급히 대강 만든 엉성한 국군 홍보 영화 비슷한 웅변대회 같은 모양새입니다. 이 부분은 특수효과나 대사도 확실히 떨어집니다.

배우들은 모두 호연입니다. 김주혁은 낙천적인 한량을 연기하기에 완전히 딱들어맞지는 않고 장동건식으로 화려하게 근사한 모습과는 좀 거리가 있지만, 좀 방황하기도 하고 헤메기도 하는 장면이 간간히 비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잘 연기하고 있습니다. 김주혁과 장진영이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되었나 하는 점은, 거의 설득력 없이 대강 때우고 넘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진영과 김주혁이 같이 찍은 다른 영화들의 기억과, 두 사람의 어울리는 연기 덕분에 심한 거슬림을 면하고 있습니다.



한지민과 유민은 예고편이나 매체에 광고된 것에 비해서 훨씬 더 비중이 큰 배역을 맡고 있습니다. 전반부에서 지나치게 동화속 뻣뻣한 주인공 같이 행동하는 장진영이 그나마 현실감을 얻는 것은, 장진영 팬으로 쫓아다니는 한지민이 아주 잘 어울리는 배역으로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유민은 사건 전개에도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고 대사도 많지만, 인물 자체가 좀 깊이 없이 구성되어 있고, 전반부를 제외하고나면 후반부에서는 사건 자체에 참여한다기 보다는, 사건을 전개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이사이에 말을 전달하고 다니는 역할만 맡고 있을 뿐입니다. 그때문에 정말 숨쉬는 인물로서의 매력은 없습니다. 꼭 추리소설에서 증언 한마디를 하기위해 존재하는 목격자 청소부 아줌마1 같은 처지로 전락하는 듯 합니다.



전체적으로 청연은 물량공세와 드넓은 풍경을 자랑하는 대형 영화로서의 정석을 대체로 유지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그런 영화인만큼 귀에 잘 들어오는 오리지널 스코어 영화음악을 웅장하게 녹음했다면 더더욱 좋았겠지만, 고전파와 낭만파의 곡들을 많이 따와서 달아 놓은 음악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특수효과도 약간의 미숙함이 눈에 들어오긴 합니다만, 충분히 잘 가려 처리하고 있습니다. 억지로 장면들을 연결시키기 위해 겨우겨우 이야기를 꿰어 맞췄던 "무사"같은 이야기에 비하면, 한 가닥으로 단순하게 이어지는 줄거리도 오히려 나아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만, 시간과 비용에 쫓겨서 급하게 만든듯한 에필로그와 프롤로그, 분위기가 지나치게 가라앉으며 처져버린 후반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 재미있는 영화가 되기에는 부족해 보입니다.


그 밖에...
공포영화인 "소름"보다 훨씬 더 많은 숫자의 장진영 울부짖는 소리를,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줄기차게 가지각색의 분위기로 계속 들을 수 있습니다.

결 말 부분의 전신 교신은 꼭 컴퓨터 게임을 하는 중에 채팅하는 것 비슷해 보였습니다. 전신으로 마침표들을 보낼 이유도 없는데 굳이, "...." 같은 자막을 깔아주는 것도 1930년대 초 장중한 마지막 비행의 분위기에 비해 좀 가벼워 보이기도 했습니다. "회항" "회항"하고 전문을 보낼 때는 "ㅎㅎ" "ㅎㅎ" 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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