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녀 영화


(전형적인 하녀 식 연출)

1960년에 개봉된 "하녀"는 한국 고전 영화의 대표작으로 최근 이름을 날리고 있는 대표적인 영화입니다. 내용은 수많은 아류작과 속편들처럼, 중산층 4인 가족에 새로 고용한 10대의 하녀가 남자 주인공과 바람이 나고, 여기에 얽힌 갈등 때문에 결국은 살인으로 얼룩진 기괴한 집착에 온 가족이 휩쓸린다는 것입니다. 공장 기숙사에서 살며 일하는 10대들과, 상경한 청소년들이 식모, 하녀로 취업하는 당시의 세태를 잘 반영하는 가운데 쓰인 이야기 입니다.

영화에서는, 처음 영화 제목과 주요 출연진을 자막으로 소개해 주는 장면의 재미있는 배경영상을 포함하여 많은 부분 40년대 알프레드 히치콕 영화의 연출을 연상케 하는 멋진 연출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칭찬해 마지 않은 세트를 십분 활용하는 박진감 넘치는 카메라의 이동과, 발코니, 계단을 이용하는 정석을 잘 따른 설정과 그 꾸민 방법은 정말로 알프레드 히치콕 영화의 보여주기 연출을 훌륭히 배웠다고 할만 합니다. 간단한 눈빛 잡기, 소품 몇 장면으로 불길한 분위기를 잡아가고, 심상을 상징화하는 것도 좋습니다.

새로 지은 2층집을 주무대로 하고, 그 공간의 이곳저곳에 명확한 성격을 집어 넣어 방들의 개성을 뚜렷하게 느끼게 하면서, 영화의 진행에 따라 이 집을 점차 악몽 같은 저주의 함정으로 보이게 서서히 죄어들게 한 것도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장화, 홍련" 같은 영화의 계보는 "하녀"와 충분히 잇닿아 있다고 할만합니다.


(포스터)

주인공을 피아노 선생으로 설정하여, 집안에 묘한 음악이 울려퍼지게 하는 가운데 격정적인 사건이 펼쳐지게하는 수법이라든가, 주인공에게 피아노를 배우러 오는 사람이 점차 실력이 늘어가는 것을 영화 전면에 지속적으로 끼워넣어 시간의 흐름을 상징하는 수법도 기억에 남습니다. 갑자기 가벼운 웃음으로 끝난 것은 좀 이상하지만, 그래도 섬ㅤㅉㅣㅅ함을 살리는 에필로그도 모범적입니다.

그러나 단점도 꽤 많습니다. 50년대식의 읽어 들려주기식 대사 연기, 변사식 대사 읊기에서 헤메고 있는 성우의 후시녹음들은 단점들 중에서 그나마 이해해 주고 넘어갈만합니다. 대포적인 문제 중 하나는, 영화에서 문제를 넘어서게 해주는 중대한 발단이 되는 사건인 남편의 "바람 피우기" 자체가 굉장히 설득력 없게 제시되어 얼렁뚱땅 넘어가 버린다는 것입니다.


(엄앵란)

영화의 목적이 하녀였던 여주인공이 갑자기 집의 모든 사람들을 벌벌 떨게 하면서 휘두르는 극적인 장면을 제시하는 것인데, 이 장면 자체는 멋지게 펼쳐집니다. 그럴습니다만, 이 장면으로 연결되기까지의 인과관계는 설득력있는 설명없이 대강대강 넘어가는 부분이 허다합니다. 필름의 훼손으로 편집이 어긋나버린 것이라든가, 유실된 장면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입니다.

이런 영화의 문제점은 사건의 마무리 부분도 마찬가지 입니다. 추가적인 인명살상으로 마무리를 짓는 아이디어는 그럭저럭 괜찮습니다만, 문제는 그런 사건의 결론이 다른 사건들의 진행된 결과로서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마지막을 만들면 어울리겠다"라는 생각만 내 놓고 그냥 대강 때워서 붙인 듯 보입니다. 그런가하면, 텔레비전과 같은 소품은 꼭 좀 중요한 의미나 상징적인 소도구로 활용될 듯 보였으면서 그냥 잊혀지고 마는 시간낭비를 합니다.

거기다 주인공을 사모하는 여인들은 아내, 짝사랑에 빠진 10대, 피아노 배우는 10대, 하녀 등등 네 명이나 되는데, 이들도 불필요하게 들어왔다 나갔다 합니다. 이중 아내를 제외한 세 사람은 분명히 한 사람이나 두 사람으로 합칠 수 있어 보입니다. 물론 짝사랑, 몰래 교감을 이루는 사랑, 대놓고 끌고 나다가 집착으로 치닫는 사랑 등등으로 그 차이를 찾으려면 차이가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인물이 시간상, 전개상 낭비된 면도 많고, 악몽같은 집에 관객들을 푹 담근다는 중심목표를 방해하면서 집중력을 흐리는 면도 있습니다. 정해진 배우들을 꼭 일정 비중 이상으로 다 기용해야만 한다는 의무감에 휘말린 느낌마저 듭니다.


(이은심과 김진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종합완성도 이상의 가치를 갖게 하는 것은, 이은심이 멋지게 연기하는 하녀와 남자 주인공을 연기하는 김진규 때문입니다.

특히 이은심은 독보적입니다. 이 영화에서 이은심은 젖은 검은 머리칼로 그냥 서 있는 것 만으로, 연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의 절반 이상을 때울 수 있는 능력을 과시합니다. 본격 공포 영화는 아니지만, 넓은 의미의 공포 영화로 "하녀"를 흔히 포함시킨다고 생각한다면, 이 영화에서 이은심은 한국 공포영화사에서 기념비적이라 할만합니다.

그런 부분이 아니더라도,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이 들킨 후에 청명한 피아노 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김진규가 보는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 같은 것을 보면, 장면 구성이 잘 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적인 연기도 대단합니다. 그녀의 첫번째 살인 장면은 물이 담긴 컵을 괜히 무시무시하게 보여줄 만큼, 좋은 연기와 강렬한 연출이 잘 결합되어 있습니다.

김진규는 그 성우가 대사 연기를 잘 해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고난에 시달리는 인물을 판토마임을 넘어서서 현실감 있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딘지 떨떠름하고 불안해 보이는 이 말 수 적은 인물이 김진규에 의해 잘 표현되면서, 어느 정도 감정이입이 가능한 중심을 잡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합니다.

이은심이 연기한 매력적인 악역과 초반부에 제한된 장소를 배경으로한 스릴러 영화 연출이 빛나게 펼쳐지는 덕분에 영화는 충분히 값어치를 갖습니다. 그런 요소들은 보기드물게 그 질이 뛰어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한 30분치만 고쳐 찍어서 완벽한 영화로 다시 만들고 싶은 마음을 누구에게나 들게 합니다. 무수히 쏟아져나온 아류작과 속편은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가족: 오른쪽 남자아이가 안성기)

그 밖에...

갸냘픈 엄앵란이 총명한 10대 소녀를 현실감 있게 연기하는 모습과 콧구멍을 잘 후비는 어린이로 출연한 46년전의 안성기를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중간에 잠시 휴지기를 갖고, 80,90년대를 전후하여 다시 사람들에게 자리매김한 두 사람의 원형을 관찰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여주인공인 이은심은 "장군의 수염"의 감독인 이성구 감독의 부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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