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화 영화

" 지옥화"는 신상옥 감독의 초기 작품 중에 우수작으로 손꼽히곤 하는 1958년작 비극 영화 입니다. 내용은 소식이 끊긴 형을 찾아 동생이 서울에 올라와 보니, 형은 범죄조직을 이끌고 있고, 어느 매춘부에게 푹 빠져 있습니다. 동생은 이 생활을 청산하고 형과 함께 고향에 돌아가길 청하지만, 형은 이런 범죄조직원들이 언제나 그렇듯 "마지막 한탕"을 노리며 거부합니다. 그런 가운데 매춘부 여자주인공은 형제를 더 큰 파국으로 몰고 간다는 이야기 입니다.

이 지옥화의 범죄조직원들이라는 것은, 50년이 지난 지금 쉬이 떠올리게 되는, 영웅본색이나 첩혈쌍웅의 조직원들이나, 두사부일체, 조폭마누라의 조직원들과도 매우 다릅니다. 이들은 요즘 기준으로 따지면 조직폭력배라기 보다는 그냥 밥굶을 걱정을 겨우 면하고, 옷을 잘 빨아 다려 입고 다리는 백수 한량배들 정도 입니다. 마피아나, 조직폭력배에서 흔히 느껴지는 어떤 권력의 심상이나 지배자적인 힘은 전무하며, 전체적으로 지지리 궁상 맞은 집단입니다.


(포스터)

지옥화는 결국 중심 사건을 짚어보면, 바로 이 우울한 백수 한량배들이 그 늪에서 헤어나오고자 한탕 껀수를 노리는 이야기 입니다. 그러나 강렬한 인상을 풍기는 여자 주인공과 영화 전체에 감도는 자조적인 퇴폐분위기는 등장인물들의 감정과 정신 상태를 뒤흔듭니다. 그런면에서보면, 영화는 결국 오페라 "카르멘"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셈이기도 합니다. 특히 영화 중반에 펼쳐지는 범죄 한탕은 카르멘 3막의 여인들의 합창과 정확히 일치하기도 합니다. 타로카드 예언 대신에 미아리 고개의 점치는 영감이 예언을 해주기도 합니다.

영화는 초반에 이런 비도덕적인 늪에 빠진 범죄극이 아니라, 형을 찾아 온 동생의 이야기로 펼쳐지는데, 지나치게 늘어져 있기도 하고, 또 그 극적인 형과 동생의 만남이 어줍잖게 썰렁하게 처리되어 있어서 좀 초점이 흐려져 있기도 합니다. 차라리 정석대로, 오랫만에 만난 동생을 형이 환대해주고, 반가워 하던 동생이 형이 처한 상황과 변해버린 형의 모습을 보면서 점차 실망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편이 더 초점을 분명히 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영화 도입부의 갓 상경한 시골사람을 농락하는 날치기라든가, 가족사진, 진흙, 부랑자의 하모니카 연주, 분위기와 완전히 배치되는 밝은 라틴 음악 연주 등등을 아주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최후의 칼부림 장면 전후는 상징적인 표현이 꽤 매끄럽게 잘 흘러가고 있기도 합니다. 중반부의 절도범죄에서 벌어지는 라틴 음악을 배경으로한 리드미컬한 범죄자들과 그 공범들의 움직임은 여느 걸작 범죄 영화 못지 않게 흥겹게 꾸며져 있기도 합니다.

또한, 주배경을 황량한 미군기지 주변의 들판으로 설정하여, 전체적으로 어떤 원형적인 이야기를 펼치는 듯한 느낌과 쓸쓸한 분위기를 강조하는 것도 좋은 효과를 갖고 있습니다. 이런 점은 40여년후에 나온 "수취인불명" 같은 영화와 일맥상통하고 있기도 합니다.


(날건달과 아가씨)

특히, 기술적한계를 돌파한 형, 동생, 여자주인공 소냐 세 명의 연기는 뛰어납니다. 동생은 시골에서 올라온 순박한 청년이면서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고 조마조마한 면이 있는 인상이 잘 표현하고 있고, 형은 어떤 면에서 순수한 과거를 남겨두고 있지만 한탕의 환상을 쫓는 아집이 있으면서도 집착에 빠진 인물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이야기의 중심인물이자, 핵심적인 "카르멘"인 소냐는 그 매력을 영화전체에 화려하게 과시할 뿐만 아니라, 중요한 요소인 퇴폐적인 분위기를 혼자서 거의 이끌다 시피하고 있습니다.

물론 장점보다 단점은 훨씬 더 쉽게 눈에 뜨입니다. 우선 1950년대 한국영화에서 대부분 나타나는, 무성영화의 틀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연출을 들 수 있습니다. 지금 보면 예스러워서 신기해 보이기도하고, 어두운 영화 분위기에 맞추어 어딘지 몽환적인 느낌을 강조해 주는 면도 있긴 합니다만, 분명히 어색한 면과 유성영화의 효과를 잃어버리는 문제점이 더 큽니다.


(진흙탕에서)

장면 전환이 기술적으로 어색한 부분도 많고, 여자주인공 소냐의 결정적인 심경 변화가 별로 잘 묘사되어 있지 않아서, 잠시간 뜬금없다는 느낌도 줍니다. 주인공 3명 이외에 많은 배우들은 그 연기력이 수준이하라는 점도 문제입니다.

"신의 도시" 등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가난한 제3세계 특유의 범죄집단이 갖고 있는 모습을 배경으로, 전형적인 비극을 잘 표현했다는 면에서 일단 볼만한 영화입니다. 다만 밝힌 여러 문제점들은 영화 후반부의 꽤 큰 액션 장면으로 미루어볼 때, 단지 제작비가 부족해서 생긴 문제점만은 아니기에 좀 더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밖에...

클래식 컨버터블을 여자주인공이 타고 질주하는 모습이 나온, 제가 본 거의 유일한 한국영화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핑백

  • 게렉터블로그 : 오상원 중단편 소설들 2015-01-02 20:22:43 #

    ... 수준은 아니지만 매듭도 잘 지어지고, 인물들이 워낙 강렬해서 재미가 살았습니다. 1950년대 신상옥 감독 영화의 대표작으로 요즘에는 자주 손꼽히는 “지옥화” http://gerecter.egloos.com/2160525와 같은 소재를 다루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8. 현실 한국전쟁 중에 낙오병이 된 주인공은 다른 낙오병 무리를 만나서 같이 적의 수중에 떨어진 ... more

  • 게렉터블로그 : 한국영화의 고전과 괴이한 옛영화들 글목록 2015-03-17 19:43:46 #

    ... 적 여사장 (1959) 여자 대장장이 여자 형사 마리 염통에 털난 사나이 (1970) 영 (影) 왜? (1974 - 포스터 자료 추가) 용호대련 웃음소리 (1978) 장군의 수염 지옥화 집행유예 (1973) 최은희의 고백 춘몽 (1965, 한국영화) 타잔 한국에 오다 (1971) 투명인간 (1986) 특별수사본부 기생 김소산 (1973) 팔도 가시나이 ( ... more

덧글

  • 신짱 2006/01/31 15:03 # 답글

    저도 고전한국영화를 좋아하는데...이 영화는 말로만 들었지 직접 본 적이 없습니다. EBS 한국영화걸작선에서 해줬나요?? 보고 싶은데 소스가 없으니 참 답답한 노릇입니다. 우리나라도 어여 제대로 된 고전영화 DVD가 나와야하는데...
  • 게렉터 2006/02/01 09:48 # 답글

    예, EBS에서 해 주었습니다. 걸음하기 번거롭습니다만, 한국영상자료원에 가면 거의 무료나 다름 없는 가격에 이런저런 고전 한국 영화를 마음껏 보실 수는 있습니다. "지옥화" 같은 경우에는 영화제의 신상옥 감독 회고전에서 초기 걸작으로 항상 걸리는 영화기에 그나마 그외에도 접할 기회가 꽤 있으실 겁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