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코 Psycho 영화


(폭풍우 치는 밤, 자동차 운전이 더 이상 힘들어 외딴 집에 들렀더니, 아니나 다를까 귀곡산장)

"싸이코"는 "새"와 함께 한국 관객에게 가장 친숙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입니다. 새가 독특한 소재 때문에 기억에 쉽게 남았다면, 1960년작 "싸이코"는 공포영화로서의 자극적인 무서움을 남긴 영화로서 기억에 남은 것이기 때문일 겁니다. 물론, 셰익스피어가 쓴 대사 중에 "To be or not to be" 처럼 유명한, 싸이코의 신화적인 샤워실 살인 장면 때문에 유명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싸이코"는 덜컥 마음이 동한 주인공이 회사 돈뭉치를 횡령해 도망을 가고, 그녀를 찾기 위해 몇 사람이 그녀의 뒤를 조사해나가는 가운데, 살인이 잇다른다는 겁니다. 물론 제목대로 전체적으로 이야기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미쳐 돌아가는 정신 상태를 포착해 나가면서 분위기를 고조하고 있습니다.

다리오 아르젠토를 이탈리아의 알프레드 히치콕이라는 별명으로 부를 때가 있습니다. 사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와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영화는, 범죄적 사건을 중심에 놓는다는 점만 빼면, 전체적으로 따져서 분위기는 상당히 다릅니다. 그런데, 적어도 "싸이코"에서 만큼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만들고 꾸민 영화가 우리가 흔히 다리오 아르젠토 영화를 떠올릴 때 생각하는 것과 꽤 많이 닮아 있습니다.


(사립탐정과 다른 주인공 2명)

우선 영화가 살인 장면에 격한 강세를 두고 있다는 점을 꼽고 싶습니다. 전체적으로 긴장감을 늦추지 않으면서 추격전, 쫓기는 도망자 신세 묘사로 사건을 펼쳐 나가는 것은 전형적인 알프레드 히치콕 방식이긴 합니다. 그렇습니다만, 보통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감춰진 진실이 "들키는 것"을 가장 조마조마한 요소로 두는데 반해, 싸이코 에서는 인물에 대한 살인, 즉 강렬한 파괴가 영화의 발화점이 됩니다.

살인 전후에 죽음과 삶이라는 원초적인 요소로 조마조마함을 극대화하고, 그러다가 현란하게 칼질을 하고 피를 뿌리면서 파괴의 거대한 힘을 넘쳐나게 전달하는 방식은 매우 효과적입니다. 여기에 꼭 다리오 아르젠토 처럼, 살인자의 모습을 숨긴채 그 모습의 일부나, 칼질을 하는 손만 보여주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칼질에 당하는 피해자와 살인을 하는 가해자, 모두에게 관객이 감정이입하게 하는 해괴한 공포영화 특유의 방법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미 우상이 되어버린 샤워실 살인 장면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저는 그 다음 살인 장면도 이 모든 요소들을 잘 살린 통렬한 감각이 살아 있는 장면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즉 싸이코에서, 알프레드 히치콕은 자기가 영화를 찍으면서 익혀왔던, 다리오 아르젠토스러운 수법들을 만방에 과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 다리오 아르젠토의 대표작들과 비슷한 시기에 다리오 아르젠토풍의 영화를 구상했던 많은 다른 사람들은 이 "싸이코"를 일정부분 바탕으로 삼았다고 할만할 겁니다.


(싸이코에 등장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물론 어쩔 수 없는 한계도 있습니다. 영화의 맨 마지막 장면은 멋지지만, 에필로그의 설명장면은 요즘보면 "매트릭스"에서 호접몽 어쩌고 하는 것처럼 쓸데없이 중언부언하면서 공감없는 억지 감탄을 조장하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영화 여러 장면에서 들려오는 비명은 진정한 공포 영화들의 솜씨에 비하면 약간씩 박자가 어긋나는데,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찍은 장면에 대한 전달의 시간을 좀 더 주기는 하지만 대신 비명자체의 현실감이나 실재감은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사건 연결이 잘 안될때는, "폭풍우 치는 밤, 자동차를 더 운전할 수가 없어서 잠시 외딴 집에 몸을 의탁하는데, 알고보니 거기가 드라큐라성 혹은 귀곡산장이었다"라는 전설적으로 진부한 설정을 끌어 오는 것도 아쉽습니다.

또한, 이야기의 반전 트릭 자체가, 이런류의 "반전이 있는 공포영화"의 근간이 되는 것인만큼 참신할 수 없다는 점도 한계라면 한계입니다. 그런 점만 놓고 보면, "유령"의 개념은 좀 더 일찍 등장시켜서 좀 더 혼란스럽게 여러 모로 써먹거나, 아니면 아예 등장시키지 않는 편이 더 좋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류의 영화들은 살인과 살인 사이의 시간을 메우기 위해 여러 편법들을 쓰기 마련인데, 80년대 슬래셔 영화들은 주로 선남선녀들의 외모를 과시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게 하고, 다리오 아르젠토 영화 같은 경우에는 몽환적인 구성이나, 말도 안되지만 그래도 대강대강 충격을 줄 수 있는 인물과 사건을 늘어 놓아서 꺾어 붙이는 방법을 이용했습니다.


(비밀연인)

싸이코 에서는 처음 등장하는 자넷 리의 인물에게 전통적인 알프레드 히치콕식 도망 무용담을 펼치게 하는 것으로 시간을 메웠습니다. 이것은 정말 도망자의 불안한 심상이 잘 전달되도록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만약 "싸이코"의 원작처럼 살인 장면의 배경 자체를 처음부터 무대로 삼았다면, 알프레드 히치콕 장기를 펼쳐저 재미있게 살인 장면 사이를 메우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지겹고 뻔한 공포영화와 달라질 수 있다는 면에서도 이것은 참신한 선택이었습니다.

이런 장면들에서는, 경찰이 선글라스로 얼굴 표정을 가려서 더 위협적이고도 관료적인 존재로 보이게 한 등등의 배경지원도 잘 되어 있습니다. 첫장면을 비밀연인들의 침대위로 시작해서, 일부러 도덕 일탈의 느낌을 살짝 풍기게 해서, 전체적인 사건들에 개연성을 불어넣고 정신병적일 정도로 불안한 감각을 살리는 것도 유려하고, 늪, 황량한 도로 풍경, 엿보기등등의 소재도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경찰의 모습은 터미네이터2, 유방백세의 "액체인간"을 기억나게 할 정도로 효과가 좋습니다.

그렇지만, 이 역시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나중에 나와서 더 전형적인 주인공에 가까운 듯 활약하는 베라 마일즈의 배역에 비하면, 자넷 리의 배역은 훨씬 입체적이고 매력적이며, 긴 시간 단독으로 활약하고 관객들에게 감정의 소통과 이입도 많이 전개한 인물입니다. 이 인물이 어쩔 수 없이 끝까지 활용되지 못한 것은 여러 모로 아쉽습니다.


(불안한 감정의 자넷 리)

또한, "오명"이나 "현기증"처럼 빈틈없이 인물간의 감정이 맞아드는 영화에 비하면 영화 초반, 자넷 리가 표현한 소시민적인 도덕률과 일탈의 충돌이라는 그 팽팽한 긴장감과 양심의 갈등양상도 낭비되는 면이 있습니다. 물론 불안감은 연결되고, 사건을 끌고 나가는 동인으로서 흥미진진한 전개에 일조하는 것만으로도 사실 충분한 제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설득력 있게 전달되었던 감상이, 더 강렬한 느낌의 살인극으로 표출되는 이상심리와 직통하지 못하는 점은 약간은 안타깝습니다.

자넷 리와 안소니 퍼킨스, 두 배우가 완급을 조절하며 보여주는 정서불안 연기는 대단합니다. 이런 종류의 광기 연기가 연기력을 거창하게 과시하는데 간편한 요소이기는 합니다만, 정말 가지각색으로 잘 발현되어 있고, 스크린 전체에 얼굴을 가득담아 들이대는 연출과 잘 어울리기도 합니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처럼 충분히 호감을 주는 외모인 동시에 일상적인 인물의 평범함이 살아 있는 두 배우의 인상도 아주 잘 어울립니다.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을 적당히 과장해서 보여주고, 그 결과로 감정은 잘 전달되지만 사실감은 떨어뜨리지 않아야 하는 강도조절이 잘 되어 있습니다. 영화 중에서 가장 강하게 인물을 표현하는 안소니 퍼킨스는 고전 헐리우드 시대의 마지막에 그 한 극치를 장식합니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자신도 말했듯, 서스펜스에서 중요한 것은, "들킬 것 같은 거짓말이 들키느냐 마느냐"의 조마조마함 뿐으로, 그 주체가 선인이든 악인이든 주인공이든 조역이든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싸이코"는 각종인물들의 속임수에 관객들을 이리저리 동조하게하여 간떨리게 합니다. 연기력을 십분 활용한 이 간떨림을 바탕으로 살인 장면 사이를 연결하는 빼어난 솜씨는 과연 보기 드문 것입니다.


(불안한 감정의 안소니 퍼킨스)

또 한가지. 분명히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싸이코가 전통적인 공포영화가 가지는 기능과 통하는데가 많은 것에는, 최고 수준인 버나드 허먼의 음악도 한 몫을 합니다. 강렬한 자극으로 승부할 수 있는 공포영화에는 거기에 박자를 맞추는 전율을 강화하는 음악이 효과가 있습니다. "싸이코"의 음악은 그런식으로 거둘 수 있는 효과를 도약시킨 원류라고 할만합니다. 조금 과장하면 시각효과에서 "스타워즈"나 "쥬라기 공원"이 거둔 성과와 맞먹을만 합니다. (황제)


그 밖에...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이 영화를 흑백으로 찍은데는, 컬러로 만들면 잔인하고 너무 자극적일 듯하다는 이유도 있었다고 합니다. 다리오 아르젠토 이야기를 했는데, 다리오 아르젠토였다면,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온갖 컬러를 이용했을 겁니다. 그와 관계없이, 서부 지역 고속도로의 황량한 느낌과 축축한 귀곡산장을 한 영화에서 통일감있게 담아내려면 컬러보다는 흑백이 더 간편하긴 할 겁니다.

지금은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반전과 결말입니다만, IMDB Trivia에 따르면,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결말을 감추기 위해 사람들이 원작 소설을 못 읽도록 돈을 풀어서 원작을 마구 사들였다고 합니다.

역시 IMDB Trivia에 따르면,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영화의 공포효과 등을 시험하기 위해서 자넷 리의 옷장에 괜히 해골바가지 같은 소품을 집어 넣어 놓고 그녀가 놀란 비명 소리를 들어 보았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45초 짜리 샤워실 살인 장면은 1주일 동안이나 찍어댔다고 합니다. "이미지에 부합하는" 감독이라 할만합니다.

IMDB Trivia에 나오는 한 관객의 항의 편지에 대한 이야기도 아주 재미있습니다.


덧글

  • 네모 2006/02/06 20:16 # 답글

    아니나 다를까 귀곡산장..(웃음)
  • 게렉터 2006/02/06 23:54 # 답글

    꼭 두 영화가 붙어 있는 듯하다고 평하는 사람도 많은 "싸이코"이다 보니, 이런 "귀곡산장" 설정은 어쩔 수 없는 접합부위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저 역시,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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