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North By Northwest 영화

*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이야기들을 이것저것 해 오면서, 저는 얼마전에 "새"와 "싸이코"를 연속으로 이야기 했습니다. 전세계에 수천만개 쯤은 관련 글이 떠돌고 있을 두 영화를, 별 색다른 관점도 없이 읊어대다니, 이것은 성대모사 하라고 했더니 또 김응룡 전 감독 성대모사와 김대중 전 대통령 성대모사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진부하지만 어쩔 수 없는 대표입니다.
그리하여, 이번에는 너무나 많이 나온 또다른 이야기를 다시 꺼낼 차례입니다. 즉 김응룡, 김대중 성대모사를 했으니, 숙명적으로 앙드레 김 성대모사를 해야지 균형이 맞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말해서,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이야기를 할 차례입니다.


(뭔 일이 일어나겠어?)

누군가의 표현대로, 뉴욕에서 저녁에 한 잔하러 나서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가장 잘 보여주는 영화 입니다. 대도시 뉴욕. 성실하면서도 그럴듯한 멋과 유머 감각을 자랑하는, 광고업계에서 자리잡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오늘은 한 잔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나서는데, 갑자기 괴일당에게 납치를 당합니다. 납치에서 벗어나려고 난리를 치다가 경찰에게 오해를 받고, 이것을 피하려다가 또다른 조직의 오해를 받는 등, 냉전시대의 초거대 첩보조직들의 오해를 한 몸에 받으면서 주인공은 커다란 모험을 겪게 된다는 이야기 입니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대표작으로 단연 손꼽히는 1959년작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는, 요컨데, 주인공을 일반인 남자로 설정해서 이야기의 개연성과 긴장감에 무게를 실어준 007 이야기 입니다. 주인공은 자신을 위장하거나 누명을 써야 하고 경찰과 상대편 특수 조직에 쫓기면서 혼자서 대활약을 펼쳐야 합니다. 당연히 주인공을 도와주는 아름다운 여인이 등장하고 이 여자는 배신도 하는 거 같고 그렇습니다.


(열차에서 신비한 여인)

제임스 본드 영화는 어느새 주인공이 각종 상황에서 폼 잡는 모습 과시와, 다양한 장면 연출 상황극 보여주기, 호화 패션 자랑하기로 영화의 방향을 틀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는 같은 재료를 가지고 다른 방향으로 영화를 구성해 나간 모범을 제시합니다. 이러한 방향으로 영화를 이끌기 위해서, 영화는 중대한 호기심 생기는 세 가지 의문점을 차례로 보여주면서 펼칩니다. 첫째는 주인공이 누구에게 왜 습격당했는가, 둘째는 불안한 주인공에게 갑자기 나타난 신비의 여인과는 어떻게 풀려나가려고 저러는 것인가, 세번째는 도대체 대관절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라는 제목은 무슨 소리인가.

영화가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어지는 첫번째 요소는 바로 이런 호기심 요점들을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보며 깨달을 수 있도록 보여준다는데 있습니다. 재미없게 대사나 설명으로 때우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느낄 수 있게 보여주는 겁니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스스로 좋아하고 잘하는 재주를 십분 발휘해서 말입니다.

제임스 본드 영화 "어나더 데이 Die Another Day"와 비교를 해보겠습니다. 어나더 데이에도 분명히 이야기를 끌어가는 문제제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피어스 브로스넌이 주디 덴치에게 이렇게 말하는데서 드러납니다. "누군가 북한에 정보를 넘긴 배신자가 있었습니다. 그 자를 밝혀 내야 합니다." 관객은 그 설명을 듣고 그런가 보다 하게 됩니다. 제임스 본드의 행동에 동기는 부여되지만, 별로 공감가는 사항은 아닙니다. 당연히 제임스 본드가 누굴 찾건 말건 그런 내용에 이입이 되지 않습니다.


(캐리 그란트와 에바 마리 세인트)

반대로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는 처음에는 굉장히 성실하고 유능하게 살며 유머감각도 넘치는 꽤 성공한 듯한 뉴욕 시민 한 사람을 보여줍니다. 특히, 영화 시작 장면을 비슷한 시기에 유행하던 뉴욕 배경의 코메디 영화처럼 흥겹게 뉴욕시의 사람들 모습들을 비추면서 시작한 것도 이런 "상쾌한 뉴욕 시민" 분위기에 일조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 사람을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잡아 끌고 가서 때려 죽일듯한 분위기로 급반전 시켜 버립니다. 화면배치, 음악, 목소리, 색채 모든 분위기가 뒤집어 집니다. 도대체, 왜이러는 겁니까? 무슨 비밀이 있길래 그 평범해 보였던 로맨틱 코메디 주인공 같았던 사람을 이렇게 하는 겁니까? 자연히 긴장감이 생기고 궁금증은 커집니다.

물론 제임스 본드 영화에도 "설명 하나만 달랑 던진 것" 은 아닙니다. 비무장지대에서 밀거래를 하던 제임스 본드의 정체가 탄로나서 거래를 망치는 장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문대령과 자오의 정보력과 눈치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인지 정말로 배신자가 밀고했기 때문인지 알려주는 장면은 아닙니다. 게다가 제임스 본드는 잠시 후에 비무장 지대를 휩쓸면서 문대령의 밀매조직을 혼자서 박살내 버립니다. "제임스 본드를 밀고한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조마조마한 의문이 생길 기분은 들지 않게 되어 버립니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식의 빨려드는 서스펜스극과는 현격한 차이가 나게 되는 것입니다.

한편, 시선을 반대로 바꿔서, 제임스 본드가 홍콩, 쿠바, 아이슬란드, 비무장지대를 무대로 화려한 쇼맨쉽을 펼치는 것이 주목적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007 영화속에도 스릴러 이야기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배치해 두고 있다는 점에 주목을 해보겠습니다. 당연히 반대로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에도, 줄거리의 수수께끼 이외에,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영화 장면의 서정적인 재미를 위해 배치한 장면들이 눈에 뜨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병원이나 집에서 사망합니다. 가끔 도로에서 사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장면상의 재미를 위해서, 목숨을 건 격투의 장소를 열차 액션, 미술품 경매장 액션, 광활한 대평원 액션, 심지어 명성 높은 러쉬모어 산 대통령 얼굴 조각 위에서 액션을 벌이는 것을 설정했습니다.

사실 곰곰히 따져보면, 이 영화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재미나게 보여줄 수 있는 상황 몇 개를 지어낸 다음에 그런 상황이 나오도록 이야기를 배치한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그만큼, 이런 액션 장면 연출들은 독특한 상황과 배치가 신기한 구도가 되도록 꾸며져 있습니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가 재미있게 된 것은 이런 억지 같은 상황 설정이 자연스럽게 연결될만한 꽤 정교한 각본이 나왔고, 그런 각본을 만들기 위해서 여기에 그런 액션을 보여준다는 과시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이야기자체의 긴장감도 못지 않게 중시했기 때문입니다. 결과만 놓고보면, 재미있는 장면을 먼저 생각해 두고 이야기는 그냥 갖다 엮었는데, 그 이야기를 잘 엮으려고 노력하다보니 이야기가 장면보다 좀 더 강해져 버린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야기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연출과 견합하여 확실히 설득력과 흡인력을 갖고 있습니다. 액션 장면들도 안정감을 잃을 듯한 상태를 강조하고 아슬아슬한 느낌을 살릴 수 있도록 모범적인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식 연출로 박진감 있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흡인력있는 이야기와 박진감 넘치는 장면들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었냐고 한다면, 약간은 헛점이 있습니다. 이야기를 장면들 사이에 얽어 넣으면서도, 이야기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려다 보니 제대로 꽉차지 못하는 틈이 생겨 버립니다. 러쉬모어 산에서의 액션 이후의 묘사는 급작스러운데가 있고, 냉정하게 따져서 과연 모든 문제의 완전한 해결이냐라는데서도 결론은 불분명 합니다. 특히 앞서 말한 영화의 세가지 의문점 중에 한 가지에 대해서는, 영화가 끝나도록 관객에게 명확한 답을 제시해 주지 않습니다. 굳이상대적인 단점을 또 생각해 본다면, 영화음악이 대단했던 "새" "싸이코" "현기증" 등등에 비해서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는 조금 약하다는 점도 떠오릅니다.

이런 헛점을 감추는 것은 영화의 비교적 긴 상영시간입니다. 꽤 긴 시간 동안 영화에서는 쉴새없이 긴장감과 액션을 날려 주었고, 이 정도 흥미진진하게 영화를 본 관객들은 지칠 때쯤 제시되는 마지막 결론이 약간 부실하다고 해도, 손해 봤다는 느낌 없이 적당히 만족스런 감상을 가지고 좋은 입소문을 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재밌잖소?)

연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나이든 캐리 그란트의 완벽한 "캐리 그란트" 연기를 칭송할 수 밖에 없습니다. 캐리 그란트는 캐리 그란트식 연기를 잘 하면서, "캐리 그란트는 허풍스럽게 폼만 잡는다"는 세간의 시각을 역으로 이용하여, 그 허풍으로 폼잡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연기까지 잘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계산된 각본의 도움도 컸을 것입니다.

이안 플레밍 스스로가 제임스 본드 소설을 쓰면서 영화 속 캐리 그란트가 연기하는 인물을 많이 상상했고, 때문에 제임스 본드 캐스팅에 캐리 그란트가 물망에 올랐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를 제임스 본드 영화와 견주어 보고 즐길 또다른 요소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만큼, 50년대식 재치를 뽐내는 대사들을 읊고 여유, 용기, 유머를 이리저리 부드럽게 오가며 발산하는 주인공을 보여주는 능력도 화려하게 펼쳐집니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가 갈수록 아쉬워지는 점은 영화의 내세울 만한 강점이었던, 과시적인 장면들이 점차 힘을 잃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영화의 많은 액션 장면들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자신의 영화를 포함하여 다른 영화들에 지나치게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게중에는 개별적으로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의 같은 장면을 빛바래게 할만큼 잘 만든 장면들이 꽤 있습니다.

러쉬모어 산의 액션이나 대표적인 영화 중반 액션 같은 것은 그 완급 조절은 여전히 감탄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장면들에서 영화를 처음 본 사람들이 느꼈을 거대하고 막강한 충격감은 이제는 보다 심심하게 느껴집니다. 워낙에 거대하고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 액션들이 잘 사용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평원의 캐리 그란트)

물론, 여러 영화들에게 장면과 아이디어, 구성의 모범이 되는 면이 많다는 점에서 여전히 역사적으로 볼만한 영화이긴 합니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나 정말로 재미있는 영화였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가 점차 "재즈 싱어" 비슷한 신세가 되어 가는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


그 밖에...

캐리 그란트에서 출발했던 제임스 본드는 막상 영화가 나오자, 숀 코네리에 의해서 (당연히) 절반쯤은 다른 인물로 바뀌어 버리게 됩니다.

프랑수아 트뤼포의 책에 나오는 히치콕의 증언에 따르면, 캐리 그란트가 영화의 3분의 1쯤을 찍었을 때 히치콕에게 와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개 같은 각본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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