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신라
2. 암살극 3. 서울 공연 4. 리카르도의 집무실 5. 점쟁이와 손 6. 비극 7. 가면무도회 1. 신라 지금 스웨덴의 국왕은 카를 16세 구스타프, 즉 카를 구스타프 폴크 휘베르투스 입니다. 이 사람의 할아버지가, 전 스웨덴 국왕인 구스타프 6세 아돌프, 즉 오스카 프레드릭 윌리엄 올라프 구스타프 아돌프 입니다.(과연 코메디 소재가 될 법한 긴 이름들입니다.) 이 구스타프 6세의 아들이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비행기 사고로 죽는 바람에 그의 손자가 왕위를 계승했던 겁니다. 우연히도 사망한 날짜가 제 생일이었기 때문에, 언젠가 "오늘의 역사" 같은 것에서 이 스웨덴 왕족에 대해서 알고 기억하게 되었고, 지금 하는 이야기를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하여간 지금 스웨덴 국왕 이전의 왕인, 구스타프 6세는 아마추어 고고학자로서, 대영학회 명예 펠로우로 있었던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1905년에 한 번 결혼하고, 1923년에 일곱살 어린 루이즈 공주와 재혼했습니다. 아이들의 새 엄마인 셈입니다. 이 사람은 신혼여행을 당시로서는 이국적인 곳이었던 일본으로 왔는데, 그 때 일본 왕실에서 고고학에 관심많은 구스타프 6세에게 신라 경주의 발굴 현장에 가 볼 것을 권했습니다. 그리하여, 구스타프 6세와 루이즈 공주는 배를 타고 부산에 온 뒤 기차를 타고 경주에 가서는 어느 왕릉 발굴현장에 갔습니다. 그는 발굴에 참여 했으며, 발굴하는 사람들의 배려로 금관을 손수 파내기도 했습니다. [서봉총 발굴현장의 구스타프 6세] 그리하여, 이 왕릉의 이름은 스웨덴 즉 서전국의 "서"자와 금관에 장식된 봉황을 따서, "서봉총"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서봉총에 가면 한서협회에서 세운 비석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서봉총의 주인공 구스타프 6세의 가문은 사실 왕가치고는 그렇게 역사가 깊지 않은 가문입니다. 프랑스의 장 베르나도트 장군이 나폴레옹 전쟁 때 나폴레옹 휘하에서 활약하면서 스웨덴-노르웨이 왕이 되어 설치게 된 덕분에, 왕가가 바뀌게 되고 그 이후, 구스타프 6세와 지금의 카를 16세까지 새 왕가의 자손이 왕노릇을 하고 있게 되었습니다. 스웨덴 왕실이 베르나도트 왕가로 넘어가기 직전의 상황은 국왕 암살과 국왕 퇴위로 얼룩진, 그야말로 나폴레옹 부하 출신 장군에게 넘어가기 딱 좋은 혼란통이었습니다. "가면무도회"라는 오페라가 다루는 사건은 바로, 나폴레옹이 들이닥치기 직전쯤 스웨덴의 구스타프 3세 국왕 암살사건입니다. 아마 "가면무도회"에서 일어난 사건만 아니었다면, 스웨덴 왕실은 굳건했을 것이고, 그러면 베르나도트 왕가도, 경주의 "서봉총"이라는 왕릉도 없었을지 모릅니다. 2. 암살극 구스타프 3세는 왕권 강화에 힘쓴 왕입니다. 귀족 중심의 의회를 억누르고, 왕권의 지원하에 진행되는 문화사업과 계몽사업에 많은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래서 스웨덴의 많은 관광지에서 구스타프 3세의 이름을 볼 수 있기도 합니다. 문화사업 때문에 시민들로부터 인기를 꽤 얻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구스타프 3세는 어떤 방향으로든 스웨덴 분위기를 확 바꿀만한 분위기로 나갈 사람이었음은 분명합니다만, 왕권강화 움직임은 귀족들의 반대를 많이 샀습니다. 더군다나, 나폴레옹 세력에도 적대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에, 대외적으로 좀 위태로운 형편이기도 했습니다. 1792년 3월 16일. 그는 스톡홀름 왕립 오페라 극장에서 저녁 파티와 가면무도회에 참가하기 위해 나섭니다. 그에게 한통의 익명 편지가 배달되는데, 그것은 암살 모의가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구스타프 3세는 예전에도 그런 소문을 몇 번 들어넘긴 적이 있었고 더군다나 왕으로서의 권위를 중시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암살 모의를 무시하고 극장에 들어섭니다. ![]() [구스타프 3세. 위키피디아 에서] 최후의 만찬이 끝나고 가면무도회장에 들어선 구스타프 3세에게 세 명의 검은 가면을 쓴 사람들이 다가 옵니다. 그들은 프랑스어로, "안녕하십니까. 아름다운 가면이군요."라고 인사하더니, 뒤로 돌아가 왕에게 총을 쏘아버렸습니다. 구스타프 3세는 그 총상으로 며칠 뒤에 죽었고, 범인들은 앙카스트롬 장군이 주동이었고 클라에스 호른과 아돌프 리빙이 따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앙카스트롬 장군은 대역죄로 오른손이 절단 당한 뒤에 처형당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은 상당히 흥미진진한 이야기거리가 되었습니다. 화려한 가면무도회 도중에, 가면에 얼굴을 가려 정체를 알 수 없는 부하들이 다가와서는 반역을 일으켜 암살한다는 게 상당히 시적이라고들 생각했던 겁니다. 그후 시간은 흘러흘러, 결국 나폴레옹의 부하였던 베르나도트 장군이 스웨덴의 왕이 되고, 왕이 된 다음에는 다시 나폴레옹에게 배반하고,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그의 조카 나폴레옹 3세가 다시 프랑스의 황제가 된 시대가 왔습니다. 나폴레옹 3세는 1855년 외국인에게 암살당할 뻔 하다가 살아남았습니다. 1960년대 우리나라에서 육영수 여사가 저격당했을 때, 문세광 주변의 일본인들에 대한 신원을 확보하기 위해서, 나폴레옹 3세 암살 저격사건의 사례를 외교관들이 연구했던 일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그 사건이 아직 좀 회자되는 편입니다. 이 나폴레옹 3세 저격사건은 베르디의 오페라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 [나폴레옹 3세] 당시 베르디는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로, 리골레토, 일 트로바토레, 라 트라비아타를 만든 직후쯤의 시기였습니다. 베르디는 그 무렵 이탈리아 통일 운동에 관심이 많았고, 비토르 엠마누엘레 왕계열 통일운동을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지방 귀족 세력들의 존재가 시민들을 억압하고, 통일을 막고 있다는 생각에 동조했고, 이것을 왕을 잘 추대해서 입헌군주국을 만들어서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귀족들이 나쁘게 나오고, 왕이 멋있게 나오는 오페라를 하나 만들기로 생각했습니다. 베르디는 일전에 여러 예술가들에게 대단한 관심을 끌었던, 스웨덴 구스타프 3세의 가면무도회 암살장면을 떠올렸습니다. 가면무도회에서 부하에게 배반당해 죽는다라. 굉장히 극적이고 멋있는 장면이 나올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구스타프 3세는 문화사업쪽의 치적때문에 시민들에게 인기가 있는 면도 있었으니 그 점을 과장해서 아주 멋진 인물로 그리면 그럴듯해 보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시민들이 국왕을 찬양하는 합창장면을 넣고, 비열한 귀족들의 장면들을 넣으면, 지방귀족세력 타파-입헌군주제 지지라는 자기 주장을 잘 집어 넣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거기다가 이탈리아 특유의 사랑 3각관계 이야기도 하나 지어내서 끼워 넣으면 한결 더 재밌어 질거라고 상상한 겁니다. 그런데, 당시 이탈리아 나폴리 일대를 접수하고 있던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 황제 정부가 이 오페라에 시비를 걸고 나섰습니다. 당시는 나폴레옹 3세 저격사건 직후라서, 불경하게 왕을 암살하는 내용을 담을 수 없다는 것도 있었고, 이탈리아 통일 운동을 탐탁찮게 생각하는 프랑스의 입장도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나폴레옹 1세에 정면으로 대들고 나서던 구스타프3세가 멋있게 나오다니, 그것도 마음에 안듭니다. 그리하여, 베르디는 개봉장소를 나폴리에서 로마로 옮기고, 무대도 저 머나먼 미국으로 옮깁니다. 구스타프 3세는 총독 리카르도로 바뀌었고, 암살범이자 부하인 앙카스트롬 장군은 총독의 부하 지사인 레나토로 바뀌었습니다. 앙카스트롬 장군을 따르던 클라에스 호른과 아돌프 리빙은 샘과 톰으로 바꾸었습니다. 내용을 봐도 그렇고 대사나 무대에 대한 설명을 봐도 그렇고, 미국 분위기나 총독-부하의 관계와는 아무 상관도 없이, 어느 유럽 왕가 분위기가 풀풀나는 작품이었지만, 그냥 이름만 그렇게 바꾸어 눈가리고 아웅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오페라는 개봉에 성공했습니다. 이처럼 오페라의 초연은 배경과 이름은 미국이되 내용은 전혀 상관없이 18세기 스웨덴 왕실로 꾸미는 것이었지만, 요즘에는 원래의 의도를 존중하여 이름과 배경을 스웨덴으로 바꿔서 공연하는 것도 있습니다. 가끔은 배경과 이름에 들어맞도록 18세기 미국 분위기로 공연하기도 합니다. 특히 미국에서 자주 그러는 듯 합니다. 어느 장단에 춤출지 애매한 사람들에게 현대적이고 추상적인 분위기로 연출하는 제3의 선택도 좋은 선택이 됩니다. 이 오페라의 초연 뒤에 사람들은 환호하며, "비바, 베르디!"를 외쳤습니다. 언제부터인지는 좀 불분명 합니다만, 베르디(Verdi)가 "비토리오 엠마누엘레를 이탈리아의 왕으로"(Vittorio Emanuele Re d''Italia)라는 말의 약자라는 언어유희가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통일 되지 못한 이탈리아 사람들의 신세를 투영하던 나부코의 히브리 포로들의 합창 때부터, 베르디는 이탈리아 통일 운동의 마이클 무어로 보이기도 했던 겁니다. 그래서 베르디의 오페라에 환호를 보내는 "비바, 베르디!"는 이탈리아 통일 운동의 구호가 되기도 했습니다. 오페라도 성공을 거두었고, 후일 비토리오 엠마누엘레도 소원대로 이탈리아의 왕이 되어 통일도 이루어졌습니다. 요즘에도 이탈리아 사람들은 데모 할 때, 히브리 포로들의 합창을 자주 부르더군요. 뭐, 축구할 때 응원가로 아이다 개선 행진곡 부분을 부르기도 하고 말입니다.
|
이글루 파인더
게렉터블로그 목록
카테고리
최근 등록된 덧글
더카니지/ 감사합니다.
m..
by 게렉터 at 08:42 Film 2.0 07년 2월호(321.. by 볕뉘 at 07/22 http://www.dvdprime.. by miziwang at 07/21 어제나 저제나 하고 기.. by shuha at 07/21 음 별로 공감은 가지 않지.. by 곰돌군 at 07/21 잘 읽었습니다~ by kisnelis at 07/21 으아 제가 읽은 것중 가장.. by 살모넬라 at 07/21 다행히도(?) 스토리는.. by 잠본이 at 07/20 조무래기 처리하는 부분.. by 타누키 at 07/20 감상문 잘 읽었습니다. .. by 예영 at 07/20 창이: 정체를 드러내보.. by 동사서독 at 07/20 기대했던 리뷰 감사합니다. by 뚱띠이 at 07/20 이걸 보고 나니 [다찌마.. by marlowe at 07/20 멋진 리뷰 항상 감사드.. by 더카니지 at 07/20 학창시절에 가장 흥미롭.. by 냐옹쟁이 at 07/19 브이에 관한 글을 살펴.. by 짱깨 at 07/18 이거 낚시할때 팁 있습니.. by 요하니 at 07/18 아롱쿠스/ 정말 박동룡 .. by 게렉터 at 07/18 너무 소심하신 것 같습니.. by ydhoney at 07/17 31-2 애피소드는 환상여.. by 냐옹쟁이 at 07/15 최근 등록된 트랙백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
by 잠보니스틱스 "놈놈놈 2"를 이런 내용으.. by 과학의 신 [맞나?;...] 틀리면 .. by 허무와 모에...그리고.. shinvee의 생각 by shinvee's me2DAY 은하탐사 2100년 보더 플래닛 by The 1D-th Stori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