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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뜬금 없는, 벨 에포크에 대한 이야기
2. 베리스모 3. 줄거리 4. 달에 머리를 얻어 맞은 듯 5. 한국 초연 6. 대전 공연 1. 뜬금 없는, 벨 에포크에 대한 이야기 벨 에포크 시대, 사실은, 중언부언 인 표현 입니다. 벨 에포크 가 “좋은 시절”이라는 뜻입니다. 1900년을 전후한 프랑스의 “벨 에포크”라는 이 시절을 가장 잘 상징하는 캐릭터로 흔히 “아르센 뤼팽”을 꼽습니다. 자본주의, 예술적 식견, 사치스런 취향, 과학, 국가와 민족에 대한 애정, 개인주의, 빈곤, 무정부주의가 마구 뒤섞인 그 독특한 성격은 과연 19세기 말, 20세기 초 프랑스의 벨 에포크 정서를 잘 표현 합니다. [아르센 뤼팽] 인상파 화가의 시기이자 현대 샹송의 태동기인 이 예술의 황금기의 이면을 장식하는 또다른 독특한 이미지는 바로, 가난하지만 예술의 혼을 잃지 않는 배고픈 예술가의 심상입니다. 예술과 자본주의의 황금기에 예술적 성공이나, 아름다움 그 자체에 취해 불나방처럼 도시로 모여든 젊은이들은 부지기수였고, 경제적으로 신통치 않은 신세가 된 그들은 그러한 빈곤을 “벨 에포크” 시대 자체가 갖고 있는 절묘한 낙관주의로 장식하면서 “멋있는 배고픈 예술가”의 긍정적인 전형을 형성했습니다. 흔히 벨 에포크 시대를 1889년 파리 만국 박람회부터, 1914년 제 1차 세계 대전까지를 구체적으로 일컫기도 합니다만, 이 시기가 공산주의가 가장 빠른 속도로 발전하던 시기임을 생각하면, “아르센 뤼팽”이 예고 절도를 하고, 시민들에게 인기를 얻으며 사기를 친다는 이 시기 파리의 밤이 어떤 느낌인지 대강 그림이 나옵니다. 그리하여, 가난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평화로운 가정이나 청교도적인 성실함에는 아무런 뜻 없이 낙천적으로 이끌리는 데로 방랑자처럼 사는 이러한 예술가 무리들을 흔히 “보헤미안”이라 일컫게 되었습니다. 보헤미아는 집시들이 많이 사는 동유럽 지역이었는데, 덕분에 집시를 종종 “보헤미안”이라고 일컬었고, 이들 예술가들의 성향도 “집시”라고 불리게 된 것입니다. [푸치니]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음악 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벨 에포크 시대의 여명기를 살던 “푸치니”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대대로 성당의 오르간 연주자이면서 음악가였던 집안에 태어나서 자연스럽게 음악에 발을 디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집안 사정은 그다지 넉넉하지 못했고, 어려서부터 천재성을 나타낸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이 사람은 1876년 오페라 “아이다”를 보고, 어린 마음에 감동에 빠져 오페라 작곡가가 되기로 굳게 결심했고, 이후로 오페라에 대한 열정만은 불타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유 분방하게 친구들과 밤마다 술을 마시며 어울려 다니기도 하고, 한 여인과 어린 시절 가족이 반대하는 연애와 동거 생활을 하기도 하는 등, 객지에서 음악가로 성공해 보겠다며 이리저리 고생하던 시절을 보낸 그는, 몇몇 오페라를 만들면서 약간은 성공하기도 하고 약간은 실패하기도 했습니다만, 착실히 경력을 쌓아나갔습니다. 그리고, 1893년에 드디어 “마농 레스코”라는 오페라를 개봉하면서부터 인생이 풀려나갔고, 이 “마농 레스코”로 부와 명성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이보다 좀 앞서서, 음악 학교 시절 룸메이트였던 마스카니 또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라는 오페라로 성공을 거두고 있었으므로, 이들은 이제 옛 시절을 잊고 상류사회의 여유에 젖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전형적인 벨 에포크 시대의 부유층이 되어 갈 무렵, 푸치니는 조금은 가난하고 고달팠지만, 꿈과 웃음만은 가득했던 과거를 추억하면서, “라 보엠” 즉 “보헤미안”을 기획하기 시작합니다. 2. 베리스모 1907년 신채호는, 중국의 양계초가 쓴 “이탈리아 건국 삼걸전”을 번역하여 출판하였습니다. 약한 나라가 강대국들의 압박을 딛고 성장하기 까지 영웅적으로 활약하는 일대기를 담은 이 책은, 당시 망해가던 대한제국에도 그런 영웅이 나오길 바라는 신채호의 염원이 담겨 있었습니다. 책 자체는 지금까지도 근대 고전 부분에서 어느 정도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건국 삼걸전”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805년 이탈리아의 제노바에서 한 호걸이 탄생했으니 그 이름 마치니다. 그만으로 부족했던가, 2년 뒤 한 호걸이 역시 탄생했으니 가리발디다. 그래도 부족했던지 그 이름 카부르다. 세 영웅 이후 천년 무덤 속 이탈리아는 드디어 살아 숨쉬게 됐다.” [가리발디] 실제로 이리저리 분열된 약소국에 지나지 않았던 이탈리아는 19세기에 마치니, 가리발디, 카부르 세 사람의 활약을 필두로 결국 1871년 로마를 서울로 삼아 통일을 일구어 내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이 통일을 전후로 한 국면의 전환은 이탈리아 문화계에도 새로운 변화를 갖고 오게 됩니다. 이탈리아가 약소국이긴 했지만, 그 덕분에 도시 문화가 발달하여 오히려 베니스를 필두로 수많은 곳들은 르네상스 무렵부터 사치스런 귀족예술의 황금지역이기도 했습니다. 그 전통은 성격을 달리하면서 지속적으로 이탈리아 예술에 어느 정도 남아 있었는데, 19세기 통일을 전후로하여, 이탈리아의 상황은 급격히 쇄신 일로를 달리고 있었고, 그러면서 “사실주의” 라는 뜻이 “베리스모”라는 유행이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비슷한 시기에, 아주 독특하고 색다른 오페라인 프랑스의 “카르멘”이 유럽에서 크게 유행하게 됩니다. 카르멘 이전까지 오페라를 화려하고 번쩍번쩍하게 만들려면, 비현실적인 신화나 판타지적인 이야기를 하거나 눈을 휘둥그레하게 하는 현란한 귀족들의 호사스러운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 상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카르멘”은 담배공장 노동자들과 사병계급의 군인, 밀매업자와 시장터 사람들로 그 어떤 오페라보다 박진감 넘치고 화려한 이야기를 보여주었고, 이는 이탈리아의 오페라인들에게 강렬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카르멘의 충격이 사실주의라는 “베리스모” 유행과 어울려, “베리스모 오페라”라는 것이 등장합니다. 베리스모 오페라는 비현실적인 신화나 귀족들의 파티를 될 수 있는 한 벗어나려고 합니다. 대신 평범한 배경의 인물이나 일상사에서 가능한 사건을 줄거리 상의 소재로 삼고 이를 표현할 수 있도록 음악을 꾸밉니다. 그리고, 기술적으로도 지나치게 도약적이거나 장식적인 콜로라투라 노래를 피하고 인간과 인간의 감정적 갈등을 표현하는 중창을 다듬는 등의 특징이 있었습니다. [푸치니] 바로, 이 베리스모 오페라의 진수를 보여준 인물이, 푸치니의 음악 학교 시절 룸메이트였던 마스카니였고, 그의 대표작인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가 그 초기 대표작이었다고 할 것입니다. 푸치니의 출세작인 “마농 레스코”도 귀족의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많은 부분에서 베리스모 오페라의 성격이 드러나는 베리스모 오페라 작품입니다. 그러나 베리스모 오페라의 충격을 이탈리아에 몰고 온 옛 룸메이트, 마스카니의 솜씨를 능가할 명작은 “마농 레스코” 말고도 따로 있었습니다. 푸치니가 마농 레스코로 성공하고 자리를 잡아갈 무렵이었습니다. 애초에 “팔리아치”로 명망이 있던, 작곡가인 레온카발로라는 사람이 알고 지내던 푸치니에게 소설을 하나 소개합니다. 벨 에포크 시대, 파리의 보헤미안 예술가들의 정서를 절묘하게 표현한 이 소설은 프랑스인인 뮈르제의 “보헤미안의 삶”이었습니다. 푸치니에게 이 소설을 자기가 오페라로 쓸 것이라고 이야기한, 레온카발로는 “보헤미안의 삶” 오페라 버전을 작곡하기 시작했습니다. 푸치니는 그다지 큰 관심은 없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푸치니는 은근슬쩍 자기도, “보헤미안의 삶”을 토대로한 오페라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푸치니는 “보헤미안의 삶” 원작을 상당부분 무시하고, 음악과 무대, 가사, 줄거리와 인물들이 잘 구성이 되도록 대대적인 각색작업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던 중, 자기 아이디어를 듣고 푸치니가 똑같은 내용의 오페라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안, 레온카발로는 푸치니에게 크게 따졌습니다. 아이디어를 도둑질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푸치니는 “창작의 자유”를 내세우며 뒤지지 않았고, 둘은 신문지상에서까지 갑론을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푸치니는 신문에서 “레온카발로는 레온카발로의 오페라를 쓰고, 나 푸치니는 푸치니의 오페라를 써 보자. 누구의 것을 들어야 하는지는 오페라가 동시에 개봉되고 나면, 대중들이 판단하도록 하자.”라고 선언했습니다. 아마도, 레온카발로는 그 기사를 읽고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푸치니에게 지지 않도록 밤낮 심혈을 기울여 자기 오페라를 만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레온카발로에게는 애석하게도, 이 둘의 싸움은 푸치니의 압승으로 끝이 났습니다. 사실 레온카발로의 오페라도 개봉 당시에는 평도 좋았고, 인기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푸치니의 오페라는 그런 레온카발로의 것을 월등히 넘어서서, 21세기의 우리에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오페라 중 하나이자, 베리스모 오페라의 최정점으로 꼽히기도 하는, “라 보엠”으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이로써, 허구헌날 같이 술먹으며 어울려 다니던 룸메이트, 마스카니와 푸치니는 베리스모 오페라에서 화려한 쌍벽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보헤미안 예술가들보다는 벤처기업의 신화에 익숙한 21세기의 우리에게는, 어쩐지 브린과 페이지나, 워즈니악과 잡스를 떠올리게 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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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별로 공감은 가지 않지..
by 곰돌군 at 01:11 잘 읽었습니다~ by kisnelis at 01:08 새로워진 실시간 테크노.. by 행운 at 00:40 으아 제가 읽은 것중 가장.. by 살모넬라 at 00:34 다행히도(?) 스토리는.. by 잠본이 at 07/20 조무래기 처리하는 부분.. by 타누키 at 07/20 감상문 잘 읽었습니다. .. by 예영 at 07/20 창이: 정체를 드러내보.. by 동사서독 at 07/20 기대했던 리뷰 감사합니다. by 뚱띠이 at 07/20 이걸 보고 나니 [다찌마.. by marlowe at 07/20 멋진 리뷰 항상 감사드.. by 더카니지 at 07/20 학창시절에 가장 흥미롭.. by 냐옹쟁이 at 07/19 브이에 관한 글을 살펴.. by 짱깨 at 07/18 이거 낚시할때 팁 있습니.. by 요하니 at 07/18 아롱쿠스/ 정말 박동룡 .. by 게렉터 at 07/18 너무 소심하신 것 같습니.. by ydhoney at 07/17 31-2 애피소드는 환상여.. by 냐옹쟁이 at 07/15 이런 분 한번 뵈서 이야기.. by 미고자라드 at 07/15 2. 1979년의 "뒤돌아보지.. by 이준님 at 07/15 말나온김에 한번 인터뷰.. by 미친과학자 at 07/15 최근 등록된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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