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보엠 - 2003년 대전 공연 3. 4. 5. 6. (줄거리 및 감상)
1. 뜬금 없는, 벨 에포크에 대한 이야기
2. 베리스모
3. 줄거리
4. 달에 머리를 얻어 맞은 듯
5. 한국 초연
6. 대전 공연


3. 줄거리

“라 보엠”은 지루하지도 않고, 후딱후딱 전개된다는 느낌마저 드는 오페라입니다. 그렇습니다만, 의외로 특별히 줄거리라고 할만한 것은 없습니다. 가난한 네 명의 예술가들이 유쾌하게 살고 있는데, 그 중 주인공인 작가 로돌포가 미미라는 역시 가난한 수놓는 여인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집니다. 두 사람과 친구들은 크리스마스 이브를 멋지게 보내고 사랑의 나날들을 보내지만, 미미가 병들어 죽으면서 사랑은 서글프게 끝이 난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뮤제타라는 돈 많은 남자 애인 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여인과 로돌포의 가장 친한 친구 화가 마르첼로 의 밀고 당기는 사랑 이야기도 병행되고 있습니다. 주인공과 그 친구들인, 로돌포, 마르첼로, 콜리네, 쇼나르는 서로 죽이 척척맞는 재미난 일당들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작곡 직후 무렵의 라 보엠 악보 표지]

이 중에, 로돌포는 소설 원작자 뮈르제 자신을 반영하고 있으며, 마르첼로는 뮈르제의 룸메이트였던 샴플루에니라는 사람을 반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라 보엠”은 이렇듯 줄거리가 단순하기에, 스포일러 같은 것은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게다가 “라 보엠”은 가수들이 주고 받는 호흡의 묘미와 그 서정적인 곡조를 같이 즐기는데 묘미가 있기에, 그 노래들을 미리 CD나 DVD로 여러 번 들어보고, 충분히 익숙해진 뒤에 공연을 보는 것이, 다른 오페라에 비해 더 재미있으리라 봅니다.

“라 보엠”의 노래들은 아름답긴 하지만, 처음 들었을 때 바로 독특하다는 느낌이 들거나 강렬한 곡조를 딱히 내세울 만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세련된 멜로디가 들으면 들을수록 좋은 것들이 많습니다. 20세기 초반 찰리 채플린 영화 배경음악의 방향이 바로 “라 보엠”에서 잡힌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따뜻하게 늘어지는 낭만파의 전형적인 곡조들은 겨울에 21세기의 우리가 “옛 예술가들의 낭만”을 괜히 공상하기에 딱 떨어지는, 아주 전형적인 “오페라스러운 것”일 겁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대체로 오페라를 좋아하는 편이라면, 옛날 서로 죽이 잘맞았던 친구 일당들 끼리 오랜만에 만나서 옛날 생각하면서 같이 보기에 적당한 오페라이기도 합니다.

[코네티컷 오페라의 라 보엠 1막 다락방 작업실 장면]

“라 보엠”은 특히 “라 보엠”을 공연하는 가수들과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관객들 이상으로 애정을 갖는 작품으로도 유명합니다. 무엇보다, 가난한 예술가들의 처지를 노래하는 이야기라서 감정이입이 잘 되어서 이기도 할 겁니다.

하지만, 또 그만큼, “라 보엠”은 한 사람의 화려한 기교나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내세우기 보다는, 이 친구들끼리 “죽이 잘 맞는 모습”을 묘사하기 위한 어울림과 주고 받음에 중점을 두고 있기에 같이 연습하면서 정이 많이 들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대표적인 베리스모 오페라다운 특징이라고 할 것입니다.


4. 달에 머리를 얻어 맞은 듯

오페라의 왕, 베르디의 솜씨로, 세상 오페라의 정석은 이탈리아 오페라이고, 다른 특이한 영역은 바그너의 독일 오페라라고 양분되어 있을 무렵, 신선한 충격으로 “카르멘”은 프랑스 오페라의 자존심을 내세웠다고 할 것입니다.

이후에, 카르멘이 이룬 프랑스 “제국의 역습”을 평정하고, 오히려 “카르멘”이 이끌기 시작한 베리스모 오페라의 정점에서 “카르멘”의 여파를 완전히 흡수한 오페라가 “라 보엠”이라고 하겠습니다. 말하자면, “라 보엠”은 “이탈리아 오페라의 귀환”인 셈입니다.

[코네티컷 오페라의 라 보엠 2막 카페 모뮈스 장면]

프랑스인 음악가인 드뷔시가 라 보엠을 보고 “자신을 단단히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이 오페라의 불길이 살짝 닿기만 해도 넋을 빼앗기게 된다.”과 극찬하면서 “푸치니만큼 이 시대 파리의 분위기를 훌륭하게 표현해낸 사람을 알지 못한다”고 평했으니, 충분히 근거있는 이야기 입니다.

“라 보엠”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처음 만난 두 남녀가 어두운 밤 희미한 달빛과 별빛 아래서 손을 한 번 잡아보고 확 사랑에 푹 빠져버리는 그런 내용으로 1막을 장식합니다. 그리고 어떤 소동이나 꿈처럼 이 사랑의 추억을 신나고 아름답게 묘사하고, 결국 현실의 벽에 부딪혀 미미의 죽음으로 끝이 나게 됩니다.

이런 라 보엠의 음악은 “딥 임팩트”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에서도 쓰이고 있고, 피터 잭슨 감독의 “천상의 피조물”에서도 능동적으로 쓰입니다만, 가장 적극적인 예는 “문스트럭”일 겁니다.


[주세페 디 스테파노의 라 보엠]

이 영화는 셰어가 약혼자를 만나서 결혼에 대해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러 왔다가 약혼자 동생인 니콜라스 케이지와 하루만에 사랑에 빠지는 바람에 모든게 뒤죽박죽이 된다는 이야기 입니다. 이 때, 니콜라스 케이지가 데이트 삼아 저녁에 오페라 보러 가자고 해서는 보는 것이 바로 “라 보엠” 입니다.

문스트럭의 제작진들은 영화의 오페라 포스터에 오페라 제작진의 이름에 자기 이름을 써놓는 장난을 치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 영화에서 노인역을 연기한 페어도어 챌리어핀은 20세기초에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활약한 이름난 베이스 페어도어 챌리어핀의 아들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또 “라 보엠”을 이야기할 때 빼어 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테너로 꼽히는 엔리코 카루소 입니다.

엔리코 카루소는 빈민가에서 태어났지만, 노래에 대한 재능 하나로 최고의 성악 스타가 된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그의 재능을 발굴한 인물은 빈센초 롬바르디라는 지휘자였습니다. 그는 베리스모 오페라의 향취를 엔리코 카루소가 기가 막히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단순하게 생각해 보아도 빈민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가, 적어도 베리스모 오페라의 감정을 잘 살리는데 적역이었음은 쉽게 추측 할 수 있습니다.

카루소가 데뷔한지 2,3년이 지난 무렵에, 엔리코 카루소는 “라 보엠”에 출연할 기회를 얻고자 푸치니를 찾아가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엔리코 카루소의 노래를 들은 푸치니는 감탄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누가 자네를 보냈나? 하느님인가?”

여자 관계가 복잡한 편이었던 카루소는 라보엠에서 상대역 미미를 연기한 아다 지아케티와 사랑으로도 이야기거리를 남겼으며, 인기 소프라노 넬리 멜바의 손을 잡으며 “그대의 찬 손”을 노래하는 장면에서, 뜨거운 소시지를 손에 쥐어주며 그녀를 놀린 이야기도 아주 유명합니다.

한편 1900년 필라델피아 공연에서 오페라가 끝날 즈음 “낡은 외투의 노래”를 불러야 할 때, 상대 베이스의 목소리가 잠겨 버리자, 상대 베이스는 입모양만 립싱크하고, 카루소는 등을 돌린채 베이스 파트의 목소리를 완벽히 흉내내어 노래해서 넘어 갔다는 이야기도 전설로 남아 있습니다.

라 보엠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렌트”라는 브로드웨이 뮤지컬도 대단한 인기를 끄는 명작입니다. “렌트”에서는 뉴욕 슬럼가를 무대로 예술가 친구들이 록밴드와 영화쟁이, 컴퓨터해커 등으로 등장하고, 미미는 마약 때문에 몸이 허약해진 나이트클럽 댄서로 나옵니다.


5. 한국 초연과 크리스마스

“라 보엠”의 한국 공연은 1959년 서울 오페라단이 서울 시공관에서 처음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1959년이니, 4.19와 5.16을 목전에 두고 있던 자유당 말기의 혼란스러운 시기면서, 동시에 전쟁의 여파가 대강 정리되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니 아무래도 다른 오페라보다 “가난”과 “도시에 날아든 사람들의 꿈”에 관한 “라 보엠”이 충분히 시도해 볼만한 것이었을 겁니다.

“라 보엠” 초연 때는 4막에서 미미가 등장하기 직전에 갑자기 천장의 배기관 연통이 떨어져서 쇼나르의 얼굴을 때려버리는 큰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일단 무대에 올라서면, “show must go on”은 동서고금의 진리인지라, 콜리네가 소품 손수건으로 쇼나르의 피가 철철흐르는 코를 재빨리 감싸면서 얼렁뚱땅 원래 그렇게 연출하기로 되어 있었던 것으로 꾸며대고 중단없이 넘어갔다고 합니다. 그렇긴 합니다만, 자칫 대단히 위험한 사고가 될 뻔했다고 하며, 당시 쇼나르 역은 신경욱이 맡고, 콜리네는 이인영이 맡았다고 합니다.(* 오페라실패담, 오현명(1986))

신경욱은 공교롭게도 이후, 돈조반니 에서도, 연습중 무대장치가 얼굴에 떨어져 18바늘을 꿰메게 되기도 했습니다.

“라 보엠”은 오페라에 단골로 등장하는 협잡, 음모, 살인 등등의 강렬한 이야기 없이, 다만 겨울 도시의 심상과 서로 척척 들어맞는 친구, 연인들의 모습을 따뜻하게 표현하는 것으로 장식하는 오페라입니다. 그래서, 흔히 가족단위의 관람이나, 크리스마스 특선 공연으로 자주 편성되곤 합니다.


6. 대전 공연

2003년 11월, 대전 문화 예술의 전당에서, 러시아 스타니슬라브스키 오페라의 “라 보엠”이 공연되었습니다. 스타니슬라브스키 극장은 “스타니슬라브스키”의 이름 때문에라도 꽤나 유명한 극장이고, 스타니슬라브스키 오페라의 “라 보엠”도 어느 정도 뛰어나다는 이야기를 들어 왔으므로, 상당한 기대를 하고 공연을 보러 갔습니다.

역시, 한국의 지방에서 오페라를 공연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지, 객석의 1/4정도를 간호사관학교 생도들로 채우고 있었습니다.

“라 보엠”은 서곡 없이 바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시작하자마자, 마르첼로와 로돌포가 추위에 진절머리를 내며 농담 따먹기를 합니다. 가난한 그들은 땔감이 없자, 결국 로돌포 자신이 쓴 연극 원고를 태워서 땔감으로 씁니다.

가난한 예술가가 자신의 원고를 땔감으로 쓴다는 이 극적인 장면은 애잔함을 표현하면서도 따뜻한 감상을 담고 있는 그야말로 낭만주의적인 음악과 멋지게 어우러집니다. 그래서 그런 상황에서도 농담 따먹기를 하면서 낙천성을 잃지 않고 꿋꿋한 이들의 정서를 잘 표현합니다.

“라 보엠”의 시작 장면은 화려한 연출도 없고, 그렇다고 기교적이거나 대단한 아리아도 없습니다. 하지만 대신에 “자기 원고를 땔감으로 쓰는 작가”라는 극적인 상황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표현하는 감상적이고 서정적인 음악으로 시작장면에서 관객들의 흥미를 유발시키고, 극중 인물에게 확 빨려 들도록 합니다.


[스타니슬라브스키 오페라의 라 보엠 2막 카페 모뮈스 장면]

이 장면에서 시작에서 뭔가 잠깐 타이밍을 놓쳤는지, 오케스트라가 확실하게 어울리지 못하고 좀 시원찮았습니다. 시원찮았다고는 하지만 문제가 심한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이 날 공연에서 오케스트라는 전반적으로 좋았는데, 어쩐지 시작부분에서는 그저그런 수준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푸치니는 “라 보엠”에서 바그너의 유도동기 기법을 꽤나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물이나 정서를 표현하는 주제 곡조를 하나 정해 놓고, 극중에서 그것을 암시하고자 할 때, 어울리도록 그 정서나 사물에 해당하는 곡조를 음악속에서 오케스트라가 배경으로 연주하게 하는 것입니다. 푸치니는 바그너의 유도동기를, 바그너의 직접적인 모방에 그치지 않고, 가장 자신의 것으로 잘 소화한 작곡가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연주는 너무 튀어도 안되고,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될 정도가 되어도 안되고, 또 그러면서도 연출의 타이밍과도 잘 맞아야 하는데, 이날 오케스트라는 이런 점을 살리려고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라 보엠”은 악보자체가 좀 특이하고 어려운 오페라로도 유명한데, 각오를 단단히 하고 연습을 했기 때문인지, 험한 파도를 잘 헤쳐나가 주었습니다.

곧, 다른 친구들이 하나 둘 들어오고, 크리스마스 이브의 정서를 노래합니다. 이 때, 밀린 방세를 달라는 집주인이 등장해서 위기에 빠지지만, 네 명의 친구들은 A급 사기단 처럼 척척 호흡이 맞게 노래를 주고 받으며 이 집주인의 혼을 빼놓고, 결국 교묘하게 집주인을 궁지로 몰아 방세를 떼먹습니다.

공연에서는 네 친구들 중에 “콜리네”역은 상당히 묘사가 뛰어났습니다. 연기한 가수가 괜찮은 베이스였을 뿐만 아니라, 넷 중에 가장 익살스럽고 낙천적인 조연인 “콜리네”를 표현하기에, 꺽다리 말총머리 청년으로 형상화 시킨 아이디어도 아주 괜찮았습니다.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주인공의 친구 음악가 커즈모 브라운 캐릭터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파라르의 미미]

“라 보엠”에는 그렇게 어려운 곡이나, 정신나간 콜로라투라 곡이 없기에 가수들이 심하게 고생하는 부분은 거의 없습니다. 물론 고음 섞인 아리아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더욱 중요한 것은 여러 사람이 등장하는 많은 장면에서 서로 가창의 호흡과 화음을 잘 맞추는 것입니다, “친구들”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로돌포와 마르첼로는 쿵짝이 척척 맞아들었고, 말씀 드린대로, 콜리네는 사이사이에 깔끔하게 양념을 치고 있습니다.

로돌포가 성냥을 빌리러 온 미미와 처음으로 만나는 장면에서 드디어 우리의 프리마 돈나 미미가 등장했습니다. 미미역을 맡은 가수는 건장한 체격의 소프라노로 무난한 노래 솜씨를 보여주었습니다만, 다른 배역을 맡은 가수들과 어울림은 로돌포-마르첼로나 콜리네에 비해서는 부족한 듯 했습니다.

사실, “라 보엠”의 미미는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 그리고 “호프만 이야기”의 안토니아와 더불어 제가 오페라의 3대 가녀린 여주인공으로 꼽는 인물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병약하고 가녀린 것으로 설정된 인물이 “라 보엠”의 미미일 겁니다.

그런데,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은 대체로 풍채가 좋고 힘 센 사람인 경우가 많기에, 실력 좋은 소프라노가 가녀린 미미를 연기하기가 어색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것은 19세기 초연 이후부터 항상 시달리는 문제이긴 합니다. “라 트라비아타”에서 비올레타가 죽는 장면에서도 똑 같은 문제가 항상 도마에 오르곤 합니다.

사실 오페라 가수들의 덩치 문제는 참 고질적인 것이어서, 요즘의 “라 보엠”만 해도, 로돌포 역을 맡은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가난한 작가의 낡은 의자로 설계된 의자에 앉았다가 의자가 부서지는 바람에 소품 제작을 다시했다는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입니다.

어쨌거나, 두 사람이 첫눈에 사랑에 빠져, 서로 이름을 물어보는 장면을 노래하는 로돌포의 “그대의 찬손”과 미미의 답가 “내 이름은 미미”는 가장 유명한 오페라 아리아들이 줄지어 대구를 이루며 나오는 만큼 듣기 좋긴 했습니다. 앞서 언급했다싶히, 결코 두 사람의 노래 실력 자체가 문제 있게 삐걱거린다거나 하는 느낌은 없었습니다.

첫 눈에 서로 이끌린 두 사람은,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이니 밖에 나가서 같이 다니기로 하고, 시내로 외출합니다. 이로써 1막이 막을 내립니다.


[레나타 테발디의 미미]

2막으로 넘어가서, 친구들은 크리스마스 이브니 만큼, 카페에 가서 좋은 저녁식사를 하고 포도주도 한 잔씩 하기로 합니다. 그리하여, 겨울 밤 파리의 거리를 묘사하는 장면이 2막의 처음을 장식합니다.

이 장면의 구성은 “라 보엠”이 갖고 있는 아주 멋드러진 장면 입니다. 물론 서민적인 인물들과 일상적인 소재만 갖고도 박력 있고 화려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것만 이야기하자면 “카르멘”도 훌륭한 솜씨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라 보엠”에서는 단순히 화려하다는 것 뿐만 아니라, 정말로 파리 거리의 노천 카페 앞 심상을 그대로 옮겨다 놓습니다. 말하자면, “카르멘”에서는 시장터나, 공장의 모습을 소재로 가져와서 기존의 오페라의 화려한 모습에 투영시켜 “꾸며내지만”, “라 보엠”에서는 파리 거리가 생동감 있는 개성을 그대로 “재현”합니다. 그 결과로, 기존의 오페라에서 느낄 수 없었던 아주 색다른 분위기를 표현하게 됩니다.

“카르멘”에서 4막의 투우장 근처 장면은 투우장 근처의 상인들과 행인들이 서로 합창을 하면서 하나의 곡조를 만들고, 인기 투우사가 등장하자 환호하는 장면은 “아이다”의 군중 장면과 어느 정도 연결이 됩니다.

하지만, “라 보엠”에서는 거리를 지나는 행인, 장난감 장수, 몰려다니는 아이들, 카페의 사람들 등등이 서로서로 각자의 길을 가면서 각자의 일로 대화를 하고 있고, 그 사이 사이에 친구들이 등장하고, 미미를 소개하고, 메뉴를 시키는 등등의 장면이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집니다.

이런 장면들을 노래하는 음악은 하나의 화음으로 단순하게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기묘하게 조성을 오가면서 입체적으로 펼쳐집니다. 조성을 초월하는 음악을 쓰던 바그너의 아이디어가 세련되게 계승된 듯 합니다. 그런 것들이 부산하면서 시끄럽고, 그러면서 겨울 밤의 입김과 가로등과 사람들과 불빛이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이브 시내의 정경이 갖고 있는 그 고유한 현대적인 심상을 생생히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적인 조성의 사용이 십분 극과 어울린다고 하겠습니다.


[파라르의 미미]

이 공연에서는 회전하는 무대에서 배우들이 직접 의자와 테이블 같은 무대 장치를 펼치면서 연기했는데, 거리의 부산한 느낌이 살아나는데 충분했고, 이 부분에서 활약한 어린이 합창단은 어려운 부분에서는 약간 힘들어 하는 친구도 있긴 했습니다만, 제가 우리나라에서 본 오페라 공연 중에서 가장 좋은 솜씨를 보여준 어린이 합창단이었습니다.

그리고, 대전 공연의 백미였던 뮤제타가 나옵니다. 이 공연의 연출은 뮤제타를 좀 강한 모습으로 그린 경향이 있습니다. 가죽부츠를 신은 늘씬한 뮤제타는 교묘한 몸짓을 하면서 깨끗하고 매끄러운 소프라노 소리를 들려줍니다. 그 인상은 다른 많은 “라 보엠”에 비해 확실히 차별화된 개성이 있었습니다.

다소 파격적인 이런 뮤제타 연출은 그 파격이 정도를 넘어서지 않고 소박했고, 거기에 더해 뮤제타와 뮤제타의 “봉”인 늙은 부자 캐릭터, 둘 사이의 조직력이 거의 완벽했습니다.

2막 장면은 전체적으로 화려한 장면을 표현하기에 합창단의 성량이 부족한 듯 했습니다. 그렇긴해도 앞서 말한대로, 오케스트라가 역할을 썩 잘하고 있어서, 그런 부족함을 조금은 메꾸어 줄 수 있었습니다.

3막의 연출은 쓸쓸한 맛을 극대화 시키는 좋은 것이었고, 두 사람의 노래는 좋았지만, 역시 미미의 노래가 단독으로는 좋아도 어울림은 부족해 보였습니다. 성량의 균형이 잘 안 맞는듯하기도 하고, 고음에서 화음을 이룰 때에 음색이 좀 어긋나게 들리기도 했습니다.

4막의 처음은 또 그림과 글을 앞에 놓고 작업중인 로돌포와 마르첼로에서 시작합니다. 다 사람은 어느새 떠나가버린 옛 애인을 그리워하는 상대방을 서로서로 못난이라고 놀리면서, 사실은 둘 다 무척 그리워 합니다. 이 장면에서 역시 로돌포와 마르첼로의 주고 받아 넘기는 기술은 탁월합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라 보엠]

그리고 그저 떠난 줄만 알았던 미미가 다 죽어가는 모습으로 다시 등장합니다. 미미를 간호해 주는 역으로 우리의 뮤제타가 다시 등장하고, 콜리네가 등장해서 유명한 “낡은 외투의 노래”를 부릅니다.

이 “낡은 외투의 노래”는 죽어가는 미미를 위해서 콜리네가 자기 외투를 팔기전에, “외투야 그 동안 추위에서 나를 지켜주느라 수고했다”며 부르는 노래인데, 이 장면에서도 콜리네는 자기 캐릭터를 잘 살리면서, 노래도 극의 분위기에 완전히 녹아들게 멋지게 소화하고 있었습니다.


[레나타 테발디의 미미]

사실 베이스는 오페라에서 멋진 아리아나 노래로 승부하는 배역이 없기에 베이스 가수들은 아쉬움이 많은데, 그런 그들에게 “라 보엠”의 “낡은 외투의 노래”는 참 반가운 곡입니다.

미미의 죽음으로 오페라는 끝이 났고, 역시나 뮤제타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가장 많은 갈채를 받았습니다. 아마추어팀의 오페라 공연도 보기 쉽지 않았던 대전에서는, 근래에 보기 드문 일정 수준 이상의 공연이었습니다. 역시 날씨가 추워지면, 라 보엠이야 말로 제격인 오페라 입니다. 뮤제타역을 맡은 가수를 좀 더 지켜보고 싶습니다. 스타니슬라브스키 오페라단 홈페이지에 있는 간단한 소개를 읽어보았습니다.

- 여기까지해서, 1주일 동안 흔히 세계 3대 오페라니, 혹은 오페라의 ABC라느니 하는, 아이다, 카르멘, 라 보엠을 한 번씩 둘러봤습니다. 다음 주 중에는 좀 짤막하게 오페라 DVD 에 대한 리뷰를 하나 올리겠습니다.


(*) 옛 가수들의 사진은 Sandy's Opera Gallery ( http://www.cs.princeton.edu/~san/ ) 에서 링크했습니다.
by 게렉터 | 2006/02/08 20:05 | 오페라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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