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멘 - 2004년 서울 공연 3. 4. (줄거리)
1. 반달족의 땅과 캐리비안의 해적
2. 셀레스트 베나르
3. 줄거리
4. 한국 초연
5. 서울 공연


3. 줄거리

“카르멘”의 줄거리는 두 주인공 카르멘과 동 호세에게 아주 집중되어 있습니다. 사실, 카르멘, 동 호세, 에스카미요, 미카엘라 네 명 정도가 주인공 급이지만, 카르멘과 동 호세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의 역할은 그다지 크지 않은 것입니다.

더군다나 동 호세의 역할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대체로 동 호세가 하는 일은 카르멘의 강렬한 개성이 드러나도록 멍석을 깔아주는 것이라고 할만합니다. 말하자면 동 호세의 역할은 카르멘 못지 않게 중요하지만, 그 “역할”이라는 것 자체가 카르멘을 돋보이게 해주는 것이란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카르멘”의 내용은 카르멘의 기막히게 강한 성격을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으로 남기는 것이 전부라고 할 만합니다.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배경은 현대의 에스파니아의 시끌벅적한 도시입니다. 이 “현대”는 19세기 후반 무렵입니다만, 20세기나 21세기라고 해도 큰 무리는 없습니다. 담배 공장 슬럼가에 카르멘이라는 아주 매력적인 집시가 있습니다. 주변 남자들 모두가 눈독 들이는 이 여자는 칼부림 사건에 연루되었다가 나오기 위해 성실하고 건실하기 그지 없는 병사, 동 호세를 유혹합니다. 진정으로 깊게 사랑하고 있다고해서는 일종의 기사도를 자극한 겁니다..

동 호세는 처음에는 오히려 카르멘에게 관심이 없는 유일한 청년이었으나, - 사실은 그런척 하려 했으나 - 카르멘의 필살 “세기디야” 한 방에 확 넘어갑니다. 그래서 “진정한 사랑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빠져, 카르멘의 탈출을 도와줍니다. 그러다가 결국 처벌을 받게 되고, 계급이 강등되고 영창 신세를 지게 됩니다. 영창에서 나와서는 카르멘에게 이끌려 어쩌다보니, 귀대 시간을 어기게 되고, 놀고 먹게 되고, 카르멘을 눈독들이는 상관과 충돌하게 되고, 탈영까지 하게 됩니다. 한 순간에, 홀어머니의 효성스런 아들이자 착해빠진 충성스런 병사가, 범법자, 부랑자 신세가 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먹고 살길이 막막하고, 결국 카르멘을 따라 산으로 도망가서 밀매단에 붙어서 살게 됩니다. 동 호세는 카르멘만 곁에 있다면 괜찮다며 버티지만, 이렇게 사는 꼴이 이상해지자, 카르멘은 화려한 투우사 에스카미요에게 이끌리는 것 같습니다.

결국 아직도 자기가 성실한 군인이라고 믿고 있는 시골의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옛 약혼녀 미카엘라에게 듣게 된 동 호세는 어머니의 죽음을 보기 위해 밀매단에서 나와 시골로 갑니다.

며칠 후, 모친상까지 당한 동 호세가 돌아와 보니, 어느새 카르멘은 완전히 망해버린 동 호세 자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멋진 에스카미요의 애인이 되어 있습니다. 동 호세는 옛 사랑을 노래하며 자신에게 돌아와 달라고 카르멘에게 울며불며 사정합니다. 그렇지만, 카르멘은 매몰차게 사랑하지 않는다고 거절하며 화를 냅니다. 카르멘이 반지를 내던지며 소리치자, 흥분한 에스카미요는 카르멘을 칼로 찌르고, 자신이 사랑하는 카르멘을 죽이고 말았다며 울부짖습니다.


[마리오 델 모나코의 동 호세]

이탈리아 오페라의 귀족적 화려함과 독일 오페라의 웅장한 신화가 오페라계를 양분하던 시대에 이 무슨 해괴한 이야기란 말입니까. 담배 공장에, 집시에, 밀매단에, 탈영에, 칼부림에, 도주에. 거기다가 신사도의 시대이기도 하던 당시 분위기를 잘 알고 있을 텐데, 결말은 남자가 자기를 배신했다고 여자를 칼로 찔러 죽이면서 끝이 나다니.

그 시대 평론가들이 “너무 심하게 날뛰었다.”며 욕하는 것도 당연할 법 합니다.

하지만, 대단한 능력을 가진 영웅이나 신화의 인물도 아니고, 드높은 왕이나 영주의 이야기도 아닌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이 같은 강렬함을 이끌어 내는 것은 아주 참신한 시도 였습니다. 오페라에서 누구도 주목하고 있지 않은, 그 때까지 만개한 자본주의의 또다른 한 면이었던 시장터와 대중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끌고 온 그 줄거리는 이후 예술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무엇보다,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한 사람을 완전히 파멸에 이르게 하는 카르멘과 거기에 빠져드는 동 호세의 성격 묘사는 아주 완벽합니다. 왠만한 요즘 소설이나 영화보다 그 묘사는 훨씬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들은 여러가지로 변주되면서 이후 많은 문학작품, 영화에서 숱하게 응용되었습니다.


[마리오 델 모나코의 동 호세]

카르멘은 인물의 성격이 어느 오페라 보다도 뚜렷하고, 이국적인 볼거리와 음악도 풍부하고, 현대의 우리에게는 노래들도 하나같이 친숙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오페라를 처음 보는 사람이 아마 가장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오페라일 것입니다.

단, 확실히 아무래도 카르멘은 여러가지 파격이 심한 것이라, 카르멘에 너무 처음부터 빠지다보면, 다른 오페라들을 좀 진지하게 알기도 전에 무조건 싱겁게 느껴지는 폐단이 있기도 합니다.


4. 한국 초연

카르멘의 한국 초연은 1950년 1월 명동 시공관에서 공연한 것이었습니다. 카르멘에 등장하는 에스파니아 군인들의 소품으로 칼이 필요한데, 적당한 것을 구할 수가 없어서, 일제시대에 일본순사들이 쓰던 칼을 경찰 기마대에서 빌려서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진짜 칼을 사용하다보니, 카르멘 초연의 리허설 중에, 동 호세가 카르멘 때문에 상관에게 반항하는 2막 마지막무렵 장면에서 그만 동 호세가 정말로 상관의 이마를 그어버려서, 이마를 세 바늘 꿰메는 부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당시 상관의 배역은 오현명이, 동 호세는 송진혁이 맡아서 “송 호세”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답니다.

이마의 상처에 반창고를 붙이고 분장으로 가려서 겨우겨우 리허설을 넘어갔는데, 더 큰 사고가 본 공연 때 생겨버렸습니다. 이번에는 사고를 당한 오현명이 사고를 치게 됩니다.

에스파니아 병사들의 군장에 맞추기 위해서, 가죽 장화를 신어야 했었는데 이것 역시, 경찰 기마대에서 빌어온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구두굽까지 가죽으로 된 진짜 가죽 장화라서, 신어본적이 없는 가수들에게 대단히 미끄러웠다고 합니다.

결국 리허설 때 사고가 났던 2막 마지막의 싸움장면에서, 이번에는 오현명이 구두 때문에 주욱 미끄러졌고, 그러다가 들고 설치던 칼을 놓쳐버렸습니다. 그 칼이 오케스트라로 날아가 연주중이던 바이올린 이봉수의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가서는 객석으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당연히 막간이 되자 죽음의 위기를 겨우 넘긴 이봉수는 오현명에게 와서는 길길이 날뛰었다고 합니다.


[대구 오페라 축제 당시의 카르멘 출연진]

오페라 사상 가장 재미있는 사건으로 멕시코 시티 투우장 공연에서 벌어졌던 일도 유명합니다. 이탈리아에서 온 오페라단의 동 호세가 막간에 잠시 목을 축이기 위해 근처 술집을 찾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변을 순찰하던 멕시코 경찰이 정말로 탈영한 군인인 줄 알고 이 가수를 체포해 버린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 오페라 공연중의 막간이라고 설명을 하려 했지만, 에스파니아어가 잘 되지 않으니 빠져나올 길이 막막하고, 결국 2막에서 불렀던 가장 유명한 동 호세의 아리아 “꽃노래”를 술집에서 불렀고, 그리고 나서야 풀려나서 공연을 마저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 "오페라 실패담" 오현명 (1986))
by 게렉터 | 2006/02/08 20:08 | 오페라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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