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멘 - 2004년 서울 공연 5. (공연 감상)
1. 반달족의 땅과 캐리비안의 해적
2. 셀레스트 베나르
3. 줄거리
4. 한국 초연
5. 서울 공연


5. 서울 공연

2004년 9월. 한국 출신으로 가장 명망 높은 지휘자 정명훈을 지휘자로 하는 오페라를 한 번 개봉해 보자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카미유 뒤 로클의 까마득한 후배가 될, 파리 오페라 코미크의 상임연출이자 음악 감독인 제롬 사바리가 연출을 맡은 “카르멘”이 애초에 프랑스에서 정명훈을 지휘자로 하여 공연 되었다고 합니다. 이 제롬 사바리는 정명훈의 솜씨를 상당히 예찬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프랑스에서 공연된 이 “카르멘”은 일본 동경에서 후지와라 오페라단과 합작으로 다시 공연할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이 틈을 타서, 프랑스 공연도 하고, 일본 공연도 하니, 중간에 한국 공연도 하면 어떻겠느냐? 하는 아이디어가 나와서 구체화 된 것이, 9월 세종문화회관 공연입니다. 정명훈과 그에 걸맞는 배역, 오케스트라, 무대를 한꺼번에 기획하는 것이 제작비 문제로 줄곧 여의치 않았는데, 마침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정명훈]

이리하여, 프랑스 오랑주 페스티벌 위원회, 후지와라 오페라단, 국립 오페라단이 합작하는 공연이 개봉되게 되었습니다. 거의 최초의 한일 합작 오페라도 카르멘이었습니다. 1967년 당시 후지와라 요시에 본인이 이끌었던 후지와라 오페라단과 국립 오페라단의 “카르멘”이 그것입니다. - 우리에게 후지와라 요시에는 전설적인 스캔들이 더 유명하기도 합니다만.

공연 직전에 “카르멘”에 내정되어 있던 우리아 몽종이 신장 결석증으로 공연이 힘들게 되어, 급하게 섭외한 예카테리나 세멘첵으로 교체 되는 통에, 몇몇 팬들은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호세 카레라스의 동 호세]

공연은 로시니의 “빌헬름 텔” 서곡과 함께 가장 유명한 오페라 서곡으로 출발합니다. 이 명료하고 화려한 서곡은 아주 익숙한 곡이지만, 실제 공연에서 들으면 항상 들을 때 마다, 음반으로 듣던 것 보다 더 빠르고 더 강한 느낌이 듭니다. 그만큼 조용해진 공연장에서 갑자기 화끈하게 시작하는 초장이 주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일 겁니다. 어느 공연장이건, 공연 시작전에는 좀 웅성거리다가 연주에 들어가기 직전에 쥐죽은 듯 고요해지는 것을 이용한 일종의 대비 효과일 겁니다.

정명훈과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화려한 쇼의 시작을 알리기에 적절한 박진감있고 경쾌한 것이어서, 역시 “정말 빠르고 강하게 연주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카르멘은 이 서곡 단계에서 이미 관객들을 기대하고 조금은 흥분하게 만듭니다.


[세종문화회관 공연]

처음 시작 장면은 담배 공장 앞의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고, 순찰도는 병사들이 시덥잖은 잡담을 하며 걸어다니는 것입니다. 잡담과 거리 사람들의 이야기는 전형적인 다운타운의 느낌을 줍니다. 경찰이 오면 도망가는 아이들 패거리들도 오가면서 노래를 더합니다.

그리고, 미카엘라가 등장하고, 병사들에게 동 호세가 어디 있는지 묻습니다. 병사들이 느끼하게 미카엘라에게 수작을 걸고 미카엘라가 거절하는 이 부분이 처음으로 이 오페라의 음악적 묘미를 과시하는 장면입니다. 공연에서는 미카엘라가 충분히 제 역할을 다 하고 있었는데 비해서, 야외 무대의 구성을 옮겨 왔다는 무대의 전체적인 연출은 “다운타운 느낌” 치고는 좀 경직된 느낌이 있습니다. 합창단 배역들도 자연스러운 시민들이라기보다는, 미술적인 상징성과 같은 느낌이 좀 강한 듯 하기도 했습니다.

곧, 드디어 주인공 중의 주인공 카르멘이, 담배 공장 휴식 시간이 되자 다른 여공들과 함께 등장합니다. 대부분 오페라의 주역은 소프라노가 맡는데, 재미있게도 가장 주인공의 힘이 강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상연되는 카르멘은 오히려 메조소프라노가 주역을 맡고 있습니다. 그래서 카르멘은 모든 메조소프라노들이 가장 꿈꾸는 배역입니다.

여자들에게 수작을 거는 병사들의 노래들이 이어지고, 카르멘에게 모두 눈길이 가면서, 전부 카르멘의 매력을 칭송합니다. 곧 카르멘은 마치 이들에게 여왕처럼 군림하면서, “하바네라”를 부릅니다. “Diamond’s Are A Girl’s Best Friend” 같은 것들이 그 계승자들이겠습니다.


[에토레 바스티아니니의 에스카미요]

“사랑은 집시 같이 정처없는 것. 그가 나를 사랑하면 내 사랑이 떠나가고, 내가 그를 사랑하면 내 사랑이 떠나가네.” 이라는 가사의 이 곡은, 멜로디의 극적 구조와 가사가 절묘하게 잘 맞아들어지면서, 프랑스어의 운율도 딱딱 떨어집니다. 더군다나, 군중 앞에서 자신의 연애관을 유쾌하게 설파하는 이 카르멘의 첫 노래는 카르멘에게 극을 집중시키는 효과를 갖습니다.

공연에서, 노래는 무난했습니다만, 처음 카르멘이 등장하면서 관능적이고 조금은 일탈적인 배역의 성격을 살리는 데는 실패한 듯 싶습니다. 여기서는 카르멘은 그냥 연애전문가 내지는 학교 최고 얼짱 정도로만 보였습니다. 말하자면 집시스러운 야성적인 느낌이 좀 부족해 보입니다. 뭐, 현대 영화/소설의 영향을 좀 덜 받은 이런 방향의 인물 설정을 오히려 더 정석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긴 합니다만.

이 장면에서 바른생활 청년 동 호세는 모두가 카르멘에게 맛이 간 상황에서도 일부러 관심을 끊고 있습니다만. 카르멘은 여기에 관심을 느껴 은근슬쩍 동 호세에게 눈길을 주고, 꽃을 준 것인지, 떨어뜨린 것인지 애매하게 동 호세 앞에 던져놓고는 뭐라고 물을 찰라도 없이 아주 살짝 눈웃음을 치며 사라집니다…라는 것이 하바네라의 뒷부분입니다.

하바네라의 이 뒷부분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연기하고 연출하고 노래와 어우러지게 하느냐가, 초장에 “정말 어울리는 카르멘이다”라는 인상을 심어주면서 관객들은 몰입하게 됩니다. 그만큼 미묘한 부분이기도 한데, 역시 카르멘은 전체적인 공연의 수준을 비교할 때 약간 싱거웠고, 다른 배우들과의 어울림도 연극적인 관습적 과장이 좀 지나친 듯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로사 폰셀의 카르멘]

그리고, 노래는 흘러흘러 카르멘 최초의 스펙터클 장면이 나옵니다. 이 스펙터클은 군인들의 행진장면도 아니고, 대연회장면도 아니고, 신의 재림장면도 아닙니다. 그 자체로 “카르멘”의 독특함을 대변해 주는 첫번째 스펙터클 장면은 공장의 여공들 수십명이 단체로 머리채를 쥐어 뜯으며 패싸움을 벌이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합창으로 싸우는 소리를 연출합니다. 니가 잘했네, 내가 잘했네, 이 년이 저 년이 하는 요란한 소리와 이전투구가 그대로 무대 위에서 현란한 장면으로 되살아 나는 것입니다.

카르멘이 돈 모아서 당나귀를 사겠다는 한 여공을 비아냥 거린 것이 화근이 되어 싸움이 벌어졌는데, 패싸움이 되고, 결국 짜증난 카르멘은 상대방에게 칼부림을 해서 얼굴에 상처까지 내버린 것입니다.

이 장면의 연출은 화려함도 잘 살리고 있고, 합창단의 소리도 훌륭했으며, 오케스트라의 강약이 잘 휘몰아치는 소리와도 멋지게 어울렸습니다. 좀 이상하게 들리긴 합니다만, 관객이 시원할만큼 화끈하게 싸운다는 느낌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전달됩니다.


[로베르트 메릴의 에스카미요]

카르멘은 체포되고, 동 호세가 그녀를 감시하게 됩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카르멘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인 “세기디야” 한 곡이 시작됩니다. “세비야 바닷가에 있는 술집에.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사랑하는 사람을 찾고. 오늘 밤에 누구와 갈까나.” 카르멘에게 점점 빠져드는 동 호세는 애써 정신을 차리면서 “말 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고 합니다만, 카르멘은 “말하는 게 아니라, 그냥 혼자 생각하고 노래했을 뿐. 말하는게 아니라 노래했을 뿐.”이라고 합니다.

이 부분의 연출은 카르멘이 탈출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동 호세를 꼬시는 것으로 하기도 하고, 아니면, 은근슬쩍 동 호세에게 그런 뜻을 흘리며 정말 딴전피는 듯 혼잣말하는데 그 은근한 느낌 덕분에 동 호세가 더욱 빠져드는 것으로 하기도 합니다. “하바네라” 뒷 부분의 연출을 얼마나 직접적인 것으로 했느냐에 따라, 거기와 통일되게 하기도 하고, 그것과는 다른 느낌을 주게 배치하기도 합니다.

“세기디야”와 “하바네라”는 그 곡조가, 막말로 좀 블루스 스러운 맛마저 느껴지는 독특한 것이라서 가수가 어떻게 연출해서 부르느냐도 연기의 분위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페라의 곡들이란 것이 다 연기와 연결되어 있지만, 카르멘의 이 두 곡은 그중에서도 조그마한 노래의 강약조절이 배우의 표정, 몸짓과 어우러지면 전체 극의 분위기를 좌지우지 해버릴정도 입니다.

“세기디야”는 대체로 성공적이었습니다. 춤곡 특유의 강약을 잘 살리는 오케스트라도 잘 맞아 떨어졌습니다.

결국 카르멘이 인생을 바칠 운명의 사랑이라고 믿게 된 동 호세는 카르멘을 풀어주고, 카르멘이 탈출하는 것으로 1막을 마칩니다.


[로사 폰셀의 카르멘]

2막은 술집장면입니다. 술집의 카르멘과 술집의 스타로 등장했다 사라지는 인기 투우사 에스카미요를 차례로 보여주고, 카르멘을 구해주고 영창에 간 동 호세가 돌아와서 카르멘과 사랑 놀음을 좀 하다가, 결국 사고를 치고 카르멘과 같이 밀매단이 결성된 산속으로 도망가는 것이 끝입니다.

2막의 시작을 장식하는 집시의 트라이앵글 소리가 가득한 춤과 노래는 20세기 이후에 플라멩고 댄서들의 멋진 잔치가 되었습니다. 이국적이고 화려한 춤판에 카르멘의 연기는 노래와 춤까지 곁들여 가면서 보기 좋게 어울리고, 격정적인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서곡에서의 힘있는 연주, 1막 패싸움 장면의 연주와 같이 아주 화려했습니다.

이 날의 오케스트라는 박력과 화려함이 넘쳐나다 못해, 좀 경박한 수준에 다가서지나 않을까 두려울 정도 였습니다. 어쨌거나 대부분의 관객들에게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모습과 함께 겹쳐져서, 충분한 만족을 주었을 것입니다.

인기 투우사 에스카미요는 “에스카미요가 온다. 에스카미요가 온다”고 환호하는 가운데, 술집에 등장해서, 멋드러지게 투우의 멋을 예찬하는 “투우사의 노래”를 부릅니다. 투우장의 열광적인 정경을 묘사하고 소와 맞닥뜨리기 직전까지의 상황을 단조 멜로디로 노래하다가, 곧 경쾌한 장조 멜로디로, “투우사여, 칼을 던질 때, 그대를 바라보는 사랑스런 검은 눈동자의 그녀를 기억하라.”라며, “낭만적인 투사의 정취”를 노래합니다.

인기 투우사의 등장에 환호하는 술집 사람들이 결국 다같이 술잔을 들고 그 노래를 따라부르고, 투우사의 노래니 만큼, 중간에 추임새로 “올레” 소리도 들어가는 - 술먹으면서 노래부르면 꼭 “새야새야 새야새야새야” 뭐 이런거 하는 사람있지 않습니까. - 이 시끌벅적한 곡은 프랑스 그랜드 오페라의 전통을 훌륭히 승화시키는 장면입니다.

에스카미요라는 인물의 매력을 전면적으로 표현하는 유일한 곡이자, 이 한 곡으로 충분할만큼 비중 있는 곡입니다. 모두가 멋있다고 칭송하고, 그만큼 유쾌해서, 좌중을 항상 휘어잡는 이 인물이 카르멘과도 뭔가 어떤 눈이 맞을랑말랑한 느낌이 있다는 것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카르멘과 에스카미요가 주고 받는 마지막 "사랑이라!" 하는 딱 한 마디 코드 속에 녹아있는 것이라서 미묘한 느낌이 아주 세련되어 보입니다. 이것을 끝으로 흥겨운 에스카미요 원맨쇼는 끝이 납니다.

투우사의 노래는 고전적인 정석을 충실히 따랐다고 할만했고, 실력도 충분히 거기에 잘 따라가 주었습니다.


[아그네스 발차의 카르멘]

3막은 밀매단이 일을 꾸미고 있는 산입니다. 갑자기 인생이 달라져버린 동 호세는 그럴수록 카르멘에게 더욱 집착하게 되고, 카르멘은 “인생의 패배자가 된 주제에 자꾸 귀찮게 달라붙는” 동 호세에게 점차 흥미를 잃어갑니다. 두 사람의 이러한 태도 변화를 이 중창으로 표현합니다.

한 편, 밀매단은 음험하게 일을 꾸미면서도, 애써 용기를 가지려고 스스로 다짐하기도 하고, 또 한탕한 뒤의 달콤한 미래를 꿈꾸기도 하고 하는 장면이 합창으로 어둡고 우울하지만 또 재미있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장면의 연출은 눈발이 날리는 산에 화톳불을 피워놓고, 벌벌 떠는 밀매꾼들로 나타냈는데, 분위기를 더 잘 살리는 멋진 무대였습니다.

그리고 유명한 타로 카드 점 장면이 나옵니다. 카르멘이 집시니 만큼, 타로카드 점을 쳐보는 장면이 빠질 수야 없습니다. 물론, 카르멘의 죽음에 복선이 됩니다. 이런 내용은 베르디의 “가면무도회”의 영향이 없다고는 못할 장면일 겁니다.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비제가 죽던 날, 파리의 카르멘 공연에서는 정말로 기이하게도 공연중의 타로카드 점 결과가 "죽음"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그날 카르멘을 맡았던 가수의 말에 의하면, 그 공연이 끝나고 얼마지나지 않아 비제가 사망했다는 전설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편 미카엘라는 밀매단이 있는 깊은 산에 “아무것도 무섭지 않아 무섭지 않아”하고 되네이는 노래를 부르면서, 무서움을 달래면서 산 속 밀매범 야영지까지 찾아 옵니다. 그리고 옛 약혼자인 동 호세에게 어머니가 위독함을 알리고, 동 호세는 어쩔 수 없이 산을 내려갑니다.

미카엘라의 노래는 썩 괜찮았습니다. 미카엘라의 역이, 카르멘, 동 호세, 에스카미요에 비해 작은 편이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미카엘라는 다른 가수들보다 더 자기 몫을 깔끔하게 잘하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전체 공연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러는 차에, 에스카미요가 나타나서, 카르멘에게 사랑을 느껴 깊은 산 속까지 찾아왔다고 합니다. 여차저차하다 질투에 불탄 동 호세는 에스카미요에게 덤비지만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에스카미요는 동 호세를 봐주면서, “자신은 소와 싸우지 사람과 싸우지 않는다”며 폼을 잡고 동 호세는 자신의 모습이 더 볼품없어 보이면서 더 패배감을 느낍니다. 이것으로 3막이 끝이 납니다.


[콘키타 수페르비아의 카르멘]

4막은 투우장 주변의 정경묘사로 시작합니다. 투우의 시작을 앞두고 잡상인과 관중들이 오가는 소란스런 시내를 합창으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투우사 일행이 멀리서 등장하기 시작하자, 어린이들이 “저기 누가 온다”하는 외침들의 노래를 필두로 인기 투우사들에 환호하는 군중들의 화려한 합창으로 연결됩니다.

여기에 비제의 트릭이 숨겨져 있습니다. 오페라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신나고 흥겨운 멜로디가 호소력있는 카르멘의 서곡은 처음부터 관객들을 흥분시키고 “이 노래 참 현란하다”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 기억이 잊혀질 때쯤인 4막 처음에, 그 멜로디를 그대로 가져와서 다시 연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연주 때에는 처음 서곡 연주 때보다 훨씬 더 강하게 연주하면서, 대규모 인원의 합창과 배우들의 연기 투우사들의 눈부신 복장, 꾸미고 나온 부인들, 말과 소들까지 함께 나오게 합니다. 관객들은 처음의 서곡 때만 해도, “정말 현란하다”고 느꼈는데, 이 장면에서 같은 곡조를 더욱 화끈하게 현란한 치장으로 들려주니, 그 대비효과 때문에, 더욱더 4막 투우사 등장장면의 합창이 화려해 보이는 겁니다.

이 공연에서도 이 부분을 막힘 없이 잘 살리는 아주 화려한 연출로 시원하게 연주했습니다. 오케스트라는 높은 음량과 액센트를 쿡쿡찍는 솜씨로 훌륭한 기량을 보여주었고, 합창단도 좋았습니다. 이 합창은 에스카미요가 등장하게 되자, 모두가, “에스카미요, 오늘의 주인공, 우리의 영웅. 그라나다 최후의 칼.”이라고 환호하며 이어집니다.

그리고 “에스카미요 어록”을 기억하며 모두들, “투우사여, 칼을 던질 때, 그대를 바라보는 사랑스런 검은 눈동자의 그녀를 기억하라”라고 다같이 합창하며 열광합니다.


[콘키타 수페르비아의 카르멘]

열광의 기운이 가득한 투우사들의 입장이 끝나자, 모두 투우를 보러 투우장 안으로 들어가고, 다소 정적마저 감도는 투우장 밖에서 카르멘과 카르멘을 쫓아온 동 호세가 마주칩니다. 투우장 안에서 환호하는 관객들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멀리서 합창단이 여리게 노래하는 “투우사의 노래”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동 호세는 카르멘에게 다시 사랑을 호소합니다만, 카르멘은 매몰차게 동 호세를 거절합니다. 동 호세는 파탄난 자기 인생에 대한 번뇌, 카르멘에 대한 집착, 에스카미요에 대한 질투, 어머니와 미카엘라에 대한 부끄러움이 복잡하게 뒤섞인 가운데, 카르멘에게 울며불며 매달립니다.

그러나 카르멘은 냉기어린 말로 쏘아 붙이고, 울부짖던 동 호세는 흥분하여 카르멘을 칼로 찌릅니다. 햇빛이 강렬히 내려쬐는 휴일 오후, 이 투우장의 뒤 켠에서 카르멘은 죽음을 맞이합니다. 투우에 환호하는 관중들의 노래가 다시 멀리서 들려오고 어이러니하게 노래 가사는 “투우사여, 칼을 던질 때, 그대를 바라보는 사랑스런 검은 눈동자의 그녀를 기억하라”라는 그것입니다. 이 장면의 멜로디에서 오케스트라는 “동 호세” 특유의 가라앉은 현악기 연주를 일부러 내세워서 연주하게 하는데, 그 선율이 청중의 마음을 쿡쿡 찔러대도록 되어 있습니다.

동 호세의 이 마지막 장면 연기는 과장이 가득하고 감정의 분출이 넘쳐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연기하기는 의외로 수월한 부분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덕분에 과장이 과장으로 그쳐서 웃음거리가 되기 쉬운 장면일 수도 있습니다. 공연에서 동 호세의 노래와 연기는 괜찮았고, 멋진 마무리를 짓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동 호세는 “내가 카르멘을 죽이다니. 카르멘, 카르멘.” 이라고 울부짖으며 다시 죽은 카르멘을 끌어 안고 이로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로베르트 메릴의 에스카미요]

에스파냐의 휴일 오후, 열광적인 투우사 입장 뒤의 이 죽음 장면은 전체적으로 가장 극적 효과가 강렬한 장면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장면은 뒤로 수많은 극 작품에 영향을 미쳤는데, 그 중에서도 서부영화의 장렬한 죽음 장면에 단골로 사용되었습니다.

세계 정상급의 공연을 노린 공연답게, 전체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자랑하는 공연이었습니다. 다만, 과연 “정상급”의 공연이라면, 독특한 개성이나 어떤 압도하는 느낌을 갖고 있는 감동적인 부분을 찾길 기대하게 됩니다만, 그런 부분은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군다나, 하필이면 이 오페라가 카르멘을 필두로, 동 호세, 에스카미요, 미카엘라 등등의 그런 “압권”을 기대할 부분이 수두룩한 카르멘이기에, 그 점은 더욱 아쉽습니다. 특히 카르멘은 약간 싱겁다는 느낌까지 듭니다.


[켄터키 오페라의 카르멘 공연]

다른 부분에 비해서 무대와 배우들의 동선 선정이 약간 부족한 느낌이 들긴 합니다. 공연 전에, 제롬 사비라가 정명훈의 오케스트라를 비롯하여 음악에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불필요하게 기교적인 연출을 하지 않겠다고 한 자료를 보긴 했습니다만, 어색한 부분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카르멘은 처음 오페라를 접하는 요즘의 관객들에게도 굉장히 감정이입이 쉬운 현대적인 것이기에, 몇몇 뛰어난 카르멘 공연을 보면 정말 눈물을 펑펑흘리며 감격하는 수가 많습니다. 그런 추억이 있는 관객들이, 다시 한 번 그런 충격을 원해서 세종문화회관을 찾았다면 아마도 좀 실망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합니다만, 나름대로 빼어난 공연이었습니다.

(*) 옛 가수들의 사진은 Sandy's Opera Gallery ( http://www.cs.princeton.edu/~san/ ) 에서 링크했습니다.
by 게렉터 | 2006/02/08 20:08 | 오페라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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