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다 - 2004년 고양 공연 1. 2. 3. (베르디)
- 얼마전에 공연을 보고 정리해서 올립니다. 제가 원래 좀 잡다한 무의미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해서, 공연과 상관없는 이야기도 많습니다. 덕분에 내용이 굉장히 길어져 버렸습니다.
아마, 3. 줄거리 항목이나, 4. 스펙타큘러, 스펙타큘러 항목부터 읽으셔도 별 상관 없을 듯 합니다.

아는 바가 부족해서 어줍잖은 구석이 많습니다. 정정, 첨언 부탁드립니다.


1. 거의 아무상관 없는 이야기들
2. 베르디, 총독, 고고학자, 감독, 오토 폰 비스마르크
3. 줄거리
4. 스펙타큘러, 스펙타큘러
5. 한국 초연과 운동장 오페라
6. 고양 공연



1. 거의 아무 상관 없는 이야기들

이집트는 1517년부터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서 파견한 총독이 이집트의 대표였습니다. 나중에는 이집트의 지방세력이 득세하면서 이 총독이 점차 유명무실하게 전락해 갑니다.

그러던 중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을 감행 하여 이집트를 손에 넣습니다. 나폴레옹은 알바니아인 부대의 장교를 오스만 투르크의 서울 이스탄불에서부터 파견하여, 이집트 정부에 심었습니다. 그리하여 알바니아인 계통의 군인 세력이 이집트의 실세가 되게 됩니다.



[이스마일 파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영국의 이집트 식민지화 계획과 상충하면서, 이 알바니아 계통의 이집트 실세들은 "총독"자리의 세습을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마치 왕처럼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런 세습 총독 중 하나인 "이스마일 파샤"대에 이르러, 이집트에 수에즈 운하가 건설되고, 이 세계사적 기념비가 되는 토목공사에 당시 이스마일 파샤가 걸었던 기대는 대단했습니다.



[수에즈 운하]


이스마일 파샤는 카이로 오페라 하우스의 개관 기념 공연을 위대한 예술가의 대작으로 장식하여, 수에즈 운하 개통을 축하하려고 기획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오페라의 왕" "주세페 베르디"를 떠올렸고, 베르디에게 수에즈 운하 개통 기념 / 카이로 오페라 하우스 개관 기념 작품의 작곡을 부탁하게 됩니다. 그 때가 1869년이었습니다.



2. 베르디, 총독, 고고학자, 감독, 오토 폰 비스마르크

당시 베르디는 56세로 "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 "일 트로바토레"의 3대 걸작을 비롯하여 이미 위대한 수많은 오페라를 만든 뒤였습니다. 그의 명성은 이미 세계 최고였고, 그는 더 이상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반쯤 은퇴한 상태로 편히 쉬고 있었습니다.



[베르디]


실제로 "아이다"는 베르디가 정식으로 남긴 26개의 오페라 중에 24번째에 해당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 때까지 마지막이었던 "돈 카를로"를 내어 놓은지도 벌써 3년째가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베르디는 많은 사람들의 제안과 아이디어를 거절하며 더 이상 작곡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쉬고 있던 베르디는 더군다나, 누구의 명령을 받아서 그 요구대로, 기한까지 맞춰가며 일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베르디는 이스마일 파샤 정부의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마일 파샤 정부는 단념하지 않고 베르디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들은 저명한 이집트 고고학자인 프랑스인 "오귀스트 마리에트"에게 접근했습니다. "오귀스트 마리에트"가 베르디의 절친한 동료이자, 프랑스 파리 오페라 코미크의 감독인 "카미유 뒤 로클"과 친분이 있다는 것을 노렸던 것입니다. 부탁을 받은 고고학자는 여러가지로 궁리를 하게 됩니다.



[람세스 2세 신전]


고고학자 오귀스트 마리에트는 고대 이집트 사원에서 발견된, 끌어 안고 쓰러진 형태의 남녀의 시신 2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야기를 구상했습니다. 드디어 고고학자의 펜 끝에서 최초로 아이다의 이야기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 고고학자는 카미유 뒤 로클 감독에게 편지를 보내어, 자신이 구상한 내용으로 베르디와 힘을 합쳐 오페라를 만들면 좋지 않겠냐고 부탁했습니다. 이 영리한 학자, 오귀스트 마리에트는 그러면서 편지에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습니다.

"이스마일 파샤 전하께서는 무한히 존경하는 베르디의 거절에 무척 실망하고 계십니다. 만약, 끝까지 베르디가 수락하지 않는다면, 전하께서는 당신 카미유 뒤 로클이, 다른 사람이라도 소개해 주시길 바라고 계십니다. 구노나 바그너를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아마 바그너라면, 분명히 뭔가 웅장한 것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일부러 바그너와 비교하면서 베르디 팀의 자존심을 살짝 자극한 것입니다. 고고학자의 이러한 편지를 받아든 카미유 뒤 로클은, 그 아이디어 내용이 신선하다고 느꼈으므로, 이러한 내용을 그대로 베르디에게 전달했습니다.



[카미유 뒤 로클]


베르디는 카미유 뒤 로클 감독이 보낸 고고학자 오귀스트 마리에트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베르디는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한 오귀스트 마리에트의 설정에 단번에 매료되었고, 이 이야기를 오페라로 만들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끼게 됩니다.

더군다나 "바그너" 운운하는 이야기에서 강한 라이벌 의식을 느꼈던 모양입니다. "바그너라니. 오페라의 왕의 진짜 솜씨를 제대로 보여주지."하고 생각한 듯 합니다.

결국 베르디는 15만 프랑이라는 거액에 오페라 제작을 수락하고, 카미유 뒤 로클 감독이 프랑스어로 대본을 쓰기로 하여 제작에 착수 했습니다. 베르디는 이탈리아어 가사를 원했고, 가사 하나하나가 자신의 극적인 구상과 완전히 일치하기를 바랬기 때문에, 이탈리아 시인 안토니오 기슬란초니가 대본을 번역하여 베르디의 지시대로 고치도록 했습니다.

기슬란초니의 작업에 베르디는 일일이 간섭하며 음악, 연출, 가사가 딱 맞아 떨어지게 하기 위해 수없이 정정을 가했기 때문에, 시인으로서 기슬란초니는 상당한 고초와 충돌을 겪기도 했다고 합니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


공연은 1871년 1월을 목표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일어나 독일 프로이센의 비스마르크가 프랑스 군대를 박살 냈습니다.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를 사로잡고 지독한 파리 봉쇄가 시작되었으며, 저 유명한 파리 코뮌 사태가 일어나는 등 전쟁으로 프랑스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결국 비스마르크에 의해 독일의 왕 빌헬름 1세가 독일 제국의 황제가 되고 프랑스의 패배로 전쟁이 끝나긴 했지만, 이 와중에 프랑스인들과 같이 일하던 베르디는 작업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특히, 무대장치와 의상을 대부분 파리에서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스마르크 군대의 파리 포위는 치명적이었습니다.

[파리 코뮌 사태]

전쟁이 끝나자, 베르디는 다시 오페라 제작에 박차를 가하여, 1871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공연에, 카이로 오페라 하우스에서 "아이다"는 공개되었습니다. (개관 기념 공연 제1작은 1869년 11월의 "리골레토"였다고 합니다. 역시 이탈리아의 베르디 작품이었던 것입니다.)

아이다의 카이로 초연은 유래없는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모두들 "오페라의 왕 베르디가 다시 돌아왔다"며 열광했습니다. 6주후 유럽으로 건너와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 스칼라 에서 공연되어서도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베르디 본인은 배를 타는 것을 무서워해서, 카이로 초연에는 가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후, 베르디는 "전형적인 베르디 스타일"의 오페라 작곡에서는 정말로 손을 떼었고, 이 후 몇 편의 작품들은 다소 성격이 다릅니다. 뜻대로 베르디는 아이다에서 "왕"의 위대한 솜씨를 마지막으로 완벽히 과시했던 것입니다.

아이다의 카이로 초연에서는, 막을 내린 후, 무려 32번 무대 인사를 해야할 정도로 관객들의 반응이 대단했다고 합니다.



3. 줄거리

줄거리를 짧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1막] 배경은 이집트이고, 주인공 "아이다"는 노예입니다. 장군이 하나 있는데, 이 사람이 아이다를 사랑합니다. 아이다도 장군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디오피아와 전쟁이 일어나서 장군이 싸워야 하는데, 이디오피아가 아이다의 모국이라는 겁니다. 아이다는 사랑을 따르자니 고국이 울고, 고국을 응원하자니 연인이 목숨을 잃을 지경이라서 고민하게 됩니다. [2막] 모든 이집트인들이 전쟁에 승리하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와중에 장군은 결국 승리합니다. 그리하여 장군의 군대는 모두가 환호하는 와중에 화려하게 개선합니다. 그런데 아이다의 아버지가 패해서 잡힌 포로중에 있습니다.

[3막] 그리하여 장군은 아이다와 아이다의 아버지를 도울 길을 찾아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실수로 중요한 기밀을 이디오피아에 누설하게 됩니다. [4막] 기밀 누설을 자수한 장군은 그 죄로 무덤에 생매장을 당하게 됩니다. 죽으려고 보니, 비극이 자기탓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다도 같이 죽으려고 무덤에 들어와 있습니다. 결국 둘은 서로 부둥켜 안고 죽음을 맞이 합니다.



[베로나 극장의 아이다]


노예 아이다의 주인인 공주가 있는데, 이 공주도 장군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삼각관계의 질투극도 이야기의 다른 한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by 게렉터 | 2006/02/08 20:10 | 오페라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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