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인의 사무라이 七人の侍 영화


(7인의 사무라이)

"7인의 사무라이"는 "라쇼몽"과 함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1954년 영화 입니다. 영화의 내용은 전국시대 중세 일본의 외딴 마을을 배경으로, 도적떼 때문에 초토화 위기에 놓인 마을사람들이 떠돌이 사무라이 7명을 모셔오고,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도적들과 공방전을 벌이는 내용입니다.

이 영화의 결정적인 장점은 유행을 앞질러 나간 사극 묘사의 개성입니다. 중세 기사들의 이야기를 떠올리면 번쩍거리는 갑옷을 입은 게르만족 미남들이 화려한 드레스를 걸친 공주들을 구하기 위해 검을 들고 시적인 대사를 읊는 영화를 상상하기 쉽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무라이 영화라고하면, 의리에 죽고 사는 사무라이들은 빛나는 투구와 정교한 갑옷을 입고 눈부신 칼을 들고 정적속에서 눈싸움을 하는 영화를 떠올리게 될겁니다. 화려한 빛깔의 기모노를 입은 여인들이 벗꽃이 만발한 멋드러진 성벽 앞을 지나가는 장면도 분명히 섞어들겁니다.

하지만 "7인의 사무라이"는 그런 서사시속에 등장할법한 낭만적인 중세 풍경들에 반대되는 방향으로 치달아 갑니다. 현대 관객들에게 중세 사극은 음유시인들의 노래 속의 전설이기도 하지만, 또한 분명히 현대보다 미개하고 불합리하며 가난하고 잔인한 세계로 기억되어 있기도 합니다. 즉 "7인의 사무라이"의 묘미는 사무라이들의 영웅담임에도 불구하고 정결한 전설보다는 불결한 생활상을 더 부각식키는 것에 있습니다.

화려한 성들 보다는 다 쓰러져가는 움막같은 집들이 등장하고, 공주대신에 맨발로 걸어다니는 거지꼴의 굶주린 농민들이 주요 인물입니다. 뒷산에 불뿜는 용이라도 잡으로 떠나야하는 주인공 7인은 기사도의 상징인물이라기 보다는, 전투에 지친 노쇠한 칼잡이거나, 헛바람만 든 어린애, 불타는 성에서 간신히 살아남아 도망나온 패잔병, 술주정뱅이 싸움꾼 등등입니다.


(전투에 지친 노쇠한 칼잡이)

그리하여, 영화가 자꾸 펼쳐 밝히는 이 궁색한 몰골 덕분에 "7인의 사무라이"는 상당히 현실감있는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꾀죄죄한 사람들의 행색은 정말로 수백년전의 미개한 세상 같아 보인다는 현대 관객의 의식을 자극하는 면도 있고, 또 영화 촬영 기술상에 있어서 실제로 현실감을 더하는 이점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전투에서 공을 세운 기사에게 국왕이 황금왕관을 하사하는 장면이 있다면 황금왕관을 설득력있는 소품으로 꾸미고 그 의식장면을 제대로 고증해서 보여주는 것은 꽤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일겁니다. 하지만, "7인의 사무라이"에게는 사무라이들에게 넙죽엎드린 거지꼴의 농민들이 하얀 쌀밥을 바치면서 싸워달라고 부탁을 하는 장면을 꾸미면 되니, 훨씬 쉽게 찍으면서 더 그럴듯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7인의 사무라이"의 가장 대단한 장면 역시, 이런 질척거리는 현장감을 잘 살린 도적떼들과의 전투장면입니다. 애초에 도적떼들과 가난한 농민들의 싸움이니 일당백의 용사나 코난 처럼 칼돌리며 쇼하는 헛바람이 끼어들 기미도 별로 없습니다. 우왕좌왕 이리저리 몰려 다니며 둘러서서 이리저리 죽창을 휘두르고 무서우면 도망가고 엎어지고 뒹굴며 싸웁니다. 이들을 이끄는 백인대장격의 "7인의 사무라이"들도 무기가 조금 더 좋고 좀 덜 비겁하다 뿐이지, 추한 몰골로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하는 것은 피차일반입니다.


(적을 노려보다.)

이런 전투 장면 연출은 앞서 말한 이 영화의 땀냄새나는 연출방향과 부합해서 역시나 강한 현장감을 줍니다. 이런식으로 전투를 꾸민덕에, 영화에는 수없이 칼질, 창질하는 영화치고 피 튀기는 장면 하나 번번히 보여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전투에 대한 공포나, 겁에 질린 농민병사들의 모습을 제대로 전달하게 됩니다. 말발굽 소리를 내며 숲과 산에서 달려오는 도적들과 마을 어귀에서 헤진 신발을 신고 바삐 뛰어다니는 농민들을 대조하며 잡아낸 수법은 숨가쁜 속도감이 있습니다. 여기에, 잔뜩 움추려 떨던 농민들이 한 대 맞은 도적이 굴러떨어져 비참하게 도망치기 시작하면 너도나도 몰려가 분노에 차 마구 찔러대는 장면을 요소요소에 삽입하여 인물들의 심경을 부풀려서 표현합니다. 이런 방법들은 괜히 절단된 신체모형과 빨간 물감만 온통 뿌리면 전쟁장면의 현실감이 사는 줄 아는 몇몇 요즘 영화제작자들과 분명히 차별됩니다.


(전투 시작)

사실 "7인의 사무라이"는 분명히 위대한 점이 있지만, 그런 장점에 비해 지나치게 긴 영화이기도 합니다. 영화 초반에 농민들이 살아남기 위해 사무라이를 찾아가고 사무라이를 모으는 과정이 영화의 절반에 약간 못미치는 정도인데, 이 이야기는 대강 그럴듯하기는 해도 전체적으로는 좀 따분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영화의 절정부분으로 치달아 갈 수록 영화의 중심인물들은 7명의 사무라이가 되고, 농민들은 주변인물에 머물게 되는데, 그렇다고치면 농민들의 고민과 갈등을 보여준 앞 부분의 이야기는 맥없이 무의미해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7명의 사무라이들의 인물들은 분명하고 이야기를 끌어갈만큼은 선명하게 짜여져 있기는 하지만 약간은 부족한 감도 없잖아 있습니다. 이야기의 축축한 분위기에 어울리는 하급 무사의 성격에 어울리는 인물들이지만, 그래서인지 영화를 끌고나가기에는 좀 심심한 인물들이 많습니다. 가장 많은 활약과 대사를 가진 4명정도를 빼면 나머지 3명은 좀 머릿수 채우기 같은 면이 없잖아 있습니다. 200분이 넘는 기나긴 원래 영화를 상영할 때는 두 시간을 좀 넘는 이야기로 줄인 때문인지, 선명한 감정이 살아있을 법한 내용이었지만, 주제나 통일성은 흐리멍텅해 보이기도 합니다. 일본식 연기에서 자주 노출되곤 하는 설득력없이 과장된 분노표출 장면같은 납득하기 어려운 감정분출장면도 일부 단점입니다. 그런저런 결과로 "7인의 사무라이"는, 제목도 내용도 비슷하게 펼쳐진 "무사"와 비슷하게 결말도 좀 약하고 허망한 편입니다.


(떠돌이 총잡이는 목장주의 딸과 눈이 맞는 법)

결국 "7인의 사무라이"는 실제 영화의 재미도 재미지만, 다른 영화들에게 제공한 소재의 면에서 더욱 의의가 큰 영화입니다. "7인의 사무라이" 이후로, 깔끔한 마상 창 시합식 대결대신에, 수십번은 드라이 클리닝 해야할 옷을 입은 더러운 사람들로 사실적인 이야기인척 하고, 그 차림으로 진땀빼며 고생하며 싸우는 이야기들이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쓸쓸하고 피곤한 과거가 있는 떠돌이 싸움꾼들이 외딴 마을에 도착하면서 점점 큰 싸움에 말려든다는 식의 이야기 전형을 펼친 것도 "7인의 사무라이"가 될만 합니다.

"7인의 사무라이"는 일본 영화에서 계승되기보다는, 가장 미국적인 장르인 서부 영화의 틀을 바꾼 것으로 더 선명한 흔적을 남긴 영화로 보입니다. 그리고 서부 영화의 도약적인 부산물인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들을 낳은 단초가 된 요소들을 펼친 영화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정제되지 않은 긴 상영시간과 몇몇 따분한 점들은 답답하기도 하지만, 서부 영화의 변곡점에다 중세 야전의 현장감이 21세기 영화 이상으로 제대로 살아 있는 영화라는 점은 언제 봐도 선명하게 와닿습니다.



그 밖에...

온갖 이야기들이 끝없이 영화잡지에 실리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잘 정리된 영문, 한글 인터넷 사이트는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마땅히 소개해 드릴만한 링크가 없어서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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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rumic71 2006/02/28 14:04 # 답글

    쿠로자와 감독 스스로가 서부영화에서 영향받았다고 밝혔다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만, 반대로 서부극에 영향을 크게 준 것도 사실이고 보면 물고 물리는 관계가 참 재미있습니다. 스파게티 웨스턴에 보다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것은 이 작품보다 '요진보' 쪽이겠지만...
  • almaren 2006/02/28 14:31 # 답글

    재미없는 글에 트랙백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게렉터님 글도 잘읽고 갑니다.
  • IDKUN 2006/03/01 14:00 # 답글

    안녕하세요. 누추한 곳에 찾아오셔서 트랙백까지..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게렉터 2006/03/04 01:33 # 답글

    almaren, IDKUN/ 반갑습니다.
  • 게렉터 2006/03/04 01:43 # 답글

    rumic71/ "7인의 사무라이"도 그렇고, 그 무렵에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존 포드 고전 서부 영화를 좋아해서 여러부분 따라한 점이 있다는 이야기를 저도 읽었습니다. 시기적으로 따져서 "요짐보"에 대해서 말씀하신 바가 당연히 옳습니다. 다만,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액션, 사극 연출 방향 같은 것이 "7인의 사무라이"에서 발단을 두기 시작하여, "요짐보"까지 흘러가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 DOSKHARAAS 2007/10/24 10:00 # 답글

    괭장히 뒷북 댓글이 되었군요.


    요짐보의 경우, 더쉴 해미트의 피의 수확이 요짐보에 영향을 주었다고 들었습니다.

    피의 수확을 읽고 요짐보를 읽고 얼마 안되어 황야의 무법자(제목이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영어 제목에 1센트가 들어간 것 같은데...)의 유사성에 혼자 즐거워 하기도 했습니다.

  • 게렉터 2007/10/25 12:41 # 답글

    DOSKHARAAS/ Dollar 시리즈가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황야의 무법자 http://gerecter.egloos.com/2407859 의 덧글에 woopho 님께서 매우 훌륭하게 정리해 주셨습니다.
  • 지나가다가 2012/02/23 22:17 # 삭제 답글

    다음 영화평에 보면 7인의 사무라이는 존 포드의 서부극 <황야의 결투>의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돌고 도는 세상.....
  • 게렉터 2012/02/25 22:27 #

    "황야의 결투"는 영향을 준 영화가 한 두편이 아니겠지요. 그야말로 고전 중의 고전이라 할만하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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