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베카 Rebecca 영화

"레베카"는 전체적으로 전형적인 만화 고딕소설의 내용을 담고 있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연출의 1940년작 영화입니다. 쉽게 감정이입될만한 평범한 배경의 여주인공이 어느날 갑자기 거대한 저택에 사는 어마어마한 귀족의 삶에 개입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귀족은 상처나 비밀을 숨기고 있는 어두운 구석이 많은 인물이고, 화려한 저택에는 무뚝뚝해서 무시무시해 보이는 하인이 있는가 하면 비교적 친근한 하인도 있고, 또 들어가면 안되는 방 같은 것도 꼭 하나쯤 있습니다. 여주인공은 귀족과 사랑에 빠지고, 귀족의 비밀이 밝혀지고, 귀족은 상처를 치유 받기도 할 겁니다.

이런 이야기는 주인공들의 매력적인 성격을 표현하거나 화려하고 거창한 귀족 생활의 이면을 비교 대조하며 보여주는 것으로 재미의 소재를 삼곤 합니다. 무도회 같은 것은 꼭 벌어져야 하는 사건이 될 겁니다. 그런점만 주목해 놓고 보면, "레베카"는 엄청 심각한 분위기에 유머라고는 없는 점만 빼놓고 보면 요즘 MBC드라마 "궁"과도 통하는 점이 있습니다.


(수수께끼의 그림자를 지닌 귀족)

"레베카"는 이러한 주인공들의 성격 표현을 강하게 하기 위해 "레베카"라는 전설적이고 신화적인 인물을 창조하여 조금씩 비추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모두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칭송하며, 한 번 보면 누구나 반하는 인물이며, 완벽한 애인, 최고의 아내인 여자입니다. 재미있는 사건을 많이 얽혀들게 할 수도 있고, 분명한 정서적인 분위기를 돋굴 수도 있을 겁니다. 특히, 전설적인 이야기의 도입부 흉내를 내는 영화의 프롤로그 부분을 살펴보면 이런 우상과 같은 인물을 이용하는 방식은 잘 사용할 수 있어 보입니다. 이 방법은 비슷한 요소가 있는 "현기증"의 구도와 꽤 닮은 데가 있어 보이기도 하고, 부분적으로 성공을 거두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말로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 면면이 잘 살아난 것은 아닙니다. 약간 뒷 시대에 활약할 잉그릿드 버그만의 호기심 많은 여학생 판과 같은 인물을 연기하는 조운 폰테인의 인물은 설득력 있게 시작 되기는 합니다. 그 호기심있는 태도와 평민 신분을 바탕으로 점차 이상한 세계에 빨려들어가고 화려한 저택의 이면을 살펴보는 모습은 관객들을 대신하여 흥미진진하게 탐사를 펼치는 재미가 있습니다. 그녀를 둘러싸고 드러나는 저택의 면면도 그 화려함과 근엄함, 고딕적인 신비감을 동시에 잘 살리도록 카메라에 담깁니다. 흑백화면은 약간의 공포감을 주어야하는 어두운 분위기를 명도대비 조명으로 잘 살릴 수 있게 돕기도 하고, 너무 화려해 보이려고 꾸민 나머지 천박해 보일 장식의 세부를 살짝 가리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이야기의 단골 무대인, 화려하지만 적막한 저택)

하지만, 조운 폰테인의 인물은 사건의 비밀이 본격적으로 밝혀지는 시점에서부터 하는 일이 없어집니다. 그냥 가만히 있습니다. 심지어 등장하는 장면 숫자도 갑자기 줄어듭니다. 이야기를 진행하기 위해서 그때까지 비중이 아주 적은 편이었던 미지의 인물이 나타나서 엄청나게 비열한 놈으로 설치면서 대사를 하게하는데, 그래서 진정한 주인공이라 할만한 조운 폰테인의 인물이 심심해 집니다. 즉, 조운 폰테인의 인물을 따라 점차 이상한 상황을 체험하고, 비밀을 하나둘 알아가는 것이 영화를 따라가는 재미였는데, 이 영화는 정작 비밀의 결정적인 면이 파헤쳐지고 이로인해, 사건이 급물살을 타게 될 때부터 주인공이 안나오는 허망한 구도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조운 폰테인)

조운 폰테인의 상대역인 로렌스 올리비에가 연기하는 인물은, 어두운 구석이 있는 갑부 귀족을 그냥 정석대로 연기하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로렌스 올리비에의 인물은 전체적으로 별 문제가 없는 인물인 편입니다. 하지만, 비밀을 드러내는 장면에서 특별히 강한 심상이나, 격정적인 사건, 표현과 함께 비밀을 드러내지 않고, 그냥 장황한 발표수업으로 비밀을 드러내도록 되어 있습니다. 바닷가 별채에서 중요한 비밀을 드러내는 장면은 그나마 전체적으로 많은 수수께끼를 설명해 주기도해서 해소감이 있고, 전설적인 인물의 존재감과 비현실적인 비존재감을 동시에 잘 나타내는 연출로 되어 있기도 하여 그나마 좀 재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없이 많은 헛점을 가진 설명에 불과한 것도 사실입니다. 첫등장 장면도 있고 하니, 이 인물이 비밀을 밝힐 무렵쯤 해서는, 뭐에 씌인 것 처럼 헛소리를 하면서 광폭한 짓도 좀 하게 하고, "레베카~ 레베카~"하면서 울부짖거나 뭐 비슷한 액션을 확 취하게 해 버렸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비밀스러운 방)

거기다가 이야기의 결론에 해당하는 진실이 드러나는 장면은 지금까지 아무 언급도 등장도 안했던 런던에서의 생전 처음 나오는 인물이 혼자 떠드는 장면이라서 썰렁할 뿐입니다. 결정적으로 최후의 진실자체도 작위적으로 보입니다. 요즘 미니시리즈 드라마에서 이야기하다가 안먹힌다 싶으면 "출생의 비밀"로 때우려드는것에 조금도 뒤지지 않을 만큼 진부합니다.

하인들의 인물들 중에 주인공과 각을 세우며 강한 개성을 보이는 하인 실장쯤 되는 인물은 독특하지는 않아도 제 역할을 잘 수행합니다. 항상 불길하게 검은 옷으로 차려입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오가는 그녀의 모습은 특히 공포영화 쯤에서 등장도, 패러디도 수없이 된 그 중심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인물도 주인공처럼, 정말로 사건의 본말이 드러날 때는 갑자기 소외되어 별 역할을 하지 않아 활약상이 확 죽어 버립니다. 그래서 아깝다보니, 막판에 제작비를 왕창쏟은 에필로그 블록 버스팅 장면에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등장하게 했는데, 이 에필로그는 이야기 감정을 잘 연결하지 못하기도 하고, 또 지금껏 이야기의 핵심이었던 두 주인공을 좀 소외시키는 면도 있어서 여러모로 군더더기 같습니다.


(어두운 하녀)

"레베카"는 그 핵심 아이디어는 꽤 흥미진진한 이야기 입니다. 매우 전설적인 인물이 있고, 이 인물의 영향력이 서려 있는 저택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발을 디디게된 평범한 주인공이 점차 비밀을 알아가고, 결국 폭풍우치는 날 벌어졌던 피맺힌 가문의 비밀이 밝혀집니다. 약간은 스포일러 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끝까지 얼굴 한 번 안 보여주고, 목소리 한 번 들려주지 않을 인물을 이처럼 강한 실체로서 여러모로 과시하고, 여기에 영향을 받는 주인공은 이름 없는 1인칭 인물로 하겠다는 생각은 꽤 흥미있습니다. 주술적인 신비감을 강하게 암시하기도 하고, 인간 의지의 영향, 영향력에 대한 이야기를 설파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점을 표현하기에 중반의 무도회 장면을 제외하면 구체적인 표현이 강한 장면은 부족하고, 후반에 드러나는 사실들은 정교함이 부족해서 이입감이 떨어집니다. 도입부 주인공의 고용주 인물이나 헤어짐-만남 연출은 모두 속도감있고 즐거워서 볼 때는 재미납니다만, 결국 별 상관 없는 영화전체에 비해 아깝기도 하고 잘 어울리지 않기도 합니다. 도입부의 연출을 조금 더 발빠르게 하고, 후반부의 몇몇 부분을 개선하기만 했어도 훨씬더 흥미진진한 영화가 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상한 저택의 비밀에 점차 접근해 나가는 평범한 인물의 순수한 호기심을 매력적으로 연기한 조운 폰테인과 그 상대역인 로렌스 올리비에의 정석을 견지하는 인물은 분명히 인상적인 면이 있었기에 꽤 아깝습니다.


("레베카"에 등장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그 밖에...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헐리우드 진출 첫 번째 영화입니다.

원작이 어느 정도 유명한 고딕 소설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만, 문학적인 맛, 만화스러운 맛을 살리는 원작의 내용은 영화를 위해서는 보다 능동적인 각색이 필요 했을 겁니다.


덧글

  • joyce 2006/03/06 08:16 # 답글

    사악한 한 쌍을 연기한 조지 샌더스와 주디스 앤더슨이 좋았지요^^
    그래도 상당히 완화되고 안정된 푸른 수염 이야기랄까... 프리츠 랑의 <문 너머의 비밀> 같은 직접적인 영화에 비해서 말이에요.
  • 게렉터 2006/03/06 23:07 # 답글

    사실 "레베카"는 여러 모로 진짜 무시무시한 고딕 소설 이야기라기보다는, 유행을 잘 타는 "소공녀"나 "캔디 캔디"식의 낭만적인 이야기의 요소를 살리는 여섯시 방영 텔레비전 만화 이야기에 가까운 면이 있어 보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주디스 앤더슨의 인물은 멋지게 걸맞지만, 그 역할이 다른 요소들과 어울려 힘을 발휘하지는 못하는 듯 하고, 전체적으로 연출이 성공을 거두고 있는 부분은 무게 있는 부분 보다는 오히려 경쾌한 조운 폰테인 감정 묘사 부분들이 많은 듯 합니다.
  • imjohnny 2008/07/01 22:55 # 답글

    "레베카 Rebecca" 게시물의 사진이 안 나오는군요 ㅠㅠ 확인 부탁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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