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프 Rope 영화

"로프"는 TV쇼 "24"의 조상뻘에 해당하는 1948년작 영화입니다. 1시간 40분 정도 진행되는 영화는 1시간 40분 동안 벌어지는 일을 그대로 비추고 있는 것입니다. 영화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그대로 실시간 사건입니다. 관객들은 모든 사건이 벌어지는 바로 그 곁에 서서 실제로 눈 앞에서 사건을 겪는 것 처럼 이야기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실시간으로 전개되는 "로프"의 내용은 일종의 추리물입니다. 종종 범죄영화, 추리영화들은 처음에 범죄의 장면과 범인을 보여주면서 시작하곤 합니다. 그리고, 점차 추리가 진행되면서 범인들이 밝혀져 나가는 과정에 따라 범인들이 노심초사하고 겁에 질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재미로 삼습니다. 이런 부류의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영화들이 몇 편 있습니다만, "다이얼 M을 돌려라"와 함께 가장 유명한 영화 중 하나가 아마 "로프"일 겁니다. 당연히 이 영화는 실시간 사건 전개라는 그 형식 덕분에 흥미를 끌었습니다. 더군다나 "로프"는 100% 완벽히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장면 끊기 없이 단 하나의 연결된 필름으로 영화 전체를 담으려 했다는 형식에 도전하고도 있어서 더 신기합니다.


(문제의 로프)

사실 실시간 사건 전개나, 하나의 연결된 촬영으로 영화를 만든다는 것만으로 "로프"가 그렇게 엄청나게 독특해 지는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런 영화들은 이래저래 꽤 많이 있습니다. 아마 영화라는 것이 개발된 처음 시기의 고대 영화들은 대부분이 실시간 사건 전개와 연결 촬영으로 영화를 만들었을 겁니다.

"로프"의 특징은 그런 실시간 사건 전개가 극전개의 박진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활용되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실시간으로 펼쳐지는 전개가 현장감을 높이고, 감정의 연결과 부드러운 변화를 선명하게 드러내어, 범인들의 불안감과 범죄물의 긴장감을 배가시키는 겁니다. 또한 사건의 시간이 압축적으로 제시되기 때문에 오히려 짧은 시간을 영화에 담아내면서 그만큼 더 강한 충격을 주는 많은 이야기를 하는 듯한 대조감을 줄 수도 있습니다. "다이 하드"처럼 하룻동안, 짧은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생겼다는 감정이입을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즉, 실시간 사건 전개의 연결 촬영 이라는 요소를, 범죄물의 극적 긴장감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잘 활용하고 있다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24"와 "로프"가 단순한 실시간 사건 전개라는 형식상의 공통점을 넘어서 좀 더 끈끈하게 닮은 것으로 보입니다. "로프"가 시작하기 전에, 제임스 스튜어트 목소리로 "The following takes place between 7:30 and 9:15 on the day of the Presidential Primary. Events occur in real time."라고 읊고 지나가도 요즘 관객들이 꽤 어울린다고 여길 겁니다.


(로프에 등장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로프"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낮에 한 친구를 살해한 두 친구가 있습니다. 친구 하나는, 들키면 어쩌냐고 호들갑을 떠는 겁쟁이이고, 다른 한 명은 자기가 완전범죄 소설의 똑똑한 주인공이 된 줄 알고 헛된 공명심에 불타고 있는 나르시시즘에 빠져 수십년간 숙성된 묵은지 같은 인간입니다.

두 사람은 밤이 되면 시체를 옮기기로 하고 시체를 집안 어딘가에 숨겨 놓습니다. 그러고 있는데 바로 그 집에서 예정된 저녁 모임이 열리고, 몇몇 아는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찾아 온 사람들이 혹시나 우연히 집에서 일어난 살인을 눈치채지 않을까 두 사람은 걱정합니다. 그런데, 방문객 중에는 이들의 학창시절, 엄한 선생님 하나가 있습니다. 이 선생님을 연기하는 사람이 제임스 스튜어트이니, 야간자율학습 도망가려고 거짓말 하는 거 꿰뚫어 보기로 단련된 이 사람이 옛 학생들이 저지른 살인사건의 진실을 꼭 눈치챌 것만 같습니다.

영화의 이야기가 갖는 멋진 점은, 이들이 범죄를 저지르고 시치미 뚝 떼는 모습이 아주 대담하게 설정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18세기 중엽, 우리에게 익숙한 한 왕과 왕자의 이야기를 어느 정도 떠올리게 하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강한 대담함은 우선 흥미를 끕니다. 그리고, 그 대담함 때문에 정말 순식간에 범죄가 드러날 수도 있는 일이라서, 이런 영화의 중심요소가 되는 "들킬까봐 조마조마한 느낌"을 아슬아슬하게 건드릴 수 있습니다. 영화를 하나의 기나긴 컷으로 잡고 있는 요소를 활용해서 긴 시간을 두고, "들킬까" "말까"를 한 화면에서 왔다갔다하게하는 연출을 집어 넣은 것은 이야기의 묘미와 용기있는 연출 아이디어를 잘 결합한 요소 입니다.

제임스 스튜어트는 알프레드 히치콕 영화에서 자주 하는 데로, 우리가 쉽게 이입할 수 있을 만한 적당히 도덕적이고 적당히 유능하면서 어느 정도 평범한 모습도 갖추고 있는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약간씩 새는 발음은 장황하고 철저한 대사가 많은 이 영화에서 아주 약간 부족한 듯 할 때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전직 선생님으로서, 옛날 학생들을 대하는 그 적당한 권위주의와 적당한 동등한 평범함을 뿜어내는데 매우 적절합니다.

제임스 스튜어트에 비해서 범죄자들을 연기하는 두 명의 젊은이들이라는 인물들은 조금은 더 부족한데가 있습니다. 우선 이런 류의 "완전 범죄 들키기" 이야기는, 절대 틈이 없을 것 같은 완벽한 똑똑이 악당이 조금씩 틈을 드러내면서 허둥대고 그 허둥대는 면을 숨기려고 하고, 겁을 먹기도 하고, 억지로 당황하지 않은 척하기도 하는 복잡한 감정의 표현에 재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겁쟁이와 잘난척쟁이 두 명의 인물로 분리되어 있어서 그 감정의 복잡함이 좀 떨어집니다.처음부터 한 명은 허둥대기만 하고, 끝까지 나머지 한 명은 냉정하기만 합니다.


(겁쟁이 범인)

실시간 전개, 한 컷 영화이다 보니, 지루하지 않도록 이 곳 저 곳을 번갈아 비춰서 동시에 두 개 이상의 이야기를 진행시켜서 재미있는 부분만 건너가며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고, 그러다보니 어쩔 수 없이 인물 두 명이 활동하게 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실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점도 이유일 겁니다. 두 명으로 나눠서 이런 목표를 훌륭히 달성해 내고 있기는 하지만, 이때문에 범죄물 고유의 재미가 약간은 가능성을 놓친것도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시간 사건 전개를 하면서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들어야 하다 보니,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치고는, 말로 하는 농담, 재담에 기대는 면이 꽤 많은 영화이기도 합니다. 잡다한 윤리학을 조금씩 찔러보기도 하고, 인간관계에 대한 단상도 조금씩 풀어 놓기도 합니다. 이 영화의 초반에 나오는 농담하나는 21세기의 "오션스 트웰브"에서 거의 비슷한 아이디어로 다시 볼 수 있는 것인데, 아주 흥겹고 재미있으며, 이미 이 영화에서 활약한 배우들의 시대가 한 참 지난 요즘에 보면 옛 추억이 서린 애잔한 느낌도 의외로 느껴집니다.


(선생님의 만담 시간: 요즘 유행하는 그 "어쩌고"말입니다...)

아까 범죄자역의 인물들이 부족한 면이 있다고 했는데, 대조적인 범죄의 두 감정을 상징하면서 그에 어울리는 어조로 듣기 신기한 대사들을 떠드는 두 사람의 연기는 범죄물 연기와는 차별 되어 뛰어납니다. 그런 솜씨라면 이 영화를 전혀 다른 분위기의 코메디 소동극으로 만들어서 만담을 하게 해도 아주 잘 해낼 것입니다. 실제로 그런 가능성에 주목한 비슷한 소재의 코메디 소동극은 꽤 많이 만들어졌기도 합니다.

"로프"에서 단연 돋보이는 또 하나의 요소는 무대가 되는 아파트의 창 밖으로 보이는 경치 입니다. 우선 이 영화는 모든 이야기가 아파트 한 채 안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답답하고 축소된 느낌이 들며, 아파트 한 채의 느낌만 강하기 때문에,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지가 불분명한 보편적인 "20세기 현대"의 이야기인 듯 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런 요소는 극히 이성적인 살인의 예를 제시하는 이야기의 원형적인 면과도 통합니다.

그런데, 창밖으로 펼쳐지는 탁트인 경치는 이와는 대조적으로 시원한 모습으로 그 미술적인 가치를 과시합니다. 이것은 대조감을 줄 뿐만 아니라, 동시에 경치를 통해서 무대의 위치, 시간을 명백히 밝혀주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보편성을 주는 이야기면서도 구체성을 은근슬쩍 배경에 깔아 줄 수 있는 겁니다.

처음으로 바깥 경치가 펼쳐질 때의 그 과시적인 화려한 느낌은 21세기 제임스 본드 영화의 "어나더 데이 Die Another Day"의 초반 장면에서 모범적으로 변주될 정도로 뛰어난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거기다 실시간 영화인만큼 실시간으로 흘러가는 시간감각을 관객들에게 전해주는 것이 영화의 재미를 더 높이게 되는데, 바깥 풍경은 해질녁의 서서히 어두워 지는 경치를 보여주어서 그 시간감각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기능에서 톡톡히 제 몫을 합니다. 이것은 돌아가는 시계를 클로즈업 하는 것 처럼 전형적이고 단순한 대신, 영화의 다른 요소들을 끊어먹지 않으면서도 영화 화면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시간을 표현하는 멋진 수법이었습니다. TV쇼 24가 한 시간씩 끊어 먹느라 놓친 실시간 전개 묘미의 일부분을 제대로 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잘난척쟁이 범인)

"로프"의 이야기는 평범하고 단순한 범죄물입니다. 인물들은 개성이 있지만, 범죄물의 전형에 불과하며, 사건이 결정적으로 파헤쳐지는 단서와 추리도, 별다른 충격이나 반전, 정교한 아이디어 없이 평범한 수사반장 에피소드 수준 이하에 멈춰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 한계 안에서 재미있는 영화의 형식으로 몇몇 장면들의 재미를 좀 더 깊게 뽑아낸 기술이 있고, 바로 그런 면이 영화 전체에 쏟아지는 재담과 더불어 색다른 재미를 주는 영화입니다.

"전화박스 안에서 일어나는 일만 가지고도 스릴이 넘치는 서스펜스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장담했던, 기술적인 장인으로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한 단면을 제시하는 영화가 "로프"라 할만합니다. 그리고 범죄자의 두 가지 심정과 이를 밝히는 탐정의 심정을 상징으로 나타내는 선명한 인물들은 그 전형으로서 여전히 가치를 갖고 있다 하겠습니다.


(시체가 있는 방에서 벌어진 저녁 모임)


그 밖에...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첫 컬러 영화 입니다. 진정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카메오 장면이 어디냐에 여러 의견이 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알프레드 히치콕이 처음으로 제작을 담당한 영화입니다.

프랑수아 트뤼포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 영화에서 멀리서 다가오는 사이렌 소리 효과를 위해서 음향기술자가 녹음된 소리를 점점 크게 틀어서 표현하고자 했다고 합니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앰뷸런스를 3킬로미터 거리로 보낸 뒤에 사이렌을 울리면서 가까이 달려오게 하면서 녹음했다고 합니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연극 대본에 바탕을 두는데, 이것은 또 실화에 아이디어를 얻고 있습니다. 1920년대 시카고 황색 언론의 불타는 관심을 받았던 저 악명 높은 레오폴드-로엡 사건이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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