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Duelist 영화

"형사 Duelist"는 만화의 컷 구도 처럼, 회화적으로 극단적인 장면 전환을, 발빠르게 이어 붙이면서 간단한 이야기를 읊는 신나는 리듬의 영화입니다. 당연히 같은 해에 나온 "씬 시티"와 여러 모로 비슷한 면이 많습니다. 그다지 복잡하지 않은 전형적인 구도의 이야기 속에 극단적으로 뚜렷한 성격의 인물들을 배치합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는 시원스럽고 화려한 화면 전개에 조용한 감정 흐름의 시간들도 중간중간에 끼워 넣습니다. "형사 Duelist"의 프롤로그 장면은 거의 똑같은 것을 "씬 시티"에서 찾아 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아주 짧은 에피소드를 전체 이야기 앞뒤에 배치해 수미쌍관을 만드는 그 방법도 비슷합니다.

"씬 시티"가 옛날 느와르 영화들의 도시의 밤과 트렌치 코트 입은 탐정들에서 그 소재로 가져 왔다면, "형사 Duelist"는 요즘의 색깔놀이 중국계 사극 영화들을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느와르 영화에서는, 사건의 발단이 되는 빨간 원피스를 입은 의문의 여인이 독백하는 주인공 앞에 출현합니다. 그리고, 이리저리 휘말리다가 총을 겨눈채 벌어지는 위협 장면에서는 극단적인 공포와 베짱이 충돌합니다. 비슷한 전형으로서, "형사 Duelist"에 나오는 염색공장, 골목에 흐드러지게 걸린 주황빛 등, 높은 담장의 골목에서 벌어지는 조용하지만 팽팽한 격투, 기둥 많은 썰렁한 큰 건물에서 두 명이 설치는 액션. 이런 장면들 또한 흡사한 것들이 장예모 감독의 영화들이나 그에 영향을 준 다른 영화들에 이미 담겨 있었습니다. 이런 요소들이 "형사 Duelist"에서 만화 컷 연출에 실려서, 옛 테크니컬러 영화들을 연상케 할만한 극단적인 색상으로 더더욱 선명하게 드러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옷 색깔들만 놓고보면, "딕 트레이시"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Good cop, bad cop)

"형사 Duelist"의 구체적인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배경은 조선 후기. 두 명의 좌포청 포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전형적인 "투캅스" 구도 입니다. 한 명은 투캅스 1편 안성기의 조상으로 보이는 안성기의 인물로 "착한 형사"역을 맡은 경험많고 유연한 사람입니다. 다른 한 명은 자기가 "더티 해리"의 누나라고 생각하는 듯한 실력 좋고, 무예가 뛰어나며, 불같은 성격의 예의 무시 과격 인사인 "나쁜 형사" 하지원 입니다.

두 포교들은 초대형 위조 화폐 사건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 연루된 인물로 강동원이 연기하는 초특급 환상 무적 불패 아무도 절대 이길 수 없는 신비의 칼잡이가 등장합니다. 조용하면서 깔끔하며 거기에 갑자기 어린애 같은 순수함도 엿보이는, 귀신이나 악마와 같은 비현실적인 악당인 이 무적 칼잡이는 최강 형사 하지원의 정복욕을 자극합니다. 그래서 하지원의 인물이 미친 듯이 사건에 매달리게 되고 온힘을 바쳐 칼잡이를 쫓게 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이 칼잡이와 하지원은 오묘한 동지애를 느끼게 되는 듯하고, 나아가 서로를 먼발치에서 보고 이해하고, 언뜻 사랑하게 되는 듯도 합니다.

그러는 사이, 점차 화폐 위조단의 범행은 온 세상을 뒤흔드는 어마어마한 것으로 커져가고, 동시에 화폐 위조단을 적발해 분쇄할 단서들도 하나 둘 잡아 나가면서, 영화는 결말을 향해 흘러갑니다.


(안성기)

멋진 이야기입니다. 이야기의 내용은 전체적으로, 신문 "사건 사고"란의 간단한 일을 마치 세계의 멸망을 가져오는 일인냥 묵시록적인 종말로 심각하게 잡아내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비교적 요즘 영화들로, "세븐" "늑대의 후예들" 같은 영화들이 떠오르고, 그 밖에 18, 19세기 파리나 런던 골목의 사건들을 소재로한 공포소재 섞인 영화들이 떠오릅니다. 동양의 사극으로는 "청사"나 몇몇 "신선조" 관련 사무라이 이야기들도 생각이 납니다. 좀 더 현실적인 분위기를 살리고 싶었다는 차이는 있지만, 그런 이야기의 전형인 "혈의 누" 같은 영화도 대표적인 예일 겁니다.

따지고 보면, 사회에 불만 많은 똑똑한 놈이 자기 조직과 행동 대장을 중심으로 사기 한 판 크게 때리고 있다는 범죄를, 이 영화는 좀 과장하면 아마겟돈 수준의 신화적인 상징으로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색상대비와 채도대비를 강렬하게 휘두르는 화면이 이를 잘 이루어 내고 있습니다. 사극이면서도 여러 시대의 사물, 음악, 구도를 적당히 섞은 보편적이고도 비현실적인 다른 요소들도 여기에 공헌하고 있습니다.

특히 주목할만한 요소는 이 영화 전체의 드높은 인구밀도 입니다. 이 영화에는 처음부터 줄기차게 웅성거리는 군중들, 사람 많은 술집, 빽빽한 시장, 좁은 골목, 겹겹이 둘러쳐진 기생집 등등을 오갈 뿐입니다. 이런 꽉차고 좁은 느낌은 영화의 모든 배경들이 하나로 뭉친 상징적인 세계로 보이게 합니다. 그림 동화 속 세계는 성, 숲, 마녀의 집 달랑 세 가지로, 한 나라의 모든 것을 묘사합니다. 행정법과 국가조직법 문서들이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노란 잠수함"이라 할만한 "형사 Duelist"의 한 덩어리인 작고 좁은 도시 역시, 마찬가지로 상징적인 동화의 느낌을 주는데 일조하며, 그런 배경에 등장하는 뚜렷한 인물들의 모습을 살리는데도 도움을 줍니다.


(Seven deadly sins... gluttony, greed, sloth, envy, pride, lust and wrath...)

인물들은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축으로 훌륭합니다. 안성기와 송영창의 연기는 노련하며, 김보연의 멋진 등장을 비롯하여 기타 조연들도 톡톡히 제 역할을 다하는 편입니다. 다만, 다른 주요 인물들의 경우, 일부 연기 연출에서 약간씩 헛점이 보입니다.

하지원의 인물은 하지원이 딱딱한 관습에 답답해 하는 발랄하고도 퉁명스러운 인물일 때는 더없이 적당합니다. 그리고 그런 인상이, "하지만 이 사람도 내면에는 깊은 따뜻한 격정의 소용돌이가 있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를 표현하는 멜로드라마로 넘어갈 때도 유려합니다. 하지만, 화끈한 격투를 펼치고,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어 부수는 거친 형사를 연기할 때는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정말로 거친 형사라기보다는, 괜히 무섭고 거친척 하려는 과장으로 그칩니다. 감독이 상상한 연기와 배우가 상상한 연기가 잘 이어지지 않은 부작용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원)

강동원의 인물 역시, 신비의 극치를 달리는 유령같은 범죄자라는 연기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너무 범죄의 세계에만 묻혀 살았다는 점을 반대로 표현하는데 쓰이는, 언뜻언뜻 드러나는 상처 받은 어린애 같은 면모도 더할나위 없이 적당합니다. 이런 장면들은 "이 사람은 평범한 사람과 완전히 다른 삶을 산 사람이거나, 거의 사람의 수준이 아니구나" 하는 상상을 생기게 하고, 덕분에 "동방불패" 처럼, 더 멋진 신비로움과 도저히 당할 수 없을 것 같은 강렬함을 상상하게 합니다. 역시 "동방불패"처럼, 외로움과 그에 대한 연민, 하지원의 인물과 연계되는 곡절많은 연애와도 직결됩니다.

하지만, 강동원의 인상과 연출, 무술지도는, 싸움잘하는 최강의 칼잡이의 파괴력을 표현하는데는 부족해 보입니다. 아마 강동원이 현대적인 폭탄테러범이나 조용한 저격범, 혹은 지능적인 독살범이었다면 이런 점의 문제는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강한 몸 동작으로 상대방에게 위압감을 주고 시원한 동작으로 살상력의 파괴감을 작렬시켜야 하는 표현으로는 약간 모자랍니다.

물론 강동원이 이연결처럼 배우 스스로의 개인기로 강렬한 액션을 보여준다면 더할나위 없었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다음에야, 임청하나 장쯔이를 표현할 때 처럼 연출과 편집으로 적당한 화면을 만들어 낼 수는 있었을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액션 연출이 리듬감 있기 때문에 이런 무예 동작들의 부족함이 눈에 띨 정도는 아닙니다만, 이런 면에서 강동원의 인물이 정말로 전설적인 영화속 악당처럼 보이기에는 모자란 면이 있습니다. 이것은 다만 액션 연출만의 문제는 아닌 것으로, 영화속에서 "그 처럼 슬픈 눈은 처음 보았다"라고 이야기하는 장면도 좀 억지로 쓴 시 구절 처럼 가짜 같이 들립니다.


(강동원)

사실, 이런 인물의 힘있는 표현이 약간 부족한 것은, 영화가 애틋한 원거리 공감의 감정 묘사에 치중하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해하고 넘어갈 법 합니다. 또 도입부 연기의 칼춤 장면 같은 것은 앞서 언급했듯이, 연출의 박자감각으로 슬쩍 그런 헛점을 감추고, 진짜 대단한 칼솜씨 악당인 것처럼 보이게도 합니다. 그렇게치면, 마지막 에필로그 격투가, 별로 감정에 많이 설득되지 않은 관객에게는 과하다 싶을 만큼 길게 이어지고 공허해 보이는 것도 약각은 어색하긴해도 무리는 없습니다. 사실 이 영화의 눈에 띠는 문제점은 전반적인 "대사 표현"의 완성도에 있어 보입니다.

사실, 이 영화의 각본상 대사는 좋습니다. 단번에 호기심을 생기게 하는 도입부의 표현들도 멋지고, 사설조의 음악적인 대사들을 배경음악과 액션의 리듬감에 실어 가는 것들도 뛰어납니다. 하지만, 이런 대사들이 인물 연기에 자연스럽지 못하게 연출되어 있는 부분이 종종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야기 전체에 널리 호남 방언을 사용한 것 입니다. 방언의 사용 자체는 존 맥클레인 형사의 액센트를 떠올려 보면 인물에 들어맞는 결정입니다. 하지만, 하지원을 비롯한 많은 인물들이 진짜처럼 사투리 대사를 읊는다고 보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습니다. 하지원의 감정 표출이 표정과 동작으로는 잘 살아 있는데 비해서, 격한 감정을 대사로 표현할 때는 대부분 꽥 하고 소리지르는 것으로 여러번 때우고 마는 것은 아쉽습니다. 비슷하게 강동원은 눈동자에 눈물글썽글썽으로 안이하게 때우고 넘어가는 면이 보입니다. 강동원의 대사는 선명하게 감정을 싣지 못하고, 정우성이 피곤해서 대충 연기할 때를 연상하게 할만큼 대강 연출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후시 녹음으로 되어 있는 대사들은 꿈같은 이야기의 분위기를 살리는데 도움되는 점도 있긴 합니다. 몇몇 장면들의 개성있는 연출들은 느린 동작 보여주기에 더불어, 후시녹음은 그런 특징을 제대로 살리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덕분에, 모자란 듯한 대사 연기 연출을 더 무디게 만든 헛점도 갖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인물들이 가득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인물들의 성격과 심정을 전달하는 대사가, 꽤 많은 부분에서 어설픈 손동작과 몸짓에 한 마디 한 마디 맞춰 나가는 것은 아쉽습니다. 자칫 70년대 구연동화나 어린이 웅변대회 모양새로 내려 앉을 위험이 보입니다.


(공리가 어디엔가 숨어 있을 듯한 모습)

시작하면서 "씬 시티"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씬 시티"와 구별되는 "형사 Duelist"의 차이점 중에는 이런 이야기의 영화치고 피가 거의 튀기지 않는다는 점도 있습니다. 동화 느낌을 더 강조하기 위해서기도 하고, 영화에 넘치는 색깔과 흐르는 감정선이 다른 자극 때문에 방해 받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그러면서도 충분히 거창한 살육전의 느낌을 주는 것은 존경할만합니다. 빽빽한 인원수를 동원한 절정부분의 액션 장면은, 한자문화권식 대규모 고대전 장면이나, FBI 특공대 총출동 장면의 박력의 요소를 과장해 끌고 와서, 적당히 규모있는 블록버스팅 장면을 꾸며내고 있습니다.

사실 "씬 시티"와 "형사 Duelist"의 가장 뚜렷한 차이점은 바로 음악 사용 입니다. 사실 마리아치 시리즈를 필두로, 영상과 박자 맞춰 흐르는 음악은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장기였습니다. 그런데, 회화체 감각과 가라앉은 느와르 영화 분위기를 위해 "씬 시티"는 음악 사용이 그런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다른 영화들과는 꽤 다릅니다.

이와 달리 "형사 Duelist"가 음악에 영화의 상당부분을 할애한 것은, "영웅"이나 "연인"과 같은 요즘 몇몇 중국계 사극 영화들의 특징과 겹치는 면이 있습니다. 옛날 장예모 감독 영화들도 그런 것이 있지만, 이런 영화들은 단선율이 강한 음악, 특히나 현악기 연주를 자랑하면서 분위기를 잡습니다. 이런 점은 "형사 Duelist" 역시 그대로 답습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형사 Duelist"는 여기에서 좀 더 나아가서 흥겹게 울려퍼지는 타악기 리듬 중심의 음악들까지 영화 전반에 깔아 놓았습니다. 이런 연출은 여러 화려한 연출들에 더욱 생기를 불어 넣고 있으며, 숨가쁜 동작의 현실감과 탭댄스 같은 비현실감을 넘나들면서 흥을 돋굽니다.


* 한 게시판에서 필름포럼 알프레드 히치콕 특선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 http://www.filmforum.co.kr/screen/event.html ) 이를 맞이하여, 가능하다면 다음에 올라가는 글들에서, 상영작 중 제가 리뷰하지 않았던 "이창", "39계단", "의혹"을 앞으로 리뷰해 보려고 합니다.


그 밖에...

강동원이 연기한 칼잡이의 본명은 영화 끝 까지 밝혀지지 않습니다만, 영화 촬영 당시 스탭들은, 이 인물을 지칭할 때 "봉팔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 영화로 배우인 강동원은 국내 영화제에서 연출,기술 부분의 상, 네 개를 "대리수상"하는 진기록을 세웠습니다.

비슷한 수준으로 공을 들인 한국 영화들의 흥행성적을 생각해보면, "형사 Duelist"는 사실 전형적인 "저주 받은 걸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자체에 대한 평이 좀 엇갈렸다는 점을 감수한다하더도, 흥행 결과는, 경쟁작, 개봉시기, 막차 놓친 다모-강동원 팬의 역풍이 어우러져 아쉬운 모양이 되었습니다.



덧글

  • 케이 2006/03/10 12:23 # 답글

    밸리에서 우연히 지나갑니다^ ^
    형사 Duelist를 아직 보지는 못했는데, 강동원이 연기한 캐릭터의 본명은 밝혀지지 않는 거였군요. 저는 이야기만 건너 듣고 슬픈눈 인 줄 알고 있었더랍니다. 엔딩 크레딧에 그렇게 올라가기 때문인지, 그렇게 알고 계신 분이 좀 되는 것 같기도;;
    형사 Duelist 자체의 색채감이나 화면 구성 등은 호평 할 만 하지만 내용 면에서는 그다지 볼 게 없다, 움직이는 강동원 화보집이다(...) 같은 말을 많이 들어서인지 시간을 내서 까지 볼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는데, 게렉터 님의 글을 보니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
  • 게렉터 2006/03/12 00:17 # 답글

    사실 "강동원 화보집이다..."라는 말은 개봉 당시에 강동원 팬층을 어떻게 해보려고 했던 영화 홍보팀이 만들어낸 역풍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강동원 폼 잡기 장면이 꽤 많긴 하지만, 결코 "친절한 금자씨"의 이영애처럼, 강동원 중심으로만 흘러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 못지 않게, 하지원, 안성기의 인물의 비중이 큽니다.

    줄거리 중심의 영화가 아니다...라는 말이 많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줄거리 자체가 힘이 없는 내용도 아닙니다. 악당들의 갈등관계는 줄거리 자체의 흐름과 관련이 깊습니다.
  • >_< 2006/03/12 01:52 # 삭제 답글

    독수리 5형제^^ 와 저 애니메이션은 오시이 마모루가 하던거 직업 때려치고 관여된 첫 애니메이션인데 좋아하나보죠? 음.. 좋은 취향이군요. 참 재미있었어요 독수리 5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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