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 Munich 영화


(유럽 이곳저곳을 타격하는 5인조)

"뮌헨"은 뉴욕 세계무역센터 빌딩 사건이 있기 전까지, 텔레비전 사상 가장 유명한 국제 테러 사건인, 뮌헨 올림픽 이스라엘 선수단 사건에서 발단을 두고 있는 냉랭한 첩보물, 암살자 영화입니다.

영화 초반에는 뮌헨 올림픽 이스라엘 선수단 사건이 준 충격과 이스라엘 정보부의 대응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정보부는 함무라비 법전식으로, 테러에는 테러로 응수하려 하고, 비밀리에 대응 테러를 하기로 합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공작 조직은 에릭 바나의 인물이 이끄는 신인들로 구성된 테러단을 만들어 활동하게 합니다. 이들은 유럽 각지에 퍼져 사는 팔레스타인 과격 단체의 관련자라는 명단을 받고, 이들에게 보복성 암살 테러를 펼치는 것이 영화의 주요 내용입니다.


(정보원이 비밀리에 전해주는 정보)

영화의 뼈대는 냉전시대에 유행했던 차가운 첩보물 영화입니다. 전문적인 스파이들이 조용하게 작전을 수행하고, 거대한 두 세력의 어두운 대결의 틈바구니에서, 도대체 자기가 하는 일이 무슨 의미와 보람이 있는지 회의에 젖기도 하고, 비정하게 희생당하기도 합니다. 아슬아슬한 추격전과 내부 첩자, 이중 첩자에 대한 의심이 있고, 목숨의 위협에 대한 조마조마한 느낌이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옛날 건물과 조각이 많은 유럽의 좁은 길들을 관광시켜 줍니다. 한국에서 더 유행했던 영화를 생각해 본다면 알랑들롱의 범죄 영화들과도 비슷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여기에다 더하여, "뮌헨"은 브라이언 드 팔마, 쿠엔틴 타란티노, 다리오 아르젠토로 친숙한 붉은 피의 선명한 색조를 이용한 살해 장면을 적절하게 덧씌우고 있습니다.

"뮌헨"의 주목할 만한 점 하나는, 화려하게 선명한 시각적 인상을 주는 살인 장면이 이어짐에도 불구하고, 그런 장면들을 깜짝 놀래키는 수법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비슷한 방법을 내세우는 다른 많은 요즘 영화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어떤 영화들은 잔인한 장면의 자극으로 영화의 지루함을 달래고 강한 충격감을 표현하려고 하다가, 영화의 분위기를 뚝 끊어 버리곤 합니다. 그에 비하면, "뮌헨"은 풍성하게 살해 장면을 펼치면서도 자연스럽게 장면들을 연결할 뿐, 결코 요란한 폭발음을 아무 상관 없는 순간에 갑자기 왼쪽 스피커에 울려서 관객의 입에서 먹던 팝콘이 튀어나오게 하지 않습니다.

"뮌헨"의 주인공인 다섯명의 테러리스트들은 개성이 뚜렷해서 단번에 기억에 남는 인물들입니다. 그러면서도 결코 과장스런 전형에 빠지지 않아서 도리어 현실적인 느낌이 드는 인물들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인물들은 테러를 저지르면서 당황하기도 하고 성격이 변하기도 하며 정신이 황폐해 지기도 하고, 회의를 느끼기도 하면서, 점점 더 위험에 빠져드는 흐름을 전달해 주기에 아주 적당합니다.


(작전 중인 사람들)

이 테러리스트들은 영화의 흐름에 따라, 대표적인 암살 테러 방식을 하나 하나 보여 주는 것을 구체적인 내용으로 펼칩니다. 대놓고 쫓아가 총질하기, 폭탄 투척, 원격 조정 폭발물, 저격 등등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테러 방식의 전형들을 하나하나 차근차근 보여줍니다. 각각의 테러마다, 이런 테러수법들이 어떻게 영화상에서 흥미로운 사건으로 표현될 수 있는지 많은 모범들을 충실히 배워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뮌헨"은 이러한 테러에서, 영화로서 표현하기 좋은 시각적인 인상을 잘 써먹고 있습니다. 혹은 화면에 대놓고 보여주기 위해 사용하는 교묘한 장치로서 보이지 않는 느낌이란 것을 표현하는 재주를 잘 써먹고 있습니다.

간단한 예를 들면, 켜놓은 불빛을 끄는 것으로 공격 신호 보내는 행동은, 누가 무전기에 대고 "지금 공격!" 이라고 소리치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습니다. 불을 끄는 동작은, "공격"이라는 강한 느낌이 갑자기 극장 전체가 어두워지는 것으로 표현되고, 이것은 화면전체를 강렬한 인상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빛은 평화 상태, 어둠은 파괴의 순간이라는 본능적인 느낌을 가져와 전달할 수도 있고, 대사 한 마디 없이 불을 끄려고 다가가는 동작을 비추는 것만으로 관객들에게 공격의 의지를 전달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항상 눈을 화면에 고정하고 있는 관객들에게 분위기를 이입시키기에도 좋습니다. 이런 요소들은 다양한 여러가지 방법들로 영화 곳곳에 잘 배치되어 있습니다. "더 록"에 나오는 "초록빛 연기"가 멋지게 피어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이 좋은 연출과 계속되어 이어지는 다양한 수법들은 이야기 전개를 흥미진진하게 따라가게 해 줍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뮌헨"은 단순히 지금은 유행이 지난 냉정한 첩보 영화를 다시 돌이켜서 노력 많이 한 솜씨로 잘 만든 영화로 볼 수 있겠습니다. "시카고"의 뮤지컬 되돌리기나, "씬 시티"의 느와르 영화 되돌리기가 생각이 납니다.

그렇습니다만, "뮌헨"은 옛날 첩보영화에 추가적으로 두가지 특징을 더하고 있습니다.


(실제 사건 당시의 검은 9월단 단원)

첫번째 특징은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테러리스트와 그 희생자들이 모두 현대의 관객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평범한 인물들이라는 점입니다. 사실 주인공을 무적의 영웅이나 "트루 라이즈"식 초인으로 설정하지 않는 것은, 주인공들이 느끼는 불안한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서 예전부터 종종쓰이던 방법입니다.

그렇다면 주인공의 상대방이나, 주인공 스스로 나쁜짓을 한다면? 나쁜 짓을 하는 인물들에게 "사실은 어머니가 간신들에게 억울하게 사약을 받고 피를 토했던 것이 한이 되었기 때문이었던 것이지"라고 변명거리를 보여 줄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면서, 피 묻은 금삼을 붙들고 눈물콧물 흘리는 미치광이 왕을 보여주는 이야기라면 예로부터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와 달리, "뮌헨"의 인물들은 그런식으로 거창하고 극적인 한 맺힌 감상주의를 악행의 원인으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인물들은 누구나 갖고 있는 의무감, 버릇, 선동된 감상, 충동, 욱하는 분노, 정, 그리움등이 조금씩 어우러져 움직이는 평범한 사람들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신입사원 괴롭히는 최 부장님이 무슨 큰 원한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겠습니까?

이런 점들은, 영화의 주인공들인 테러리스트들이 기술과 재능에 있어서도 최고의 전문가나 예리한 대가들이 아닌 것으로 표현했기에 더욱 빛납니다. 이들은 적당히 기술을 가진 인물들이지만, 실수도 많이 하고, 상황판단도 자주 틀립니다.

이들은 감정 정리도 잘 되어 있지 않아서 흔들리는 것을 대강대강 참아가며 일하고 있습니다. 영화 초반에 뮌헨 올림픽 선수단 숙소를 습격하는 "검은 9월"단 테러리스트를 표현하는 부분은 노골적인 표현없이 자연스럽게 이런 점을 비추고 있습니다. 이들은 위대한 용사나 무시무시한 악마가 아니라, 오히려 욱해서 뭉친 예비군에 가까운 분위기로 되어 있습니다. 스스로도 겁에 질려있고 허둥대기도 하면서, 이에 대한 역감정으로 더 거칠어지고 잔인해진 모습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물 설정으로 이렇게 약간 입체감을 넣은 내용은, 무채색 색상의 배경에 약간 축축한 느낌을 넣은 화면과도 잘 어울립니다. 그런 속에서 환하게 퍼져나가는 전기 조명을 살린 모습으로 도시 시민의 감상을 보여주는 장면들은 "택시 드라이버"나 "비열한 거리"의 장면들을 떠오르게 할만 합니다.


(Mean street in Europe)

"뮌헨"의 두번째 특징은, 이야기 자체에 꽤 분명한 교훈을 집어 넣었다는 점입니다. 비슷한 분위기의 범죄물이나 첩보물은 그냥 "주인공편들기"를 중심으로 긴장감을 잡아갈 뿐입니다. 하지만 "뮌헨"은 차가운 이야기 속에 벌어지는 비극적인 사건들의 슬픈 느낌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노골적인 수법도 있긴 합니다. 뉴스에 대한 반응을 이스라엘 사람들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오가며 편집해 보여주는 장면같은 것이 예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 동안 자연스럽게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전체에 녹여 두었습니다. 멍청한 충돌 덕분에 정말로 멋진 사람들이 죽고, 더 많은 사람들의 소박한 행복이 박살납니다. 이런 점은, 정치 계몽 광고처럼 보이는 "웨스트 윙" 같은 TV쇼 에피소드들과 선명한 차이를 보입니다. 동시에, 정치적인 충돌을 소재로 해도 그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식이 없는 편인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많은 첩보 영화들과도 다릅니다.

"뮌헨"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점은 엉성한 결말입니다. 사실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는 보통, 실화가 거대한 파괴적인 결론을 맺지 않는 이상 끝을 명확히 맺기가 애매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뮌헨"은 반전이라면 반전으로 활용될 수도 있을 몇가지 요소를 너무 앞서 흘려 버려서 써먹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 어느 장면에서도 그 반전의 충격이나 사건의 의미를 확실히 격정적으로 펼치고 있지도 못합니다. 에릭 바나의 인물에게 마지막 갈등을 제시하는 방법도 사소하고, 거기에 대한 결론도 수없이 많은 살육으로 점철된 전체 이야기의 마지막 치고는 너무 가볍고 단순합니다. 꽤 시간을 들여 대사를 주고 있는 주인공의 부모 인물들도 군더더기처럼 제 역할을 못합니다.

특히나, 다큐멘터리와 같은 생생한 현실감을 적당히 표현해내면서도 인물에 대한 풍부한 이입과 호기심 끄는 연출을 보여준 도입부에 비하면, 여기에 연관된 결말 부분 장면들은 어색합니다. 뮌헨 올림픽 선수단 사건의 표현은 잘 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에는 어느 DMB 광고 비슷한 장면을 필두로 아이디어도 많습니다. 이것은 전체 이야기로 잘 연결되어 흘러가기도 합니다만, 그렇다고해서 이야기 전체의 보복 테러 이야기와 찰떡같이 연계되어 있는 이야기로 표현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12 몽키스"의 꿈처럼 되기에는 밀착된 정도도 약하고, 결말부분에서 에릭 바나의 얼굴 표정과 총격전 장면을 이용하는 교차편집 연출은 자칫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그 때는, 전체적으로 절제하면서 잘 따라온 음악마저 요즘 유행하는 방식을 답답하게 따르면서 재미 없어져 버립니다. 요즘 영화들은 아시아풍 멜로디를 여자 목소리로 들려주면서 현악을 덧붙이는 것을 "감상할 시간용 배경 음악"으로 삼곤 합니다. 이 비슷비슷한 음악들은 90년대 후반에 끝없이 쏟아져 나온 10대 댄스 음악을 떠오르게 합니다. 덕분에 장중하고 아련한 느낌과 고민을 안겨주어야할 영화의 맨 마지막 구도는 좀 실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에릭 바나)

이런 결말이 아주 아까울 정도로 배우들의 연기는 뛰어납니다. 주인공인 "에릭 바나"는 "트로이"에서 써먹었던 장기를 다시 한 번 자랑합니다. 오랫만에 가족들과 통화하면서 옛날 김승우가 찍었던 전화 광고를 보여주는 장면은 각본상으로는 좀 뜬금없다 싶을만도 합니다. 그런데, 거의 개인기에 가까운 에릭 바나의 연기로 거기에서 공감을 이끌어 냅니다. 에릭 바나의 동료들인 다른 배우들도 결코 헛점이 보이지 않으며, 대사가 많지 않은 작은 역할들도 대부분 호연입니다. 사람들과 나누는 대사는 극히 짧은 인물일지라도 생사의 위기라는 극단적인 상황의 짧은 순간을 빌어, 그 사람의 침착함이나 존엄과 같은 성격상의 가치를 드러내 줍니다.

각본자체가 상징적인 극적 인물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다운 행동과 생각을 끌어내서 그려내려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각본에 힘입어 연기가 상승효과를 일으킨 부분이 많아 보입니다. 주인공의 동료들은 물론이거니와, 아테네 호텔 발코니의 아저씨와 네델란드의 아가씨 등도 기억에 남을 만합니다.

곁가지겠습니다만, 영화는 유럽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보여주는 재미도 충분합니다. 이국적인 곳 보여주기라는 첩보 영화의 또다른 덕목을 잘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유행가에서 옷차림에 이르기까지 1970년대 유행을 그다지 어색하지 않은 면만 잘 골라서 어울리게 곁들여 보기 좋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중해의 농장이나 독일 뒷골목, 로마 시내, 술취한 미국인들이 돌아다니는 런던 거리. 물론 파리도 빠지지 않았으며, 파리에서는 에펠탑이 당연하게 주인공의 뒷 배경으로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 밖에...

협회 인사들의 꿈자리가 사나웠기 때문인지 뮌헨 올림픽 은 한국이 역사상 가장 적은 숫자의 선수단을 보낸 올림픽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국전쟁 중에 선수단을 보낸 1952년 헬싱키 올림픽의 인원 보다도 적다고 합니다. 한편, 뮌헨 올림픽은 북한이 처음으로 선수단을 보낸 최초의 올림픽이기도 합니다.

바락 이스라엘 전 총리의 험난한 젊은 시절이 잠깐 비치는 예상외의 장면이 있습니다.

덧글

  • jungtime 2006/03/12 01:11 # 삭제 답글

    상영시간이 길어서 지루하면 어쩌나 하고 영화를 봤는데, 애브너(에릭 바나)란 인물에 감정이입이 되어서 아주 긴장감있게 영화를 봤습니다. 결말부분은 아쉽지만, 잘 만든 영화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입니다.
  • 호기심 고양이 2006/03/12 01:50 # 삭제 답글

    첫 사진이 나도 너무 좋아하는 아테네 Scene 이네요. 언덕에서 모두 걸어 내려오는 씬이 운치있었어요. 아무리 딴에 냉혹하고 잔인하며 치밀하다 해도, 그 시절에는 최소한의 아주 최소한의 그 무엇이 있었고 그 것에 관한 갈등을 그렸다는 점에서 진정한 예술이여요. 모든 통계와 분석, 과학적인 웨이로 지금은 어떤 시대입니까. 지금도 좋은 사회지만 미래는 더 어떻겠어요. 그 부분때문에 아 정말 미래에서 지금을 회상할 때, 혹은 그 미래도 결코 너무 살벌하게 인간을 유린하고 타인의 행복을 파괴하는 테러는 철저하게 방지해야된다는 각오를 주는 미래영화였어요. 감동적인 영화. 아 스티븐 스필버그 러브러브. 너무 좋아요.
  • joyce 2006/03/12 10:26 # 답글

    아까운 영화입니다. 미국도 어느 정도 마찬가지였겠지만 현실의 중동 갈등에 대한 담론에 허우적대느라 영화 줄거리도 제대로 챙겨보지 못하고 관념적인 찬반론만 늘어 놓는 평들을 보면서 우리나라 영화 감상 문화에 아주 실망했었습니다.
  • 게렉터 2006/03/12 23:13 # 답글

    jungtime/ 우선 액션 장면 하나하나에 여러 다른 영화의 장점을 잘 도입한 점이 보이는데다가, 인물들도 말씀하신대로 흥미를 끕니다. 긴 러닝 타임 때문에 결말이 늘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호기심 고양이/ 그 장면에서는 예스러운 1970년대 분위기 때문에, 복고적인 도둑영화인 오션스 일레븐 같은 분위기도 묘하게 느껴집니다.

    joyce/ 솔직히 말씀드리면, 사실 joyce 님이 느끼신 것과 비슷한 점을 저도 조금 느껴서, 일부러 위 글을 쓸 때,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감독의 이름과, 민족이름 "유대인"이라는 단어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 2006/03/14 14:39 # 삭제 답글

    상당한 블로그를 운영하시는군요. :-)
  • 게렉터 2006/03/16 09:53 # 답글

    이런저런 글을 쓰는데로 계속 올리다 보니 이제야 좀 모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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