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드 히치콕 영화 계보 영화

무슨 괴수 종합 대백과도 아니고, 프로레슬링 선수 카탈로그도 아닌데, 이런 초박막 처리라 할만큼 얄팍한 제목의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유는 이번 필름 포럼 상영을 맞이하여 간단하게 뭔가 정리하고 싶은데, 워낙에 많은 주제가 이야기 된 대상이다보니, 그냥 오히려 대충 겉핥기를 이야기 해 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입니다.


("새"를 홍보하던 시절의 알프레드 히치콕)

우선, 이번 상영작 9편만을 대상으로 순위(!)를 매겨 보겠습니다. 옛 글들과 링크를 해두었습니다.

1. 현기증 http://gerecter.egloos.com/1573497
2. 이창 http://gerecter.egloos.com/2279057
3. 오명 http://gerecter.egloos.com/1554387
4.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http://gerecter.egloos.com/2183319
5. 의혹 http://gerecter.egloos.com/2281582
6. 39계단 http://gerecter.egloos.com/2277670
7. 레베카 http://gerecter.egloos.com/2256226
8. 다이얼 M을 돌려라 http://gerecter.egloos.com/2250986
9. 프렌지 http://gerecter.egloos.com/2285001

우선 "현기증"과 "이창"은 보면 볼 수록 재미있는 영화들입니다. "현기증"을 처음 보면 아이디어 하나로 뼈대를 심은 흥미로운 추리물로 보입니다. 별 정보 없이 보면 꽤 의외성이 강한 이야기이기도 해서 재미있습니다. 두 번째로 현기증을 보게 되면, 그 신비스런 분위기와 영화 전체에 깔려 있는 일관된 정서, 표현과 얽힌 이야기에서 사람의 삶에 대해 느끼게 하는 바가 있습니다. 세 번째로 현기증을 보게 되면, 아마도 깊게 공감할만한 세 인물들의 타오르는 심정에 동조하게 될 것입니다. "이창"을 처음보면 독특한 형식에서 빚어내는 이야기에 신기함을 느낄 것이고, 두번째 볼 때는 영화 전체에 넘쳐나는 다양한 유머와 농담들이 좀 더 흥미로울 것입니다. 세번째 보게 되면, 많은 인물들의 생생한 생동감과 매력, 영화 전체를 휘감고 있는 음악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오명"과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는 모두 아주 재미있는 영화들이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다른 영화들을 많이 보아 온 요즘 관객들에게는 좀 점수를 잃게된 영화들입니다. "오명"은 너무 '영화같은' 연애 감정 연기가 신성일 택시 잡기 처럼 보일지 모르고,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는 강력한 액션 스턴트의 힘을 보여주어야할 장면이 요즘의 차고 넘치는 컴퓨터 그래픽 특수효과에 비해서는 약간 가짜 같아 보이거나 심심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점들을 대수롭잖게 여기거나, 혹은 오히려 고전 영화의 매력으로 여긴다면 도리어 더 즐거울 수 있지만 말입니다.

"프렌지"는 화려한 살인 장면과 약간의 유머를 제외하면, 영화 자체의 가치라기 보다는 다른 알프레드 히치콕 영화의 요약 모음집처럼 되어 있는 영화라고 칠 수 있을 겁니다. 연극에 바탕을 두고 충실히 재현하는 데서 머물고 있는 "다이얼 M을 돌려라"를 제외하면, "의혹" "39계단" "레베카"는 여러 소재를 열심히 다루고 있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노력을 관찰할 수 있는 영화들이기도 합니다.


(젊은 시절의 알프레드 히치콕과 부인 알마 레빌 히치콕)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들은 무엇보다도 요즘에는 흔히 "액션 영화"라고 불리는 영화들의 줄거리를 짜나가는 정석을 제시 한 것으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여기에만 주목하면, "현기증"이나 "이창" 같은 영화들 보다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와 "39계단"이 훨씬 더 대표적인 영화로 돋보이게 됩니다.

정석은 이렇습니다. 남자 주인공이 있는데, 남자 주인공은 오해나 오인 때문에 누명을 써서 위기에 몰립니다. 추적해 오는 사람으로부터 도망치면서 낯선 곳을 여행해야 하고, 동시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밝히려는 공격적인 행동도 취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여자 주인공을 만나 도움을 얻고, 주인공의 직업과 배경이 되는 곳의 지형지물을 다양하게 활용하면서 색다른 위기와 그 풀이를 거쳐갑니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와 "39계단" 역시 정확히 이런 내용이고, "해외특파원" "비밀정보원" "스펠바운드" "영 앤 이노센트" 를 비롯한 많은 다른 알프레드 히치콕 영화들도 이런 내용입니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기본적으로 무성 영화식 보여주기 연출에 바탕을 두고, 음악, 음향, 조명, 색채를 열심히 잘 활용해서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런 영화들은 대채로 아주 흥행한 편이었고, 많은 다른 제작진들이 흥미진진하게 이어지는 발빠른 이야기를 영화로 꾸미기 위해 이 먼저 나선 사람의 시제품을 꼼꼼히 자주 따라하곤 했던 것입니다. 아무 요즘 액션 영화나 골라잡아도, 예를 들면 "더 록"만 해도 결국 이러한 특징들은 우연찮게 맞아 떨어집니다. 초특급 특전 작전 요원으로 어쩔 수 없이 활동해야 하는 화학전문가가 자신의 직업적 특성과 샌프란시스코, 알카트라즈 섬의 지형지물을 다양하게 활용해 가며 쫓고 쫓기며 모험을 벌이는 내용이지 않습니까?

같은 맥락에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영화들에 단골로 등장하는 성적 매력이 묘하게 비틀려 표출되는 양상도 흥행술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물론 거기에서 복잡한 정신분석학적인 요소나, 흥미로운 심리학적인 이야기를 잡아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심의와 검열이 엇갈리던 시대에 제작진의 흥행을 위한 노력이었다는 점도 놓쳐서는 안될 것입니다. 요즘 영화에서 쓸데없이 끼어드는 노출 장면, 춤 장면의 효과를 대신하기 위해서 자극적인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이런저런 상황들과 은근한 대사들을 집어 넣고, 이거면 팔리겠다고 기뻐한 그 음흉한 정신도 한 몫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갈수록 이런 점들은 버릇과 장기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잉그리드 버그만과 알프레드 히치콕)

이상과 같은 "연속 흥행 영화 감독"이라는 널리 알려진 단적인 인상은 여기저기에 쉽게 눈에 뜨입니다. "스릴러의 거장"이라는 수식어구도 흥행사 감독이라는 말과 쉽게 연결됩니다.

이를 넘어서, 보다 폭넓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영화들의 공통점이나 다른 영화들과의 차이점을 살펴보려면, 우선 가장 쉽게 참고할만한 것은 듀나의 "히치콕에 대한 박제된 생각들" 이라는 글입니다.

http://djuna.nkino.com/movies/scrawl_1999_04_08.html

지난 세기(1999년이니까...)에 쓰인 이 글은, 영화에 대한 글들 중에서 알프레드 히치콕 영화에 대한 일종의 헛소문들을 지적하는 글입니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영화들은, 인종주의, 권선징악, 반여성주의의 성향을 띄며 여자 주인공들은 항상 금발이라는 이야기가 어쩌다가 널리 퍼졌고, 많이들 그런 기준에 근거해서 알프레드 히치콕 영화들을 따지곤 하는데, 사실 조금만 살펴보면, 거기에 반하는 증거들과 다른 관점의 글들이 더 많다는 이야기 입니다. 이 글은 "제발 자기 머리로 생각합시다" 로 끝이 납니다. 말인즉슨,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인종주의, 권선징악, 반여성주의 감독이라는 "남의 머리로 한 생각"들을 우선 구경해 볼만하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역시 별로 옳은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들을 보다보면 그런 생각에 빠질만 하고, 또 이런 풍문이 왜 그럴듯한 이론이 되어 퍼져나가는지 하는 점을 따져보는 것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영화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펴보는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영화들이 많은 여성주의 비평가들의 비판의 대상이 되며 이것이 안이한 고정관념으로까지 옮겨 갔는가 하는 사실 역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들의 특징을 따져보는데 도움이 되는 일입니다.


(그레이스 켈리와 알프레드 히치콕)

이런저런 점들을 따져보다보면,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라고 뭉뚱그리는 것이 사실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한 사람만의 예술적인 결과물이라기보다는 제작자, 각본, 배우, 작곡가, 기술자, 시대 상황 등등의 요소들이 의외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스타워즈" 시리즈를 만든 사람을 굳이 한 명 꼽으라고 한다면, 조지 루카스이겠지만, ILM 기술자들의 빛나는 공적은 조지 루카스와 구분되어 인정할 필요가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극단적인 예를 들면, "나는 비밀을 안다"에서 영화의 분위기와 상당히 동떨어진 "Que Sera Sera" 노래와 도리스 데이를 떼어 낸다면 영화의 가치는 상당히 달라집니다. "나는 비밀을 안다"를 들춰보면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만으로 시각을 좁히는 것은, 조금 과장하면, "이유 없는 반항"을 이야기 하면서 니콜라스 레이 감독만 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한 짓입니다.

볼프강 피터슨 감독은 재미있는 영화를 많이 만든 사람이지만 첫 헐리우드 히트작이라 할만한 "가면의 정사"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이 영화의 멋진 원작 소설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대표적인 걸작인 "현기증"이나 "이창" 또한 원작 소설의 아이디어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상화 솜씨나 추가한 생각보다 가벼이 할 수 없을 만큼 중심을 잡고 있습니다.

물론 "현기증"은 미스테리와 서스펜스를 교환하니마니 하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아이디어와 개작해 바꾼 결말이 대단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의도하지 않았던, 킴 노박의 캐스팅, 나중에 핑계로 둘러댄 제임스 스튜어트의 늙어 보이는 모습, 큰 간섭없이 작곡한 버나드 허만의 음악등과 같은 거의 행운에 가까운 복을 받은 영화이기도 합니다. "현기증"이 초반 흥행 성적이 별볼일 없다가 갈수록 초대형 걸작으로 명성을 드높이는 이유로, 이러한 영화의 장점들을 영화를 만든 직후에 파악하고 예상하지 못해서 제대로 된 시장 광고 전략을 못 펼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킴 노박과 알프레드 히치콕)

따라서, 알프레드 히치콕 영화들을 따질 때 상당히 중요하게 여겨야 할만한 점 중에서 "알프레드 히치콕 영화들은 제작비를 잘 쏟아 부은 영화들이었다"는 것을 빠뜨려서는 안됩니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들은 가능한한 능력 있고 인기 있는 배우들을 고용해서, 큰 영화사가 제공하는 기술자들과 세트의 도움을 받아, 줄줄이 권리를 매입해 놓은 원작 소설들을 바탕으로 제작된 것들입니다. 이 때문에, 알프레드 히치콕 영화들은 감독의 개인기 만큼이나, 다른 요소들도 장점으로 두드러집니다. 이런 결과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제작 현장에서 자주 고집을 부리고 배우들과 제작진들에게 은근히 면박을 잘 주는 사람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독특한 일입니다.

사실 알프레드 히치콕 영화들 중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나 "타이타닉"처럼 진정한 물량공세 영화들은 찾아보기 어려운 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블록 버스터 장면을 그렇게 기피하는 편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라서 열차액션이나 파괴장면을 많이 집어 넣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사시적인 사극이나 전쟁 영화 같은 것을 찾아보기는 힘들고, 제임스 본드 영화처럼 영화 전체에서 온 힘을 다해 화려한 느낌을 쏟아 부으려고 노력하는 영화들도 드문 편입니다. 물량공세의 거대함에 가장 의존하는 영화는 후기작인 "새" 정도인데, 이것도 묵시록적인 괴수 습격 영화를 찍으면서 도시를 파괴하는 공룡이나 수백센티미터 짜리 맹수를 출연시키지 않은 것을 생각해 보면 비슷한 다른 영화들과는 구분되는 점이 있습니다.

이런점들을 감안하면, 알프레드 히치콕 영화들에 투입된 넉넉한 제작비들은 물량공세를 위해 때려 넣은 제작비가 아니라, 사소한 장면, 중요한 장면을 완성도 높게 찍기 위한 것들이 많은 듯 합니다. 완벽주의자로서 춘추필법의 영화를 만들겠다고 나섰다기 보다는, 더 좋은 장면을 보다 편하게 찍기 위해 돈을 때려 넣은 면이 보인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안이한 전략이긴 하지만, 수백 수천개의 화면들을 찍고 이어서 만들어야하는 영화제작 작업에서 제작비를 잘 퍼부어서 피곤하지 않게 좋은 장면들을 만들기에는 아주 적당한 일입니다. 그리고, 대다수 알프레드 히치콕 영화들에서 알프레드 히치콕은 돈을 들이면 들일 수록 가치가 살아나는, 그러나 사소해 보일 요소들을 잘 잡아내서 살리고 있습니다.

다시 "현기증"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현기증의 가장 중요한 주연은 제임스 스튜어트와 킴 노박이라는 인기 배우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마 90년후대 한국 영화라면 한석규와 심은하 쯤을 기용한 셈일 겁니다. 그런데, 그 바로 다음가는 비중을 가진 "미지 우드"의 배역은 킴 노박과 대조되는 인물이면서 가벼운 유머를 이끌어 나가는 인물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영화에 약간 유머도 넣고 해야 하니까"라는 생각으로 대강 안선영이나 신이 를 기용할지도 모릅니다. 비슷한 식으로 망해먹은 영화로 "령" 같은 두음법칙 무시 영화가 실제로 제작되었기도 합니다. 미지 우드를 연기하는 배역이 안정적인 연기를 잘 펼치면서, 사람을 좀 얕보게하는 그 안경 너머로, 은근히 관객에게 호감을 주는 아름다운 모습도 갖고 있도록 신경 쓴 것은 "현기증"의 값진 장점입니다.


(자넷 리와 알프레드 히치콕)

또다른 예로 "현기증"의 유명한 줌 아웃 앤 트랙 인 수법을 쓴 고소공포증 표현 장면도 꼽을만 합니다. 지금은 스파이더 캠이나 비슷한 다른 장비로 훨씬 멋진 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겠지만, 당시로서는 고소공포증의 느낌을 화면으로 강하게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 몇초간의 장면을 찍기 위해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축소 모형을 만들고 엎어 놓고 트랙을 깔고 별별 돈드는 짓을 다했습니다. 아주 짧게 사용디는 장면이지만, 분명히 이 장면은 "현기증"이라는 제목 자체와 연결되면서 영화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인상입니다. 그리고 이야기 전개상에 있어서도 매우 극적인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정성과 자금을 들일 가치가 있는 장면이라는 겁니다.

"현기증"은 1958년 당시의 물가를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제작비라 할만한 250만 달러 정도를 들여서 만든 영화입니다. "현기증" 정도의 이야기라면, 잘해야 MBC 베스트 극장 에피소드 하나나, 버라이어티 TV쇼의 반전극장 같은 촌극 하나 정도로 생각하기 쉬울 텐데, 이 영화의 고소공포증 장면 하나를 위해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2만 달러에 가까운 돈을 때려 넣었던 것입니다. 그래 놓고도,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나름대로 돈을 아껴 찍은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실미도"는 눈밭에서 "후레쉬맨" 오프닝 비슷한 분위기로 폭파와 함께 대원들이 별모양으로 점프하는 장면을 찍기 위해 지구 반대편 까지 날아가 해외 로케이션 촬영을 했습니다. 그런 전원 점프 장면이 과연 멋있는 모습인가 하는 면은 논외로 하더라도, 비슷비슷한 훈련장면 중에 딱히 더 충격적일 것도 없는 장면 하나를 더 끼워 넣기 위해서 굳이 뉴질랜드 현지 로케이션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실미도"의 훈련장을 찍기 위해 실제 실미도와 다른 무인도에 힘겹게 상륙해서 온갖 고생을 다 했다고 합니다만, "실미도" 정도의 장면을 얻기 위해서는 을왕리 해수욕장 근처와 팔당댐 주변 청소년 수련원 같은 곳을 배경으로 찍어도 충분할만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도 생깁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실미도"의 가장 치명적인 전환점이 되는 버스를 탈취한 뒤 "스피드" 속편을 찍는 장면은 다소 초라하게 되어 있고, 장렬해야할 마지막은 별다른 정성 없이 모여 앉은 병사들이 돌아가면서 끈쩍거리는 멋있는 대사 하나씩 돌려하고 슬로우 모션 하나 짚는 것으로 때우고 있습니다. 장중하고 강한 현실감의 여운을 남겨야할 마지막장면은 "레이더스" 마지막 장면을 베끼다가 더 초라하게 흉내낸 것에 멈춥니다. 이런 것은 제작비의 총액이 80억원에 달하느니 어쩌느니 하는 점에 비해, 돈을 제대로 퍼붓지 못한 면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티피 헤드렌과 알프레드 히치콕)

각본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해 볼 수 입니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과 그 영화의 제작자들은 흥미로운 생각을 주는 원작 소설들의 판권을 구입했습니다. 그래놓고 마음에 안드는 부분은 자유롭게 고쳤습니다. 흥미로운 아이디어는 보수를 지급하여 구입하고, 각본진은 이것을 더 재미있게 영화화 하는데 공을 들이는 것입니다. 결과만 놓고보면 단 한 줄 정도로 요약되는 설정을 얻으려고 판권을 구입한 경우도 비일비재 합니다. 이런 점들은 각본을 짜는 수고를 덜고 또 흥미진진한 작업에 각본가들이 집중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원작 소설가들이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과 그 제작진들에게 협조하고 우호적이게 되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습니다. "현기증"의 원작 소설가들이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을 위해서 소설을 쓴 것은 대표적인 예일 겁니다.

우스꽝스럽게 보인 적까지 있는 한 한국 코메디언의 저작권 소송의 예와 비교해 보면, 이 코메디언의 소설이 "해외특파원"이나 "새" 보다는 훨씬 해당 영화와 비슷합니다. 조금 더 나아가면, "39계단" "현기증" "이창"이 원작을 영화로 각색한 정도와 이 코메디언의 소설은 거의 비슷한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해당 영화의 제작진들이 우연의 일치에 도달한 것인지 시치미를 떼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라면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영화로서는 충분히 판권을 사고도 남을 정도라는 겁니다. 조금은 성격이 다른 예이지만, "왕의 남자" 제작진이 이런점을 배웠다면, 어설프게 다른 연극과 경극의 고정된 감성을 베껴와 박는 대신에, 극작가 윤영선에게 협조를 구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참신한 대사와 상황들을 만들어 엮을 수 있었을 겁니다.


(데이비드 O 셀즈닉과 알프레드 히치콕)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무성 영화 시대에 흥행 영화에 도전하기 위해서 화면으로 "보여주기" 연출에 공을 들이는 것으로 영화 만들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랬으면서도, 기술적인 호기심과 이를 이해하고 응용하는 실력이 뛰어났습니다. 그리고 이런것들을 잘 보좌해주는 풍성한 제작비와 그 기술진들에 힘입어 항상 기술적인 요소를 잘 받아 들여서 무리하지 않고 적절히 삽입하고 추가했습니다.

그리하여, 시각적인 요소를 내세우며 쉽게 이야기를 전달해내는 자신의 장점을 잘 살리면서도 결코 고리타분하지 않게 몇몇 도전들을 자연스럽게 성공시킬수 있었습니다. 알프레드 히치콕 최초의 컬러 영화인 "로프"는 "오즈의 마법사"처럼 알록달록 현란한 색조를 과시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칙칙한 색상의 영화입니다. 하지만, 창밖 풍경으로 펼쳐지는 저녁 노을이라는 한 가지 요소는 흑백영화로는 꿈도 못꿀 방법으로 시간을 보여주는 효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이런 장점들은 "사랑은 비를 타고"의 리나 러몬트 같은 사람에게는 뼈아픈 충고로 여겨질 것입니다.


(TV쇼 사회자로 출연한 알프레드 히치콕)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에 관한 많은 글들을 읽을 때, 보다 흥미롭게 와닿는 것은, 그가 거의 최초의 인기 영화 감독이라는 점입니다. 요즘에는 박찬욱 감독이나 김기덕 감독 처럼 어느 정도 유명세를 타고 있는 한국의 감독들도 있고, 스티븐 스필버그나 조지 루카스 같은 사람들은 심하게 이야기해서 세계의 사상과 문화를 휘두르는 위치로 자리잡고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고전 영화 시대에 전문적인 영화 감독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사람으로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대표적입니다. 존 포드 같은 사람만 해도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과는 또 다른 위치에 서 있으니 말입니다.

때문에, 가십에서 두꺼운 전기에 이르기까지 많은 출처에서, 상당히 세세하게 묘사된 영화 제작 현장의 분위기나, 고전 시대 영화 제작의 관습 같은 것들을 흥미롭게 살펴 볼 수 있는 자료가 됩니다. 헐리우드 뒷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영화 제작 자체에 얽혀 드는가 하는 이야기도 흥미로울 뿐더러, 제작자, 감독, 각본가 사이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와 시대상에 얽혀드는 영화판 분위기에 대한 내용도 흥미롭게 바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다국적 거대 기업의 중역들이 고층빌딩 40층에 있는 전망좋은 자신의 사무실을 좋아하듯이, 독특한 활기와 정적이 공존하는 세트장을 좋아하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습성과 허영 같은 것을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취향과 몇몇 인간적인 치사한 단점들이 어떻게 영화 제작에 반영되고 있는가 하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거리입니다.



그 밖에...

알프레드 히치콕 이야기의 완결편에 도전한다 할만한 새 전기가 번역 출간 되었습니다. 갓 퇴임한 미국 대통령의 자서전보다도 더 비싼 가격으로 출판되었기에 얼마나 팔릴지 궁금합니다. 여러 모로 소위 "영화학도"라는 사람들이 보기 보다는, 그냥 이런저런 옛날 영화 많이 보는 사람들이 소일거리로 읽기에 더 좋아 보이는 책이라서 더 그렇습니다.

책은 물론이요, 인터넷에도 비슷한 주제의 좋은 글들이 많습니다. 학교 숙제 베끼게 해주는 사이트의 이상한 잡글들을 빼더라도 한글로 된 것도 찾아 볼만합니다. 우선, 듀나의 영화낙서판 사이트의 글들을 링크합니다.

http://djuna.nkino.com/movies/scrawl_1999_04_08.html
http://djuna.nkino.com/movies/scrawl_2000_03_08.html
http://djuna.nkino.com/movies/cliches_0008.html
http://djuna.nkino.com/movies/scrawl_2001_02_06.html
http://djuna.nkino.com/movies/cliches_0085.html
http://djuna.nkino.com/movies/cliches_0048.html

알프레드 히치콕 영화 리뷰들
http://djuna.nkino.com/movies/the_lodger.html
http://djuna.nkino.com/movies/shadow_of_a_doubt.html
http://djuna.nkino.com/movies/the_trouble_with_harry.html
http://djuna.nkino.com/movies/foreign_correspondent.html
http://djuna.nkino.com/movies/north_by_northwest.html
http://djuna.nkino.com/movies/north_by_northwest.html
http://djuna.nkino.com/movies/vertigo.html
http://djuna.nkino.com/movies/the_birds.html
http://djuna.nkino.com/movies/family_plot.html
http://djuna.nkino.com/movies/notorious.html
http://djuna.nkino.com/movies/spellbound.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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