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괴담 4: 목소리 영화

한 독일 사람이 감독한 철지난 영화를 보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꽤 유행했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냥 골라 본 영화가 "여고괴담 4: 목소리"였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여고괴담 4: 목소리"는 원래 보려고 했던 영화와 같은 트릭을 중심에 삼고 있는 영화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작 장면을 제시하는 시간과 중간 부분에 군데군데 환상장면을 집어 넣는 수법까지 동일했습니다. 또한 절정 장면을 보여주는 방법 역시 똑같았습니다.


(김옥빈)

"여고괴담 4: 목소리"는 요즘 다수파가 된 머리 늘어 뜨린 귀신 영화나 칼질하는 공포영화가 아니라, 괴이한 비현실적인 소재를 가지고 여학교를 배경으로 펼치는 추리극입니다. "환상특급" 에피소드와 같은 모양새를 갖고, 전체적으로 땅거미가 지는 애매한 분위기 속에 살짝 으스스한 분위기를 담아내는 것이 이 영화의 전체적인 구도입니다. 깜짝 놀라게하는 순간이나 특별히 잔인한 장면 같은 것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작하면서 제시되는 소재는 두 가지입니다. 첫번째는 갑자기 방금전에 자기가 뭘 했고 무슨 일을 당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상황에서 살인범을 찾아야 하는 기억상실 추리극입니다. 두번째는 죽어서 영혼의 형태로 돌아다니는 사람이 점차 실체를 잃어가고 주변사람들로부터 잊혀져가는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과 자아 개념에 대한 성찰입니다. 둘 다, "환상특급" "테마 게임" "기묘한 이야기"에서 여러 번 써먹었던 소재입니다. 최근 21세기에 새로 만들어진 "환상특급"의 1시즌 초반 에피소드들 중에도 바로 이 소재를 사용하는 것들이 둘 다 자리잡고 있습니다.


(다시 김옥빈)

일단 첫번째 것인 추리극은 앞서 말한 다른 영화나 TV쇼의 모방의 영향이 너무 큽니다. 절정 장면의 경우에는 그 억지 춘향식 모방이 컴퓨터 게임 "페르시아의 왕자"의 한 장면과 아주 똑같아 보입니다. 굳이 이슬람 유럽풍의 "로망스"를 배경음악으로 할 것이 아니라, 그냥 애들립 보드 성능을 백분 발휘하는 사운드를 자랑했던 "페르시아의 왕자"의 아라비안 배경음악을 깔아도 될 겁니다.

본격적인 추리 요소는 아니지만 절정 장면 근처에서 화려한 강한 장면을 위해 사용하는 방법은 90년대 초반을 장식했던 "공포특급" 이야기 하나와 아주 정확히 똑같습니다. 그리고 뒤이어지는 공황 장면은 박력도 없고 현실감도 없이 그냥 여러 사람들의 가짜 비명소리만 한참 들릴 뿐입니다. TV 버라이어티 쇼에서 방청객들에게 가짜로 유도하는 탄성 소리와 비슷한 느낌이 듭니다.

거기에, 추리극의 진상에 차근차근 접근해나가는 방법도 주인공의 행동이나 탐사, 혹은 추리나 복선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종이 울릴 때가 되면 정기적으로 하나씩 하나씩 "어, 갑자기 생각나네" 하면서 보여주는 것일 뿐이라서 추리극의 묘미를 떨어뜨립니다. 가장 중요한 발견이라 할 수 있는 시체를 발견하는 장면까지도 갑자기 그냥 어디서 시체가 우연히 뚝 떨어지면서 나타날 뿐입니다. 가장 강렬하고 힘있는 이야기거리가 이야기 전개를 흥미있게 하는 데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추리에 대한 단서들도 어떤 행동의 결과나 예견된 복선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지나가는 사람1이 "이런이런 소문 들었어?" "저런저런 일이 있다던데" 하면서 정보를 전해주는 것만 계속 써먹고 있습니다. 컴퓨터 게임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만든 것은 꼭 80년대 롤플레잉 게임에서나 나올법한 방법입니다.


(또 김옥빈)

두번째 소재인 점차 실체를 잃어가고 소멸해가는 자아에 관한 이야기는 그나마 초반에는 좀 그럴 듯 합니다. 일단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분위기를 열심히 유지하려는데는 최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그 정도는 해내고 있기 때문에 서서히 사라져가는 유령을 표현하는데는 대강은 효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구체적인 소재로 보여주는 묘미를 갖고 있다기 보다는 그냥 주인공이 "내 목소리 안들리니?" 와 "내 목소리 안들리세요?" 두 문장을 안타까운 목소리로 반복하는 것에 너무 기대고 있습니다. 처음 한 두번은 호기심 생기지만, 가면 갈 수록 좀 다른 방법으로 이 소재를 잘 써먹지 못한 것이 아쉬워 집니다.

게다가 영화가 중반을 넘어가면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막혀버린 탓에, 뭔가 해결책을 찾느라 유령들이 갑자기 무공을 사용하는 장면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목소리 외에는 실체를 잃어가고 있는 이 아련한 죽은 정신이 갑자기 임청하가 홍콩 영화 신무협의 전성기 때 사용했던 기술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정겨운 우리의 옛친구, 콩콩귀신도 다시 한 번 나타나 줍니다. 물론 노골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고 분위기를 크게 흐리지 않는 범위내에서 잠깐잠깐씩 보여줄 뿐이지만, 그래도 이야기의 전체 구도를 망쳐 버리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정작 "투신 자살하는 사람을 창밖으로 바라 본다"와 같은 강렬한 충격 소재는 그냥 회상 장면에서 지나가면서 한 번 슬쩍 쓰고 날려버립니다.

왠만한 무공으로 먹히지 않으니 결국은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과 루치오 풀치 감독의 아이디어를 조금씩 베껴 먹은 철철 나오는 피 칠하기 장면도 써먹는 지경에 이릅니다. 차라리 이 피 뿜는 장면은 "데스티네이션" 같은 영화와 너무 비슷해서 그렇지, 동작 자체가 심하게 비현실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목소리"라는 소재에 조금만 더 노력을 했다면 좀 설득력 있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확실한 효과를 거둔다고 하기에는 약간은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한편, 전체적으로 심하게 비슷비슷해 보이는 학생들의 모습과 목소리, 말투, 반복의 연속인 지루한 네모 건물들의 모양은 한 사람의 존재를 묻혀 사라지게 하는 데 유용한 소재로 활용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이 역시 대강 분위기를 잡는데 배경 용도 정도 외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됩니다.


(계속 김옥빈)

어쨌거나 추리 수법 자체는, 다른 곳에서 많이 써먹었다고는 하지만, 요즘 들어서 살짝 유행이 잊혀진 것입니다. 이 수법은 인간성에 대한 주제를 표출하기에도 그럴듯한 방법입니다. 거기에, 환상 특급 아이디어의 주제들을 적극적으로 투입했습니다. 그러니 충분히 흥미있을 수 있었습니다. 또 추리극이 크게 멋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잘려서 정기적으로 사건의 조각들이 펼쳐지는 고로, 그나마 뒷 이야기를 기대하게 하는 재미는 있을 수 있습니다. 전체적인 영화 분위기 유지가 잘 이루어지고 있으니, 좋합적으로 왠만큼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목표에 방해가 되는 부피가 큰 걸림돌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각본과 연기 입니다.

이 영화의 각본은 현실감을 고려 하지 못하고, 그냥 만화 대사칸에 나오는 대사 같은 것들이 지나치게 많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선생님 한테서는 엄마 냄새가 나" 라든가, "니가 진짜로 원하는게 뭐지?" 같은 말들이 있습니다. 여기가 무슨 분식집 음악 DJ 부스 입니까? 물론 이런 대사들도 잘 소화해 내는 배우들이 있습니다만, 방금 오디션으로 뽑은 초보 신인들에게는 도저히 무리입니다. 덕분에 거의 모든 대사 연기들이 어색합니다. 터무니 없이 이상적인 수업 분위기는 차라리 영화의 공상적인 특성상 이해해 줄만합니다. 그러나, 그 앞뒤에 가득찬 이상한 대사들은 영화에 빠져드는 길을 가로 막습니다. 배우들의 모습이 배역에 아주 잘 어울린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연기의 실제와 어긋나버린 대사들은 크게 아쉽습니다.

이런 점들을 상쇄하는 장점을 찾아 본다면, 그것은 일관성 있게 조율된 분위기에 따라가는 배우들의 모습입니다. 전체적으로 따뜻한 색을 강조하며 빛을 중요하게 여기는 화면에서, 배우들의 얼굴과 몸의 선이 분명히 살아나도록 잡아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수없이 많은 오디션을 통해 거르고 거른 배우들의 아름다운 자태는 그나마 잘 살아나고 있습니다. 특히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김옥빈은 다양한 감정들과 친숙함에, 비현실적인 귀기어린 아름다움까지 필요한 인상이 잘 살아나고 있습니다. 이 정도 경지라면, 왠만해서는 상상하기 힘든 아미달라 여왕이나 릭의 술집에 나타난 일사를 연기하는데 도전해 볼만할 정도입니다.


(끝까지 김옥빈)

지나치게 공포 영화의 전형이 재미없게 자리 잡고 있는 요즘에, 단막극 분위기의 기이한 소재를 활용하려는 시도 자체는 좋았습니다. 상영 시간을 불필요하게 길게 잡지 않은 것도 최초의 계획은 제대로 자리 잡았다는 뜻일 겁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대체로, 평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사물이나 개념을 비현실적으로 극단으로 몰아붙여서, 진지하게 문제를 제기하면서 흥미와 호기심, 충격을 유발하는 것들입니다. 그런 점을 생각해 보면, 여러 모로 학교와 학생들의 이야기에 끼워 맞추기에 해 볼만한 일이었습니다. 결과물이 이러한 기획의 가치에 뒤쳐진다는 점은 꽤나 아쉽습니다.


그 밖에....

요즘에는 학창시절에 교과서에서 배우는 그럴듯한 음악의 대표주자로 "로망스"가 여기저기서 똑같이 남용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든 사람들이 다들 동문인 것인지?

덧글

  • lain 2006/03/22 09:57 # 답글

    와우...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이영화를 볼 때 비슷한 생각을 했기 때문에 동감이 가네요.
    분명 처음 의도나 기획은 좋았습니다만 뒤로갈수록 실망이 커졌었드랬습니다.
  • 게렉터 2006/03/22 12:57 # 답글

    살인 방식을 조금만 덜 무협스러운 것으로 바꾸고, 각본가가 한 명 더 달라 붙어서 대사를 조금만 더 현실감있게 수정하는 작업만 했어도, 장점은 더 커보이고 단점은 더 작게 느껴졌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 조유라 2008/09/19 14:40 # 삭제 답글

    나는엤날에(여고괴담목소리4)못봤는데정말재밌있었고내가만약에(기담)을
    못봤는데정말정말재밌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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