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 키스 French Kiss 영화

1995년에 멕 라이언이 제작하고 주연한 "프렌치 키스"는 멕 라이언 "로맨틱 코메디" 제국의 전성기를 빛낸 마지막 영화입니다. 멕 라이언은 "프렌치 키스"가 적당한 성공을 거둔 이후부터는, 여러모로 로맨틱 코메디의 제왕에서 스스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을 더욱 드높였습니다. 출연작들은 당장에 그 다음 영화인 "커리지 언더 파이어" 부터 많은 "멕 라이언" 영화들과 강한 대조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물론 멕 라이언은 계속 띠엄띠엄 로맨틱 코메디들을 만들어 왔고, 제국은 한동안 건재했습니다. 또 "유브갓 메일" 같은 영화는 꽤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기록을 쥐락펴락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왕년의 장악력이 사라진 것만은 사실입니다.

멕 라이언이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로 로맨틱 코메디의 새 경지에 서기 시작했고,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으로 어마어마한 흥행과 인기를 차지한 것을 생각한다면, 이 두 영화와 함께 "프렌치 키스"를 멕 라이언 전성기 로맨틱 코메디 3부작 쯤으로 모아도 얼추 들어 맞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닌게 아니라 "프렌치 키스"라는 영화 자체가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서 솔직한 감정의 과장된 표현으로 발랄한 재미를 주는 인물을 가져오고,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 여행하는 재미에 풍경 보여주기를 가져와 섞었다고 하면 대강 줄거리 요소가 잡힙니다. 물론 앞의 두 영화에 비해서는 여러모로 약점이 많은 영화이기도 합니다만.


(비행기에서)

그래서인지, "프렌치 키스"는 줄거리의 중요한 전환점마다 사실 좀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억지로 연결되었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남자 주인공은 막나가는 범법자임에도 불구하고 여자 주인공에게는 처음부터 끝까지, 심지어 가장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끝없이 예의바르기만 합니? 여자 주인공의 경쟁자인 셈이 되는 여자의 배역은 아무 생각도 없고 계획도 없이 성격과 판단을 포기한 인물답지도 않은 인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는 하지만, 수많은 범법행위에 비해 경찰은 극도로 관대하며, 대체 멕 라이언은 여권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길래 그런식의 결말에 이르는지 해답도 없습니다.

줄거리 자체는 이렇습니다. 애인과 결혼해서 캐나다에 정착하기 위해 미국에서 캐나다로 이민 수속을 진행중인 멕 라이언의 배역이 있습니다. 문득 프랑스에서 애인이 바람났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은 그녀는 사랑을 되찾기 위해 프랑스로 날아갑니다. 그런데, 비행기 안에서 일종의 밀수꾼인 케빈 클라인의 배역이 그녀를 이용해 몰래 밀수를 하려하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두 사람의 프랑스 행보는 얽히기 시작합니다.

오페라 "라 보엠" 시절, 혹은 그 이전부터 이어진 프랑스-파리-사랑 이라는 도무지 근거 없는 연결관계를 또 한 번 울구어 먹는 이 영화는 결국, 여행에 나서서, 아름다운 풍광과 들뜬 감성이면, 사랑에 빠지기 쉽다는 점을 알라, 그렇게 사랑에 빠지면 순정을 불태워 보라... 는 정도의 수없이 반복된 평범한 주제로 요약됩니다. 그리고 그 주제 속에서 말많은 순정파 여자와 말많은 밀수꾼 남자가 개성과 매력을 자랑하자는 겁니다.


(길에서)

그런 이야기인즉 무슨 수로든 주인공인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면서 긴 여정을 함께 이어나가게 하기 위해 줄거리는 억지로 망가지는 부분이 허다 합니다. 몇몇 부분은 꽤 재미있는 추적-도망자 이야기를 만드는 아이디어가 되고 있기도하지만, 대체로 억지스런 이야기 고리가 많습니다. 결말 역시 아무리 어쩔 수 없는 영화라고는 하지만 지나친 뒤집기로 엎어지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문제점들이 생겨난 이유이자, 이런 문제점을 가려주어야 할 이 영화의 장점은 다름 아닌 주연 배우들의 인물 표현과 배경 풍경 보여주기 입니다. 줄거리가 억지를 써가면서 프랑스 구석구석의 풍경을 보여주면, 그 각각의 배경과 상황에 주인공이 맞닥뜨리면 어떤 식으로 행동하게 되는지 보여 줄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샐리가 등장해서 훨씬 넓어진 스케일과 범죄, 액션, 위기가 넘치는 상황을 겪고, 해리는 근거없는 자신감에 불타며 현란한 농담을 주워담던 초창기 모습으로 나타나 프랑스식 멋을 과시합니다. 이런 식으로 옛 인물들의 특징을 잘 일구어내면서, 더 이국저인 배경, 더 활동적인 상황에 적응하게 한 것은 좋은 효험을 거두고 있습니다.

익숙한 인물구도와 거기서부터 뿌리를 내린 코메디 구도는 프랑스에 대한 편견을 부풀리고 미국에 대한 애국심을 꺾어 사용하는 코메디로도 큰 무리 없이 이어 집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식의 나라 코메디가 중세와 근대의 유산과 예절이 곳곳에 서려 있는 역사의 고장이면서, 동시에 전세계에서 가장 자유분방한 곳이라는 유럽의 관광용 인상과 어울려 퍼져나가게 됩니다. 이런 이국적인 느낌을 강조한 코메디 분위기와 소재는 그대로 프랑스 곳곳을 유람하며 관광시켜주는 영화의 중대한 한 목적을 잘 살리며 부합합니다. 그러면서도 이야기의 분위기나 인물 자체를 엎어버릴만큼 지나치게 자극적인 유머 소재는 슬며시 돌려가는 수법도 찾아보면 여기저기 배치되어 있습니다.


(기차에서)

이런 저런 풍경-인물-유머 엮어내기 장면 중에, 사실상 영화의 절정에 해당하는 프랑스 시골 장면의 위력은 막강합니다. 자유분방함이 넘치고 화려한 옷차림이 넘실거리는 휴양지 프랑스와 유행의 첨단이자 유럽최대의 도시 파리의 모습 사이에 소박한 프랑스 시골 장면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대조적인 모습은 부드럽게 이어지면서 연결되고 있기에 자연스럽지만 선명하고 강한 인상을 줍니다.

이러한 풍경의 전환은 인물 이야기의 전환과도 연계되어 있습니다. 어린아이 처럼 솔직하면서 순박한 모습으로 이리저리 활달한 모습을 보여준 멕 라이언의 인물은 이 시골 장면에서는 이 인물의 또다른 특징인 소박한 선함을 살려서, 편안하고 정답게 시골 정경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케빈 클라인의 인물은 마구잡이 사기꾼에다 허세와 속임수에 능통한 인물이었는데, 이 장면에서는 그런 인물 이면에 숨겨진 사연 있는 과거와 손씻고 마음잡고 사는 미래를 꿈꾸는 모습을 보여주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풍경과 인물이 발을 맞추어 나가면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만으로 영화의 핵심을 충분히 잘 살려나가고 있다 할만합니다.

인물의 힘을 따져보자면 기본부터 쉽게 넘어갈 수 있도록 맞춰 놓고 시작한 강점을 갖고 있습니다. 두 주인공은 유럽인과 아메리카인입니다. 둘 다 크게 커보이거나 작아보이지는 않는 덩치지만, 남자는 따지고보면 좀 커보이고, 여자는 따지고 보면 좀 작아 보입니다. 둘은 크게 나이차이가 나지 않는 연배로 볼 수도 있을 겁니다만, 어쨌거나 남자는 자기 나이보다 꽤 나이들어 보이고, 여자는 자기 나이보다 꽤 어려 보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크게 어긋나지 않는 분위기 내에서 두 사람은 서로 개성이 눈에 뜨이도록 대립을 이루고 있고, 이런 대립은 쉽게 이야기를 꾸밀 수 있도록 남녀 한 쌍의 통계적인 대립과 들어 맞게 되어 있어서 간단히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편, 영어 잘 못하는 프랑스인을 중심에 둔 언어유희 유머들도 지나치게 언어유희에 경도되지 않으면서도 틈틈히 잘 끼어들어 처음부터 끝까지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탁월한 솜씨로 평범한 이야기 속에 조합해 넣은 풍경 촬영 만큼, 음악도 뒤지지 않고 유려합니다. 프랑스 노래와 프랑스를 소재로 한 노래를 오가면서 좋은 편곡과 잘 어울리는 녹음본으로 편성된 배경음악들도 멋지게 이야기의 전개에 보조를 맞춥니다. 이런 음악의 이어지는 선정 때문에, 별것 아닌 "Dream A Little Dream Of Me" 춤 장면도 괜히 이야기의 긴긴 모험과 감정선을 관통하는 중요 장면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I want you...)

냉정하게 따져보자면, 가장 강한 개성과 가장 풍부한 코메디를 펼치는 멕 라이언의 인물은 좀 과하다 싶은 웃음과 울음의 남발, 큼직큼직한 손짓 발짓이 끼어들어 어떨 때는 현실감과 거리가 멀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런 점을 살리기 위해서 주어진 상황에 대해 다양한 반응을 보이며 짧은 유머만 내어 놓을 뿐 극적인 행동은 그에 비해 부족하다고 비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을 멕 라이언의 주특기 안에 포섭하면서, 1995년 한 해, 한국의 미용사들에게 저마다 과제를 안겨 주었던 머리 모양을 선 보였으니, 결코 실패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헛점을 찾기는 쉽겠지만, 그렇다고 영화를 보고나서 앞서 이야기한 영화의 "주제"비슷한 것에 반론을 찾기는 쉽지 않을 만큼 즐거운 영화입니다.


그 밖에...

오히려 한국에서 다른 나라보다 더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만, 남자 주인공인 케빈 클라인은 바로 그 피비 케이츠와 결혼해서 아들딸 낳고 20년이 가까운 세월을 잘 살고 있습니다.

어느새 11년 전의 영화입니다. 영화 전체에 감동을 얼마나 받았는가 하는 점과는 별도로, 이 영화의 시골 장면 때문에, 쓸 데 없이 포도밭의 낭만에 불타는 젊은 청춘이 많아졌습니다. 누구....도 그 중 한 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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