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투 동막골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중심 소재는 전장에서 기적처럼 달콤하게 숨겨진 평화 입니다. 1차 세계 대전 당시의 크리스마스 사건이나, "지중해" 등등의 영화가 이런 소재와 통합니다. "웰컴 투 동막골"은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들과 연합군이 돌아가면서 양민학살을 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줄거리는 소속이 다른 이런저런 낙오병들이 강원도 산골의 동막골이라는 곳으로 오는데, 알고보니 이 마을은 유교적 인습을 유토피아의 질서로 삼고 있는 무릉도원이라는 것으로 출발합니다. 주인공들은 잠시 갈등하다가 이 마을에서 평화를 맛보고, 이 평화가 깨어지는 위기가 있는 결말부를 맞게 됩니다.

이 영화의 큼직한 문제점은 이야기가 너무나 강한 대조의 선악구도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편 주인공들은 한 없이 착하고, 그 상대편인 악당들은 악마같이 나쁜 놈들입니다.


(이 유태인놈들이 SS를 뭘로 보고.....)

이 영화의 악당들은 무슨 러시아 점령지에서 유태인을 대하는 나치 친위대 같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겉보기에 날카로운 눈빛의 백인들과 어디 한맺힌 거 같은 아시아인 소수로 되어 있다는 점도 비슷합니다. 이 나쁜놈들은 웃는 얼굴에 침뱉고, 재미삼아 폭행과 욕설을 퍼부으며, 이유없는 살인을 하는 것도 모자라, 이 영화 속 유토피아의 가장 중요한 질서를 깨는 극악무도한 행동인 노인 구타까지 저지릅니다. 이런 행동에는 별 뚜렷한 이유도 없고, 이 악당들은 우리편과 조금의 대화를 할 여지도 없는 지옥의 사자들입니다.

반대로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국적, 신분, 소속, 계급을 초월하여 대동단결 화합합니다. 성실히 일하며 지역사회에 봉사하며, 영화 속 유토피아의 규율에 따라 서로를 가족 호칭으로 "형" "아우"하면서 부르는 것으로 평화와 유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어찌나 착한지 그중에서 가장 사나운 질풍노도의 청소년 조차, 눈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 악당을 두고 그냥 따끔하게 한 대 때리고 맙니다. 그리고 구차한 욕설이나 한탄 대사 한 마디 안 섞습니다.

이러한 철저한 흑백구도는 만약 화려한 영상과 서스펜스가 주가 되는 액션영화나, 가벼운 분위기에서 폭소로 일관하는 희극이라면, 오히려 도움이 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웰컴 투 동막골"은 마지막에 뿌리깊게 모순된 상황을 만들어가며, 심도있는 감동을 의도하고 있는 극적인 이야기 입니다. 그러다보니, 이런 극단으로 나뉘는 선악구도가 감동의 진실함을 떨어뜨려 버립니다. 덕분에 연합군 입니까 어쩌고 하는 감개무량해야할 한 인물의 마지막 대사는 어쩐지 조성모가 매실 음료 광고에서 "넌 네가 좋아"하고 말하던 느낌을 떠올리게 하는 데가 있습니다.


(내가 스파르타쿠스 요!)

감동이 흑백논리에서 빛을 잃고 헤어나오지 못하도록 더욱 발목을 잡는 것은, 감동을 묘사하기위해 특별한 현실감 없이 갖다 붙인 진부한 옛날 선전 영화식 수법들입니다. 우선 무릉도원 자체가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는 저 푸른 초원위에 님과 함께 살고 있는 전원 풍경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무릉도원이란 것이 정말로 초현실적인 요소가 있거나 아니면 "지중해"처럼 "여자들만 사는 곳"이라는 식으로 그 비슷한 환상성은 도입하고 있어야 분위기를 살리기 쉬울텐데, 너무나 쉽게 현실의 문제점이 상상되는 산골마을에 가짜 잭-오-랜턴 몇 개 달아 놓고는 무릉도원이라 하니 아무래도 어색한 데가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 이야기가 "지중해"처럼 시대성이 부족한 그냥 보편적인 전쟁이야기라기 보다는, 한국전쟁의 배경과 국제정세를 긴밀하게 이용하고 있는 현실적인 상황을 이용한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어색함은 좀 더 심해 집니다. 순진함을 내세우는 맛 간 미친 여자를 마을 최고의 미녀로 설정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역효과를 줄 때가 있습니다.

또 주인공들의 마지막 결심에 이르는 과정이 이야기상에서 참 부실한 판단이며 허술한 병법인데다가, 그러면서 이 주인공들이 폼을 잡는 방법이란 것이, 람보 흉내의 바벨탑이라 할만한 "중기관총 들어올려 난사하기" 라는 점은 치명적입니다. 주인공 중 한 명은 "영웅본색" 1편에서 주윤발이 마지막으로 남긴 대사 비슷한 걸 읊고는 주윤발과 같은 방식으로 사라집니다. 마지막까지 주민들을 그저 무식하고 스스로 갈등을 해결할 조금의 가능성도 없는 사람들로만 남겨둬서, 꼭 고전 서부 영화에 드문드문 등장하는 "착한 인디언"처럼 취급한 것도 주인공들의 영웅주의를 답답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영웅주의 구도는 "007 어나더 데이 Die Another Day" 처럼 주인공이 새로 뽑은 차 자랑하는 영화가 아닌 다음에야 어울리기 힘듭니다.


(이것이 람보의 진수)

"웰컴 투 동막골"은 꽤 오랫만에 나온 단체 자살 특공대를 예찬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웰컴 투 동막골"은 자살 특공대의 광기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한 개인을 준엄한 대의명분 아래 감복하게 하는 장면까지 끼어들어 있습니다. 배경 가득 작렬하는 폭발 섬광 앞에서 함박 미소를 띠고 있는 모습은 마스모토 레이지의 군국주의 애니메이션이나 "인디펜던스 데이"의 카미카제 돌격 장면과 같은 재료를 변주한 것입니다.

극의 줄거리와 설정에 이 같은 문제점이 가득한 대신 영화의 화면과 음악은 그보다 월등한 편입니다. 실제 영화에서 마치 애니메이션의 한 유행을 연상케 하는 선명한 유채색을 자연물로 펼쳐 보이는 방법들이나, 거기에 어울리는 애니메이션 풍의 화려한 오케스트라 배경 음악도 그럴듯 합니다. 그 덕에 마치 전등처럼 화면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노랑색 옥수수 같은 것들도 재미있습니다. 다분히 비현실성을 강조하기 위해 배치된 이러한 요소들은 전체적으로는 신납니다만, 종종 흑백논리를 돋구는 이야기와 겹쳐서 억지스러운 느낌을 키워버리는 문제점이 있기는 합니다.

특히 영화에 중대한 전환점에서 사용되는 옥수수 알맹이와 멧돼지는 그 회화적인 아이디어 자체에 지나치게 쏠리고 있습니다. 그냥 과장해서 보여주는 데 시간을 끌 뿐, 그런 장면들을 좋은 박자로 전체 이야기에 효과를 거두게 써먹는데는 제몫을 못하고 있습니다. 멧돼지 장면의 경우에는, 갑자기 한심한 이 주인공 병사들을 가지고 "동사서독"의 한 장면처럼 날고 뛰며 느린 동작으로 활약하게 해버립니다. 멧돼지의 움직임을 박력있게 표현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어쩔수 없이 받아 들인다하더라도, 그 장면 구성 방법이 이야기에 도움되지 못하게 어긋나는 면이 있습니다.


(영화속 유토피아라면, 화면을 가로질러 아이들 3명이 나란히 달려나가는 것이 규칙.)

영화의 전반부에 많이 배치된 유머들은 상당부분 "강원도 사투리를 하면 무조건 웃기다"라는 믿거나 말거나 한 전설에 기대고 있습니다. 강혜정과 아역 배우의 멋드러진 협력처럼 아주 좋은 효과를 거둘 때도 있지만, 그냥 남발되며 어색하게 묻혀버릴 위험함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기도 합니다. 그에 비해, 정재영은 차력 장면을 비롯한 몇몇 장면에서 짧지만 제대로 웃음을 주는 연기를 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희극 연기 실력은 별로 발휘되지 못했습니다. 정재영은 영화에서 가장 많이 폼을 잡는 인물을 맡은 덕에, 대체로 존 웨인과 클린트 이스트우드 표정 흉내를 내느라 코메디의 기회를 많이 잃었습니다.

어려운 미묘한 연기들은 조연들이 도맡고 있고, 감정 표출 연기는 주연들이 나눠 맡고 있어서 배우들의 균형이 힘들어 보일 때가 조금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걸맞는 배역을 쉽게 연기하여 모든 배우들이 좋은 연기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완벽한 사실주의 고증은 아니지만, 정성과 기술이 돋보이는 소품과 특수효과도 앞서 언급드린대로 자연물을 소재로한 유채색의 포근한 화면의 질을 더욱 높이고 있습니다. 특히 몇번 스쳐지나가는 비행기 잔해들은 좀 더 멋지고 중요하게 활용될 수는 없을지 아까울만큼 뛰어나 보였습니다. 컴퓨터 그래픽 역시 대규모 비행장면을 그럭저럭 표현하고 있는데다가, 마지막 폭격장면의 장중한 연출은 기술과 아이디어가 어울린 볼거리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비행기와 유머 2인조)

전체적으로 "웰컴 투 동막골"은 주인공들과 악당의 소속을 약간 다르게 설정한 것일 뿐, 사실 선악구도와 흑백성격은 평범한 선전영화와 다를 것이 없는 단선적인 이야기를 극 전개상에서 지나치게 과대평가한 경향이 있습니다. 그 탓에, 미술, 음악, 기술, 희극요소상의 깔끔한 성취들이 퇴색되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강혜정)

그 밖에...

극중에 잠깐 소재로 인용되는 한강 교량 폭파에 대해서, 제가 알고 있는 후일담은 이러합니다. 한국 전쟁 당시, 교량 폭파의 실무 책임자는 그 즉시 군사 재판에 회부되어 그 책임을 물어 총살당했습니다. 한편 교량 폭파의 작전권자는 그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는 가운데, 전사해서 죽고 말았습니다.

이 영화 출연진 중 유일한 전문 코메디언이었던 임하룡은, 따지고보면 코메디 연기를 거의 전혀 하지 않습니다.

덧글

  • ArborDay 2006/04/01 01:04 # 답글

    1. 게렉터님의 글을 읽고나니 별 것 아닌 영화로 느껴지네요. ^^

    2. 전 그냥 색깔과는 무관한 판타지라고 받아들였어요.
    뭐랄까 마냥 예쁘잖아요.
    난데없는 후반부를 제외하면. ^^
  • 게렉터 2006/04/02 00:45 # 답글

    어쩌다보니, 제가 글에 단점을 부각시켜 쓰고 장점은 짧게 언급했는데, ArborDay 님의 말씀대로 "판타지"로서 전체적으로 모양은 그럴듯합니다. 약간씩 흔들리는 부분이 있을지라도, 강혜정을 중심으로한 유머도 대체로 살아있는 편이고, 평화로운 정경과 주인공들의 면면을 말끔하게 선명한 모습으로 잡아내고 있는것도 탄탄한 기본기에 충실한 강점일 것입니다.
  • 하하하 2006/12/03 19:12 # 삭제 답글

    선악구도는 이전부터 영화의 소재로 다뤄왔던 것이고..
    님의 글에서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조그만 단점을 크게 부각시키려고 하시는 것 같은데.
    비평도 좋지만, 너무 단점만 볼려고 하는 님의 비평에 약간이지 않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 하하하 2006/12/03 19:18 # 삭제 답글

    그리고, 임하룡씨가 코메디 연기를 하지 않아서 불만이세요?
    임하룡씨는 이전부터도 영화 속에서는 코메디 연기를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임하룡씨는 영화속에서 연기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이지 코메디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다음부터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하고 글을 써주세요.
  • 2010/02/27 19:50 # 삭제

    '미제를 악마로 그린 기특한 영화'를 단점 들췄다고 흥분하신듯
    그냥 읽어도 글쓴이가 임하룡 코미디 안한게 불만이라고 쓴게 아닌데 불만이냐고 대흥분
    안삐딱한 글을 삐딱하게 읽은 님께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다음부터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하고 덧글을 써주세요
  • 게렉터 2006/12/04 11:34 # 답글

    하하하/ 눈에 보이는 단점을 제가 본 만큼 이야기하고, 장점은 장점대로 밝혀 두었습니다. 어떤 것을 더 좋게 받아들일지는 보는 사람에게 달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탈영병과 낙오병들의 현실 도피적인 소재를 다루면서 지나치게 흑백논리로 갈리는 선악구도는 썩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약간은 걸리는 느낌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덧붙여, 임하룡이 코메디 연기를 하지 않은데 대해서는 전혀 불만 없습니다. 또한 지금까지도 그렇고, 다음에도 그렇고, 결코 생각을 조금조차 하지 않고 글들을 써왔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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