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 向左走, 向右走 영화

"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를 즐겁게 보는 방법은 영화에 대한 예고편 하나 보지 않고 그냥 "심각하지 않은 멜로 영화라더라"하는 정도의 사전 정보만 가진 상태에서 영화를 보는 것입니다. 시놉시스만 읽고 보기 시작해도, 자칫,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전개, 결말, 중간에 끼어드는 유머, 갈등, 절정까지 바로 예감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의 영화 포스터)

"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는 "세렌디피티"의 무대를 대만 타이베이로 옮기고 유머를 많이 잘라낸 다음, 핵심만 뻥튀기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현실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분위기로, 운명적인 인연의 남녀가 계속 만나려고 하는데 아슬아슬하게 못 만나는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은 심지어 서로 옆 집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직장에 가려면 한 사람은 오른쪽으로 돌아나가야하고, 한 사람은 왼쪽으로 돌아나가야 하기 때문에 결코 만날 수가 없습니다. "접속"에서 계단을 스쳐지나가는 두 사람 정도는 스파링 정도로 여길만큼, 이야기의 소재를 한계까지 몰아 붙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야기는 이렇게 극단적인 설정을 울구어 먹을 수 있도록, 비현실적인 환상적인 소재를 꽤 뿌려 놓고 있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모든 타이베이 시민들이 검은색 우산을 들고 있는데, 남녀 주인공만 다른색깔의 우산을 들고 있는 것을 화면에 담아 보여주는 장면에다가, 그렇게 긴 시간 이야기를 했으면서도 서로 이름 한 번 묻지 않게 만드는 설정이라든가, 주인공들이 서로 정말 심각하게 이상한 취향으로 기념품을 훔쳐 가는 장면이 그러합니다.

비현실적인 느낌이 강한 이야기에 좀 더 비현실적인 소재를 더 끼워 넣는 것이 무슨 큰 문제가 되겠습니까만은, 그러한 방법들에 참신한 점이나 서로간의 연결이 부족한 것은 아쉬운 점입니다. 특히나, "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는 낭만적인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서, 남자 주인공의 직업을 "가난한" 음악가로, 여자 주인공의 직업은 "가난한" 작가로 설정하고 있는데, 이런 구도의 수법은 19세기 런던이나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 때부터 대대로 내려오던 것이라 여러모로 답답한 옛날 이야기 반복에 머무는 면이 있습니다. 둘 중에 하나를 가난한 음악가/작가 가 아니라, 부유한 음악가/작가로 바꾸기만 했어도 훨씬 더 참신한 이야기가 나올 거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 입니다. "사랑은 비를 타고"의 명장면의 영향을 받은 수많은 후예들에 묶여 있는 비내리는 장면 묘사 역시 유유상종입니다.


(I'm singin' in the rain~)

고전적인 수법에 환상적일 정도로 극단적인 이야기로 가져다 놓은 덕택에 주제의 일부는 확실히 잘 살아난다는 장점은 있습니다. 사람의 이름이나 주소보다는 전화번호로 서로를 지칭하는 물량화 사회의 분위기나, 바로 옆 집 사람에 대해서도 거의 알지 못하기마련인 현대 도시 사회의 인간관계는 우화적으로 분명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 주제가 살아난 덕택에, 다른 친구가 별로 없는 주인공들이 서로의 운명적인 사랑에 집착하는 면도 어느 정도 연결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고전적인 수법을 사용하면서 실패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류의 낭만적인 연애담에 항상 끼어드는 관광용 영상과 유머 감각이 부족합니다. 이 영화는 타이베이 시내의 여러 정경을 담아내려고 노력하는 면이 있습니다. 이야기가 시작하자마자 이 영화는 자랑스럽게 세계 최고층 건물인 "타이베이 101 타워"를 보여주면서 출발합니다. "An Affair To Remember"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뉴욕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여러면에서 비슷한 시도를 합니다. 하지만, "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는 타이베이라는 도시의 개성을 잡아내서 드러낸다기보다는, 많은 부분 헐리우드 영화 연출 흉내에 머뭅니다.


(왼쪽으로 가는 작가)

유머 감각 역시 비슷합니다. 여자 주인공의 건망증이나, 주인공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인물 등등, 농담을 시도하는 부분은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자주인공의 유령소동에 대한 것 하나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대사들이 주인공들의 개성이나 영화 설정의 묘미와는 동떨어져 있는 심심한 것들입니다. 주인공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인물들은 전형적인 희극조의 인물이지만, 이들은 중국어권 영화 특유의 후시녹음 대사에 묻혀서 과장된 판토마임 연기로 설득력을 잃고 있습니다. 두 팔을 휘젖고 고개를 아래 위로 흔들며 대사를 하면서, 미국 영화식 농담 분위기에 올라타려고 하니 아무래도 어색한 면이 많습니다.

배우들 역시 장점과 단점이 섞여 있습니다. 금성무는 각본 탓에 다채로운 대사 연기를 해 볼 기회는 잃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겉모습과 목소리를 이용해서 캐리 그란트 아들인냥 행세하면서, 옛날 영화속의 "가난하지만 고집있는 낭만적 음악가"를 옛날 영화식으로 잘 연기합니다. 양영기는 병약해 보이기까지하는 외모를 내세워 가난하고 생활력 부족하고 사랑에 모든 것을 거는 19세기 소설속의 낭만적 작가를 잘 연기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그 병약한 모습은 이 영화가 의도하고 있는 경쾌한 주인공의 모습이나 유머를 살리는데는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오히려, 그런 경쾌한 면이 주인공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하고 연약한 느낌으로 흘러버리기까지 합니다. 이런 점은 여자 주인공의 인물을 일관되게 하는 면은 있습니다만, 역시나 영화에서 시도한 한 가지 흐름을 놓치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오른쪽으로 가는 음악가)

많은 TV쇼를 볼 때처럼, 가난하다고 하는 주인공들을 보고 있으면, 가난하다고 징징거리지 말고, 집부터 좀 좁고 위치 안좋은 곳으로 옮기고 옷부터 좀 검소하게 입고 다니라고 하고 싶어지는 영화가 "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입니다. 어차피 그런 한계 안에서 이 만큼 모양 잡힌 이야기를 꾸며 나갔다면, 거기에 조금은 더 참신한 생각들을 뿌려 넣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놀이기구를 타야한다면 무조건 회전목마.)


그 밖에....

서울을 배경으로 했다면, 분명히 중간에 재개발, 안전불감증, 부실공사 등등에 대한 소재를 한 번 지나가게 해서 이야기의 개연성을 조금 더 높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원제를 직역하면, "왼쪽으로 돌아가고, 오른쪽으로 돌아가고." 쯤이 됩니다만, 괜히 남자, 여자를 갖다 붙이는 바람에, 우리나라 영화 관련 웹사이트마다, "왼쪽으로 가는 남자, 오른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 왼쪽으로 가는 여자" "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 "오른쪽으로 가는 여자, 왼쪽으로 가는 남자" 가지 각색입니다. 영어제목인 "턴 레프트, 턴 라이트"를 제목으로 쓰고 있는 곳도 많습니다.

이 영화의 우화적인 중심 소재는 대만의 일러스트레이터 지미의 그림책, "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한국에도 발매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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