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나잇 앤 굿 럭 Good Night, and Good Luck 영화

1948년, 전 UN 사무총장이었던, 미국의 앨저 히스가 기소를 당했습니다. 앨저 히스는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미국의 가장 강한 경쟁 상대로 떠오른 소련에게 스파이 노릇을 했다는 혐의를 받고 조사와 재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앨저 히스의 스파이 혐의 자체는 증거 불충분이었지만, 그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위증, 즉 거짓말을 했다는 점은 유죄가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전 UN 사무총장이자, 카네기국제평화기금의 총재인, 고위 인사가 소련 스파이로 지목 받았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진진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스파이 혐의는 모호했지만, 어쨌거나 일부 행동이 불법적인 것으로 인정되어 유죄가 되었다는 점은 충격이었습니다. 일련의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증거물 중 하나였던, 호박 속에 숨겨 놓았다는 마이크로 필름은 펌킨 페이퍼(pumpkin paper)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며 단번에 언론의 화제거리로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앨저 히스)

뒤이어, 1950년. 일단의 과학자들과 로젠버그 부부가 FBI에 의해 체포 되었습니다. 이들의 혐의는 당시 가장 어마어마하고 결정적인 무기 기술이었던, 원자폭탄 기술을 소련에 빼돌렸다는 것이었습니다. 로젠버그 부부가 스파이 혐의를 하고 있었다는 점은 사실로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그럼에도 로젠버그 부부는 검찰 수사에 협조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기만 했습니다. 덕분에 괘씸죄까지 겹쳐 이들은 전기의자에서 사형을 당하게 됩니다.

단지 기술 유출 혐의만 가지고 민간인을 사형시킨다는 것이 너무 가혹한 형벌이라는 생각에, 온갖 일의 뒤에서 보이지 않는 손으로 개입하고 있던 에드가 후버 FBI 국장마저 사형은 반대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아마겟돈 병기로 인식되며 미국의 가장 위대한 힘으로 상징되던 원자폭탄이 경쟁국의 손에 스파이에 의해 넘어갔다는 것은 충격이 너무나 컸습니다. 로젠버그 부부는 사형을 피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로젠버그 부인)

공산주의라는 사상에 매력을 느낀 미국사람들이 사회 곳곳에서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중요한 기밀을 경쟁국인 소련에 팔아넘긴다는 시각은 이런 사건들의 영향을 받아 점점 뿌리 깊게 자리잡아나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러한 사회 분위기에서 부정적인 정점에 올라서 있던 인물이 조셉 매카시, 위스콘신 주 상원의원이었습니다.

그다지 큰 인기도 없고, 큰 명망도 없던 매카시 상원의원은 1950년 한 여성단체 모임에서 "지금 내 손에는 공산당에 가입한 사람으로 간첩행위를 했던 국무부 공무원 205명의 명단이 있다"는 폭탄 선언을 했습니다. 미국 외교, 국방, 안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국무부에 경쟁국의 스파이들이 숨어 있다니. 당장에 정계와 민심은 발칵 뒤집혔습니다. 매카시 상원의원의 이러한 폭로에는 아무 증거도 없었지만, 워낙에 충격적인 사건이었으며, 사회 분위기를 제대로 타는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매카시 상원의원은 "공산당은 스파이이고, 나라의 안전을 팔아먹는 내부의 적이다"라고 선전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경쟁자들이나 정치적인 적수들을 어떻게든 사회주의 사상과 관련있다고 연결시켰고, 이를 곧 공산당인 것처럼 비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스파이로 몰고, 결국 미국에게 다른 나라가 핵폭탄을 떨어뜨리기를 유도하는 앞잡이로 몰아 버렸습니다.


(조셉 매카시)

어떻게 보면 마구잡이 흑색선전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었건만, 냉전시대의 핵전쟁에 대한 공포와 갑자기 떠오른 소련과의 대결구도, 그리고 몇 건의 스파이 사건과 어울려 굉장한 흥미를 끌었습니다. 특히, 공화당과 보수파 세력들은 매카시 상원의원의 수법에서 일부 영감을 얻기도 했습니다.

흔히 보수파에서 주장하게 되는 국가 안보, 애국심, 대기업의 성장 같은 소재들은 복지 제도나 노동 조합 같은 문제에 비해 별로 국민들에 와닿지도 않고 절실하지도 않은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아무리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고 해도, 국민들을 자극하고 선동하기가 힘이 듭니다. 그런데, 매카시 상원의원처럼, 상대편의 행동을 공산당의 행동으로 몰아 붙이고 그것을 나라에 폭탄을 떨어지게 하는 배신자처럼 보이게 하면, 국민들의 공포심을 자극할 수 있습니다.

물론 매카시 상원의원처럼 마구잡이로 증거도 없이 몰아 붙이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막연히 애국심을 들먹이거나 시장경제 옹호 논리를 펴기 보다는, 보수적인 정책이 실제로 국민들의 안전문제 안보문제와 연결되게 하는 것이 보다 국민들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는 방편이 된다는 사실은 꽤 좋은 아이디어 였습니다.


(소련 최초의 핵실험, 조-1(Joe-1) 핵폭발. "최초의 번개"라는 제목으로 불린 이 실험에 쓰인 원자폭탄에는 미국인의 보편적인 이름인 조 Joe라는 이름이.)

덕분에 매카시의 수법은 일파만파로 퍼져나갔습니다. 당연히 아무나 공산주의자, 공산당, 스파이로 몰아 붙이게 되었습니다. 이 중에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한 번 이러한 소동에 휘말리면 주변의 의심과 공포 때문에, 직장을 얻기도,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도 어려워지곤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미국의 핵폭탄의 버섯구름에 녹아내리게 할 지도 모를 공산주의자들을 두려워 하였고,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분위기에서 자신이 공산당으로 몰릴까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헐리우드의 영화판에서도 이러한 분위기는 일파만파로 퍼져나갔습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찰리 채플린이 이러한 따가운 눈총을 견디다 못해 미국을 떠난 사건일 것입니다. 많은 극작가들과 감독들이 영화에 사회주의적인 내용을 넣었으니 공산당이고, 스파이라는 손가락질을 받다가 실업자가 되고 낙오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반항심을 느낀 스탭들이 아예 노동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대지의 소금" 같은 영화를 만들었다가 극장들의 상영 반대로 상영에 실패하기도 했고, 한편, 최고의 총잡이 폼잡이 배우였던 존 웨인은 조셉 매카시를 지지하는 영화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에 여배우 낸시 데이비스는 공산당으로 몰리는 시각이 두려워, 의도적으로 열렬한 반공주의자 선배 배우인 로널드 레이건과 친하게 지내게 됩니다. 결국 그녀는 레이건과 결혼도 하고, 나중에는 백악관에 강력한 보수 정부의 영부인으로 들어가기까지 합니다.


(낸시 데이비스 레이건과 로널드 레이건)

이러한 핵전쟁 공포와 공산당 공포의 범벅 분위기는 세계에 대해 풍자적인 우화를 선보이곤 하는 SF영화에서 단적으로 표현되었고, SF영화의 황금기가 찾아 오기도 했습니다. "해변에서" "우주 전쟁" "외계에서 온 괴물" 같은 영화들이 유명해졌으며, "금단의 행성"이나 "신체강탈자들의 침입"은 영원한 고전으로 자리잡게되었습니다. 특히 "신체강탈자들의 침입"은 공산당 스파이에 대한 공포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면서, 동시에 거기에 휘말린 매카시식 사람 몰아 붙이기의 폐해까지 극적으로 멋지게 드러냈습니다.

대통령도 말릴 수 없다던 막나가는 매카시 선풍은 결국 대통령과 연결되어 내리막을 걷게 됩니다.

1954년, 매카시 상원의원은 이번에는 국방부와 미국 육군 인사들 중 반대파를 공격하기 위해 이들을 공산당으로 몰아붙이기 시작합니다. 매카시는 혈기왕성한 변호사 로이 콘과 함께 고발과 소송에 들어갔는데, 이것이 육군 자체와 대립하는 분위기로 빠지게 된 것입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2차 세계 대전 총사령관으로 최고의 명망을 받는 사람이었는데, 덕분에 같은 당 아래에 있던 매카시 상원의원이 미 육군을 들쑤시는 모습을 보면서, 해도 해도 너무 심하게 설친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노르망디 지역에서 무수한 고통을 겪고, 벌지 전투에서 피를 흘리며 나치들과 싸운, 군인들이 보기에, 허술하고 의심스러운데가 있는 군생활을 한 매카시 상원의원이 자신들을 매국노라 몰아 붙이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육군측 변호사는 매카시 상원의원의 마구잡이 누명씌우기 자체를 맹비난하기에 이르른 것입니다.


(외계에서 온 괴물)

영화 "굿 나잇 앤 굿 럭"은 매카시 상원의원이 육군을 들쑤시면서 몰락하기 직전의 상황에서 활약했던 CBS TV제작팀 "시 잇 나우 See It Now"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시 잇 나우"는 공개적으로 매카시 상원의원 행동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매카시 상원의원은 이후 "시 잇 나우"에 직접 출연해 반론을 폈습니다. TV에 출연한 진행자 에드워드 머로와 매카시 상원의원의 논쟁은 극적으로 펼쳐졌고, 이는 서슬퍼런 매카시 상원의원의 예봉이 꺾인 최초의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굿 나잇 앤 굿 럭"은 방송국 사람들 주변을 조용하게 비추는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매카시의 몰아 붙이기에 고통 받은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고, 그들이 겪은 시련은 가벼운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점들을 극적으로 강조하지도 않고, 특별히 요란한 음악으로 그러한 감정선을 과장하지도 않습니다. 단지 중간중간 술취한듯한 느릿느릿한 재즈 음악을 끼워 넣으면서 생각을 전달할 시간을 주고, 흑백화면에서 담배연기를 끝없이 피어 올리면서 주인공들이 화면을 째려보며 옛날 영화식으로 폼을 잡습니다.

영화에 중심으로 서 있는 것은 매카시즘과 그에 대한 극복이라는 역사적 사건이라기 보다는, 그냥 그런 소재를 다루며 방송을 진행했던 TV쇼 팀과 방송국의 모습들을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역시 격정적인 시련과 분노가 섞여 있다기 보다는, 차근차근 업무를 진행하는 적당한 긴장감 정도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런 진행 방식은 나름대로 이점도 있습니다. "주인공 괴롭히는 놈 나쁜놈" 구도로 가는 것이 아닌지라, 어떤식으로 해석되어야 옳고 그르며 어떤 점이 문제가 되는지 생각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또한 "프렌즈"의 조이 트리비아니가 "데이즈 오브 아우어 라이브스 Days Of Our Lives"에서 의사를 연기 하듯이, 심하게 전문가들인 듯 냉철한 분위기를 내뿜는 방송인들의 모습은 보기 그럴듯할 때도 있습니다.


(영화속의 50년대초 CBS TV스투디오)

하지만, 갈등이 본격화 되기전 영화 초반 전개는 아무래도 좀 심심한 면이 많습니다. 조지 클루니가 연기한 PD는, 조지 클루니 특유의 여유있고 노련한 전문가 연기라서 적당하고, 데이비드 스트래선의 날카로운 에드워드 머로 흉내는 더할나위 없습니다. 그렇습니다만, 그 외의 다른 인물들은 뚜렷함이 부족하고, 덕분에 몰입감도 여러 모로 부족해지는 데가 많습니다. 영화에서 다루는 매카시즘이라는 것이 사실 비슷한 주제로 더 익숙한 스탈린의 대숙청이나 제주도 4.3 사건 같은 것에 비하면 아이들이 공기 놀이로 대결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무덤덤한 느낌은 좀 졸리울 때가 있습니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방송을 좀 더 긴박한 감각으로 꾸며서 숨가쁘게 연결되게 한다거나, 혹은 각각의 등장인물마다 독특한 방송국의 방, 층을 차지하게 하고 이곳저곳을 오가면서 상징적으로 각각의 상황과 위치를 보여주는 식으로 볼거리를 많이 집어 넣으면 좀 더 재미있었을 겁니다. 뭐, 이 영화의 가라앉은 분위기와 발랄한 구성은 어긋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만, 전반부가 산만하고, 결말 자체도 그런 산만한 전반부가 아깝지 않을 만큼 강한 것도 아니기에 여전히 부족한 점들은 눈에 들어 옵니다.

다만, 옛 영화식으로 차분하게 천천히 말하면서 폼잡는 장면들과 옛 TV스투디오 모습, 조명들이 많이 등장하기에 여기에 호기심을 느낀다면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런저런 요소들에 어울어져서, 마치, 옛 "사건 25시"를 떠올리게 하는 어둡고 가히 무서운데 마저 있는 진지한 진행자, 애드워드 머로의 모습은 영화의 핵심일 것입니다.


(에드워드 머로)

그 밖에...

"시 잇 나우 See It Now" 는 결국 "60 Minutes"로 계승되면서, 현재까지도 시사 고발 프로그램의 대표주자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한국의 "추적 60분"은 그 직접적인 아류작일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안한 것처럼, 2005년말, 황우석 교수 연구를 둘러싼 방송가의 이야기를 다루면, 특별히 극적인 이야기를 지어내서 삽입하지 않는다해도, "굿 나잇 앤 굿 럭"보다 훨씬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영화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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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흰짱구 2006/04/08 14:37 # 답글

    이런일이 있었다구, 메카시즘이 얼마나 무셔운지 알아? 부시 너도 정신차려..류의 메시지를 생각하는 순간 전 최초로 영화보다 졸았습니다. 독특한 영화가 중심을 잃지 않고 스타일을 지키는 것은 좋지만 좀 지루했었어요. ^^ 글 재미있게 잃고 갑니당
  • 게렉터 2006/04/09 23:03 # 답글

    아예 아군-적군 구도가 확실한데다, 후반부의 한 사건을 제외하면 사실 매카시즘에 직접 괴로워하는 당사자의 감정묘사는 적은 편이라서, 사상/시사 소재 자체의 교훈이라든가 하는 면은 도리어 그냥 조용한 데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여러모로 TV매체가 사회를 위해 직접적으로 나설 수 있는 역할을 드러내는 쪽에서 더 교훈을 중시하는 면이 있어 보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영화는 영화보다는 CBS 개국 몇십주년 특선극으로 편성하면, 마지막 연설 장면을 비롯하여, 여러 요소가 더 재미있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 흰짱구 2006/04/11 00:22 # 답글

    --;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인데 오자를 냈네요. 맞아요 약간 다큐멘터리나 방송국제작 영화 같기는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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