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텝포드 와이프 The Stepford Wives 영화

"스텝포드 와이프"는 2002년판 "환상특급 Twilight Zone"의 첫번째 에피소드와 같은 소재를 다루고 있는 영화입니다. 도시 생활에서 문제를 느낀 한 가족이 삶의 개선을 위해, 유토피아라고 소문난 교외의 한 마을로 이사를 온다는 겁니다. 당연히, 이 마을은 유토피아라는 평판을 유지하기 위해서 무시무시한 비밀을 감추고 있을 겁니다. "스텝포드 와이프"는 여기에 60년대 코메디 영화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남녀 성대결 구도의 복고적인 유머를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화면을 구성하는 미술이나 소품, 의상과 같은 요소에서도 이러한 50,60년대 분위기를 여러모로 가져다 쓰고 있는데, 이런 표현들은 극단적인 상황을 강조해야 되는 이야기의 소재와도 들어맞는데가 있고, 동시에 이야기가 전개해 나가는 극단적인 옛날 코메디와도 어울리는 데가 있습니다. 그런면에서 전체적인 분위기의 흐름 유지는 꽤 잘 흘러가는 편입니다.


(주인공 부부)

"스텝포드 와이프"는 교외의 이상향이라는 고립된 마을이라는 배경속에서, 옛 복고풍 재료들이 등장하는 것을 엮으면서 그 어울린 결과를 또다른 재미로 연결하려 합니다. 그것은 마치 "그림 형제 동화집"과 같은 분위기라 할만한 경쾌하면서도 기괴하고 잔인한 데가 있는 전개입니다. "그림 형제 동화집"에 종종 등장하는, "노파의 젖은 옷을 알려주기 위해 아이는 불을 지폈습니다. 그런데, 저런, 불이 너무 강해 노파의 옷에 불이 붙어 노파는 불타고 있군요. 노파는 얼마나 뜨거워 하며 죽었을까요?" 같은 표현말입니다. "스텝포드 와이프"에는 어처구니 없는 사연 때문에 영혼이 조각나거나, 실제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건들은 동화풍의 배경음악과 표정연기에서 얽혀져 나옵니다.

사실 이야기의 중요한 핵심 갈등은 안데르센 동화 "눈의 여왕"이야기와 매우 비슷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19세기 풍의 음악을 이용하는데다가, 왈츠를 중요시하는 모습까지 곁들여집니다. 거기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카드 병사들처럼 무리지어 움직이는 스텝포드의 아내들과 너무나 동화속의 마왕 같아 보이는 크리스토퍼 워큰의 모습도 잘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런 어두운 동화 혹은 마더 구즈를 연상케 하는 영화의 구성은 나름대로 짜여진 한 편의 이야기로서 무리가 없습니다.


(어느 작은 왕국의 왕과 왕비)

그러나 이런 이야기 속에 담겨 있는 주제랄지, 유머는 좀 아쉬운데가 있습니다. 단지 신나게 즐길 웃음거리라고 하기에는 재기가 부족한 면이 많습니다. 스텝포드 마을의 숨겨진 비밀은 영화 초반에 제시되는 복선으로 즉시 암시가 됩니다. 그런데 그래놓고도 이를 잘 드러내면서 긴장감 있는 갈등의 소재로 써먹지 않고 끝까지 그 전말을 숨기고 공개를 괜히 미룹니다. 그러면서 나오는 마지막 반전 역시 충분히 짐작 가능한데다가 얼렁뚱땅 대강 이어지기에 그렇게 장렬하게 자극적인 것도 아닙니다. 이런 이야기보다는 차라리 영화 도입부에 나오는 어처구니 없는 리얼리티 쇼를 소재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더 흥미진진하게 여겨질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냉철한 풍자의식을 갖는다고 하기에도 영화가 과장하고 있는 대립적인 요소들은 입체감이나 현실감이 없습니다. 물론 장면 장면마다, 대사 마디 마디 마다, 제목을 굳이 하나씩 붙여 대자면 무엇인가 한 마디씩 이야기할 소재는 됩니다. 그렇습니다만, 거기에 참신한 발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독특한 시각이나 설득력 있는 표현이나 결론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회사나, 사람들의 직업의 고정관념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풍자는 "Command In Chief" 같은 TV쇼에서 힐러리 로댐 클링턴을 비아냥 댈 때처럼 좀 단순무식해서 위험하고 힘겹게 끼어든 느낌마저 듭니다.

배우들 중에는 메튜 브로데릭이 가장 잘 어울립니다. 적당히 이해할 수 있는 평범한 인간의 보잘것 없는 모습을 동화 같은 이야기에 뻔히 드러나도록 잘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눈의 여왕"에 등장할 인물의 아슬아슬한 모습도 잘 보여주면서도, 계속 과장없는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니콜 키드먼은 약간 부족해 보입니다. 물론 초반의 과장된 모습을 보여줄 때는 마치 "투 다이 포"의 주인공이 드디어 권토중래한 듯, 재미난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가장 쉽게 감정이입을 이끌어야 할 중반이후에, 여러 모험을 하고 호기심을 느끼는 과정에서 관객들이 쉽게 이해될 수 있는 평범한 사고방식의 인물을 만드는데는 실패합니다. 이것은 주인공의 인물을 도입부에는 지나치게 적극적인 괴상한 인물로 설정했다가, 정작 이야기의 본론에서는 그냥 장삼이사의 관찰자 경험자로 전락시킨 탓에 인물자체가 잘 살지 않고 있기 때문인 듯도 합니다.


(니콜 키드만)

베트 미들러, 크리스토퍼 워큰, 글렌 클로즈 같은 조연들은 비중이 워낙 적어서 그렇지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크리스토퍼 워큰은 굳어진 자신의 배역을 이번에도 십분 장기를 발휘하며 표현하고 있는데, 그러나 정말로 본격적으로 그 위력을 사방에 뿜어내먀 활동적으로 설쳐대는 장면은 없습니다. 다만 짧게 그 특유의 분위기로 비밀을 한 번 건조하게 읊어줄 뿐입니다. 그래서 아깝습니다. 베트 미들러는 이 영화에서 가장 훌륭하게 코메디 장면들을 연기하면서, 멋진 솜씨를 보여주기에 이 해괴한 공포와 신비의 세계에 빠져 희극을 펼치는 인물의 한계내에서 웃음을 주는데 더없이 적합합니다. 니콜 키드먼 대신 차라리 베트 미들러의 인물이 주연이 되었으면 영화가 더 재밌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아쉽게도 베트 미들러의 인물은 "스피드"에서 자동차 빌려주는 까불이 정도의 역할 밖에 되지 않는 비중입니다.

"스텝포드 와이프"는 복고풍 패션 감각에 복고풍 성대결 코메디를 "한스와 그레텔" 풍으로 연결한다는 아이디어를 잘 구현하고 있습니다. 군데군데, 좀 이야깃거리가 될만한 설정을 끼워 넣은 것도 실패라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인물 설정이나 대사들, 상황들, 화면과 음악구성방법 등등 여러 면에서 딱히 재미있는 참신함이나, 흥을 돋구워 줄 개성에서 부족했던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베트 미들러)

그 밖에...

원작이 있는 영화입니다. 원작은 언제 어떻게 쓰여서 어떤식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인지 따져보는 것도 영화를 가늠하는데 한 방편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덧글

  • ArborDay 2006/04/12 12:27 # 답글

    이 작품 75년에도 한 번 영화로 만들어진 적이 있답니다.
    그 작품은 호러/미스테리/스릴러의 성격이 강했다고 하더군요.
    보고 싶기는 한데. ^^
  • 게렉터 2006/04/12 23:39 # 답글

    윌리엄 골드맨 각본의 영화를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이 영화는 작정하고 막나가지 않고 적절히 현실적인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 숏다리코뿔소 2006/04/14 09:28 # 답글

    흠... 단순히 니콜키드만 때문이 본 기억이 나네요^^; 원작이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있었다는것이 믿어 지지 않습니다 ㅋ
  • 게렉터 2006/04/17 12:55 # 답글

    정신병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상황을 어둡게 강조하면 의외로 공포스러운 분위기로 슬쩍 이어질법 합니다. 그림동화집의 몇몇 이야기들에 잔인한 구석이 많았던 것도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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