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공포증 High Anxiety 영화


(고소공포증의 현기증)

"고소공포증"은 멜 브룩스의 1977년 작 영화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유명한 영화들을 뒤섞은 이야기를 소재로 하는 코메디 영화 입니다. 이 영화는 ZAZ 패러디 영화의 영향을 미친 영화로 멜 브룩스 감독의 영화를 이야기를 할 때 꼭 언급되곤 합니다. 이 영화는 아예 처음부터,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에 대한 존경을 자막으로 표현하면서 시작하느니 만큼, 패러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흔히 꼽히는 예로는 적당할 것입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고소공포증이 있는 한 정신과 의사가 사악한 음모가 있는 듯한 의심스러운 정신병 요양원에 새로 부임하면서 겪는 모험담입니다. 학회 발표차 요양원을 나와서 활동하면서 정신과 의사는 요양원의 비밀을 알게되고, 이때 만나게된 금발 여주인공과 함께 다시 정신 요양원에 돌아가 마지막 모험을 벌이게 됩니다.


(고소공포증의 주제곡)

우선 이 영화의 유머들은 여러모로 재미있는 점이 있습니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유명한 고전 영화들을 흉내내는, 요즘 텔레비전 광고 같은 패러디 자체의 재미가 일단 골고루 영화 전체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싸이코"나 "새"의 장면들을 가져온 것들은 워낙 영화가 유명하기 때문에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원래 영화를 보지 않은 관객들까지도 알아 볼 정도가 될 것입니다. 이외에도 다양한 이야기 구도와 인물 배치, 소소하게 들어간 소품과 배경 음악 곡조, 연출 방식에서 많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들이 포착되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들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영화들을 즐겨 보는 사람이라면 즐겁게 찾아 볼 수 있는 재미거리가 될 것입니다.

그 외에도 멜 브룩스 영화에서 종종 보이곤 하는 파격적인 소재를 응당 진지해야 할 듯 보이는 상황에 접붙이는 몇몇 부분도 그런대로 흥미를 끕니다. 좀 지나치게 가벼워 보일 때가 없는 것은 아니고, 영화의 분위기를 잘 살린다고 하기에 약간 부족한 부분이 있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대강 즐길만은 합니다. "I got it"을 필두로 한 언어유희들과 기타 헛웃음을 주는 농담들도 그럭저럭 참신한 점도 몇 군데 있습니다.

이 영화의 웃음을 바라 본다면, 또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영화와 별 상관 없는 배우 자체의 개인기에 대한 부분도 빠뜨릴 수 없을 것입니다. 라스베가스 쇼 무대의 흥겨움을 응용해서 영화속에서 'High Anxiety" 노래 장면을 펼친, 주인공 멜 브룩스는 물론이요, 여자 주인공을 맡은 매들린 칸의 다양한 코메디 연기도 출중합니다. 그냥 이상한 표정 만들고 어리광 부리는 잔재주만 있는 것이 아니라, 대사를 재미있게 풀어내는 희극 연기의 경험이 풍성합니다. 두 사람이 어울려서 펼치는 공항 보안 검색대 통과 장면은 단연 눈에 띄는 장면입니다. 정체를 숨기고 공항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기 위해, 두 사람은 소란스런 무식쟁이들로 변장하는데, 이 때의 과장된 연기와 화려하게 주거니 받으며, 메기고 받는 두 사람의 만담쇼식 코메디 연기와 대사 잔치는 재미가 있습니다. 물론 이 두사람을 제외 한다 하더라도, 개성과 강렬한 인상을 드러낼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주요한 조연인 클로리스 리치먼와 하비 코르먼도 제대로 제 몫을 하고 있습니다.


(잘했군 잘했군 잘했어)

그러나, 반대로 영화 전체가 흘러가는 줄거리는 좀 재미가 없는 편입니다. 즉 의무적으로 끼워 넣어야할 코메디 장면들을 조립하기 위해서 이야기 자체가 지나치게 헐거워진 면이 있습니다.

일단 영화 전체 줄거리에 긴박감이나 응집력을 줄 쫓고 쫓기는 구도나, 그 비슷한 뭉친 흐름이 없습니다. 무시무시한 악당들인 정신병원의 2인조는 그냥 악당인 척만 하지, 끝나기 3,4초전까지만 해도 주인공에게 직접적인 공격을 가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경찰에 대한 주인공의 불안감이 잘 드러나 있는 장면도 아주 적습니다. 주인공 자신 역시 처음부터 사건과 소동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기 보다는, 한참 느긋하게 지나가다가 뜬금없이 한 번 이야기 된 적도 없는 "학회 출장"을 빌미로 중반이 되어서야 개연성 부족한 전환점을 맞이할 뿐입니다.

이런 헛점들은 정신병원의 인물들이 흔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악역을 맡고 있는데다가 무대 자체도 고전적인 공포물스러운 배경으로 흥미롭게 생겼기에 더욱 실망스럽습니다. "고소공포증"은 제목과 결말부분은 "현기증"을, 내용은 대체로 "스펠바운드 (망각의 여로)"를 따라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을 생각해보면, "현기증"이나 "스펠바운드"의 내용을 좀 더 뚜렷하게 살려 써서 이야기의 중심 줄거리에 힘을 더해도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재밌는 영화"가 전체적으로 "쉬리"의 줄거리를 중심으로 삼고, "에어플레인"이 비행기 불시착 이야기에 핵심을 두고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전체적으로 흡인력이 부족한 줄거리 전개는 해결책이 없어 보이지도 않습니다.


(고소공포증의 결말 부분)

그 연장 선상에서 과연 이 영화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를 잘 예찬하고, 잘 패러디 하고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도 좀 한계가 느껴집니다. 우선, "고소공포증"이 적극적으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들에서 밝혀 가져온 내용들은 소위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영화의 단편적인 명장면, 그 장면 장면들입니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들에는 흔히, 누명 쓴 남자의 긴 추적극이나, 정신병적인 집착, 무성영화의 전통이 살아있는 보여 주기 연출 방법, 격렬한 음악 사용 같은 요소들이 영화의 내부에 자리잡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만, "고소공포증"은 이러한 점들은 약간씩 약하게 사용할 뿐이고, 유명한 장면 장면들의 겉모습을 꺼내다 붙이는데 더 힘을 들이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중간에 괜히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앞의 포트 포인트를 배경으로 사용한 것이나, 하필 정글짐 옆의 벤취에 앉는 것에 신경을 쓴 나머지, 충분히 더욱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영화 방식으로 흥미로워 질 수 있었던 정신병원 2인조의 각종 활동 양상 같은 것은 줄어 들어 있습니다. 두 악역의 활동 장면들은 다른 인물들과의 교류로 나타나기 보다는 그냥 카메라 보고 둘이 낄낄거리는 장면으로만 묻혀 있기에 고립되어 있는 것입니다.

"고소공포증"은 영화 전체에 여러 웃음 요소들이 계속 배치되어 있고, 또 흥미롭게 정신 병원과 학회 장소, 호텔, 거리, 공항, 탑을 이곳저곳 왔다갔다하는 여행 구도도 지루함을 덜어주기는 합니다. 그렇게 보면, 마지막의 결말까지 보고나서는, 흥겨운 한 소동을 잘 보여 주었다고는 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전 영화들 속에서 정말로 가장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를 보여 주었던 감독의 대표적인 예찬 코메디 치고는, 이래저래 다른 훗날의 영화들을 더 기대하게 하는 면이 있습니다.


(금발의 여자주인공)

그 밖에...

제목 High Anxiety 라는 단어들을 "고소공포증"이라는 말이 잘 살리지 못하는 면이 있고, 이 때문에 중간의 주제가 장면이 좀 아쉬워 집니다만, 뾰족한 묘안이 없습니다. "너무 높아 아찔해" 정도로 번역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렇게 되면, "현기증"이라는 영화 제목 패러디라는 느낌이 약해지니 말입니다. "아찔함" 정도로 제목을 만들어내면, 너무 원래 제목에서 벗어나 버린다는 생각도 듭니다.

IMDB Trivia에 따르면, 이 영화의 제작 소식을 들은 노년의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행운을 빈다며 샴페인 한 병을 선물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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