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 살벌한 연인 영화

제목과 포스터만 보면, "죽어야 사는 여자"나 "장미의 전쟁" 같은 폭력적인 희극이 연상됩니다만, 사실 "달콤 살벌한 연인"은 독특한 상황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 로맨틱 코메디 입니다. "달콤 살벌한 연인"의 내용은, 충분한 경제력과 직업적 위상, 지식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꽤 들도록 단 한 번도 애인이 없었던 남자 주인공이 이제는 한 번 애인을 만들어야겠다고 비장한 결심을 하는 것으로 출발합니다. 겨우겨우 여자 주인공과 이어지기는 하는데, 문제는 이 여자 주인공도 좀 수상쩍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듯 보인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관계에 서툰 주인공은 많은 난관에 부딪히게 됩니다.


(박용우, 최강희)

"달콤 살벌한 연인"이 전통 로맨틱 코메디인 것은 "혈액형별 성격"에 대한 태도에서 단적으로 드러납니다. 일단 이 영화는 초반부에 "혈액형별 성격"에 대해서 실랄한 공격을 하면서 시작을 하고 줄곧 거기에 대한 비난을 유지하고 있는 편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적인 성격에 맞춰 써먹을 때는, 미신 안 믿는 냉철하고 똑똑한 남자 - 미신을 믿는 감성적인 여자 라는 "귀여운 여인" 구도를 그대로 답습할 뿐입니다. 그래서 이 똑똑한 남자가 자신의 빈 곳을 미신에 내어 주는 것으로 이해심과 사랑을 표현하는 수법을 따라갑니다.

"달콤 살벌한 연인"은 전체적으로 대부분 박용우가 맡은 남자주인공의 시각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코메디도 박용우가 맡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농담의 방식은 대체로 90년대초에 장두석이 펼치던 코메디와 많은 부분 통합니다. 어떤 문제가 벌어지면 어설픈 변명이나 대강 받아 넘기려는 체면치례용 대사를 하는데, 그런 말들이 이 사람의 엉성한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음을 은근슬쩍 드러내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말하는 속도가 급변하는 과장된 말투를 사용합니다.

박용우는 긴장된 마음으로 처음 여자들에게 접근하고, 데이트를 신청하고, 실패한 데이트와 성공한 데이트를 연결해 나가는 일들을 겪습니다. 그리고 딴에는 그런 일을 순조롭게 진행시키고 올바른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다양한 속 보이는 임시방편과 핑계들을 펼쳐내는 것입니다. 그런 점들 하나하나는 몇몇 재치있는 농담들과 견주어져서 희극의 재료가 됩니다. "Friends" 시즌 2에 나오는 유명한 농담 하나를 다각도로 조명하며 여러번 다려먹기도 합니다.

장두석이 흰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부채를 든 괴인으로 기꺼이 돌변하는 것과는 달리, 박용우는 가장 후줄근한 모습일 때에도 그 겉모습을 꽤 멋있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장두석 흉내로 그냥 넘어가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속의 남자 주인공은 약간은 자폐증에 가까운 정신병적인 성격으로 나타납니다. 박용우는 좀 정신 상태에 문제가 있는 듯한 인물을 연기하게 되기 때문에 그러한 희극적 과장을 날카로운 얼굴 표정 위에서도 잘 표현해 낼 수 있었습니다. 분명히 들리는 목소리는 이런 대사의 급변을 잘 소화해 내고 있기도 합니다. 다만, 후반부로 갈 수록 이런 유머 연기 방식이 지나치게 반복되고 있기에 조금 지겨워 지는 면은 약간 있습니다.


(박용우)

상대역인 최강희도 충분히 제몫을 하고 있습니다. 최강희는 그 찬란한 동안을 또렷하게 과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동안 덕분으로 최강희는 어린아이 같은 엉뚱함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해괴한 일들을 벌여 나가는 여자 주인공의 비밀을 표현하기에 적당합니다. 우리의 콩콩귀신의 그 강건한 솜씨를 다시 한 번 보여주는 것입니다. 동시에 관계에 서툰 순박한 남자 주인공이 접근하여 어울리기에 언뜻 어려 보여서 역시나 순박해 보이는 듯 하는 면도 잘 어울리는 데가 있기에 그럴싸합니다. 최강희 스스로 라디오와 TV를 넘나들며 연마해 왔던대로, 이러한 동안에 잘 어울리는 목소리와 대사도 한 몫 합니다. 최강희의 이런 대사들에는 드러나는 어리광이나 과장이 없기에 정말로 진솔한 엉뚱함, 순박함처럼 들리는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최강희의 이런 인물 특징이 이야기속에 중요하게 살아나지는 않았습니다. 우선 영화의 전반부에 최강희가 하는 행동들은 대체로 납득할만하고 수긍할만하다는 생각을 이끌어 내기에, 그렇게 엉뚱하고 괴이해 보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여자 주인공의 비밀은 중반 까지는 별다른 갈등의 소재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여자 주인공이 자신의 비밀을 숨기기 위해 노력하거나, 혹은 그런 비밀이 남자 주인공에게 알려질까봐 관객들을 조마조마하게 할 수 있었을 텐데, 우선 영화는 그러한 노력들을 초반에 배치하는 데 실패하고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그러한 비밀 자체에 대한 궁금증을 끌어가는 데 초점을 줄 수는 있겠습니다만, 그렇게 하기에는 이미 포스터와 예고편이 여자 주인공의 비밀이 뭔지 다 말해주고 있기 때문에 또 좀 힘이 빠집니다.

그 결과로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의 비밀을 알아채고 이 점이 본격적인 갈등구도로 접어드는 것은 영화의 결말에 상당히 가까워진 후가 됩니다. 쓸데 없이 클린트 이스트우드 흉내를 내는 남자 주인공의 예처럼 이런 점들은 쉽게 쉽게 희극 요소로 사용되고 있기는 합니다만, 이야기 전체를 살펴보기에 너무 짤막합니다. 그러다보니, 이러한 갈등의 굴곡은 그다지 격심하지 않고 따라서 결말 또한 별 대단한 파국, 반전, 격정, 여운 없이 평이한 편이 됩니다. 사실 결말 무렵이 되면 최강희의 인물은 나름대로 그럴듯한 초인적인 멋을 갖게 됩니다. 이를 생각해 보면, 여자 주인공의 비밀과 그 독특한 성격에 얽힌 소재들은 더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아까운 생각이 듭니다.

조연을 맡은 조은지와 정경호의 배역들은 항상 하던 역할의 심심함과, 한국 영화속의 웃긴 불량배 모습의 틀에 박혀 있기에 약간 따분하긴 합니다. 하지만, 둘 다 맡은 제몫을 똑바로 하고 있고, 정경호의 경우에는 표정, 몸동작, 대사를 섞어치는 희극 연기를 선명하게 귀에 잘 들리도록 잘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유치한 감정이나마 그 감정 표현에도 능해서, 중반 이야기 전개에 나름대로 역할을 다합니다. 그러나 이야기 구조상 비중이 작을 수 밖에 없는 점이라는 점은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거칠고 투박한 느낌을 사실적으로 살리기 위한 손쉬운 방법으로, 욕설 단어 몇 마디에 의존해버리는 대대로 내려오는 각본제조 방식도 개성을 좀 죽이는 데 한 몫 합니다.


(최강희)

"달콤 살벌한 연인"은 여자주인공의 독특함이 빚어내는 "달콤 살벌함" 보다는, 남자주인공의 외면적으로 평화롭지만 내심으로 열렬한 감정-생각 변화가 빚어내는 희극에 더 기울어진 이야기 입니다. 음악이 "나홀로 집에" 시절 헐리우드 음악을 따라하는 복제품에서 떠돌고 있는 점은 약간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화면은 무난하게 잡혀 넘어갑니다. 그런 가운데, 남자주인공이 비판을 제기하는 도입부의 연설 표현이라든가, 현관문으로 화면 중앙을 갈라막고 대칭적으로 남녀주인공의 얼굴을 배치해 대사를 하게하는 수법등등이 군데군데 경쾌하게 쓰여서 강조와 전개의 박자감도 살리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중심 소재를 반쪽만 활용한 점, 박용우의 코메디 감각에 한 번 의심을 품기 시작하면, 곧이 곧대로 잘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점이 약점으로 요약될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살인의 잔인함은 보기 편하도록 가려져 있습니다. 때문에 중간에 두 조연이 사실적인 유혈장면을 잠깐이나마 보여주는 것은 조금 분위기를 깨는 면도 있긴 합니다.


그 밖에...

포스터만 보고, 칼질 액션이 많아서 최강희가 파괴적이고 날렵한 액션을 자랑하는 장면이 꽤 될거라고 혼자 상상했습니다. 그런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영문학 강사가 별 설명이 없는데도 아주 잘 살고 있는 영화입니다. 그러면서도 영문학이라는 소재의 묘미는 별로 살아는 부분이 없습니다.

이 영화에는 당연히 "죄와 벌"이 언급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TV를 보다보니, 요즘에는 "죄와 벌"이 어느새 유명하지만 답답한 고전 문학의 한 예로 자리잡아버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강희가 맡은 부분에 유머가 약하긴 합니다만, 결말부분 근처에서 "여자주인공의 그림" 장면이 보여주는 정통 최강희 방식 유머는 매우 감개무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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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ArborDay 2006/05/22 13:59 # 답글

    극장에 들어갈 때는 '그래서 난 도끼부인과 결혼했다.'를 떠올렸습니다만, '형사에게는 디저트가 없다'류의 살인을 가미한 로맨틱코미디더군요.
    재미 있는 오락영화였습니다. 신나게 웃었으니 충분히 만족했지요.
  • 게렉터 2006/05/25 18:43 # 답글

    그 웃음에 대해서 생각할 때, 저는 영화에서 언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새삼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슷한 외국 영화에 비해 훨씬 관객들이 대사에 웃음을 많이 짓는 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반대로 그간 얼마나 한국 영화의 대사가 무성의한 곳이 많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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