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패 영화

"짝패"는 고전영화들의 멋진 장면들을 배워와서 줄줄이 빠른 화면 속에 이어나가는 영화입니다. 이런 영화로는 "킬 빌"이라는 선례 흥행작이 있습니다. 마지막 액션 장면의 화면 구성과 거기에 덧붙여지는 음악사용은 사실 "킬 빌"의 장면들과 꽤나 닮은 데도 있습니다. "짝패"에 대해 굳이 "킬 빌"과 닮은 점에 주목한다면, "짝패"는 "킬 빌"을 조금 더 현실감, 현장감 있게 만든 영화라 할만합니다.


(주인공들)

"짝패"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인상을 찌푸리는 싸움 전문가가 무법자 마을에 홀연 나타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배경이 배경인 만큼 말을 타고 등장하지는 않고, KTX를 타고 나타납니다. 이 사람은 고향 친구가 죽어서 그 장례식 때문에 오랜만에 고향에 온 형사입니다. 그는 다른 친구를 그곳에서 만나게 되는데, 죽은 친구의 살해사건이 이 마을에서 진행되고 있는 카지노 건설 사업과 간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두 사람은 점차 사건의 전말을 파악해나가고, 당연히 암흑의 조직들은 이들을 제거하기 위해 계속 싸움꾼들을 보냅니다.

역시 "짝패"가 "킬 빌"보다 앞서는 점이나, 혹은 뚜렷한 차이가 느껴지는 부분은 그 실재감입니다. 물론 "닥터 이블" 같은 악당과 1당100 싸움이 남발되는 이야기인 만큼 정말로 현실적인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땅투기나 카지노 개발, 지방 소도시의 도시화 진행과 같은 이야기들이 개입되며, 인물들의 경험과 행동의 동기들이 보다 생활속에 밀착된 이야기 입니다. "오렌 이시이" 정도를 제외하면 대걔 그냥 끝까지 치달은 신화적인 인물이었던 "킬 빌"과 달리, "짝패"의 인물들은 좀 더 사연이 있습니다. 좌절된 꿈과 주위의 기대에 대한 부담감에 시달리는 형제가 있는가하면, 열등감에 꼬여 있는 악당도 있습니다. 이를 표현하는 연기도 적당합니다.

듣기 좋게 연마된 충청도 사투리도 여기에 도움을 줍니다. 정두홍 같은 경우에는 사투리 때문에 보고 따라할 연기가 익숙치 않아서인지 약간 대사가 힘겨워진면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류승완과 이범수는 거의 완벽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사투리는 지역색과 투박한 느낌을 되살리는 데 좋습니다. 역으로 그 투박한 느낌이 비열한 인물이나 날카로운 성격과 대조되어 힘을 드러낼 때도 괜찮습니다. 뿐만 아니라, 말투 하나만으로 옛부터 인연을 맺는 이 지방 사람과 외지인을 구분해 주는 효과가 있어서, 그에 의한 대립구도나 사람들간의 관계를 표현하기에도 좋은 수법입니다. "뱀술"이라는 소재도 충청도 사투리와 마찬가지로 적당히 활용되고 있습니다.

또 "킬 빌"은 갖은 칼질과 피튀김, 잔인한 살인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고, 이야기 전체에 있어서 파괴감이 거의 칼질 공포영화처럼 표현되어 있기에 그때문에 환상적인 느낌이 강해진 면이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짝패"는 점차적으로 파괴의 강도를 서서히 높여가고 있으며, 잔인한 장면은 결말근처에 몰아 넣고, 줄여서 쓰고 있습니다. 덕분에 싸움들의 형태나, 맞아도 금새 회복하고 다음 악당과 싸우는 주인공의 형세, 그 타격감이나 속도감 같은 것들이 조금 더 실제 인물에 가깝게 되어 있습니다.


(장례식)

반면에 "짝패"가 "킬 빌"보다 언뜻 약해 보이는 점이 있다면 얼른 들어오는 것은 음악 사용이 좀 재미 없다는 점입니다. "킬 빌"은 호소력 넘치는 곡들만 골라서 연결하면서, 음악을 전면에 부풀려 화려한 배경음악 폼잡기에 젖어 있습니다. 하지만, "짝패"는 도시군상을 관조적으로 표현하는 듯한 느와르 영화 배경음악을 종종 써먹고, 싸움의 리듬을 강조하는 보편적인 빠른 격투 배경음악에 머무는 편입니다. 이야기가 현실감을 강조할 때는 이런 구성이 적당합니다만, 작정하고 분위기를 잡는 장면이나 난리치는 장면에서는 음악과 빚어내는 상승효과가 약한 면이 있습니다. 회상장면의 패싸움 장면 하나는 좀 더 음악을 전면에 내세워 강조하는 것이 있긴 합니다만, 신나게 뛰어다니기와 물첨벙 거리기 외에는 싸움 장면이 좀 무미 건조한 것이라서, 완전히 활용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굳이 "킬 빌"과 "짝패"를 비교해 더 살펴보자면, "짝패"의 상대적인 약점으로 이야기의 호기심 유발이 약하다는 면도 들어 옵니다. "킬 빌"은 시간 관계를 꼬아 놓고, 인물들의 뒷이야기들을 연결해서 계속 호기심을 생기게 했습니다. 그에 비해 "짝패"는 중심 줄거리 자체가 전통적인 "좋은 형사, 나쁜 형사" 구도의 탐사극이라서 대체로 "경찰청 사람들" 중급 에피소드 정도의 흡인력에 머물고 있습니다. 나쁜 놈을 붙잡고 류승완이 분에 못이겨 두들겨 패 없애버리려 하면, 정두홍이 말리면서 냉철한 질문을 하는 장면은 꼭같이 서너번 반복되어서 약간 답답하기까지 할 때도 있습니다.

거기에 이런 탐사극에서 만나서 돌파하게 되는 중간 악당들이 그 존재감이 약하다는 점도 문제 입니다. 각각의 단계마다 악당으로서의 개성과 특색을 충분히 과시한 "킬 빌"에 비하면, "짝패"의 악당들은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무게가 부족합니다. 거의 액션에 동참함 없이 다만 악당으로서 분위기 과시에 주력하고 있는 마지막 악당 두목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연기하는 배우들 자체도 스턴트맨에 더 어울릴 법한 초심자인 듯 보이며, 연기할 내용이 부족하면서도 연기력이 아슬아슬해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나, 이소룡 영화의 "법주사 목탑 층층이 격파하며 오르기"를 연상시키는 후반부의 관문돌파 액션장면들은 이런 중간 악당들이 잘 활약해줘야 그 묘미가 살아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 이외의 요소가 매우 잘 표현되어 있는데 비해 악당의 힘이 약해서 아쉽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정두홍, 류승완)

"짝패"와 "킬 빌"을 비교하면서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액션의 구체적인 동작 자체는 "킬 빌"과 다른 점도 명백합니다. 일단 검도 액션과 중국 무술에 기울어진 "킬 빌"에 비해, "짝패"에는 다양한 발차기 액션에 구르고 넘어지고 튕겨 날아가고 나자빠지는 동작이 많습니다. 이러한 태권도, 실전 격투기, 스턴트맨 연습 등등이 뒤섞인 무예들은 그 자체가 나름대로 어떤 재미난 유파의 권법처럼 보이는 면이 있습니다.

약간 유행에 뒤떨어진 소도시를 80년대 미국 펑크족 분위기의 악당 떼거리로 가득차게 꾸민 것은 재미있는 특색을 보여줄 수 있는 구성이었습니다. 일당백 싸움 분위기는 "장군의 아들" 시리즈의 같은 장면과 근원이 같으면서 더 신나고, 여기에 성룡액션이 어울린 것은 상당히 흥겹습니다. CG를 사용하지 않고 흉내낸, "매트릭스2"의 일당백 포위 액션 장면이라 할만큼, 그 박력과 개성이 잘 살아 있습니다. 후반의 "단검 액션"은 그 날카롭고 사실적인 독특한 분위기가 있습니다. 이를 활용하는 이야기 구성 방식은 "친구"같은 영화와 바탕이 같고, 그 질감도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짝패"는 홍콩 무협 영화식 객잔을 현대화 한 뒤에, 야간 조명의 색채를 이리저리 활용하면서 쳐들어가는 것, 다양한 백전백승 격투 방식, 대결과 싸움의 와중에 목숨을 스포츠의 대상정도로 여기는 피로감에 관한 유머들이 곁들여진 전통적인 재미가 선명합니다. 지방 소도시라는 공간감이 인물에 대한 공감으로 잘 살아나면서 풍성한 격투장면의 박자가 엮여 있습니다. "킬 빌"보다 먼저 나왔다거나, 좀 더 강하게 내세울 수 있는 굵직한 특징이 드러났다면 보다 좋은 영화일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밖에...

영화의 영어제목은 지나치게 진지해 보인다고 느꼈습니다. 또한 영화의 무대가 되는 "온성"이란 곳은 실제로 대한민국의 충청남북도에 존재하는 곳은 아니며, 많은 촬영은 청주에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액션 장면들은 대역과 CG없이 맨몸으로 촬영한 것들입니다. 그 장점이나 특징이 그렇게 잘 살아나는 편은 아닌데, 거기에는 좋은 장면을 위해서 CG를 사용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감독의 취향 때문에, 그리고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 CG를 사용하지 않고 맨몸으로 대단해 보이는 장면들을 찾아내면서 영화를 꾸몄다는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류승완 감독은 "킬 빌"과 비교되는 영화로 보이기 싫어서 고민한 면이 있다고 합니다만, 워낙에 같은 물줄기에서 나온 영화고 기획자체가 비슷하기 때문에 결과도 닮아 보이는 면이 꽤 됩니다.

관문돌파 액션은 정말로 이소룡 영화를 응용해 구성하려고 했는데, 제작비가 부족해서 있는 세트를 그대로 쓰려다보니 지금처럼 되었다고 합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이야기를 했기에 말인데, 기왕에 끝까지 따라했으면, 주인공에게 매우 도움이 되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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