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 The Chronicles of Narnia: The Lion, the Witch & the Wardrobe 영화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의 중요한 요소들은 안데르센이 "눈의 여왕"에서 먼저 멋드러지게 그려낸 바 있습니다. 영화가 나오기 꼭 2백년전에 태어난 안데르센은 이 이야기에서, 신비롭게 눈이 오는 밤의 정경과 겨울을 상징하는 냉랭하고 위엄있는 여왕 악당을 보여 주었습니다.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의 원작이 쓰여지기 백년 정도 앞서서 나온 "눈의 여왕"은 형제자매 간의 갈등과 우애를 다루는 방법도 같고, 말하는 동물들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면서 주인공을 도와주는 것도 같습니다.


(여왕과 소년)

계절의 변화를 이야기의 변화와 연계시키는 수법도 같은데다가, "눈의 여왕"이 훨씬 은근하기는 하지만, 사랑과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들먹여서 기독교 윤리의 한 단면을 그려내고 있는 점까지 닮아 있습니다. 이런 "눈의 여왕"의 재미난 특징들은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에서도 고스란히 잘 반복되고 있습니다.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이 "눈의 여왕"과 다른 점은 이야기에 비교적 구체적인 현실 세계의 접점을 제시했다는 것과, 신화적인 전쟁 무용담의 요소를 강조했다는 점 정도 입니다. 그리고 이런점은 영화에서도 특수효과의 명확한 사용에 힘입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우선 현실 세계의 배경을 2차대전중의 영국으로 구체화 하고, 피난 온 어린이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것은 손쉬운 재미거리가 됩니다. 이런류의 평범하고 현실적인 문제에 빠진 주인공이 어느날 갑자기 환상적인 세계에 빨려드는 이야기들은 이러한 "검과 마법"을 다루는 환상물에서 MSG처럼 남용되는 것입니다. 환상물의 고전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런 배경을 다루는 수많은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에서 게임을 즐기는 사람에게 이입감을 강조하기 위해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지금 이순간에도 꿈에 젖어 짤막한 이야기를 만들어 올리고 있을 인터넷의 많은 어린이 작가들도 즐겨 사용하는 내용입니다.


(환상과 현실)

이렇게, 평범한 현실 세계의 아이들이 어느 순간 갑자기 환상적인 다른 세계를 탐험하는 이야기는 우선 그 현실적인 인물과 환상적인 소재를 대조 시켜서, 비현실적인 소재의 경이감을 강조하기가 좋습니다. 아더왕의 기사들이야 스포츠처럼 용을 사냥하겠지만, 아이스크림 생각을 하며 네버랜드로 날아온 현실의 아이들은 조그마한 요정의 날개짓에도 일생에서 가장 신기한 일처럼 감탄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서로 다른 세계의 서로 다른 관습에 젖은 인물들이 사소한 충돌을 빚거나 서로 익숙해지고 알아나가면서 친해지는 모습을 그리기에도 좋습니다. 그래서 자잘한 유머들과 은근한 감정교류를 표현하기에도 쉽습니다.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에서도 루시와 텀누스의 만남에서 이런 점은 잘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잔잔하게 전개되지만 설득력있는 선한 감정이 풍부하며, 영화에서 가장 멋진 장면이기도 합니다.

나치 독일의 공습에 시달리는 영국의 도시 생활과 이 때문에 피난을 떠나는 과정은 적당한 무게를 갖도록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인 4남매의 뚜렷한 개성도 자연스럽게 드러나서,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들에서 다양한 활동을 벌일 설득력있는 성격을 제시해주기도 합니다. 배우들도 잘 선택되어 있으며, 중반까지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루시 역의 조지 헨리는 그 중에서도 탁월합니다. 그녀는 보호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어린이에 대한 자연스러운 감정을 이끌어 내면서, 낙천적이면서도 착하고 친절한 성격을 잘 드러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니아에 일행이 도착하면서부터 만나는 많은 말하는 동물들도 좋은 특수효과의 힘을 빌어 멋드러지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늑대, 여우, 비버의 모습들은 정교한 사실감이 살아 있으면서도, 친숙하게 특성을 강조하는 희화화의 묘미도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소품도 정교한 편이라서, 이런 이야기에 항상 등장하기 마련인 "홀연 나타나서 주인공에게 마법의 물건들을 전해주는 산신령 역할의 인물" 장면도 효과가 괜찮습니다. 이런 류의 주인공에게 마법의 물건 전해주는 인물치고는 거의 역대 최강급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 장면에서는 중심인물격인 루시의 코메디 연기가 인물 성격과 결합해 빛을 발하고 있기에 꽤 보기 즐겁기도 합니다.


(말하는 동물)

그에 비해, 이야기가 후반으로 흘러가서 신화적인 전쟁 무용담에 근접해가면 이야기는 조금씩 재미가 없어지기 시작합니다. 군중을 그려내는 특수효과와 전투의 규모에서 나오는 박력은 어느 영화 못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화면에 힘을 기울인 그 노력에 비해, 제대로 된 전쟁묘사가 될만한, 전략, 전술적인 요소가 전무하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에서 정말로 정교한 전술이 등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표적인 "스타워즈: 새로운 희망" 의 마지막 결전 장면처럼,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는 쌍방간의 장군멍군을 보여주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처음에는 난쟁이 부대가 공격해 오고, 두번째에는 거인 부대가 공격해 오고, 간신히 막아내고 나니, 질풍처럼 돌격해 오는 미노타우루스 장군의 기갑부대에 밀리고 만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이런식의 분절화는 분석적인 느낌을 드러나게 해서 괜히 좀 더 전쟁이 지능적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또 반복효과 때문에 싸움이 정말 길고 피곤하게 이어진다는 느낌을 주기에도 좋습니다. 사이사이에 작은 이야기나 대화할 시간을 주기에도 유리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그냥 우르르 떼거리로 몰려가 난잡하게 뒤섞여 싸울 뿐이라서, 정말 전쟁의 느낌이 난다기 보다는, 그냥 패싸움 하는 것처럼 보일 우려가 있습니다.

후반부 들어서 갑자기 피터가 매우 중요한 핵심 인물로 대두되는 것도 문제점입니다. 이야기의 중반까지 주인공으로서 이야기를 끌어온 인물은 루시 였고, 두번째로 중요한 인물은 에드먼드 였습니다. 그런데 어물쩡 별 이유도 없이 "원래 그런거다"를 들먹이면서 주인공을 슬쩍 바꿔버리다보니, 아무래도 인물이 살아나지를 못합니다. 차라리, 아예 일종의 세대 교체를 일으키면서, 중심인물을 피터와 수잔으로 확 바꿔버리면서 분위기를 쇄신하는 것도 한 방법일것입니다. 그렇습니다만, 이 이야기에서는 수잔이 뚜렷한 역할이 있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 비중은 활과 화살이 이 아까울 정도로 줄곧 너무 작습니다. 한편 에드먼드의 비중은 계속 어중간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어색한 면이 많습니다.

틸다 스윈튼은 냉정한 마녀 여왕을 보여주기에 그 대사와 표정은 아주 그럴싸하지만, 그에 비해 과장된 손동작이나 격투 장면에 있어서는 힘이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때문에 꼭 "형사 Duelist"의 주인공들이 펼치는 액션처럼 위태로울 때가 있습니다. 칼질 액션 하나는 동작이 같기도 합니다. 게다가 위엄넘치는 열병식 장면도 없고, 자신의 근엄함을 과시하는 떠받들기 장면도 부족해서 정말 어마어마한 마왕으로 보이기에는 부족하기도 합니다. 눈썹이 너무 없어 보인다는 점을 제외하면, 그냥 살벌하게 무서운 학교 선생님 정도로 보이게 전락할 지도 모릅니다.


(끝없는 겨울)

그러나, 무엇보다 후반부의 문제는 아슬란이 좀 지루한 배역이라는 점입니다. 아슬란은 초특급 근엄 위력 무적 황제에 해당하는데, 처음 등장할 때는 꽤 그럴싸하고 목소리와 말투도 걸맞게 멋있습니다. 그런데, 고작 하는 짓이라고는 사기 비슷한 협상하는 것 한 번과 무슨 군용 셰파트처럼 공격 한 번 하는 정도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왜 대단한지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 없는데다가, 그렇다고 주인공들에게 무슨 깨달음이나 가르침을 직접 전수해 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늦게 등장한 주제에 비중은 굉장히 높습니다. 우리의 주인공들은 아슬란에게 깊고도 진한 연대감을 느끼고 있으며, 이야기의 매우 중요한 반전을 심심하게 이끌고 있기도 합니다. 결말 근처에서 주인공들 중에 한 명이 격변을 겪는 장면은 약간 빠른 듯 하게 과함 없이 힘있게 넘어가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상투적인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열렬한 감정이 잘 살아납니다. 그렇지만, 별로 주인공도 아닌 아슬란과 관련된 장면들은 이유없는 거창함으로 오히려 심각함이 줄어들고 질질끌려 버립니다.

따라서 이 이야기 전체에는 지루한 두 군데의 구멍이 있습니다. 도입부의 묘사가 장황하다는 점과, 아슬란의 이야기가 과하다는 점입니다. 아슬란의 이야기는 여러모로 최소한으로 축약하던가, 아니면 보다 아슬란의 위력이나 영향력을 빛내는 장면이 필요했습니다. 도입부의 경우에는 배경과 인물을 설명하기에 꼭 필요한 면도 있었으니, 흥미로운 연출 방법이나 호소력있는 음악 내지는 즐거운 대사 같은 것들을 섞어 넣어서 좀 지루함을 덜어 줄 필요도 있었을 겁니다.


(아까운 아이템)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은 전체적으로 당당한 환상세계의 존재감과 어린이들의 선함이 잘 살아 있습니다. 그렇지만, 초기에 힘들여 끼워 넣은 2차대전 중 피난간 어린이들이라는 현실감을 끝까지 좀 더 살려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전쟁터에 나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부모가 없는 시골 생활이라는 요소는 마지막 까지 밀접하게 활용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주인공들의 옷차림도 좀 더 오래 처음 옷을 유지했으면 좋았겠다 싶습니다. 결말 장면 이외에는 30, 40년대식 복장을 그대로 입고 활동하게 하는 것이 현실과 환상의 대조를 더 잘 살릴 수도 있거니와, 그저그런 중세 복장에 비해 더 잘 어울리기도 합니다. 독일군의 공습에 시달린 아이들이 마녀와의 전쟁을 앞두고 공군의 중요성에 대해서 역설한다든가, 전시의 빈궁한 물자난에 대한 태도를 나니아에서 벌어지는 모험과 연결시키는 생각 같은 것은 사실 꼭 영화속에 나올것만 같은 장면입니다.

아무래도 원작을 충실하게 보여주겠다는 의식때문에 이야기를 꾸미는데 한계는 있었을 겁니다. 그래도 마녀가 나치스를 연상시키는 의전으로 존재감을 더 살린다든가, 아군과 적군 부장의 성격을 좀 바꾼 후에 패튼 장군이나 구데리안 장군 같은 성격으로 한다든가, 하다못해 좀 더 극단적인 초현실주의 미술의 지형지물 같은 것이 나와도 재미있었을 겁니다.


그 밖에...

원작 시리즈의 한국어 번역 중에서는, "The Voyage of the Dawn Treader" 라는, 스타워즈 식으로 말하면, "나니아 연대기 III: 에피소드 5"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동녘호의 모험"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꽤 오래전부터 가장 널리 퍼진 것인 듯 합니다. 아무래도 종교 계열 출판-구매가 한 몫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나니아 연대기 V: 에피소드 3"에 해당하는 "The Horse and His Boy"도 많이 퍼져 있습니다.

이야기의 규모에 대하여 소박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경쾌함이 있어서 인지, 냉정하게 스스로를 돌아보면, 저는 "해리포터"시리즈나 "반지의 제왕"시리즈보다도 이 영화를 더 재미있게 보고야 말았습니다.

80년대 후반에 영국에서 제작된 어린이용 TV 단막극으로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이 제작된 것이 있습니다. 그 모양새는 "논스톱" 크리스마스 특선 에피소드 정도 입니다.

텀누스의 인물을 떠올리는 것을 출발점으로 루이스 선생은 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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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FAZZ 2006/06/04 23:42 # 답글

    언제나 깊이 있는 영화 해설을 잘 보고 있습니다. 뒤늦게 링크 신고 드립니다.
  • 스푸키멜로우 2006/06/05 18:14 # 삭제 답글

    에드먼드의 비중이 영화내에서 정말 애매모호하게 설정된게 상당히 눈에 거슬리더군요;;; 제가 느낀 영화의 문제점과 비슷하게 느끼신것 같은;;;
  • 게렉터 2006/06/05 18:51 # 답글

    FAZZ/ 항상 좀 글이 장황해지곤해서 간결하게 쓰려고 노력중입니다. 감사합니다.

    스푸키멜로우/ 그러면서 루시와 피터의 비중은 또 출렁출렁 왔다갔다 합니다.
  • shuha 2008/02/19 15:34 # 삭제 답글

    그러면서도 홍보는 마치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급으로 해놔서..; 뭔가 오오 위대한 판타지 바이블 인가 하고 봤다가;

    ...결국 월트 디즈니 식인가 하고 실망했던 기억이..
  • violet 2008/03/10 16:51 # 삭제 답글

    저는 그 종교계열 출판사에서 나온 책으로 나니아 연대기의 반을 읽은 게 되는군요
    사자와 마녀와 옷장은 대체 어디서 나온건지 기억이 안나는 판으로 읽었고
    그리고 집에 마법사의 조카(이게 권수는 2권인데 내용은 나니아창세기), 동녁호의 모험, 카스피안 왕자가 있는걸로 기억됩니다 원제는....모릅니다;;;;;;;;;;;;;;;
    이 종교계열 출판사에서는 마지막권까지 다 냈던걸로 알고 있습니다.
  • 게렉터 2008/03/14 23:23 # 답글

    shuha/ 홍보가 약간 속임수 스러운 면이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violet/ 저 역시 성당에 놓여 있던 책을 한 번 들춰 본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저는 동녁호의 모험을 제일 먼저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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