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썸"은 사건사고가 계속 이어지는 긴 하루의 이야기를 다룬 범죄물입니다. 암흑조직을 우연히 마주치게 된 여자주인공이 등장하는 새벽부터 이야기는 시작되어, 결국 사건이 마무리되는 깊은 밤으로 끝나는 영화입니다. 서울시내에서 촬영된 이 영화는 자동차와 도로, 빌딩과 지하주차장이 가득한 도시의 모습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마약 밀매범을 상대하는 이야기를 다루는 "썸"은 블록버스터 액션스러운 파괴적인 속도감을 다루고 있기 보다는, "환상특급"스러운 기묘한 분위기가 은근히 흐르는 조용한 느와르 영화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습니다. 그러한 이야기의 흐름을 위해서, 오늘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일을 예언처럼 떠올릴 수 있는 초능력을 여자주인공에게 주었습니다.


(고수)

"썸"이 그럴듯해 보이는 중심에는 범죄의 실체를 서서히 추적해가는 과정이 단계적으로 잘 드러난다는 점이 있습니다. 적지 않은 형사물이나 범죄물이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그냥 이런저런 경우에 따라 액션이나 농담만 펼치다가, 마지막에 갑자기 후다닥 진상을 보여주며, 막판 격투 한 번 하고 슬쩍 끝을 맺곤 합니다.

그에 비하면, "썸"은 처음에는 오리무중이던 사건이 점차 그 모습을 드러내고 범인과 음모의 실체를 보여주는 발전과정이 차근차근 잘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 실체라는 것이 충격적인 반전이라고 하기에는 그렇게 의외성이 강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하나 둘 밝혀지는 사건의 내용들이, 한 시간 두 시간 흘러가는 하루의 시간 흐름과 연결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긴 하루를 다루는 이 영화의 형태와 사건 전개가 잘 어울려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 둘 드러나는 사건들은 덜 심심한 화면 구성으로 제시되고 있어서 이야기의 내용보다 조금 더 보는 재미를 주고 있기도 합니다. 여자 주인공은 교통방송의 아나운서인데, 때문에 도시의 교통흐름을 구석구석 CCTV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런 모습이 도시를 오고가며 범죄를 조사하는 형사와 관계를 맺게 되면서 자동차와 고층빌딩으로 이뤄진 도시의 심상을 부각하고 다양한 각도의 화면을 보여줄 수 있게 됩니다. 비가 내리고 날씨가 개이는 환경 변화를 묘사하는데도 좀 더 입체감을 줄 수 있습니다.


(송지효)

그러나 이 영화에는 사건의 반전에 격정적인 면이 없고, 여자주인공의 초능력도 "12 몽키스" 같은 영화에 비하면 그 초자연적인 장엄함이 부족합니다. 디지털 사진을 주요한 증거로 다루면서 "원본"에 집착하는 점도 좀 껄끄럽습니다. 그래서 이야기가 별로 화려하지 않다는 점도 문제거리입니다. 하지만 좀 더 눈에 뜨이는 문제점은 주인공들의 연기입니다.

고수와 송지효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존재감 부족한 진부한 장면들이 꽤 많아서 아무래도 두 사람의 실력으로는 미치지 못하는 면이 있습니다. 피곤한 모습으로 나가려는 남자주인공을 불러세워 뒤돌아보면, 주인공의 동료가 "조심하게"류의 대사를 읊는 장면이라든가, 터프가이 주인공이 관료제 조직의 상관에게 이상한 놈으로 찍혀 있는 모습, 조직 폭력배 - 비행 청소년의 계급구도 같은 것들은 그 예입니다. 주인공 형사의 성은 "강"씨 입니다. 실제로 그런 소재를 다룬다기 보다는, 그런 영화를 흉내내는 모양에 머물기 때문에 아무래도 배우들의 연기지도가 가짜 같은 한계에 머무는 것입니다.

멋진 덩치 형사 조연처럼 그런 한계를 초월하는 배우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여자주인공은 그 부실함이 더 심합니다. 성의 없는 TV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데로, 여자 주인공은 서른 두살 정도쯤으로 아파트를 꾸미고 살면서, 남자주인공 앞에서 매력을 보일 때는 열 두살 정도쯤의 말투를 사용합니다. 상대방을 부를 때 "당신"이라고 칭하는 현실감의 파격을 갖고 있으면서, 직업은 또 차분한 표준어를 읊는 아나운서라서 여러모로 설켜 있는 이상한 점이 많습니다. 그래서 송지효가 격한 감정을 표출해야 할 때는 심하게 어색해지곤 합니다.


(고수)

나아가 이 때문에 소재의 활용이 제한된 면도 있습니다. 여자주인공은 항상 지나가는 떠돌이 고양이 사진을 찍기 시작하고 플래시몹 동호회 활동을 하는 사람이고, 이 두 가지 특징은 영화의 중요한 소재로 활용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소재들은 꽤 특이한 것으로 영화에서 설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자주인공의 성격을 드러내는데는 아무런 연관이 없이 반쪽만 사용되고 있습니다. 꼭 화가는 관찰력이 예리하고, 미국인은 유머감각이 풍부한 것으로 설정될 필요는 없지만, 너무 동떨어진 사건진행용으로만 나뒹구는 점은 현실감을 떨어뜨립니다.

그렇지만, "더 게임", "퍼펙트 머더" 같은 분위기의 현대적인 도시 감각이 슬쩍 고딕적이고 외로운 범죄이야기와 연결되는 그 모습을, 이 영화는 잘 살리고 있습니다. 빠른 타악기 소리는 좀 부족하긴 해도 음악도 대부분 잘 들어맞고 있습니다. 마약 범죄라는 사건 자체도, 이야기의 가라앉은 분위기를 흐리지 않는 범위 안에서도 요소요소 잘 활용되고 있고 환상적인 느낌도 호기심을 살리도록 잘 연결되어 있습니다. 중반부의 차근차근 펼쳐진 이야기 전개와 이런 장점들이 섞여 있기 때문에 후반부의 도주-추적은 그 긴장감이 흥겹게 잘 살아 있습니다.


(송지효)

이 모든 것이 비 오기 전과 비 온 후의 서울 정경과 어울려 있기 때문에 충분히 보기 좋은 화면이 됩니다. 덕분에 이 영화는 공포영화도 아니고, 잔인한 장면이나 과도한 폭력장면이 거의 없지만, 은근슬쩍 도시괴담스러운 신비로운 분위기가 나름대로의 형태로 개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 밖에...

"썸"은 뭡니까?

별로 액션 장면에 무게가 실려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만, 액션 장면들이 무리없이 만들어져 있으면서도 별 재미가 없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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