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느냐 죽느냐(1983) To Be Or Not To Be 영화

멜 브룩스와 앤 밴크로프트가 나오는 1983년 작 "사느냐 죽느냐"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2년에 나온 "사느냐 죽느냐"의 리메이크 영화입니다. 배경은 막 폴란드를 나치 독일이 점령한 때로, 30년대식 쇼 극단을 운영하고 있던 극장주이자 배우인 주인공 부부가 한 폴란드군 조종사를 도와 나치 비밀경찰과 스파이 활동을 벌인다는 내용입니다. "사운드 오브 뮤직" 비슷한 상황에 놓인 탈출이야기도 뒤따릅니다. 물론 나치스 시절을 배경으로한 코메디의 단골 소재인 군복 바꿔 입고 주인공도 독일군 고위장교인척 하기 장면이 중요하게 활용됩니다.


(변장을 하고 독일군 소굴로)

"사느냐 죽느냐"는 60년대 이후에 제작된 전시 유럽 코메디 중에 가장 멋드러진 영화 중 하나인, "파리 대탈출(Grande vadrouille, Don't Look Now We've Been Shoot At, 지붕위의 병사들)"과 비슷한 분위기도 풍깁니다. 특히 멜 브룩스가 연기하는 극장주는 "파리 대탈출"에서 심심하면 "막간 휴식"을 외치던 지휘자와 인물의 성격이나 코메디 연기의 방식까지 꽤 닮았습니다. 공수작전으로 투입되는 특공대, 비행기 탈출과 같은 소재도 비슷해 보기도하고, 프랑스 레지스탕스 못지 않게 대전시의 레지스탕스 조직으로 존재감이 높았던 폴란드 레지스탕스를 이야기 전개에 도입한 것도 일치하는 점이 있습니다. 암담한 시대상황을 배경으로 더욱 전복적이고 낙천적인 찰리 채플린류의 코메디 주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도 비슷합니다.

"사느냐 죽느냐"는 그런 탓에 이야기가 꽤 고전적인 데가 있습니다. 멜 브룩스는 스스로 감독한 꽤 많은 영화에서, 극적 현실 자체의 속성을 웃음으로 사용하는 패러디 요소를 자주 써먹었습니다. 예를 들면 하늘을 나는 슈퍼맨에게 악당이 접근해서 슈퍼맨에 연결되어 있는 피아노줄을 끊어버리면 슈퍼맨은 나는 능력을 잃고 추락하는 장면 같은 것 말입니다.

그런데 영화, "사느냐 죽느냐"에는 그런 장면들이 적은 편입니다. 영화 도입부와 전개 잠깐 잠깐을 제외하면 패러디 요소는 거의 없는 듯 적습니다. 코메디들은 대체로 대사의 재치를 이용한 상황극 같은 것들이 많고, 갈등이 시작되고, 커지고, 결말로 이어지는 구도도 전통적입니다. 소위 화장실 코메디라는 것의 단초를 제공해 주었다고 할만한 멜 브룩스의 자유분방한 소재투입 수법도 자제된 편입니다.


(햄릿의 바로 그 장면.)

하지만, "사느냐 죽느냐"는 이야기 자체에 흥미로운 구성과 충실한 갈등국면이 있어서 어느 정도의 흡인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원작 "사느냐 죽느냐"의 재미난 요소가 그대로 반영된 결과입니다.

우선 독일 군복을 입고 독일군 장교인냥 행세한다는 자체가 언제나 꽤나 긴장되는 장면을 만들어내기 좋은 소재입니다. 이런 장면은 주인공의 태연자약함이나 어이없는 웃음을 유발하는 베짱을 보여주기에도 괜찮은 발단이 됩니다. 그래서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 그렇게 끝도 없이 악당행세하는 본드가 등장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자신?연기력을 이용해 아슬아슬한 첩보전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아내의 불륜에 대해 깨닫고 방황하는 복합적인 고민에 빠집니다. 배신감을 느끼는 골치아픈 상황에서, 생명의 위협을 겪기도 하고, 연기를 중요한 도구로 활용도 해야 합니다. 이런 상황은 햄릿과 제목인 "사느냐 죽느냐"와도 잘 어울리며, 이야기를 점점 고민스러운 꼬인 구도로 몰고가는데 좋은 도구가 됩니다. 여기에다 브로드웨이, 라스베가스의 미국쇼 문화에 대한 애착이 많은 보다 멜 브룩스 스러운 공연, 극장 연출들은 원작과는 색다른 화려하고 발랄한 맛을 더하는 면도 있습니다.


(Show must go on!)

한편, 이 영화에는 의외로 좀 진지한 나치즘 비판 장면이 꽤 들어가 있는 편이기도 합니다. 나치스가 탄압한 소수 집단들이 조목조목 지적되어 있는데다가, 멜 브룩스 감독의 첫 히트작인 "프로듀서스"가 떠오를 수 밖에 없는 히틀러 풍자 코메디도 선명하게 박혀 있습니다. 이중에는 정통파 "감동적인 연설"로 불의를 꾸짖는 장면같은 아주 노골적이고 상투적인 장면도 있고, 어떤 장면들은 가끔 가벼운 코메디 영화 분위기가 압도적일 수 밖에 없는 영화에 약간씩 걸림돌이 되는 듯한 면도 없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중에서도 "유태인 할머니의 최대 위기를 구해내는 피에로" 장면처럼 재치와 풍자가 꽤 그럴듯하게 섞여 있는 장면도 있어서 그럭저럭 무난한 선전효과를 갖추고 있습니다.

폭발적인 코메디 장면이 부족해서 그렇지, 코메디 연기를 잘 펼치면서도 "로빈슨 부인"스러운 18세기 귀족부인 같은 20세기 초의 부유한 중년여성을 잘 연기한 앤 밴크로프트는 뛰어납니다. 그리고 멜 브룩스의 코메디 연기는 자신의 한계안에서 잘 살아 있는 편입니다.


(나치 풍자 코메디)

전체적으로 따져보면, 40,50년대 뮤지컬 영화스러운 쇼 예찬 분위기가 강화된 것은 원작과 다른 면이 부각되어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덕분에 몇몇장면이 분위기가 어긋났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지나치게 복고적인 느낌이 있는 영화의 내용조직 역시 상대적으로 경쾌했던 원작에 비해 좋아보일 수도 있고 나빠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주인공들의 이름을 제외하면 폴란드와 바르샤바라는 지역적 배경이 거의 살아나지 않는다는 점도 조금은 아쉽습니다.


그 밖에...

앤 밴크로프트와 멜 브룩스는 부부였으며, 앤 밴크로프트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61주년 기념일이기도한, 2005년 6월 6일 홀아비 멜 브룩스를 남겨놓고 사망했습니다.

듀나의 원작 "사느냐 죽느냐" 리뷰 http://djuna.cine21.com/movies/to_be_or_not_to_be.html 가 있습니다.

IMDB Trivia에 따르면, 멜 브룩스 감독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자신의 영화로 꼽았다고 합니다.

정통 멜 브룩스와는 꽤 어긋난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아닌게 아니라 살펴보니 감독이나 각본에 멜 브룩스의 직접참여가 공식적으로 없는 영화입니다.

덧글

  • joyce 2006/07/04 09:59 # 답글

    ㅎㅎ 안나 브론스키라는 이름부터가 웃겼던.
  • 게렉터 2006/07/05 10:42 # 삭제 답글

    사운댐 이었던가 하는 이름도 재미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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