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 리턴즈 Superman Returns 영화

"슈퍼맨 리턴즈"는 초반에는 별로 그런것 같지 않다가 갈수록 점점 종교적이고 신화적인 특성을 화끈하게 드러내는 영화라는 면에서 옛 "슈퍼맨" 시리즈와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슈퍼맨"의 존재자체가 그런 요소가 언뜻 있는 소재인데다가, 이 영화에서는 하늘 위에 올라가 모든 인간들의 소리와 모습을 다 관찰하는 모습이나, 묵시록적인 날씨를 보여주는 모습이 대놓고 등장합니다.

희생하고 되돌아오는 이야기구조나 막판의 팔동작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구원자니 인류에게 필요한가 하지 않은가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들먹이는 것도 전통적인 방식입니다. 태고의 대륙과 신화적인 공간에서 선과 악이 대결하는 장면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 "너희들 중 죄 없는 자 돌로 치라"에 해당할만한 인물도 한 명 등장합니다.



물론 옛 "슈퍼맨"도 결코 이런 소재를 써먹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마다 호오가 엇갈리기는 합니다만, 대표적인 장면으로 여러 사람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Can you read my mind?" 장면도 있고, 요소요소에 여러가지로 이런 생각할 거리들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옛날 "슈퍼맨"에서는 이런 점들이 대체로 은근히 주변적인 요소로 머물게 한 면이 있는데다가, 중심 줄거리를 신화로 잡아내기보다는 반어와 역설의 재미를 떠올릴 수도 있게하는 문제제기로 틈틈히 끼워 넣었습니다.

덕분에 마리오 푸조 선생 등등이 만들어낸 옛 "슈퍼맨"의 이야기는 이런 철학적, 종교적이고 존재론적인 이야기들이 슬며시 들어가 있으면서도 일견 환상적인 감흥을 주는 맛이 있습니다. 이런 점들은 전체적으로 만화 주인공이 나오는 만화 같은 이야기로 항상 유머감각과 낙천성이 가득한 이야기라는 중심 성격을 꿋꿋이 유지하면서 잘 베어들어가 있기 때문에 더 자연스럽게 와닿는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슈퍼맨 리턴즈"는 이런 옛날 영화의 장점을 포기하고 보다 신성한 이야기로 만든 것 때문에 두가지 정도의 불리한 점을 갖게 되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판타스틱4"나 "인크레더블스" 같은 이야기들의 틈바구니에서 "무슨무슨-맨"류 영화의 정통으로서 뭔가를 보여줘야 겠다는 생각이 너무 앞선 결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첫번째 불리한 점은 매트로폴리스라는 도시를 다루는 묘미가 확 죽어버렸다는 점입니다. 슈퍼맨의 활동 무대는 매트로폴리스였습니다. 그리고 매트로폴리스는 뉴욕의 독특한 특징을 극단적으로 형상화한 곳이고, "뉴욕 타임즈"에 해당하는 "데일리 플래닛"이라는 신문사가 중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고층 빌딩 옥상의 공중 정원, 헬리콥터로 이동하는 사업가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붐비며 오가는가 하면, 고딕적인 중후함속에 현대적인 패션 감각이 담겨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슈퍼맨 리턴즈"는 대부분의 사건이 매트로폴리스와는 별 상관 없이 일어납니다. 아주 긴 시간을 차지하는 최후의 대결은 이런 매트로폴리스와는 정반대의 장소에서 벌어질 뿐입니다. "Can you read my mind?" 장면을 그냥 반복하고 있는 로이스와 슈퍼맨의 만남 장면도 매트로폴리스를 화려하게 활용한 옛 장면에 비하면 그냥 인구 밀집 지역으로서의 의미 정도로만 이용되고 있을 뿐입니다. 도시를 이용한다고 볼 수 있는 몇몇 재난 장면들도 매트로폴리스의 특징보다는 일반적인 도시의 특징에 머물 뿐이고, 신문사 구조물과 관련된 장면 정도만 어느 정도 매트로폴리스 느낌이 날 뿐입니다.



두번째 불리한 점은 역시나 클라크의 비중이 매우 적다는 것입니다. 슈퍼맨 이야기의 아주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클라크는 로이스를 좋아하고 로이스도 클라크를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로이스는 슈퍼맨에게 완전히 빠져 있어서 클라크를 진지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기묘한 상황입니다. 이 상황은 다양한 유머와 긴장의 소재가 될 수도 있고, 갈등의 소재는 물론이요 가끔 정체성 문제나 자의식에 관한 문제로까지 확대될 수 있을 정도 입니다.

이 좋은 이야기 거리를 "슈퍼맨 리턴즈"는 거의 활용하지 않습니다. 짧은 농담 두 번 정도에 잠깐 써먹고, 도입부에 그냥 "슈퍼맨이 돌아온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써먹을 뿐이지 중반이후의 본격적인 이야기에서는 완전히 무시됩니다. 후반으로 넘어가면 클라크라는 인물은 있었는지 기억도 잘 안날정도로 위치가 미약해 집니다. 덕분에 원초적인 흥미를 자아낼 수 있는 "짝사랑하던 상대를 뒤늦게 만나 그 자식을 보게된다" 같은 설정도 가볍게 활용되고 맙니다.

꽤 인기있는 편이었던 슈퍼맨 TV쇼인 "슈퍼맨(Lois and Clark)"은 클라크의 비중이 매우 높았고, 이를 잘 이용해서 재미난 이야기를 많이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 쇼에서는 로이스 레인이 너무 바보스러워지긴 했지만 그것이 또 테리 해처의 코메디 연기와는 잘 들어맞아서 잃는 점 보다는 얻는 점이 많았습니다. 이런 예들을 생각해 보면, "슈퍼맨 리턴즈"는 대조적인 경우라 할만합니다.

게다가 또다른 점도 있습니다. 세상에 아무래도 빨강 파랑 스판덱스 유니폼을 있고 시민의 영웅이라고 한다거나, 왼쪽 눈꺼풀위에 빨강색 발광 다이오드하나 붙이고 미래에서 온 로봇이라고 하는 것은 배우에게 쉬운일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크리스토퍼 리브나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를 능가하기는 정말 정말 어렵습니다. 브랜단 루스는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역시나 슈퍼맨에서는 많은 부분 "딱 그 슈퍼맨"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클라크의 모습은 미남인 얼굴과 순박함을 잘 조화시킬 수 있어서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데, 이 부분을 놓쳤다고 할 수도 있는 겁니다.

기술적으로도 영화는 완벽함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영웅을 묘사하기 위해 야구장을 활용하는 수법이나 다른 아이디어 장면 서넛은 꽤 재미있는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몇몇 "매트릭스"의 아이디어를 그대로 활용하는 장면들은 원조가 아류를 따라하는 듯한 어색함이 느껴집니다. VGA카드 데모 내지는 화면보호기 같은 시작 장면을 비롯하여, 컴퓨터 그래픽이 남용된 장면들도, 중후하게 신화적인 이야기와 별로 어울리지도 않고 고전적인 면이 강한 슈퍼맨이라는 소재와도 잘 안 어울립니다. 대형영화의 묘미를 화려하게 보여준 거대한 옛 "슈퍼맨"의 화면이 그리워지기 쉽습니다.



음악도 아까운 부분입니다. 존 윌리엄스 전성기의 음악들은 서로서로 파벌을 나누었던 말러, 바그너, 브람스 등등이 한 입으로 멋진 후학이라며 칭찬할만한 명곡들입니다. 그 중 한곡으로 부족함이 없는 "슈퍼맨"의 주제곡이 그다지 멋지게 쓰이지 않았습니다. "미션임파서블3"만큼 좋은 주제곡을 거의 활용조차 하지 않은 것보다는 훨씬 좋은 수준입니다만 여전히 부족합니다.

특히나, 인물들을 위기로 몰아넣었다가 끌어내기 위해, 이야기 꾸며낼 방법이 잘 안떠오르니까 악당 한 명을 미친듯이 멍청한 짓을 하게 하는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멍청함을 살짝 가리기 위해 무슨 옛날 폼잡기 서부영화에나 나올법한, 안 어울리는 음악으로 대조적인 비장감 조성하기 수법을 사용합니다. 이런식의 수법은 정통파 영웅물인 "슈퍼맨"과 안 어울리기도 하지만, 웅장한 교향곡인 주제곡의 무게를 떨어뜨리기도 합니다.

비슷하게, 빗물 튀기면서 주인공이 느리게 얻어맞는 장면 많이 보여주면 슬프고 처절한 장면이 될거라고 안이하게 생각하는 점은 갑자기 90년대 한국 가요 뮤직비디오의 세계로 렉스 루터와 슈퍼맨이 뛰어든 듯한 생각이 듭니다.

배우들 중에는 렉스 루터를 연기한 케빈 스페이시와 그 직속부하를 연기한 포시가 뛰어납니다. 포시는 전통적인 렉스 루터 직속 부하 인물들을 잘 반복하고 있기에 우선 맡은 배역이 좋고, 배우의 코메디 연기도 훌륭해서 제 몫을 톡톡히 합니다. 케빈 스페이시는 렉스 루터에게 주어진 저품질 대사에 비하면 정말 노련한 솜씨를 보여줍니다. 초장에 "프로메테우스"어쩌고 하는 대사는 정말 조금만 잘못하면 영화 분위기 박살내기 보증수표로 치닫을 대사입니다. 그렇습니다만, 케빈 스페이시는 매끄럽게 악당의 성격을 보여주면서 장면을 연결합니다.

무난한 초능력 영웅 영화에 좀 진지하고 화끈하게 드러나는 종교적인 신화스러움이 있는 것도 해볼만은 한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슈퍼맨 리턴즈"는 그나마 마지막에는 별 개연성도 없는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주제로 흘러가면서 용두사미로 변합니다. 그리고 그 결말이 좀 길게 이어진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판타스틱4"나 "엑스맨"시리즈와 달리 독보적일 수 밖에 없는 "슈퍼맨"이라는 영웅스런 활약상을 그런대로 보여주는 점만은 그래도 꽤 재미있게 상영 시간을 채우고 있습니다.


그 밖에...

아마 작자들은 거의 의도하지 않았겠습니다만, 이래저래 조지 부시 대통령 부자들이 즐겁게 볼만한 영화이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맨 마지막 자막 올라갈 때 나올 수 밖에 없는 그 말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역시 뭐니뭐니해도 땅투기가 돈벌기의 왕도라는 생각이 담겨있기도 하고 비판도 되는 영화입니다.

덧글

  • rumic71 2006/07/05 17:45 # 답글

    아무래도 원작만화 자체에 그런 분위기가 많이 녹아 있으니까 말이죠.
  • 흰짱구 2006/07/05 19:31 # 답글

    VGA카드 데모 내지는 화면보호기 :D 오프닝 보고 깬다라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훌륭한 표현입니다.
  • 오기렌 2006/07/06 09:25 # 답글

    아직 영화를 안 봐서 리뷰는 좀 있다가 읽겠어요! 근데 제일 마지막 멘트가 너무 재밌네요. "역시 뭐니뭐니해도 땅투기가 돈벌기의 왕도라는 생각이 담겨있기도 하고 비판도 되는 영화입니다." 한참 진지하게 설명하셔놓고, 이렇게 맛깔스런 디저트를 안겨주시다니. :-) 마지막 문장때문에 '수'퍼맨 리턴즈가 보고 싶습니다.
  • FAZZ 2006/07/08 11:55 # 답글

    역시 위대했던 원작을 후작들이 뛰어넘기엔 버겨운 요소들이 많은듯 하군요
  • 게렉터 2006/08/06 09:49 # 답글

    rumic71/ 그런데 영화 "슈퍼맨 리턴즈"는 어째 "그런 분위기'만' 넘쳐나는 장면"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흰짱구/ 그 모습들은 배경음악이나 옛 영화들의 추억에 비하면 좀 경박하게까지 느껴집니다.

    오기렌/ '수'퍼맨... 옛 "'슈'퍼맨"의 추억이 워낙에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FAZZ/ 너무 정통파로 나가보려고하다가, 오히려 정말 원작에서 어긋나버린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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