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영화

"괴물"을 보다보면 세 가지 정도의 멋진 점이 쉽게 눈에 들어 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괴물"의 장점은 역시, 한강이라는 공간을 잘 사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강다리)

서울이라는 도시의 특징 중 하나로 굉장히 큰 대도시이면서도 도시 남북을 가로지르는 꽤 큰 강이 있다는 점을 많이들 이야기 합니다. "괴물"은 이런 특징을 잘살리는 편입니다. 고수부지, 한강물, 한강변을 따라 늘어선 빌딩들의 야경과 같은 경치도 잘 보여주고 있고, 그런 것들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잘 사용하는 편입니다. 게다가 한강다리를 영화 속에서 활용하는 방법도 꽤 그럴듯 합니다. 거의 자연을 연상시킬만큼 거대한 인공적인 토목 구조물인 한강다리들은 입체적인 방법으로 활용되었고, 때문에 한강이라는 강의 특징을 대표하기에도 매우 적합한 공간감이 살아 있습니다.

한강다리들은 꽤 긴 다리인 편이지만, 시드니의 하버브릿지나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에 비하면 예술적인 명성보다는 실용적인 기능으로서 와닿는 것들입니다. 그런 까닭에 언급한 다른 다리들보다 오히려 더욱더 실생활에 친숙하고 교통에 미치는 영향도 더 적극적인 아주 일상적인 면이 있습니다. 한강변을 자전거나 조깅으로 달리다보면 누구나 느끼는 것이지만, 이런 일상적인 다리들이 의외로 꽤 놀라울 정도로 거대한 덩치와 높다란 높이를 갖고 버티고 서 있다는 것에 묘한 신기함이 있습니다. 이 다리들이 괴물이 활동하고 싸우는 공간이 되어준다는 것은 마치 "킹콩"이 뉴욕에 와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오르는 듯한 신선한 감동을 줍니다.

물론 서울이라는 도시의 구체성이 부족한 면이라든가 한강이외의 나머지 도시적인 면면이 연결되어서 살아나지 못한 점은 있습니다. 그래서 완벽하게 한강을 활용했다고 하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개성적인 활동을 펼칠 재미를 꾸려나가기에는 "괴물"에 등장한 한강은 충분히 좋은 편입니다. 을지로와 청계로가 연결되는 슬럼스러운 쇠락한 도시골목 바로 옆에 번쩍번쩍한 SK텔레콤 T타워가 자리잡고 있는 대조적인 모습을 활용하는 면도 좋았습니다.

"괴물"의 두번째 장점은 돈을 때려 넣은 결과 나온 부드럽고도 사실감 넘치게 움직이는 우리의 주인공, 괴물입니다.


(괴물, 공격 개시)

괴물의 모양새는 결국 "불가사리" 계통의 비교적 평범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만, 물 바깥으로 나와서 움직일 때 뒤뚱거리면서 움직이고 자빠지기도 하는 불안한 모습을 표현한 것에는 새로운 흥미진진함이 있습니다. 이런 모습들은 괴물이 수중활동만하면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거의 처음으로 강변으로 올라와서 설친 결과, 육지 활동에는 익숙하지 않다는 은근한 사실감마저 강화해 줍니다.

게다가 괴물은 인간의 환경오염으로 인해 태어난 기형생물이고, 영화에 고어장면이 없는 덕택에 괴물이 그렇게 심하게 미워보이지 않게 됩니다. 이런 점들이 합쳐진 결과, 관객은 괴물을 더 좋아할 수 있게 됩니다. "킹콩"이나 "고질라"는 물론이고, 무시무시한 악당으로 괴물이 나오는 "에일리언"이나 "죠스"에 이르기까지, 무릇 괴물영화는 악역인 괴물이 사람들의 인기를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면에서 "괴물"의 괴물도 꽤 잘 자리잡고 있는 편입니다.

"괴물"의 세번째 장점은 수많은 중소형 괴물 영화에서 성공한 바 있는 많은 다른 영화들의 좋은 장면, 그럴듯한 아이디어를 잘 모아 놓았다는 점입니다.

"괴물"은 여기에서 좀 더 도전을 했습니다. 그렇게 아이디어를 모아 놓으면서도, 요즘 괴물 영화들이 불나방처럼 걸려드는 쓸데없는 놀래키기 장면, 이유없이 잔인한 장면의 함정은 일부러 빗겨나가고 있습니다. "괴물"에는 놀래키기 장면이나 잔인한 장면이 거의 없는 편이고, 다른 영화들이 중반이 되도록 괴물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시간을 끌곤 했던 괴수영화의 악습에서도 벗어나 있습니다. 이때문에 다른 영화들의 영향을 받은 장면들이 많으면서도 그렇게 똑같이 따분해 보이지 않습니다.

상하수도 체계를 액션의 배경으로 삼아서, 제작비를 절감하면서도 음습하고 불길한 느낌을 강화하고 동시에 다채로운 미로 액션을 펼칠 수 있께 한 것은 "앨리게이터"가 금새 떠오릅니다. 이런 상하수도 배경은 "레 미제라블" 때부터 내려온 수법으로, 고대 신화의 무용담스러운 동굴 이야기가 지극히 인공적이고 현대적인 도시라는 배경을 오히려 강조하면서 흥미를 자아냅니다. 괴물이 컨테이너 박스를 뒤흔들게 해서 괴물의 크기와 힘을 강조하고 액션의 묘미를 살리는 방법도 아주 전통적인 술수 입니다.

괴물의 모습과 괴물과 싸워 나가는 태도의 발전과정은 "불가사리"나 "에일리언"과 통하는 데가 많고, 괴물의 등장과 함께 벌어지는 한심하고 방해만 되는 공공기관의 작태를 보여주는 모습, 혹은 이로써 관료제와 기계화 사회를 비판하는 방법들 그리고 괴물 출현이라는 상황이 오히려 인간들간의 갈등을 심화하는 면에 상당한 비중을 할애한 점들 등등은 역시 많은 고전 SF영화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한강과 함께 "괴물"의 가장 중요한 개성 중 하나인 허점투성이의 부족한 구석이 많은 소시민들을 싸움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점도 같은 흐름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런 주인공들로 엄청난 괴물과 싸우게 해서 현실감과 몰입감을 강조하면서도 평범한 영웅 액션과 색다른 점들을 많이 살릴 수 있게 됩니다. 이런 것은 "그렘린"이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등의 영화와 같은 전통으로 통한다 할만 합니다.

"괴물"에는 이렇게 많은 영화들의 좋은 점들이 뒤섞여 핵심만 잘 연결되어 있는 덕에, 처음부터 끝까지 줄기차게 새로운 사건들이 이어지며 흥미진진한 속도감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속도감 덕분에 "괴물"외의 인간관계와 사회적인 면을 매우 많이 다루고 있으면서도 결코 괴물의 액션과 괴물과의 대결이 부족함이 없습니다. "괴물"은 괴물이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활약하는 영화인 것입니다.

하지만, 또 이렇게 중소형 괴물 영화들의 재치들을 모아놓은 듯한 구성은 당연히 어쩔 수 없는 부작용도 있습니다. 단번에 드러나는 것은 전형적인 편견으로 휘감긴 인물 몇 명 입니다. 다른 영화들에서 많이 사용한 아이디어들을 사용하다보니까, 진부하고 뻔한 별로 좋지 못한 인물 만들기 역시 같이 사용될 수 밖에 없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도입부에 처음 등장하는 상관이나, 후반부에 생검을 지시하는 전문가 같은 이들은 대표적입니다. 이들은 과학기술자를 비아냥거리는 왜곡, 외국인 혐오증, 인종에 대한 고정관념의 3박자가 화음을 이루며 마치 금속활자로 찍어낸듯 그대로 박혀 있습니다. 막판에 등장하는 노숙자 인물도 나쁜 예입니다. 이런 인물은 헐리우드 활극에서 흔히, 지나가는 흑인1 혹은 지나가는 양아치스런 흑인2 등이 주로 맡았던 인물입니다. "괴물"에서도 가난한 소수자에 대한 동질성 없는 인식이 역설적인 영웅만들기로 극화되어 있습니다.


(엽총 추격전)

또다른 부작용은 중저예산 영화스러운 아이디어가 잘 정리되어 활용되다보니, 꽤 예산을 들인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화려한 블록버스터스러운 장면은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물론 "쥬라기 공원"처럼 영상 기술상의 경이로움을 주는 영화라든가, "인디펜던스 데이"처럼 가상역사스러운 거대함이 중심이 되는 영화와 "괴물"은 방향이 많이 다릅니다.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정통 물량공세 영화와도 "괴물"은 아주 다를 것입니다. 그렇지만, 괴물과의 마지막 대결은 박해일의 인물이 사용하는 무기의 독특함을 제외하면 "카르노사우르" 수준보다 조금 나은 정도에 머뭅니다. 오히려 중반의 엽총 추격전이 더욱 그럴듯합니다.

그리하여, 군중들이나 경찰, 군병력들 역시 좀 재미 없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모터보트가 한강을 뒤덮으며 약을 살포하는 장면은 꽤 보기 좋습니다만, 반대로 군중 장면에서 단역 배우들의 연기나 대사들이 약간 어색한 부분도 꽤 있습니다. 배두나의 인물이 한강다리에 매달린 좁은 통로를 뛰어다니는 느낌은 가히 왕년의 시고니 위버와 맞먹을 정도로 운치가 있습니다만, 이런 장면들도 액션의 이야기 속에서 힘있게 사용되지 못하고, 그냥 자료화면 정도의 가치에 머문다는 점도 같은 문제 입니다. 마지막 장면의 매캐한 연기나 군대가 사용하는 첨단 무기는 좀 우스꽝스럽게 생겼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살인의 추억"은 모두가 결말을 알고 있는 실화 소재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종말론적인 무게감을 보여주는 마지막장면이 있습니다. 이를 생각해보면, "괴물"의 마지막 장면은 군대, 경찰, 시위대, 장갑차, 하늘을 가리는 연기까지 동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파국이라기보다는, "후래시맨"이 레인보우 벌칸을 사용하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이런 단점들을 넘어서는 것은 역시나 영화전체에 깔려 있는 희비극적인 인간사회에 대한 지적들과 이것을 보여주는 주인공 배우들의 연기입니다.


(변희봉)

"괴물"이 펼치는 사회에 대한 성찰은 구체적인 현실이나 특정한 시사적인 사건을 비판하고 있다기 보다는, 인간 군상들의 보편적인 모습이나 현대사회의 일반적인 여러 측면들입니다. 이런 것들은 웃음으로 시선을 사로잡고, 그 상태에서 슬픔이나 경멸의 감정을 담아내서 독특한 재미를 줍니다. 일부는 "원효대교"처럼 좀 실없이 헛웃음이 끼어들어 약간 엇박자처럼 보이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고편에서도 나온 난장판이 되는 합동분향소 장면 같은 것은 무척 그럴듯해 보이고 날카로운 면마저 느껴집니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구체적인 지적은 미군의 대 이라크 전략 정도인데, 이것 역시 비중이 크지 않게 조절되어 있습니다. 물론 괴물의 탄생과정과 괴물의 활동이 사회갈등의 양상을 은근히 비춰낸다고 생각할 여지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말 그대로 그다지 큰 꺾임이 없는 은근함일 뿐입니다. 오히려, 마지막 에필로그 장면 같은 것이 영화 분위기에 비해 뜬금없이 너무 교훈적이고 모범스러운 도덕적인 분위기라서 약간 안어울린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송강호와 배두나는 배우들이 자기 주특기를 펼칠 수 있는 역할로 기용되어서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정말로 잘 해내고 있습니다. 송강호는 더할 나위 없이 배역 그 자체에 녹아 있습니다. 액션과 희극이 빠른 속도로 교차되는 이 영화에서, 가족에 대한 애정은 가끔 눈물을 자아낼 정도로 뚜렷해 집니다. 그러면서도 "갑자기 후반부에 여자 주인공이 병석에 드러눕는 코메디 영화"들에 비하면 억지스런 영화의 위선이라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습니다. 이런 절묘한 균형 감각에는 송강호의 연기가 세운 공이 클 것입니다. 가족 때문에 감정을 추스리지 못해 말을 잘 잇지 못하는 송강호의 연기는 단박에 감정을 화면 밖으로 통하게 해 줍니다.

배두나는 배역의 설정 자체가 우선 좋습니다. 수없이 액션 영화의 영웅이 된, "고등학교 미식축구팀의 쿼터백"들에 비하면, 경기 방식에 있어서 자기 개성이 뚜렷한 양궁선수라는 설정은 여러모로 흥미로운 데가 많습니다. 그에 비해 활약의 비중이나 배역의 대사는 적은 편이라서 좀 아깝기도 합니다. 그래도, 체육복으로 갈아 입고 바쁘게 움직일 때의 짤막짤막한 몇몇 장면만으로 배두나는 혼자만 드러나지 않는데도, 무척 매력적인 아름다움을 내뿜고 있습니다.


(배두나)

아역배우들은 대단한 솜씨는 아닙니다만, 맡겨진 역할을 충분히 잘 소화하고 있습니다. 한편, 변희봉은 특별히 자신의 주특기를 살린다기보다는, 연기의 기본실력으로 배역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변희봉의 이런 연기가 영화의 감정과 이야기를 송강호와 함께 휘두를 정도입니다. 변희봉은 여러모로 부족한데가 많은 일상적인 인물이면서도, 영화 안에서는 가장 영웅적인 모습에 가깝게 설정되어 있는데, 그 두 요소를 잘 섞어 표현하고 있습니다.

영화가 중저예산 괴물 영화의 멋과 향취가 잘 조립되어 있는데 비하면, 화려한 대형 영화의 힘이 "괴물"에는 부족합니다. 물론 초반 괴물의 등장 장면만은 도시를 휘젓는 괴수 영화의 파괴감이 즐겁습니다. 하지만 유일한 이 장면에서 효과음과 배경음악이 무척 답답합니다. 중반이후의 배경음악이 깔끔했던 것에 비하면 이런 부족한 점들은 영화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반면에 이런저런 다른 영화들을 조립한 듯한, 다양한 비판, 성찰과 발빠르게 이어지는 액션들이 여러가지 복선, 반복되는 심상들의 배치로 정교한 짜임새를 갖고 있다는 점은 영화 전체에 퍼져 있는 또다른 중요한 장점일 것입니다.


그 밖에...

괴물을 표현할 때의 원근감, 물에 들어오고 나갈 때의 효과, 마지막 공격을 받은 괴물 묘사 등등에는 시각 효과상의 헛점이 보이기도 합니다.

오달수가 연기한 괴물의 소리는 괜찮은 편입니다만, 괴물의 독특한 생활 배경을 담아내기에는 너무 보편적인 괴물 소리 였습니다. 황소개구리 소리 비슷한 양서류 같은 조용함과 끈적한 굵직함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핑백

덧글

  • FAZZ 2006/08/06 20:28 # 답글

    간만에 포스팅을 쓰셨군요.
    여론의 호들갑에서 벗어나 차분하게 하나하나 분석한 글 잘봤습니다.
    비록 아쉬운 점은 꽤 보였지만 우리나라에서 정형화 된 패턴을 벗어난 시나리오의 확장면에서는 정말 박수쳐주고 싶은 작품이었습니다.
  • 게렉터 2006/08/07 12:06 # 답글

    이 영화를 우리나라 영화제작 환경의 한계나, 봉준호 감독의 경력 같은 점을 고려하면서 살펴본다면, 또다른 형태로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고려에서 서로 시각이 들라서 많은 평들이 엇갈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김향숙 2007/04/03 15:53 # 삭제 답글

    멋지다
  • 게렉터 2007/04/04 12:08 # 답글

    멋질 수 밖에 없습니다?
  • 유진서 2008/02/08 17:51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엣날에영화가무지무지재미션어요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