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 홍련 영화

"장화, 홍련"은 비교적 흔한 방식의 반전을 갖고 있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반전에 꽤 많은 비중을 싣고 있는 영화입니다. 고전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장화, 홍련"이 나온지 얼마 안되어 개봉한 존 큐삭이 나온 영화만해도 "장화, 홍련"과 공교롭게도 같은 방식의 반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장화, 홍련"의 반전은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고, 또 그만큼 많은 영화들에서 보아온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러면서도 "장화, 홍련"은 반전의 비중을 줄이지 않았습니다. 줄이기는 커녕 반전을 적극적으로 잘 활용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이것은 "장화, 홍련"의 이야기가 재미있어지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됩니다.


(임수정, 문근영)

몇몇 영화들은 뻔한 반전을 대단한 것인양 감추다가 마지막에 "이럴 줄은 몰랐지? 놀랐지? 대단하지?"라고 드러냅니다. 그리고 아주 아주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었다고 착각을 하면서, 아깝게도 제작투자자들의 주머니를 털어 먹어 버립니다. 문제는 거기에 있습니다. 반전 자체의 아이디어가 정말로 참신하고, 반전 하나만으로 이야기를 완결한만한 단편의 구조가 아니라면, 그렇게 반전의 비중을 가볍게 줄여서는 안됩니다. 반전은 "페이스"나 "MBC베스트극장:토끼의 아리아"처럼 마지막에 잠깐 나와서 자기 일을 다했다고 사라져서는 제 힘을 못씁니다. 많은 경우, 반전은 그 반전의 영향이 영화전체에 퍼지고, 그 급격한 반전의 힘으로 영화의 모든 인물과 사건, 배경이 휘둘리도록 큰 덩치로 자리잡아야 합니다.

반전은 말그대로 급격한 국면의 전환이며, 이것은 이야기의 향방에 대단한 변화를 일으킵니다. 그런만큼, 반전이 아니면 설명될 수 없는 수많은 기이한 일, 수수께끼 같은 일들이 영화에 가득가득 들어차야 합니다.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반전은 이야기를 뒤집고 있기 때문에, 그런 뒤집기의 과정에서 등장인물들이 거기에 걸맞는 절절한 감정의 굴곡을 느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인공들은 반전의 존재 때문에, 정상적인 이야기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뒤틀린 감정을 듬뿍 느껴야하고, 그런 감정을 화면 가득 내뿜어야 합니다.

살인사건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고 합시다. 수수께끼가 어려워져만 가던 살인사건은 결국, 죽은 사람을 사랑했던 애인이 살인범이었음을 진상으로 드러냅니다. "이 사람이 살인범일줄은 몰랐지?" 라면서 짧게 마지막에 진상을 설명하기만 한다면, 이 이야기는 2천년전 낙랑공주가 자기 나라를 망하게 하는 이야기보다 더 싱겁고 진부한 반전이 될 뿐입니다.

이 이야기에 필요한 것은, 도대체 사랑하는 사람을 살해하도록 결심하기까지 얼마나 보기 드물게 격심한 감정의 동요를 살인범이 느꼈으며, 그러한 살해 상황에 처하는 피해자는 또한 얼마나 꼬인 감정과 뒤틀린 인생을 살아왔는지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런 이상한 일을 저지르기까지 거기에 수반되는 많은 이상한 영향들을 흥미롭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표현 속에서 이 기구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의 절절한 감정이, 희귀한 경우를 당한 인간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며 가득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상한 일, 어처구니 없는 결론에 이르기 위해서, 그 과정에서 그만큼 이상한 일들과 겪기 어려운 경험을 등장인물들은 겪게 될 것이고, 바로 그런 복잡한 마음이 묘사 될 때, 반전은 제대로 중하게 다루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장화, 홍련"은 언니가 동생을 과보호 하면서 필요 이상의 애착을 갖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녀가 계모에게 이상할 정도로 대등하게 맞서는 모습도 보여줍니다. 현실감과 호기심을 동시에 얻는 이런 정신병적인 내면에 대한 묘사들은, 반전이 내뿜는 이야기 구조를 펼치고 키운 결과가 될 수 있습니다.


(임수정, 문근영)

그런 면에서, "장화, 홍련"은 알프레드 히치콕이 감독한 영화, "현기증"과 통하는 구석이 있습니다. 물론, 반전의 방식만 놓고 보면, 같은 사람이 감독한 영화 중에서 미국 서부 지역을 배경으로한 60년대초 영화가 단연 유사합니다. 하지만, 그 영화는 추적과 공격의 액션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며, 영화 내용 전체에 반전의 무게를 싣고 있지는 않습니다. "현기증"은 반전을 위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기이한 상황, 그리고 반전 때문에 일어난 급격한 이야기의 전환 때문에 꼬인 감정에 휘말려든 사람들을 그리는데 신경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는 등장인물들의 깊고 진한 감정의 동요를 담아내는데 집중합니다.

"장화, 홍련"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현기증"처럼 인물의 감정을 담아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이야기의 전개 방식도 차분한 편입니다. 낭만적이고도 서정적인 호소력이 있는 멋드러진 주제곡이 있다는 점도 두 영화의 주요한 공통점이라고 할만합니다. 이런 요소들을 이용해서, "장화, 홍련"은 바로 이 극적인 반전의 상황에 이르도록 인물들이 얼마나 격정적인 감정을 느껴야만 했으며, 그러한 반전이 일어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뒤틀린 사건과 인간 관계가 생길 수 있는지 조명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반전의 비중이 제대로 실려 있는 것입니다.

단적인 예로, 많은 사람들이 "현기증"에서 전체의 2/3쯤 되는 지점에서 반전을 비교적 빨리 폭로하고 이야기를 꾸려간 것을 특징으로 꼽습니다. "장화, 홍련" 역시, 이야기의 가장 결정적인 속임수가 공개된 뒤에도 30분 정도 더 사연이 진행됩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임수정의 인물이 허겁지겁 자루를 푸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렇게 반전에 무게를 싣고, 반전을 위한 인물들의 감정에 초점을 맞춰온 덕분으로 이 자루 푸는 장면이 가진 감정적인 호소력이 매우 강해집니다. 반전 표현으로 인해 중요한 사실이 관객들에게 제시된 이 순간, 바로 그 사실을 절절하게 이용하는 감정 표현 장면이 덧붙여지면 그만큼 힘이 살아나게 됩니다.


(임수정, 문근영)

"장화, 홍련"은 이렇게 감정 표현에 많은 비중을 할애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또 의외로 이야기 전개가 꽤 빠른 축에 속하는 영화입니다. 일단 실제로 영화가 제시하고 보여주는 사건과 인물의 양이 풍성합니다.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병원에 있는 괴이한 처지의 주인공을 보여주고, 곧 그 주인공의 동생과 동생과의 관계를 제시해 줍니다. 그리고 나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음침한 집을 보여주고, 잠시 후에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계모가 등장합니다.

곧이어 인물들 간의 갈등장면이 리그전처럼 서로 상대를 바꿔가며 하나 둘 제시되고, 곧이어 초자연적인 사건이 하나 둘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이 모든 사건은 전형적이지만 또 그만큼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친숙한 가족관계라는 소재를 이용하는 것이어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궁금증이 사건에 흡인력을 갖게 합니다.

이렇게 풍성하게 전개되는 사건은, 그보다 훨씬 더 풍성한 사건을 조망하는 시각적인 화면 구성 방법으로 구체화 됩니다. 배우들과 배우들을 둘러싼 소품이 30,40년대 일본풍으로 정갈하다는 면도 있고, 다양한 방식으로 화면에 잡힌 경치와 구도의 힘이 좋은 부분도 많습니다. 그러나 더 관객의 흥미를 자극하는 것은 영화 전체에 온갖 방법으로 가득한, 흥미위주의 정신분석학 웹사이트 같은 소재들입니다.

이것은 마치, "현기증"에서 엿보기 방법을 가득 사용해서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추적 장면에 긴장감과 호기심을 불어 넣은 것과 비슷합니다. "장화, 홍련"에는 이제 막, 프로이트나 현대 심리학 소개 기사를 접한 20세기 중반의 독자가 관심을 가질만한 온갖 종류의 변태적인 습성들이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조금씩 발췌되어 다양하게 내용에 끼워져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단지 흥미를 끌 뿐만 아니라, 영화의 내용을 불길하게하고, 불안하고 연약한 느낌을 강화하며 긴장감을 조성합니다.

더군다나, 이제는 상투적인 수법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그러한 거의 상징적인 이상심리들이 이후의 사건을 예고하거나, 충돌장면의 복선이 되어주는 효과도 선명합니다. 예를 들면, 잠옷바람에 맨발로 걸어다니는 문근영을 보는 시선은, 또한, 고풍스런 다림질 잘한 옷을 입고 있는 염정아에 비해 그만큼 이 인물이 연약하다는 점을 알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문근영)

"장화, 홍련"은 도입부에서는 주로 "현기증"이나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같은 수법을 많이 사용합니다. 결백한 화면으로 무슨일이 터져나올 것 같은 대조감을 높이고, 등장인물들의 신경증적인 성격이 뿜어져 나올 은근한 반작용을 조성합니다. 특히 햇살이 환하게 비치는 조용한 대낮 장면을 이용하는 방법은 보통의 공포영화에서는 자주 사용하지 않는 방법으로 이 방법은 의외로 사실주의 수법으로 먼저 활용되어 왔던 것입니다.

멀쩡한 보통 사람들이라면, 사실 평일의 대낮에는 바쁘게 일을 하고 있거나 공부를 하고 있거나, 할 것입니다. 눈부신 태양 아래 빛나는 아름다운 경치 속에 주인공을 밀어 넣고 그 나른한 한낮을 배경으로 움직이게 하면, 이 사람들은 뭔가 그런 일하고 공부하는 일상에서 벗어난 인물이 됩니다. 무슨 사연이나 비밀이 있거나, 일탈하는 사람들이거나, 하다못해 골치아픈 백수 신세이기라도 할 것입니다. 즉 평일 대낮에 혼자서 아름다운 풍경의 한 부분이 되는 사람은 반대로 문제성이 농후한 것입니다. "장화, 홍련"의 초반에 나오는 물에 발을 담근 자매의 모습 같은 것은 이런 수법을 극대화하는 장면이 됩니다.

이야기가 진행되어 나가면, "장화, 홍련"은 "하녀"와 같은 고전의 전통을 잇게 됩니다. 계단으로 분리된 2층집 구조의 집은, 집 자체가 고딕적인 위엄을 갖고 있는 공간으로 가정과 가족에 그 심상을 심어 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상승과 하강의 이미지를 활용하고, 복도와 모서리로 연결된 공간이 인물의 등장과 퇴장을 극적으로 해줄 수 있습니다. "하녀"에서 훌륭하게 활용했던 것과 같이, 이런 배경은 인물들을 효율적으로 단절시키거나 연결시킬 수 있고, 바깥의 일들을 엿듣는다거나,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가고 나가기위해 노력한다는 공간의 특징을 새겨주기에도 좋습니다. 작은 집에 지나지 않지만, 윗층방, 아랫층방, 식당, 거실 등등이 뚜렷한 성격이나 액션의 요소를 지닌 위치가 되어 주는 것입니다.

물론, "하녀"에서 볼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움직이는 보여주기의 강렬함은 "장화, 홍련"에는 없습니다. 액션보다는 감정묘사에 치중하기 때문인 탓으로 그래서 "장화, 홍련"의 몇몇 액션 장면은 배우들의 표정연기가 없었다면 허술해 보일만큼 약한 부분도 없진 않습니다.


(문근영)

공격적인 액션 장면이나, 속도감있는 충격 장면이 거의 없는 데도 불구하고, "장화, 홍련"이 정말로 꽤 무서운 영화라는 점은 결코 간과해서는 안되는 매우 중요한 점입니다.

사실 장화홍련에는 귀신 발끝이라도 나오는 장면이 두어장면 밖에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 장면은 매우 짧습니다. 누군가 흘린 피가 어딘가에 묻어 있는 장면은 좀 나오기는 하지만 잔인한 장면이나 살인 장면은 전혀 없다고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장화, 홍련"은 감정이 고조되는 적절한 순간에 그 귀신들을 등장시켰습니다. 그리고, 귀신 등장의 순간을 살짝 미뤄서, 꼭 귀신이 한 번 나왔다가 들어갈만한 순간에 귀신을 내보내서 정말로 깜짝 놀라게 합니다. 소리로 놀래키기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깜짝 놀라게 하는 효과에만 치중하기 보다는, 적절한 울음소리나 불길한 배경음을 이용하여 귀신이 활약하는 효과를 더욱 높이고 있습니다.

"장화, 홍련"에서는 이렇게 아주 잠깐 귀신이 활동하지만 제대로 조금만 활동하고, 그리고 예기치 못한 곳에서 그 실력발휘를 다하고 있기 때문에 귀신이 나오지 않을 때에도 계속 긴장감이 감돌게 됩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거나, 좀 불길한 분위기가 조성되기만해도, 또 그때처럼 놀랄만한 귀신이 나타나지 않을까 관객이 겁을 먹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효과는 극장에서 상영할 때 더욱 효험이 좋아서, 다합쳐도 몇 분도 되지 않을 귀신 등장 장면으로 영화 전체에 무시무시한 두려움이 감돌게 하는 수를 부릴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실제 귀신 등장 장면을 줄인 덕택에 짧은 귀신 장면을 잘 표현할 수 있도록 제작에 집중할 수 있어서 이득을 본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공포효과가 지속되고 퍼져나가는데는, 공포 장면이 없을 때의 이야기 전개 자체가 시종일관 속도감이 있고, 흥미롭고 기괴한 요소가 지속적으로 개입되기 때문이라는 점이 중요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새장 속의 새에 관한 이야기는 여러가지 상징이나 주장으로 따질 수 있지만, 무엇보다 음산한 분위기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염정아)

이야기의 핵심이 되는 감정표현은 그 표현을 훌륭하게 화면으로 만들어낸 배우들에 의해 목적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의 연기는 설득력이 있습니다. 김갑수는 제 역할을 다하고 있고, 임수정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 외에 정말로 막강한 힘을 보여주는 배우는 문근영과 염정아 입니다.

특히 염정아는 용이 여의주를 얻은 듯 하고, 선동렬이 구원투수를 맡은 듯 합니다. 임수정의 연기도 훌륭하지만, 임수정은 모범적인 주인공이 공포영화의 사연을 맞닥뜨리는 역할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상한 소리가 나는 곳으로 걸어갔다가 튀어나온 에일리언을 만나고, 절대로 열지 말라는 상자를 열고, 뒤에서 터미네이터가 덥쳐오면 열심히 도망가는 역할을 합니다. 그에 비해, 염정아는 스스로 일을 벌이고 분위기를 만듭니다. 대사의 양도 길고 방대합니다. 염정아는 드라큘라 영화의 드라큘라요, 늑대인간 영화의 늑대인간이요, 거대 괴수영화의 고질라입니다.

염정아의 전형적으로 아름다운 얼굴은 자매와 계모 간에 위화감을 조성하는데에도 좋고, 약간의 화장을 곁들여 위선적인 거리감을 보여주는데도 좋습니다. 중반이후로 영화가 진행되고 나면, 염정아의 신경질적인 표정 연기가 빛을 발해 무시무시한 갈등의 원동력이 되고, 초자연적인 요소 없이도 공포감과 공격적인 파괴력을 내뿜는 인물을 표현해 냅니다. 후반부에 주로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염정아의 호리호리한 몸이 연약하고 약해 보여서, 귀신이나 가혹한 운명에 희생당하고 있는 모습을 연기하는데 더없이 적합해 집니다. 이 배우가 눈을 크게 뜨고 어두컴컴한 복도를 걸어서 나타나는 모습은, 바로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나 이토 준지의 만화 등장인물이 그대로 튀어 나와 살아 움직이는 듯 합니다.

문근영 역시 굉장합니다. 현실감 있고 진지한 인물 연기 속에서 주특기인 어리광부리기를 완벽하게 담아냈습니다. 후반부의 소리지르기 같은 과시적인 연기도 풍성한 볼거리입니다만, 초반부의 휘파람불기 장면 같은 것은 몇초간의 짧은 연기로 출연료 값을 다하는 문근영의 힘을 보여 줍니다.

당연히, 이 모든 배우들의 좋은 연기의 바탕은 쓸데없이 장황한 설명이나, 멋있게 보이려는 대사를 남용하지 않고 간결해서 현실적인 대사들에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각본은 침묵과 표정, 화면으로 보여주기로 내용 표현하기에 초점을 맞추며 성공을 거둡니다. 가끔, "정말로 무서운 게 뭔 줄 알아"나, "엄마 부르는 주문" 같은 설교조의 폼잡기 대사에 걸려들 때가 있지만, 이 어려운 부분은 또 배우들이 그럴듯하게 대사를 읊는 활약을 보여주기에 잘 넘어가고 있습니다.


(임수정)

"장화, 홍련"의 귀신은 무서움을 불러 일으키는 데 제 역할을 다 하고 있지만, 영화 전체의 분위기나 이야기와 그렇게 잘 어울리는 설계/모양으로 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활동 방식도 어느 정도 개성이 분명한 이야기의 내용에 비하면, 고전적인 방식으로 튀어 나오기, 손 내밀기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런 점은 관객들을 타격감 있게 무섭게 해야 한다는 보증이 필요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안전한 방법을 사용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약간은 아쉽기도 합니다. 중반까지 이야기의 한 핵심이 되었던 염정아의 인물이 결론부에서는 가만히 있다가 놀라는 표정 한 번 짓고 마는 것도 약간은 아쉬운 점입니다.

이상은 말 그대로 작은 따질 거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장화, 홍련"은 다양한 이상심리와 강렬한 정서를 뒤섞어 내뿜는 가운데, 또 가족애나 죄책감, 미련과 후회에 대한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 내고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한 주제를 차분하고 조용한 아름다운 화면 속에 담아내면서, 가부장제 가족구조나 성장의 격변을 겪는 10대에 대한 시각까지 조금씩 곁들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 환상적인 이야기 속에서 사람에 대해 고민하는 기회를 제공해 주기도 합니다. 영화와 따로 떼어서 듣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음악 역시 다시 한 번 칭찬할만할 것입니다.


그 밖에...

"망할 요소가 수두룩해도 문근영만 나오면 성공한다"의 기원이 되는 영화입니다. "소름" 같은 중간 기착지가 있긴 합니다만, "여고괴담"이 개척한 공포영화의 흥행계보가 흩어질 즈음 해서 "장화, 홍련"은 다시 공포영화의 돈줄을 이어 붙였다고 할만합니다.

비현실적이고, 병약해 보이는 갸냘픈 여배우들이 주인공이 되는 영화이기에, 반대로 중간에 잠깐 등장하는 이승비에게 호감을 느끼는 관객들도 꽤 많은 듯 합니다.

다들 아는 이야기입니다만, 김래원은 "...ing", "어린신부", "사랑한다 말해줘"에서 "장화, 홍련"의 주연 여배우들과 차례로 짝이 되어 등장하는 진기록을 세웠습니다.

원래 기획에서는 전지현이 언니역을 맡고 임수정이 동생역을 맡아서, 좀 더 나이 든 아이들의 이야기를 펼치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만, 전지현이 "영화가 너무 무섭다"면서 역을 거절하는 통에 임수정이 언니가 되고 문근영이 동생 자리에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분위기가 바뀌는 통에 오디션을 본 윤진서는 배역을 얻지 못했고, 배우를 아깝게 여긴 김지운 감독은 그녀를 박찬욱 감독에게 추천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편, 전지현은 "덜 무서운" 영화인 "4인용 식탁"에 출연했습니다.


덧글

  • ArborDay 2006/08/17 12:43 # 답글

    아, 이 성실하고도 방대한 분량의 영화평이라니.
    일단 감동 한 번 먹고.

    장화홍련의 성공이후, 영화 제작사들은 노골적으로 '슬픈 공포'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고들 합니다.
    이 영화의 성공과 퀄리티는 너무나 반갑지만, 이어지는 러쉬들은 솔직히 사양하고 싶어요.
    이런 퀄리티의 작품이 너무나도 기다려지는 요즈음입니다.
  • sizz 2006/08/17 17:55 # 답글

    영화평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마지막에 좀 아찔하네요. 전지현과 임수정이라면 영화의 연약해서 금방 쓰러질것 같은 위기감과 섬세함은 없어졌을듯...;
  • 게렉터 2006/08/19 17:27 # 답글

    ArborDay/ 아무 생각없이 귀신장면+슬픈원한을 연결하면 그냥 신파극 같은 전설의 고향 스러운 재탕이 될 위험이 높아서 사실 "슬픈 공포"어쩌고는 참 뻔하게 망할 위험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소름"처럼 현실적인 분위기나 내용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만드는 쪽이 오히려, 슬픈 느낌이 드는 공포영화에 접근하는 다른 좋은 길일 듯합니다.

    sizz/ 전지현과 이나영을 자매로 만들려고 하는 시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 슈리 2007/02/07 12:19 # 삭제 답글

    글 정말 잘쓰시네요. 망할 요소가 가득한게 어떤건지 약간 들어볼수 있을까요? 문근영표 영화는 어린신부부터 라고 생각해와서^^;
  • 게렉터 2007/02/07 17:22 # 답글

    슈리/ 감사합니다. 이 영화가 나올 때만해도, "여고괴담"이 이끌었던 공포 영화에 대한 회의적인 생각이 피어나던 때이기도 했고, 그나마 지명도 높은 배우였던 엄정화를 조연으로 밀어 붙인데다가, 많은 사람들이 "한국 관객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스토리'다"라고 지레짐작하기도 해서 우려도 많았던 영화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텔레비전 광고 속의 모습과 어울어져서 문근영을 중심에 두고 문근영에 의한 영화를 만든 영화는 "어린 신부" 때 부터라는데 동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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