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미녀 영화

"얼굴 없는 미녀"는 여러가지 방식으로 조금씩 내용을 바꿔서 다양하게 알려진 유명한 무서운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주로 으시시한 공포물이었던 다른 많은 이야기들과 달리, "얼굴 없는 미녀"는 무서운 공포물은 아닙니다. 살인마나 귀신, 괴물이 나오는 장면이 마지막에 한 부분 밖에 없기도 하거니와, 그나마 보통 공포영화와는 좀 거리가 있는 "레퀴엠" 같은 영화의 섬뜩한 장면보다도 훨씬 덜 무섭게 되어 있습니다.


(김혜수1)

"얼굴없는 미녀"는 "정신과의사와 친해지는 환자" 이야기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정신과의사가 환자를 치료해주기 위해 여러가지로 노력하고 관심을 갖다가 환자의 마음에 깊은 공감이나 친숙함을 느끼게 됩니다. 결국은 보편적인 생각과는 반대로, 환자가 오히려 의사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의사의 삶을 뒤흔든다고 할 정도로 이야기는 발전됩니다. 이러한 역전 때문에 감동적인 극적효과가 나타나기도 하고, 파국적인 결말에 이르기도 합니다.

"애널라이즈 디스"에서부터 "굿 윌 헌팅"까지 수많은 예들이 있겠습니다만, "얼굴없는 미녀"는 한 시절 우수수 비슷한 영화들이 쏟아진 "최종분석"류의 영화들과 비슷합니다. 아름다운 여주인공과 폼잡기의 달인인 남자 주인공이 있고, 각각 전형적인 감성적인 성격과 전형적인 이성적인 성격으로 설정되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모두 굉장한 의상비용을 과시하는 멋드러진 옷과 실내장식 속에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배경에서 어딘가 어둡고 불안하며, 때문에 피를 뿌릴 듯한 여자주인공이 으시시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남자주인공은 서서히 이 여자 주인공의 감춰진 사연을 알아가게 됩니다.

흥미로운 사연은 강렬한 범죄나 무서운 사건으로 실체를 드러낼 것입니다. 그래서 수사물이나 추리물로서의 재미, 혹은 공포스러운 사연을 보여주기에 좋습니다. 물론 이렇게 여자주인공을 관찰하며 느릿느릿 흘러가는 이야기는 여자 주인공을 맡은 배우의 여러가지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준다는 영화의 다른 목적을 충실하게 수행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것이 주목적인 경우도 많습니다.


(김혜수2)

"얼굴없는 미녀"는 환자의 아름다운 모습 보여주기는 비교적 성공적입니다. 왠만해서는 그냥 맛간 사람처럼 보일 옷차림과 머리모양을 김혜수는 잘 소화해 내는 편입니다. 침대위에서 고개를 뒤로 젖히며 미소를 짓는 짧은 장면 같은 것은 단편적이긴해도 분명히 그녀의 매력을 드러냅니다. 그렇지만, 그에 비해, 그외의 부분에 대해서는 거의 실패입니다.

일단 가장 심각한 문제는 청소년 시집의 오남용 어휘들로 이리저리 얼룩진 대사입니다. 김동인이 "약한자들의 슬픔"을 써서 언문일치를 시도한다고 했던것이 지난 세기 초의 일입니다. 그런데도 "얼굴없는 미녀"는 정상적인 감정을 담기 불가능할만큼, 80년대 미국 TV쇼 번역어투로 넘실거립니다.

어절 사이를 잠깐 쉬어 끊어 읽거나 도치법을 사용하는 문장은 가끔 극적으로 강한 효과를 나타낼 대사에만 아껴사용되어야 할 텐데, 거의 모든 장면에서 한 번씩 들어가 사용됩니다. "그럼........... 왜 저를 도와 주신거죠?" "저런시계......... 어디서 본 적이 있는데." "부인하고....... 좋아요?" 모든 감정과 모든 이야기 전달이 그냥 연기 실패로 보이고 전달자체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실제 발성으로 대사를 전달해야하는 연극도 아닌데, 대사를 지나치게 또박또박 끊어 발음해서 분위기마저 어색해집니다. 그나마 결정적인 대사들은 감정을 실어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반대로 발음이 뭉개져서 잘 들리지 않아버립니다.


(김혜수3)

또다른 치명적인 문제점은 이야기의 핵심이 되는 김혜수의 연기 방식입니다. 김혜수는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대사의 매우 많은 부분을 낮고 으슥한 목소리로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김혜수는 원래 목소리가 높고 가는 편이라서 말하는 투를 바꾸는 것 부터가 힘겨운데다가 거기에 어색한 대사를 읊기까지 해야하니, 대사의 감정이나 미친사람 연기의 힘은 거의 느끼기 힘듭니다. 그냥 김혜수가 참 힘든 성대모사를 계속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만 들 뿐입니다.

정신과의사가 밝혀내는 여자주인공의 사연이라는 것도 설득력 없는 한심한 것이고, 반대로 원래 이야기의 핵심이 되는 정신과의사의 여자주인공에 대한 극단적인 집착은 거의 묘사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때문에 추리극이나 심리물로서의 재미도 없습니다. 중요등장인물의 최후를 그냥 맥없이 "교통사고나서 죽었다"로 처리하는 가볍게 보여주는 방식은 시트콤 인물들이 사라질 때마다 유학핑계를 대는 것보다도 더 무성의합니다.

정신과의사가 보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어떤 상황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이 사람의 팔에 어떤 자국이 있었는지를 생각해본다면, 이 영화의 마지막 충격은 귀신의 짓이 아니라 사리에 맞는 현실적인 사연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이중적인 오묘함은, 거기에 덧붙은 "출연료 비싼 배우 얼굴 한 번 더 보여주기" 때문에 사라져버렸습니다. 애초에 정신과의사의 사연이 꽤 흥미로운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여자주인공에 비해서 너무 가볍게 묘사되고 있기 때문에 이쪽 재미가 확 줄어듭니다. 원작의 핵심아이디어는 병적인 집착이나 끝없는 욕심과 직결되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만, 이 아이디어는 등장인물들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애틋하라고 지어낸 사연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이어서, 이야기에 맥이 없고, 영화의 울적하고 살짝 술취한듯한 분위기도 원래 아이디어를 억누르고 있습니다.


(김혜수4)

"얼굴 없는 미녀"는 화려한 옷들과 멋진 집들을 많이 보여주고, 그 사이에서 도시의 멋과 차가운 금속성 질감의 현대성을 보기 좋게 꾸몄습니다. 그 꾸미는 솜씨는 정성이 엿보입니다. 거기에 어울리는 블루스 곡조가 많이 들어간 다양한 음악들도 듣기 좋은 편입니다. 멋진 배우들이 활동하기에 그 치장은 분명히 볼거리가 됩니다. 하지만, 그런 치장 때문에, 겉도는 이야기는 더 가짜 같아졌고, 모든 연기와 이야기들도 버거운 폼잡기에 지나치게 빠져서 원래 제 역할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

김혜수에게 억지로 무서운 목소리 연기를 시킬 필요 없이, 그냥 원래 자기 목소리대로 연기하되 신경질적인 모습과 강박증적인 미친짓 연기만 시키기만 했어도 훨씬 재미있었을 겁니다. 김혜수가 "에비에이터"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비슷한 식으로 여러가지 미친짓 연기를 하면 꽤 그럴듯했을 듯 합니다.


덧글

  • FAZZ 2006/08/19 23:50 # 답글

    이 영화는 영화적 내용보다는 김혜수가 벗고 나온다...에 사람들의 이목이 더 집중되서 좀 그랬던 영화였지요.
    영화내용도 지적하신데로 아쉬운 점이 많았고
  • 게렉터 2006/08/22 14:52 # 답글

    아무래도 김혜수가 데뷔 초기에 정말로 아름다운 외모로 열렬히 많은 사랑을 받은 적이 있었으니 말입니다. 이상아가 지금의 "문근영"급으로 휘젓고 다닐 무렵에, 저만해도, "이상아라도 김혜수 앞에서는 팔당댐 앞의 물레방아일 뿐아닌가"라고 생각했더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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