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길 Paths Of Glory 영화

1958년에 나온 "영광의 길"은 꼭 "스파르타쿠스"처럼 스탠리 큐브릭이 감독하고 주연배우 커크 더글라스가 활약하는 사극입니다. "영광의 길"의 배경은 지긋지긋한 참호전으로 악명 높은 제1차 세계 대전의 서부전선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영광의 길"은 초반부가 1차대전을 배경으로하는 전투영화이며, 후반부는 전투에 대한 군사재판을 다루는 법정영화입니다.

"영광의 길"이 어긋나고 있는 점은 이 두가지 이야기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초반부의 전투영화에서는 커크 더글라스가 연기하는 주인공 장교가 영웅적으로 병사들을 지휘하는 전쟁무용담의 느낌이 물씬 풍깁니다. 힘들고 고달프고 어려운 임무가 주어지고, 거대한 전장의 한 가운데서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용감하게 나서는 무용담 영화에 가깝습니다. 화면은 거대하고 박진감 넘치며, 파괴적인 소음과 끓어오르는 함성이 사방에 울려퍼집니다.


(참호)

그런데, 별다른 자연스러운 연결장치 없이, 후반부에는 갑자기 사병들이 몇몇 등장하고, 이 사람들의 감정이 매우 중요해집니다. 그리고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도 이 사병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섬세하게 주목하는 차분하고 가라앉은 분위기로 확 바뀌어 버립니다. 때문에 초반에 너무 집중하여, 묵직한 전쟁 장면을 기대하게 되면 후반부는 무척 지루하고 심심해지며, 반대로 후반에 무게를 싣고 영화를 보게 되면, 전반이 분위기 깨는 번쩍거리는 쇼가 되어 버릴지도 모릅니다.

더 큰 문제는 후반부의 법정영화 부분에서 법정공방에 그다지 치열한 아슬아슬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영화가 제시하는 설정만 놓고보면 재판은 꽤 팽팽한 대결일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상식과 감상을 따지자면 확실히 피고가 무고한 것 같지만, 전쟁의 특수성이나 법적인 관계를 따져보면 원고측의 주장 역시 일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소재는 여러가지 다양한 논리적인 설명방식과 논쟁 자체의 재미를 줄 수 있고, 이를 다루기 위해 여러 방식의 연출과 연기를 끼워 넣을 수 있을 겁니다. 법리공방과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 여러가지로 궁리를 하거나, 그렇게 재판의 향방이 왔다갔다하는 과정에서 피고들이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감정을 보여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영광의 길"은 그런 여러가지 방식을 버리고, 커크 더글라스 폼잡기에 지나치게 빠져 버렸습니다. 원고가 피고를 공격하면, 거기에 대해 이기기 위해 궁리하고 대응하는 과정이 나타나고 있기 보다는, 커크 더글라스의 분노하는 모습, 커크 더글라스가 이들에게 멋있게 보일만한 단어를 읊는데 그치고 있습니다. 커크 더글라스가 연기하는 피고측에 완전히 감정적으로 동조하는 관객들이라면, 아마 그런 커크 더글라스가 멋있어 보이긴 할 것입니다. 어쨌거나 그래도 아슬아슬한 재판물의 재미는 잃게 됩니다. 더우기, 애초에 초반부가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으로 사방에 포탄을 튀기는 전쟁장면이기 때문에 그렇게 커크 더글라스측에 깊게 감정적으로 동조할만한 기회가 부족하기도 합니다.


(약진 앞으로!)

그렇지만, "영광의 길"에는 뛰어난 점도 많습니다. 무엇보다 중심 이야기가 전쟁의 핵심을 관통하는 역설을 소재로 삼고 있고, 그 풀이 과정에도 적절한 진실함이 있기에 줄거리 자체가 관객을 고민하게 하고 생각하게 합니다.

영화의 극적인 전개에 있어서 앞부분의 전쟁 묘사와 뒷부분의 재판과정이 부드럽게 연결되지 못하는 문제는 있을지언정, 관객입장에서 영화가 제기하는 문제의식에 대해 고민할 정보제공은 충분히 해주고 있습니다. 앞부분에서는 전쟁의 느낌과 방식을 설명해주고, 뒷부분에서는 거기에 무엇이 문제가 있는지 세심하게 찔러서 지적해주는 것입니다. 때문에, 전쟁, 인권, 평화, 불평등에 대해 전통적인 고민을 할 자료로 이 영화는 기능이 풍부합니다.

이것은 원작이 갖고 있는 힘이자, 1차대전이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던 깨달음이 역력히 살아있다는 뜻이 됩니다. 단적인 예로 벌레를 보고 말하는 피고인의 장면은 영화로서 장면 연출이 잘 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대사 방법 자체가 부르짖는 조의 연극투라서 좀 어긋나 보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 말의 내용자체가 충분히 문학으로서 듣고 생각할 여지가 있는 것입니다.

재판정 장면에서 커크 더글라스는 이상하게도 피고들과 한 화면에 잡혀서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이 장면은, 전후의 감정 교류에서는 맥이 끊기는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장면 하나만 놓고보면, 그나마 가장 피고 편이라고 할 수 있는 주인공조차, 정말로 전장에서 고통을 받고 또 법정에서 고통을 받는 피고들과는 동떨어져 있는 어쩔 수 없는 타인이라는 점을 은근히 느끼게 합니다. 이 화면의 매정한 느낌과 어쩔 수 없는 거리감이 가져오는 혹시 재판에 패배할지 모른다는 불길함은 병사들의 고통과 전쟁에 대한 영화의 이야기를 더욱 키워 줍니다.


(재판정)

또 한가지 빠뜨릴 수 없는 것은 돈을 제대로 퍼부은 값을 하는 전쟁장면입니다. 전쟁을 묘사하기 위해, 사령부의 장군들로부터 말단 사병에 이르기까지 그 명령과 행동이 연결되어 영향이 미치는 과정을 부드럽게 묘사하고 있는 것은 각본의 아름다움입니다. 이렇게 최고위층이 간단하게 내리는 명령이 어떤 식으로 전달되고, 그에 의해, 한참 멀리 떨어진 병사들의 삶이 어떻게 엎치락뒤치락하는지를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것은, 영화가 제시하는 고민거리와도 잘 연결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충실하게 만들어진 거대한 참호 세트를 길고 긴 연결장면으로 여기저기 비춰가며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만드는 화면구성수법도 멋지게 잘 어울리고 있습니다.

적의 기관총탄이 머리위로 쏟아지는데 참호 아래에 숨어서 벌벌 떨고 있다가, 돌격신호가 떨어지면 그 위로 기어 올라가 돌격이랍시고 몇발자국 뛰다가 죽어야 합니다. 그런 수십만 1차대전 참전용사들의 운명을 화면 위에서 꽤 화려해 보이는 파괴장면에 담아 보여주고, 거기에 크게 어긋나지 않도록 주인공의 폼잡는 모습도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런 전쟁장면 연출은 훗날 영화들의 모범이 되어 보일정도로 고전적인 힘이 있습니다.


(수잔 크리스천)

물론, 후반 법정공방 장면이 긴장감이 부족한데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감정을 뒤흔들어 놓을 또다른 요소인 배우들의 좋은 연기 역시 칭찬할만합니다. 침착함과 광기를 뒤섞어 드러내는 불쌍한 피고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악역에 해당하는 인물들의 사실감 있는 비겁한 모습들, 커크 더글라스의 주인공다운 멋부리기도 멋집니다.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노래 장면은 군더더기처럼 덧붙은 헛된 낭만 장면에 불과할 위험이 많은 장면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한번씩 얼굴표정만 비춰주는 단역 배우들의 멋드러진 연기와, 수잔 크리스천의 아름다운 모습때문에 꽤 감흥이 살아있는 영화 감상의 정리가 됩니다.


그 밖에...

당시 독일의 신인배우였던 수잔 크리스천의 모습은 정말 눈에 뜨이게 아름답습니다. 군인들만 가득한 이 영화에 등장하는 거의 최초의 여배우라서 더욱 그렇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발빠른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이 영화가 개봉된지 1년만에 두번째 부인과 또 이혼하고 바로 수잔 크리스천과 재혼했고, 임종까지 그녀와 해로하였습니다. 덕분에 수잔 크리스천은 실질적으로 "영광의 길"에 잠깐 출연한 것이 마지막 영화가 되었습니다. 이 영화에 그녀는 "수잔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으로 나옵니다만, 본명은 크리스천 수잔 할란이고, 흔히 그녀는 크리스천 큐브릭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스태린 큐브릭은 평생의 세 부인들이 모두 자기 영화를 같이 찍던 사람들이고, 두번째 부인과 세번째 부인은 자기 영화에 출연한 신인배우였습니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아주 많이 다릅니다만, 두 이야기가 좀 안어울리게 달라 붙어 있는데 전쟁장면의 화려함이 무척 강하다는 면에서, 저는 "진주만"을 봤을 때 이 영화 "영광의 길"과 비슷한데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프랑스군을 무대로 하고, 서부전선이 무대입니다만, 의외로 거의 모든 촬영이 독일 남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프랑스군을 무대로 하고 있는데, 부정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1975년이 되도록 프랑스에서는 상영되지 못했던 영화였습니다. 독일은 1차대전에서는 프랑스의 상대국이었지만, 독일 역시 프랑스와의 우호관계를 생각해서 이 영화를 한동안 상영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커크 더글라스나 스탠리 큐브릭의 팬들은 때문에 한때 우리나라에서 많이 이야기되던 똘레랑스 어쩌고 하면서 프랑스인들을 칭찬하던 분위기를 별이유없이 반사적으로 싫어하기도 했습니다.


덧글

  • 이준님 2007/04/07 17:08 # 답글

    1. 원작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영화적 내용은 보어 전쟁을 무대로 한 다른 스토리와 묘하게 같지요. -_-;;;; 사실 무대를 "한국전"이나 다른 걸로 바꾸어도 될만큼 공통의 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2. 1차 대전을 다룬 영화들이 상당히 많은데도 불구하고 액션이나 전시선전물(상당히 많은 1차 대전 영화가 무려 2차 대전 초반에 제작되었습니다.)인 반면 이 작품이나 서부전선 이상없다. 그리고 갈리폴리는 반전영화로 남습니다.

    3. 총살장으로 가는 행진 장면도 꽤 여러번 찍어서 악명이 높았다고 합니다.

    4. 부하들을 총살대로 몰아버리는 나쁜 프랑스 장군은 아돌프 멘주이지요. 소시적에 "프론트 페이지"등 꽤 괜찮은 작품에서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매카시즘때 "공개 전향"하고 주위의 적색분자를 팔아먹은걸로 헐리웃에서 악명이 높았습니다. (엘리아 카잔 감독이나 같은 이치이지요). 아마 그런 전력때문에 여기에 캐스팅 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실제로 이렇게 공개전향과 적색분자 고발로 악명높은 다른 배우는 큐브릭의 걸작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에서 리퍼 장군을 연기하기도 합니다.)
  • 게렉터 2007/04/08 00:12 # 답글

    이준님/ 40년대 초반에 나온 영국/미국산 전쟁물은 1차대전을 꼭 60,70년대 영화에서 2차대전 영화 꾸리듯이 꾸린게 있는데 아닌게 아니라 흥미로운 점이 있어서 한 번 다뤄보고 싶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사실 한 때 커크 더글라스가 연기한 주인공의 대활약으로 극적으로 병사들이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건지는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것을 상당히 염두에 두었다고 합니다. 제작진 중 상당수는 그 쪽을 지지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제 생각에는 해피 엔딩으로 가는 결말도 어떻게 잘 이야기를 꾸몄으면, 심각하고 비판적인 분위기를 훼손하지 않고도 도리어 극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가 되지도 않을까 여기고 있습니다. 지금 영화도 좋기는 한데, 일단 죽을 병사들이 선택된 다음부터는 딱히 극적인 변화없이 그냥 죽음의 길로 천천히 빠져드는 것 뿐이라서 좀 심심한 면도 있었습니다.

    주인공들이 병사들이라면 처절하고 억울하고 슬픈면이 극적이기라도 할 텐데, 주인공은 출연료 비싼 커크 더글라스이니 그렇지도 않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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