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배상 Double Indemnity 영화

유명한 느와르 영화로 꼽히곤 하는 1944년에 나온 "이중배상"은 보험회사 직원이 주인공입니다. 내용은 보험회사 직원이 보험사기와 관계가 있는 살인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입니다. 전체적으로 영화의 재미는 "형사 콜롬보"처럼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서서히 범죄의 진실이 밝혀짐에따라 격해지는 감정을 보여주는데 있는 편입니다.

물론 "이중배상"이 느와르 영화인만큼, "형사 콜롬보"가 조용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데가 있는 콜롬보의 모습을 보여줄 때, "이중배상"은 비유와 수사가 풍성한 주인공의 독백 나래이션을 들려줍니다. "형사 콜롬보"가 화려한 부자들의 생활에다 울적하면서도 재치가 있는 비교적 건조한 배경음악을 들려주는데 비해, "이중배상"은 어둡고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여주면서 심판의 인상으로 가득찬 장중한 배경음악이 깔립니다.


(느와르 영화 나래이션을 하고 있는 프레드 맥머레이)

이러한 소위 "도서 추리물"의 모범적인 구성과 죄어오는 감정 표현이 정석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에 비해, "이중배상"에는 약간 부실한 부분도 쉽게 눈에 들어 옵니다. 일단, 굉장히 철저하고 정교한척하는 "이중배상"의 범행수법이 좀 한심한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뚜렷하게 보입니다.

"이중배상"의 속임수 수법은 한때 일본에서 많이 펴내던 어린이들을 위한 짤막짤막한 추리퀴즈 이야기에 나오는 것보다도 가볍습니다. CSI가 출동하면 초심자 수사관들이 대강만 살펴도 단박에 속임수를 파헤칠 수 있을 것이고, 콜롬보나 몽크가 출동하면 예고편 방송할 정도의 시간 동안에 문제를 해결할지도 모릅니다. 때문에 철저하고 치밀하며, 냉철하고 묵직한 고민과 행동들이 이래저래 가짜 같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럴듯한 음악과 교묘하게 화면을 꾸미는 조명이 없었다면, 모든 이야기들이 설득력을 잃었을지도 모릅니다.


(남자 주인공 앞에 나타나는 문제의 여자 주인공)

비슷한 분위기로 배우들의 연기나 연기의 재료가 되는 대사들도 완벽하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주인공인 보험회사 주인공을 맡은 프레드 맥머레이는 초반에는 거의 제임스 본드인것 처럼 연기해야하는 인물입니다. 여유있으면서도 항상 판단력을 잃지않는 전문가이며, 그러면서도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프레드 맥머레이는 후반의 고민과 번뇌를 표현하는 감정 표현에만 뛰어날 뿐입니다. 그래서 느와르 영화 주인공다운, 무뚝뚝하지만 생각이 깊은 모습, 무정해 보이지만 행동에는 낭만적인 힘이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는 실패할 때가 많습니다. 때문에 문제를 한아름 들고 문득 남자주인공 앞에 나타나서 이 모든 난리의 단초가 되는 여자주인공과 사랑에 빠져드는 부분도 조금 억지스럽습니다.

여자 주인공도 비슷합니다. 바바라 스탠윅은 대부분의 한 장면 한 장면에서 큰 무리 없이 활약합니다. 그러니, 이 인물 자체가 뚜렷한 감정 흐름이 드러나지 않고 이래저래 이야기를 맞추기 위해 오락가락할 뿐입니다. 사실, 이런 분위기의 영화에서, 어떨 때는 절로 상대방을 눈물흘리게하는 연약한 모습으로 동정심을 끌어내다가, 어떨 때는 찔러도 1밀리리터의 혈액도 관찰할 수 없을 듯한 냉혹하고 잔인한 모습으로 돌변하는 인물은 좋은 구성 요소이기도 합니다. "이중배상"에서도 그런식으로 활약해야 하는 인물임이 확실합니다. 그렇지만, 또 그렇다고 하기에는, 이 인물이 그렇게 신비감이나 화려한 매혹을 불러올만큼 강렬한 인물로 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그냥 보험회사 서류에 처음 등재되는대로, 중소기업 운영으로 골치를 앓고 있는 남자의 아내, 딱 그정도로 보일 뿐입니다.


(슬픈 마음의 바바라 스탠윅)

인물들과 그 인물들을 맡아 연기하는 사람 중에서 가장 그럴듯한 인물은 범죄를 파헤치는 탐정 쪽에 서 있는 키스 역입니다. 에드워드 G. 로빈슨이 노련하게 연기하는 이 인물은 수없이 많은 멋부리기 대사들과 길고긴 범죄 설명 대사들이 넘쳐남에도 불구하고 그 감정이 현실감 있게 다가 옵니다. 폭발적인 감정이 많지 않은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열정을 갖고 연기한 에드워드 G. 로빈슨의 공이 큽니다. 게다가 보험회사 직원과 보험의 특성이 중요하게 활용되는 이 영화에서 최악의 일중독자 인물로 설정된 "키스"자체가 잘 어울려서, 에드워드 G. 로빈슨의 연기는 더욱 빛이 납니다.

범인을 눈 앞에 두고, "범인은 어떤짓을 한 것 같다네"라고 마치 그 범인을 본 것처럼 설명하며 범인을 초조하게 만드는 그 모습은 무척 힘있게 화면에 잡혀 있습니다. 물론 형사 콜롬보의 조상뻘이 될만하게, 훤칠한 미남미녀들 사이에서, 심한 골초인 늙수레한 작은 사람이 비뚤어진 유머감각을 갖고 있는 면도 개성을 더합니다. 후반부 이후에 주인공인 프레드 맥머레이가 폼잡기 연기 보다는 감정 표현에 무게를 싣게 되면, 그때부터는 또 에드워드 G. 로빈슨의 차분하면서도 저력이 있는 인물과 잘 어울리기도 합니다.


(악한 마음의 바바라 스탠윅)

추리물로서의 범죄 구성이 조금 싱겁고, 주인공들의 인물에 약점이 있는 대신, 느와르 영화다운 표현 방법들은 잘 나타나 있는 편입니다. 주인공들이 "악의 기운"에 사로잡혀 살기어린 말을 할 때, 주인공의 얼굴 위로 슬쩍 검은 그림자를 드리워 분위기를 돋구는 것이라든가,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을 바라보는 시선을 과장하여, 여자주인공의 자태를 홀린듯한 시선고정으로 화면에 담아내는 것에는 뚜렷한 내용이 있습니다. 어둠속에서 서서히 나타나는 인물의 모습이라든가, 극적인 순간에 한 발 울린 뒤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총소리 같은 것도 점층법과 절정의 국면을 잘 드러냅니다. 파국적이면서도 쓸쓸한 유머가 감도는 마지막, 영화 전체에 감도는 낭만적이고 선율이 강한 배경음악도 좋습니다.

"이중배상"을 보고나면, 느와르 영화 분위기가 충실함에도 불구하고, 매력을 뽐내는 여자 주인공과 폼잡기의 달인인 남자 주인공보다도, 오히려 진 헤더가 연기한 놀라의 자연스럽게 어쩔줄 모르하며 휘둘리는 심경이나, 에드워드 G. 로빈슨의 믿음직스런 성실한 일중독자 모습이 더 남는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에드워드 G. 로빈슨)

그 밖에...

흔히 이 영화의 제목 "Double Indemnity"는 "이중배상"이라는 번역 제목으로 통용됩니다만, 보험업계에서는 보통 "배액지급"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레이몬드 챈들러가 각본에 참여한 영화입니다. 그 각본은 제임스 M. 케인의 소설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 제임스 M. 케인의 소설은 루스 스나이더의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

별로 안 어울리는 바바라 스탠윅의 금발 가발은 여러모로 이야기거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원래 주인공의 이름은 "월터 네스"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비버리 힐즈에 정말로 월터 네스라는 사람이 살고, 공교롭게도 그 사람이 보험회사 직원이기도 하여, 주인공 이름을 월터 네프로 바꾸었다는 이야기가 IMDB Trivia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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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렉터블로그 : 고전 흑백 느와르 영화 목록 2014-10-05 00:18: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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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ㅎㅎ 2011/11/17 17:17 # 삭제 답글

    이거 정말 재미있던데 ㅋ
  • 게렉터 2011/11/22 13:40 #

    저는 아주 정형화된 사연이라서 그렇게 재미나지는 않았는데, 따지고 보니까 이 영화가 그런 정형화된 사연을 재미나게 퍼뜨린 원조뻘이라서 요즘 또 새롭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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