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의 계단 영화

이만희 감독이 감독한 1964년작, "마의 계단"은 병원의 의사, 간호사, 원장딸의 삼각관계를 배경으로 시작합니다. 음침한 분위기로 흘러가는 이 영화는 범죄물이며, 결과적으로 이 바닥에서 가끔씩 써먹는 이야기 수법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활용방식은 "듀나의 영화낙서판" 같은 웹사이트에서 소설과 영화가 한 번 소개 된 적이 있는 유럽 작가의 소설과 거의 같습니다. 만약에 이 영화에서 간호부장격인 역할을 하고 있는 인물이 조금만 달라졌으면 배경만 병원으로 옮겼을 뿐 핵심이 매우 비슷해 졌을 것입니다.


(포스터)

영화의 내용은 사악한 마음에 사로잡힌 인물이 배반을 하고, 살인을 저지르는 것으로 전개 됩니다. 나름대로 완전범죄를 계획하지만 이상하게 완전범죄는 삐걱거리는 것 같고, 범죄자에게는 자꾸만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사악한 살인이 일어나고 이상한 일이 잔뜩 벌어지는만큼, 영화는 공포물의 분위기도 꽤 많이 담고 있습니다. 제목부터도 "'마'의 계단"이고 말입니다. 병원이 무슨 과자로 만든 집도 아니고, 설마, 먹는 "마"로 만들어진 맛있는 계단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일본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는 이 영화는, 범죄가 벌어질 때까지는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과연 누가 어떻게 사고를 칠 것인가가 궁금하기도 하고, 어떤식으로 일이 흘러가게 되기에 살인까지 나는지 호기심이 생기게 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주요 인물들은 뚜렷한 개성이 있으면서도 인간다운 감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 다각적인 모습을 보여줬지만 또한 흉금에 무슨 속내를 품고 있어서 어떤 꿍꿍이를 갖고 있는지는 슬쩍 안보여주는 듯한 설정으로 되어 있습니다. 갈등 구도에 대한 호기심이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간호사들을 기숙학교 학생들처럼 활용해서 손쉽게 여러가지 내면갈등을 겉으로 보여주는 것도 잘 어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뒤이어지는 범죄 장면 묘사는 아주 그럴듯합니다. 병원이라는 배경도 꽤 잘 활용하고 있고, 살인 장면 자체와 으시시한 분위기에 꼭 어울리게 잘 써먹을 수 있는 동작들이 정석대로 펼쳐져 있습니다. "목발 떨어뜨리기", "한 번 더 튀어나오기"는 교과서적이고, 튀기는 물과 빗줄기, 깊은 밤, 달빛 같은 것이 이리저리 반사되며 움직이면서 역동감을 주는 화면이 흑백화면에 꽤 괜찮게 들어와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작 추리물이나 공포물로서 가장 극적이기를 기대하게되는 후반부에 들어서면 갑자기 정말 싱거워 집니다. 앞서 소개한 유럽 작가의 소설에서는 아주 흥미진진하게 그려졌고, 그 파급효과에 멋지게 진지한 감정까지 담아냈던 것을, 이 영화에서는 그냥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다. 아~ 겁나는구나~ 아~" 비슷한 나래이션을 읊으면서 몇 장면으로 때워 버립니다. 영화전체에서 나래이션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데, 갑자기 여기서만 나래이션이 나오기 때문에 장면을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 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대신에 수많은 공포물들이 사용하는 긴장감 조성법만을 사용합니다. 어두운 복도를 걸어가기, 창문을 열며 밖을 보기,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기, 벽 저편에 뭐가 있는지 살금살금 다가가기 등등을 계속합니다. 이런 장면의 연출들은 큰 문제는 없는 수준이고, 몇몇은 분위기가 잘 살아나는 것도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장면들은 특별한 발전이나 내용 전개가 없는 비슷비슷한 일들의 나열일 뿐이고, 결론을 도출하는데도 거의 영향을 못미치고 있습니다. 애초에 본격적인 무서운 영화는 아니기에, 보다보면 심심한 반복으로 보이기 쉽습니다.

그렇게 쌓인 짚단 위에 불을 붙이는 것은, 영화의 마지막에 드러나는 충격적인 진실이 참 썰렁하다는 것입니다. 진실이 밝혀지는 계기에 해당하는 장면은 정말 멋집니다. 병원 수술실의 긴장감과 비인간적인 느낌을, 담아내고 있는 이야기로 완벽하게 활용하면서 힘이 넘칩니다. 그런데, 그러고나서:

"아니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된거요?"라고 물으면, 영화에서는 인물 대사로, "정신력으로 그냥 밀어 붙였더니 이렇게 되었소"라는 식의 답을니다. "정신력"이라는 단어를 실제로 씁니다. 이렇게 되다보니, 초반에 병원의 사람관계, 사람의 신세에 대한 보편적인 생각들과, 현실적이면서도 조마조마했던 묘사들. 좀 이상한 상황에서 이리저리 얽혀 있는 흥미로운 인물 설정이 좀 아쉽게 날아가 버린 것 같습니다. 한겹 덧씌워 일이 더 정교해지게 되는 부분도 마련되어 있었는데, 이것 역시 그냥 성급하게 서둘러 대강 설명하고 넘어가고 맙니다. "정신력"운운 하는 대신에 당시 상황 재연 화면이라도 보여주었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주변인물들의 경우에는 연기가 어울릴 때도 있고 이상할 때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대체로 성우 더빙 연기와는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에비해 주연급 인물들을 맡은 배우들은 대체로 뛰어납니다. 주연 중 한 명을 맡은 김진규의 경우에는 인물에 대한 묘사가 좀 더 복잡다단했으면 김진규가 실력발휘를 더 했을텐데, 지금은 단순한 인물을 충실하게 연기했을 뿐이라서 약간 아깝습니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도 충분합니다.

"마의 계단"에서 다른 즐길 수 있는 것을 찾아본다면, 좀 외진 곳에 있는 독특한 병원건물과 60년대 한국식 호화자동차를 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런 곳을 배경으로하는 나름대로 흥미를 끄는 범죄이야기를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인물의 심경표현을, 심리 고조 강약에 따라 점점 다가오는 화면이나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옮겨가는 화면으로 그려낸 재주들도 재미납니다. 그리고 막판의 실존주의적인 유머 하나도 덤으로 확실히 제몫을 합니다.


그 밖에...

제목이 "마의 계단" 입니다만, 그렇게 계단이 중심 이야기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계단을 제목으로 삼는 이 영화보다, "하녀"가 훨씬 더 2층건물을 현란하게 활용한다 할만합니다.

이만희 감독은 이 영화를 감독한 해에 다른 두 범죄물의 감독을 맡기도 했습니다. 한 해에 세 편의 범죄물을 감독하는 예는 그때는 범죄물이 적게 제작되었기에, 지금은 다작이 적기에, 희귀한 경우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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