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 맨 - 최후의 전쟁 X-Men: The Last Stand 영화

"엑스 맨 - 최후의 전쟁"은 나치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논쟁 자체가 터부시되는 경향이 없잖아 있는 우생학의 윤리적 소재를 전면에 배치하고 있습니다. 똑똑하고 예쁜 사람들과 멍청하고 추한 사람들이 있다면, 똑똑하고 예쁜 사람들이 더 활발히 활동하고 더 많은 자손을 퍼뜨리게 적극적으로 유도하면 그런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더 발전되고 "진화된" 사회를 이룩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그 문제 말입니다. 가끔 윤리 수업이나 유전과 진화의 기초를 배우는 생물학 수업의 근처에서 한 번씩 이야기되곤 하는 이 이야기를 영화는 중심 갈등으로 배치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로는 거의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안나 파퀸)

그런만큼, 가장 기구한 운명의 경험자가 되는 우생학의 경계에 선 사람들을 보여주려고 설정한 부분이 있습니다. 나치 시절을 배경으로한 이야기에서는, 자기가 유태인이라는 사실 조차 잘 모르고 살아가던 독일 점령지의 카톨릭으로 개종한 유태계 혼혈인 같은 사람이 보통 주인공이 되곤 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스스로 유태인이라는 자각조차 하지 않고 살아가다가 심지어 독일 민족주의 조차 어느 정도 좋아하는 면까지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독일군이 자기네 땅을 점령하면서 가혹한 운명에 시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프리츠 하버의 이야기 같은 것이 한 예일 것입니다.

"엑스 맨 - 최후의 전쟁"에서는 치료제 소년을 등장시켜서 그런 경계선에선 갈등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인물들의 갈등 상황을 만드는데도 좋고, 우생학에 대한 고민들을 풀어내는 데도 좋고, 새로운 적이나 새로운 싸움을 만들어내는데도 좋고, 엄청난 힘을 가진 이 초능력자들이 만만하게 볼 수 없는 적수를 창조하는데도 좋을 것입니다.

문제는 "엑스 맨 - 최후의 전쟁"에서 정말로 신나고 재미있는 장면들은 이런 중심 축이 되는 우생학 윤리 문제나, 치료제 소년을 중심으로한 갈등 양상과 별상관이 없다는 점입니다. 가장 재미있는 액션을 보여주는 벽을 통과하는 사람은, 마르셸 에메의 환상을 구체화하는 점도 매력적이고, 그녀가 펼치는 추격전 자체도 거의 "톰과 제리"와 같은 신나는 느낌과 불안한 추적 느낌이 잘 드러납니다. 정말로 약해 보이고 불안해 보이는 어린 사람으로 배역을 설정한 것도 이런 효과를 더합니다. 하지만 이 인물의 활약은 그냥 그 어떤 초능력자 이야기에 등장해도 아무 상관 없는 독립적인 것입니다.


(엘렌 페이지)

마지막 싸움을 앞두고 그들의 "최후방어선"에 하나 둘 늘어서는 그 비장하면서도 초능력 영웅다운 무거운 존재감을 드러내는 장면은 조금은 관련이 있을 겁니다. 이 장면에서는 황산벌에 선 계백 장군이나 백마고지 전투의 용사들 같은 영웅물의 힘이 실려 있습니다. 따지자면, 이 장면의 그럴듯함이란, 주인공 초능력자들의 경계선에서 방황하는 갈등을 억지로 참아내는 인내나 결심과 맞물려 있어서 효과가 살아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만큼 이 장면에서는 조금은 더 그런 갈등이나 내면의 괴로움을 드러낼만한 부분을 좀 더 끼워넣을 수 있도록 해도 좋았을 겁니다.

그래서 가장 신나는 장면을 꼽으라면, 역시 "빽 투 더 퓨처"시리즈 전체에서 가장 멋진 장면으로 손꼽히는 "빽 투 더 퓨처 2"의 장면을 거의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이 장면은 아주 짤막한 장면이고, 조연들로만 이루어진, 곁가지 이야기지만, 각각의 인물이 상징하는 바가 잘 드러나고 있고, 그런 장면이 이야기의 중심 갈등과 어우러져 힘이 넘치는 장면입니다. 중세시절 회화에서부터 내려온 미술적인 효과도 화면에서 화려하게 살아나고 있습니다. 이런 장면이나 이런 장면을 만드는 인물들의 비중이 약한 것은 무척 아쉬운 점입니다.

이렇게 "엑스 맨 - 최후의 전쟁"에서 재미난 장면들이 영화의 축에서 어긋나서 돌고 있기 때문에, 그 엉성한 점들은 선명하게 눈에 뜨입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엑스 맨 - 최후의 전쟁"에 뜬금없이 다시 튀어나와 어마어마한 막판 대장 역할을 하면서 파괴의 여신으로 활약하는 인물의 부실함입니다. 이 사람은 겉모습에서부터 능력에 이르기까지 화끈한 특징이 부족합니다. 역할이 역할인 만큼 괴기스럽거나 창백한 모습으로 비현실적인 느낌이 강해야 할텐데, 이 사람은 겉모습도 그렇고, 연기도 그렇고 그냥 검은 색 옷이 잘 어울리는 패션 모델 정도의 느낌만 날 뿐입니다. 신비로울 정도로 무서운 악당, 강렬한 영웅 연기 같은 과장으로 넘쳐나는 연기를 하기에, 대사 구성이나 대사 연기 실력도 부족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따라서, 마지막 싸움에서 일당백, 일기당천으로 무슨 장판교의 장비인냥 박살내며 설쳐댈 때의 무시무시한 느낌이 별로 살아나지 않습니다. "V"의 다이아나를 연기한 제인 배들러는 아니더라도, 차라리 "스피시즈" 같은 영화에서 나타샤 헨스트리지 정도만 되었어도 훨씬 더 역할에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예 이 사람의 역할을 모양이나 능력이 훨씬 더 강렬한 앤젤이나 치료제에게 넘기는 편이 더 나았을 지도 모릅니다.


(할 베리)

그러고보면, 마지막 싸움 장면은 장면 설계 자체가 어정쩡하게 되어 있는 면이 있습니다. 이 싸움은 인류의 미래를 두고 초능력 영웅들이 벌이는 마지막 전투입니다. 폭풍이 휘몰아치는 듯한 날씨나, 바다에 고립된 섬이라는 배경까지는 거기에 어울립니다. 자기가 무슨 샹젤리제 거리를 행진하는 비스마르크나 콩피에뉴 특등 객실을 다시 가져 오라던 히틀러라고 금문교로 난리를 치면서 폼을 잡는 장면까지도 대강 그럭저럭 이 신화적인 결전에 어울린다고 할만합니다.

그러나 막상 싸움자체가 시작되면 싸움의 모양새는 그냥 동네 깡패들 패싸움 분위기 입니다. 쩔그렁거리는 펑크족 차림새의 싸움꾼들이 껌 씹고 인상 찌푸리면서 주먹질하는 겁니다. 신들이 전쟁을 벌이는 그리스 신화나 북유럽 신화의 한 장면 같아야할 이 마지막 싸움이 난잡한 도시 뒷골목 싸움과 같은 모양으로 연출되고 있는 것입니다. "로보캅3"의 전투 장면과 이 마지막 싸움 장면은 정말 비슷한데, 반대로 오히려 "로보캅3"에 더 신화적이고 영웅적인 모습이 잘 살아 있다고 할만합니다. 이러다보니, 금문교 난리 장면 같은 것은 참 부질없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이 장면에서 나타나듯이, "엑스 맨 - 최후의 전쟁"의 부실함 중에 대표적인 것은 디자인 감각입니다. 악당도 그렇고 주인공쪽도 그렇고 어느 쪽 하나 유니폼이나 옷차림, 소도구등등이 잘 어울리는 쪽이 없습니다. "매트릭스"나 "터미네이터" 같은 멋드러진 수준에 도달하지는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어울림은 잡아 줘야 할텐데, 원작의 설정에서 어정쩡하게 타협한 결과로 나타난 마그니토의 옷차림 같은 것은 좀 바보스러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저는 영구가 솥뚜껑 뒤집어 쓰고 전쟁놀이 하는 장면이 자꾸만 떠올랐습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무기라든가 사방에 치료약 주사를 날리는 크레모아 형식의 무기 같은 것은 여러가지 재미난 디자인을 떠올릴만한 장비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거의 그림 그리기 귀찮아서 대강 만드는 70년대 애니메이션의 로봇디자인을 떠올릴정도로 단순 무쌍하기만 합니다. "배트맨" 영화 시리즈에 등장하는 장난감 같은 무기 디자인들이 그리워질 정도입니다. 플라스틱 무기나 유리 무기 같은 것은 정말로 다양한 상상력을 펼칠 대상이 될 수 있을 법도 한 데, 결과는 도식적인 위장색을 씌운 청계천 사제 총을 재미없게 스케치한 것처럼 보입니다.


(휴 잭맨)

전체적으로 대사나 대사에 대한 연기도 묵직한 영웅이나 낭만적인 기사들을 구체화하는데는 실패할 때가 많습니다. 대부분 폼을 제대로 못 잡는 것입니다. 인물의 성격이 3편째 변함없이 뚜렷하고, 그리고 이 연기에 잘 달라 붙어 있는 울버린 역의 휴 잭맨정도만 훌륭할 뿐, 노련했던 이안 맥켈런과 패트릭 스튜어트까지도 잘 한다고 볼 수는 없을 듯 합니다. 대사가 너무나 적어서 성공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레베카 로메인 정도만 되어도 무난했을텐데 말입니다. 차라리 "벽을 통과하는 사람" 쪽이 자연스러운 대사와 연기로 되어 있는 통에 오히려 초능력자의 위치가 더 잘 살아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엑스 맨 - 최후의 전쟁"은 꽤 재미있는 아이디어로 출발했지만 볼거리라든가, 느낄 감정이 좀 부족한 모양으로 구체화된 이야기입니다. 재미있는 장면들이 꽤 되기에 재미 없는 영화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런 장면들이 그 "재미있는 아이디어"와 별 상관없다는 점은 계속 아쉬워 집니다. 이야기의 핵심에 있는 윤리 소재는 분명히 고민 해 볼만한 것이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에 남게 되는데, 덕분에, 윤리 학습 보조 자료로 쓰이는 "파워레인저" 시리즈 426화 쯤의 에피소드 하나 같아 보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밖에...

이안 멕켈런과 패트릭 스튜어트에 대해 마지막에 슬쩍 끼워넣어진 장면 둘은, IMDB Trivia에 따르면 몰래 찍어서 아무도 모르게 정말로 슬쩍 영화 뒤에 붙인 거라고 합니다.

제목의 중의적인 느낌을 살리기에는 어떻게 해도 무리가 있겠지만, 그래도 "최후의 전쟁" 보다는 "최후방어선" 이나 "최종방어선" 정도가 더 좋은 번역제목 아니겠는가 생각해 봅니다.


덧글

  • 미디어몹 2006/10/02 09:15 # 삭제 답글

    곽재식 회원님의 상기 포스트가 미디어몹에 링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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