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국가 유머집 Hammer and Tickle: The Communist Jokebook 영화

외국 기자단이 공산주의 국가의 관계자에게 물었습니다.

"농산물 작황은 어떻습니까? 식량사정은 좋습니까?"
"아무렴요. 좋습니다."
"감자를 예로 들면요?"
"감자도 많습니다. 어찌나 많이 쌓여 있는지 거의 하나님 발바닥 있는데 까지 닿을 정도입니다."

그러자, 옆에서 한 당원이 관계자를 쿡 찌르며 귓속말 했다.

"여긴 공산주의 잖아. 종교를 부정하는데 하나님은 없는거 아니요?"

관계자 대답하길,

"뭐, 감자는 있어서 있다고 했답니까."


(승객 여러분, 이 비행기는 잠시후 모스크바 국제 공항에 도착합니다. 기온은 시원하면 날씨는 맑습니다. 그리고 시계를 10년전으로 되돌려 주시기 바랍니다.)

다큐멘터리 "공산국가 유머집"은 시작하면서 다음과 같이 이 다큐멘터리의 내용을 소개합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공산주의 국가들은 무척 살벌하면서도 살기 힘든 나라였고, 그랬기 때문에 사람들은 저항하기 위해서 은근한 풍자 농담 문화를 꽃피웠다는 분석을 이야기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새롭게 재구성한 장면,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한 장면으로 농담들을 소개하고, 그러는 가운데 역사적인 자료화면과 당시 언론, 출판 관련 인물들의 인터뷰를 끼워 넣습니다. 대체로, "공사국가 유머집"은 공산주의 시절 사람들을 나치 점령 시절 프랑스 레지스탕스 비슷한 인상으로 표현하면서, 공산주의 국가의 국민들이 고상한 비웃음을 던지는 모습을 잡아내 보여주려 합니다.

일단은 이러한 이야기의 방향 자체가 좀 위태로운 면이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려면, 오일쇼크 당시의 유가에 대한 생각이나, 대공황기의 경제 상황처럼 정말로 대다수를 휩쓸었던 주요한 문화적인 현상으로서, 공산주의 국가의 풍자 문화를 소개해야 합니다. 물론 공산주의 국가는 살벌했고, 특이했고, 이런 상황에서는 독특한 농담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500년전의 절대왕정 문화가 있었기에, 한국의 한 승려가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라는 절묘한 농담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조류라는 것은 지나고나서, 논술 참고서나 인터넷 포털 사이트 댓글에 한 두 줄 요약설명되는 현상만 가득차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나치 점령 시절 프랑스에도 나치 협력자와 동조자들은 너무나 흔했습니다. 공산주의 국가의 국민 문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공산주의에 대한 비꼬는 농담들이 과연 정말로 공산주의 체제의 시민들을 뒤덮을 만큼 유행했는가 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며, 실제로 이 다큐멘터리에서도 이에 대한 비교 증빙 자료는 거의 제공해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모르긴해도, 수치로 비교를 한다면 미국의 유머와 유머산업이 가장 압도적인 양을 자랑할 것입니다.


(공산당 쇼)

즉 "공산주의 유머"가 광범위한 공산주의 국가의 뛰어난 풍자문화를 나타낸다고 그냥 주장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오히려 소위 "공산주의 유머"라는 것은 적극적으로 공산주의에 대한 공격 의도를 가진 몇몇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간의 결속력을 다지거나, 서로의 사상을 확인하기 위해서 제한적으로 유통되는 경우를 더 쉽게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전혀 다른 곳에서 예를 찾아 보겠습니다. 한국 고등학교 학생들 사이에는 소위 "미분귀신" 농담이라는 것이 기나긴 세월 동안 떠돌고 있습니다. 원천은 아마도 영미권의 수학자 농담에서 흘러들어온 것으로 보입니다만,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것은 기출문제에 나오는 다항함수의 미분 계산 방법을 의인화 한 것입니다. 미분의 핵심을 찌르고 있는 이야기도 아니고, 별다른 기발함도 없는 반복적인 의인화일 뿐인 이 농담이 인기를 끄는 것은, 바로 그 "기출문제 다항함수의 미분 계산 방법"을 암기하고 있는 사람들만이, 빠르고 쉽게 이 의인화를 납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이 농담은, 한국에서 고교 미적분 수험공부를 하는 사람들 사이의 문화를 한 번 돌이키게 합니다. 정말로 웃음을 주는 농담이라기보다는, 폐쇄된 집단이 서로 알아보고 반가워 하면서 한 번 미소짓게 하는 소통 수단에 가깝습니다. 몇몇 재미없지만 "누구누구만 웃을 수 있다"어쩌고 하는 전공농담이나 전문용어 농담도 비슷한 것들이 많습니다.

적지 않은 "공산주의 유머"라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공산주의에 반감을 품은 사람들이, 공산주의나 공산주의 정부의 독재자가 강도 높게 비판당하는 농담을 서로 주고 받는 것은, 일부 그 농담이 정말 재미있어서이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농담을 즐긴다는 사실에서 서로가 그런 반감을 갖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과정이라는 의미가 매우 큽니다. 당연히 대다수의 유머는 공산주의에 대해 특별한 반감이 없는 사람에게는 큰 재미가 없고, 이런 소재만으로 공산주의 국민 대다수의 풍자문화를 바로 규정하기도 어렵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어쩔 수 없이 굳이 "공산주의 유머"라고 정할 필요가 없을 법한 평범한 정치, 외교, 관습 풍자들도 모두 뭉뚱그려서 양을 부풀리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이런 유머들은 프랑스나 영국에 훨씬 많고, "심슨 가족"이나 "사우스 파크"에는 폭풍우처럼 몰아칩니다. 대강 부풀려 만든 덕분에 공산주의 체제와 풍자와의 관계를 따져보는 이야기는 더 흐려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스탈린)

이런 점을 놓친 탓에, 이 다큐멘터리는 결말부에서 좀 어처구니 없는 시도를 합니다. 구 동독 사람들이 모인 레이싱 대회에 제작진이 찾아가서, 그 사람들에게 "공산주의 유머"를 들려주며 반응을 보는 것입니다. 이 다큐멘터리의 이야기 흐름대로라면, 지금은 통일이 되어 자유 통일 독일에 살고 있어서 사람들이 억압이 없는 탓에 풍자 정신도 사라졌고, 때문에 "공산주의 유머"도 신통치 않다는 식으로 이 장면이 만들어져야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 장면은 자신들의 과거를 싸잡아 비웃고, 그걸 지금와서 문득 끄집어 내서 난데 없이 자기들에게 들이대는 캐나다 제작진을 동독인들이 기분 나빠한 결과로 보일 뿐입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구성하려면, 차라리 몇마디 풍자 농담, 비판 농담좀 했다고 별별 일을 다겪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영웅담 이야기를 만드는 편이 나았을 것입니다. 지금 다큐멘터리처럼, 대중적인 문화 현상으로 풍자의 전체적인 흐름을 다룰 것이 아니라, 몇몇 코메디언, 몇몇 작가, 논설가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꾸미는 것입니다. 그게 의견이 같은 사람들의 반발 의식을 나누는 수단이었던 "공산주의 유머"의 성격과도 잘 통하고, 지금 남아 있는 자료나 영향, 변천사와 무용담들을 발굴하는데도 유용했을 겁니다.

실제로는 그렇게 하고 있지 않아서 이야기의 구성 자체도 재미가 떨어집니다.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농담 자료중에 대다수는 자본주의-공산주의 교류에 대해 가장 풍성한 정보를 갖고 있는 독일권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지만 그럴싸한 영상자료는 피 튀기는 저항의 소용돌이 속에서 유머를 펼쳐야 했던 폴란드와 루마니아의 작가와 코메디언들의 것들입니다. 그러면서, 다큐멘터리가 담고 있는 전체 흐름을 위해서는 역시 공산주의 국가의 중심이었던 소련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해야 합니다. 그 와중에 다큐멘터리의 주장과 맞는 주장을 들이밀기 위해서는 미국과 영국의 학자들의 인터뷰를 끼워야 합니다. 전개는 혼란스러워지고, 내용은 갈팡질팡합니다. 때문에 이야기의 흐름이 뚜렷해 지지도 않고 극적인 느낌이 나는 부분도 없어집니다.


(농담 애니메이션 삽입)

전체적인 흐름 설명 장면과 농담 예시 장면들이 이렇듯 잘 안이어지는 이야기에 교차되며 진행된 결과, 설명과 농담 장면은 서로가 서로를 기다리는 시간을 지겹게 만들어 버립니다.

농담 자체의 연출도 약합니다. 애니메이션 부분은 즐거운 희화화체가 잘 살아 있지만, 동영상으로서의 속도감은 농담 자체의 길이에 비해 지나치게 느린 것이 많아서 맥이 빠집니다. 특히 애니메이션에는 농담 이외에 그림만으로 웃길 수 있는 장면들을 더 추가한 것들이 많은데, 이 추가 장면들이 속도와 집중력을 더 떨어뜨리고, 농담자체의 각본으로 충분히 극적인 이야기에 군더더기가 되어 풍자의 간결함과 날카로움을 무뎌지게 합니다. 한편, 배우들의 재구성 연기로 만든 장면들은 코메디 연기가 각본만 있으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수준의 초보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농담의 마지막에 인공적인 가짜 관객 웃음소리 효과를 끼워 넣고 있다는 점도 어색해 보입니다. 다루는 농담 자체가 대체로 은근한 웃음을 유도하거나, 역설적인 상황에 대한 야유 섞인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지, 마구 터져나오는 웃음과는 거리가 멉니다. 때문에 이런 가짜 웃음소리 효과는 분위기에 어울리지도 않고, 오히려 억지로 안웃긴데 웃어야 하는 듯한 농담이 실패한 듯한 느낌을 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다큐멘터리 자체의 신뢰감을 떨어뜨리는 듯한 문제도 있습니다.

이제는 잊혀져 갈만도 한 "공산주의 유머"라는 한 소재를 다시 돌아보게 한 환기의 의미 정도로 이 다큐멘터리를 즐길만 합니다. 고르고 고른 농담들은 분명히 이야기 자체는 꽤 재미있는 것도 있습니다.


(레이건 전 대통령)

이래저래 소개된 경로를 따져보자면, 기실 "공산주의 유머"라는 것에는 80년대 미국 레이건 행정부의 영향이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레이건 행정부는 어느 때보다 농담과 TV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이었고, 이 사람들이 국제적인 적을 "공산주의"로 지적하면서, 미국과 그 문화적 영향권을 중심으로 그에 관한 농담들이 퍼지고 정리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다큐멘터리 안에서도 레이건 대통령의 공산주의 농담을 몇 건 소개하고 있거니와, 국무부에서 직접 공산주의 농담을 수집하고 정리했던 이야기도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런 농담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그림을 보고 영국인, 프랑스인, 소련인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영국인이 말했습니다.

"태초의 인류는 영국사람이었나보오. 이 그림을 보니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듯 하지 않소."

프랑스인이 반대했습니다.

"아니오. 이 사람들은 프랑스사람들인듯 하오. 누드로 서 있지 않소."

그러자, 소련인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소련 사람들임이 확실합니다. 입을 옷도 없고 먹을 것이라고는 과일 뿐인데 낙원에 살고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레이건 행정부의 공산주의 농담 유행 영향은 특이하게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동맹국 중의 하나인 우리나라에서는 바로 이 공산주의 농담이 반대로 80년대 우리 정부를 조롱하는 농담으로 변형되어 돌기도 한 것입니다. 그 때는 물론이요, 공산주의가 대체로 사라진 지금까지도 우리나라는 대표적인 반공문화의 흥행지역입니다. 그렇습니다만, 역설적으로 "전두환이 낙하산 대신 책가방을 메고 추락하는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 이야기" 등등의 상당수는 "공산주의 농담"이 공산주의 독재자를 비웃던 것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 밖에...

3회 EBS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로 TV 방영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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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고율 2006/10/19 11:33 # 삭제 답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공산주의를 조롱하는 유머는 여기저기서 접했지만
    그 원천 같은 것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알게되어 재밌네요.
  • 게렉터 2006/10/21 10:35 # 답글

    사실 정치 유머라는 것이 대상을 바꿔가며 돌고 도는 것이지 않나 싶습니다. 한 때 미국 공화당을 비판하던 유머가 돌고돌아 독일 녹생당을 비판하는 유머가 되기도 하고...
  • 인사이더 2006/12/14 19:32 # 삭제 답글

    이 다큐멘터리를 오랫동안 찾아다녔는데,.... 파일을 구할 수 있을까요?
  • 게렉터 2006/12/17 21:58 # 답글

    인사이더/ 아무래도 다큐멘터리이다보니, 비디오테입이나 DVD를 구하기가 힘이든 면이 있습니다. EBS쪽으로 문의를 해보시거나, 혹은 findclubbox.com 같은 파일 사이트 같은 곳에서 "다큐" "다큐멘터리" 같은 검색어로 검색을 해 보신다면 어떤 단서를 찾으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잘은 모르겠습니다.
  • freetempo 2007/03/01 15:54 # 삭제 답글


    글 잘 읽었습니다.. 날카로운 비평이시네요- '공산국가 어쩌구'라는 타이틀을 단 영화가 한국의 EBS에서 방영될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감격스러웠던 나이브한 관객으로서 말이지요.. 영화를 본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무척 궁금했는데 좋은 의견 들을 수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 게렉터 2007/03/02 13:55 # 답글

    freetempo/ 제가 좀 당황스러웠던 것은 중국드라마 프로그램에서 중국에서 제작한 모택동 일대기 드라마 시리즈를 줄줄이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완전히 공산주의 찬양으로 도배되어 있는 TV쇼인데, 최근 어느 학자의 의견이 국가보안법에 걸려서 구속되니 마니 하는 모습을 보면서 대체 뭐가 기준인가 혼란스러워 했습니다.
  • .. 2007/03/02 18:48 # 삭제 답글

    올려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우연히 클럽박스에서 발견했습니다.

    http://down.clubbox.co.kr/rainbownim/8md99

    글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시면 삭제하셔도 됩니다.

    글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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