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네버 다이 Tomorrow Never Dies 영화

"007 네버 다이 Tomorrow Never Dies"는 언론 재벌이 악당입니다. 부패한 군인과 결탁해 테러를 저지르고 이를 토대로 자신의 독점적인 지배력을 더욱 키우려고 하는 흰 머리 많은 미디어 회사 회장이 악당들의 총두목입니다. 제임스 본드는 러시아, 독일, 영국, 남지나해, 베트남 등지를 무대로 악당들의 GPS조작테러를 막으려 합니다.


(본드, 제임스 본드)

"007 네버 다이"는 상당히 뛰어난 도입부 액션을 자랑하며, 부분부분 재미있는 장면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부분의 장면들이 좀 어색하게 연결되어 있고, 굉장히 얼굴을 자주 들이미는 악당 총두목이 아주 재미없는 인물이라는 점은 큰 문제입니다.


(주제곡 장면)

우선 배경과 시간, 액션들을 전체 줄거리에서 이어나가는 수법은 중반부의 커다란 실수 하나와 함께 이래저래 미숙함을 드러냅니다. 적지않은 제임스 본드 시리즈들이 멋있는 경치를 보여주려고, 억지스런 핑계를 대면서 세계 이곳저곳의 관광지로 제임스 본드를 보내곤 합니다. 그런데, 핑계자체야 억지스럽다 치더라도, 그렇게 싸돌아다니면서 관객이나 제임스 본드가 경험하는 기분은 연결이 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007 네버 다이"에서는 억지 자체도 도가 지나친 부분이 많은데다가, 인물간의 관계조차 아무 재미가 없어질만큼 연결이 끊겨 버립니다.

방콕에서 촬영한 액션 장면은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악당쪽의 헬리콥터 조종이 말할 수 없이 바보스럽긴 합니다만, 그 바보스러운 표정이나 대사가 생략되어 있기에 분위기를 치명적으로 해치는 수준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액션 장면은 뚝 끊겨서 피어스 브로스넌과 양자경의 이별 장면으로 넘어갑니다. 이별 장면에서 양자경은 제임스 본드를 신비롭게 떠나는 제임스 본드보다 한 수 높은 고수 첩보원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듯 합니다. 그런데, 양자경이 제임스 본드를 떠난후, 제임스 본드가 두리번두리번 하면서 길모퉁이를 두어 번 돌면 황당하게도 제임스 본드는 양자경과 다시 만납니다. 훌쩍 007을 떠나는 여자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도 하고, 또 양자경과 제임스 본드의 짝 액션을 보여주고 싶기도 하고하니까 아무생각 없이 그냥 이상하게 붙여 버린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옥스포드의 덴마크어 교수로 나오는 세실 톰슨: 당시 브라이언 아담스의 연인으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양자경은 적잖은 액션 장면에서 맹활약하고 있습니다. 모터사이틀 액션에서는 그 실력이 오히려 억눌린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이고, 독일에서 처음으로 잠입해 모습을 드러낼 때는 정말 왕년의 우아한 무술 액션의 정수를 드러냅니다. 그렇지만, 반대로 몸짓을 이용한 표현이나 싸우는 장면이 아닌 부분에서는 제대로된 연기도, 모습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파티에서 첫 등장할 때의 모습은 정말 위장한 군인임이 너무나 티가 날 정도로, 주변의 화려함과도 못 어울리고, 태연자약하게 서로서로 사기치는 여유로운 분위기와도 어긋나고 있습니다.


(양자경 첩보원 등장: 본인은 스턴트를 직접하겠다고 했으나 많은 장면에서 안전문제로 결국 대역을 사용했습니다.)

이 파티 장면이 연결되는 와중에 "007 네버 다이" 전체에서 가장 큰 실패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바로 테리 해처의 인물과 관련된 이야기들입니다.

"007 네버 다이"에서 테리 해처의 인물은 가장 중요합니다. 악당과 제임스 본드의 관계에서도 중요하고, 제임스 본드가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데도 중요한 인물이며, 분위기 조성에도 큰 역할을 하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테리 해처는 중간에 비극적인 상황과 투박한 시나리오를 통해 잘려나가 버립니다.

테리 해처는 첫 등장 장면에서는 완벽하게 제 몫을 하고 있습니다. 제임스 본드를 만날 때의 감정도 잘 드러내고 있고, 자신의 주특기대로 재치있는 코메디 연기도 즐겁게 해 내고 있습니다. 피어스 브로스넌과도 잘 어울리며, 슬며시 끼어둔 "It Had To Be You" 배경 음악에도 잘 어울립니다. 때문에 마치 우울한 표정의 광대처럼, 외로울 수 밖에 없는 제임스 본드라는 감상마저 슬쩍 비치게 만들어 줍니다. 그런데, 갑자기 다음 장면에서 허무맹랑할정도로 진지한 비극으로 이야기가 바뀌면 어긋나버립니다. 각본도 이상한데, 인물의 인상과 연기도 상황을 설득력있게 하는데 힘을 못쓰는 겁니다.

더 문제가 되는 부분은 그 다음입니다. 이 비극적인 상황은 액션 장면으로 연결됩니다. 그런데, 제임스 본드는 이 액션에서 스파이 장난감을 이용한 신기한 자동차 액션 장면을 펼칩니다. 이 자동차 액션은 상당히 독특한 면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방금전에 벌어졌던 비극적인 상황은 까맣게 잊은 것인지 신기한 전자쇼를 그냥 즐겁게 즐기는 분위기로 모두가 몰려갈 뿐입니다. 기억상실증이나 조울증에 가까울 정도입니다. 이 장면은 이야기 전체의 감정 흐름과 액션 전개에서 분수령에 해당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여기를 잘못 만들어서 전체적인 영화의 질이 낮아졌다는 생각이 들 정도 입니다.


(테리 해처: 촬영 기간동안 임신중이어서 급히 찍었다고 합니다.)

이 엎친 상황을 덥친 격으로 만드는 것은 재미 없는 악당들입니다. 중요한 악당 두 명은 총두목인 언론 재벌 회장과 그의 불법작전 행동대장입니다. 전형적인 블루스 브라더스 2인조 구도로, 똑똑하고 비열하며 말많은 마른 악당과 힘세고 충성스러우며 말없는 덩치 좋은 악당입니다. 원래 본시 제임스 본드 악당들이 헐리우드 영화 악당으로서 망할 일만 골라서 하는 놈들이고, 말도 안되는 과대망상 계획을 펼치는 놈들이긴 합니다만, "007 네버 다이"의 악당 두목은 정말 그 중에서도 한심한 놈입니다. 생긴것도 별 특징이 없는데다가, 돈만 왕창 많다 뿐이지 대체 무슨 재주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행동이나 말투도 별 개성 없이 그냥 그때그때 나쁜 놈인척만 할 뿐입니다.

결국 이 작자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오직 제임스 본드 한테 두들겨 맞으려는 일념하나로, 회장씩이나 되면서 직접 테러 현장에 나타나는 멍청한 짓으로 끝을 맺습니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놈에게 협조하는 충성스런 직원들이 이렇게 많은 것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이것은 "액션 영화는 말이 안된다"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라, 악당이 악당다운 활약을 벌이는 것을 생각해 내지 못한 부실함으로 비칠뿐입니다.

차라리 악당 중에는 "테크노 테러의 창시자" 어쩌고 하는 놈으로 불리우는 헨리 굽타라는 놈이, 생긴 모습이나 주변 취향도 잘 묘사되어 있고, 개성이나 실력도 분명합니다. 이 악당은 관련 장면이 몇 초씩 간간히 비칠 뿐이지만, 타락한 천재 기술자라는 인상이 상당히 입체적으로 살아나도록 잘 꾸며져 있습니다. 비밀 금고에서 잡지와 주사기를 본드가 발견하는 장면은 주목할만 합니다. 그러나, 이 인물은 우리의 바보 두목님 컴퓨터 이상해지면 윈도 다시 깔아주는 직원 정도의 취급만 받고 있어서 활약이 사실상 거의 없습니다.


(악당 총 두목의 얼굴이 붙어 있는 빌딩이 있는, 베트남이라고 설정되어 있는 태국)

이래저래 "007 네버 다이"에서 가장 멋진 장면은 역시나 시작 장면입니다. 피어스 브로스넌 제임스 본드 시리즈 중에서는 무척 짧은 편인 시작 액션 장면입니다만, 제임스 본드 영화 다운 이국적인 경치, 강렬한 타격감, 제임스 본드 폼잡기, 영웅주의 정서, 편견이 농담으로 화하는 정치적인 시각 등등이 잘 섞여 있습니다.

특히, 처음에는 제임스 본드를 안보여주고 인물을 말로만 설명하며 간접적으로만 묘사해서 분위기를 고조시키다가, 이야기가 살짝 전환되는 틈에 제임스 본드의 모습이 빠르게 등장해서 온갖 난리를 치는 모습은 리듬이 신납니다. 수류탄 던지는 모습이 논산의 교장이동에 힘빠진 훈련병처럼 보인다는 점만 빼면 총격, 무기 조종도 박진감이 넘칩니다. 물론 상대방은 유도 미사일을 록 온 시켜서 쏘고 있는데, 그걸 비행기를 "발로 조종해서" 피하고 이겨버리는 모습은 너무한다 싶지만, 대신 음악이 아주 잘 짜여져 있습니다. 제임스 본드 음악의 힘있는 관현악과 예스러운 블루스-소울 풍의 끈적거리는 노래가 강렬하고도 절묘하게 이어지고 덕분에 첨단 정보기기 느낌의 화면 연출과도 기묘하게 잘 달라 붙어 있습니다.


(시작 장면)

개개의 장면은 볼거리가 있습니다. 옥스포드의 짧은 장면이라든지, 신문사 사옥의 격투 장면은 훌륭한 편이고, 머니페니의 농담도 피어스 브로스넌 시절의 머니페니 인물과 잘 들어맞는 웃음을 줍니다. 덕분에 피어스 브로스넌의 모습은 그런대로 살아나는 편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그외에 다른 인물들의 멋, 아름다움이라든가, 이국적인 풍광의 묘미, 모험극의 떠도는 느낌 같은 것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면이 많습니다. 하롱베이의 비경이 일전의 대한항공 TV광고보다도 한 수 아래로 잡힐 뿐이니 말입니다. 배 안의 액션이 마지막 장면입니다만, 이것도 그냥 공장이나 지하기지와 아무런 다른 느낌을 주고 있지 못하는 어두컴컴한 중장비 많은 공간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007 두번 산다"에서 그냥 일개 일본 어촌을 몹시 이국적인 열대의 공간으로 만들어 버렸던 것을 생각해 보면 아쉬움이 더 커집니다.


그 밖에...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전통적인 제작자인 알버트 R. 브로콜리가 사망한 후에 나온 영화라서, 영화 마지막에 추모 자막을 볼 수 있습니다.

원제와 다른 이상한 영어 단어로 된 제목 붙이기의 시발점이 되는 영화입니다. 이후 제임스 본드 영화는 원제와 다른 제목을 붙이고 있는데, 알 수 없는 영단어 어구를 제목으로 쓰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원제 "Tomorrow Never Dies"에서 중요한 말은 여러모로 "Tomorrow"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제목은 "네버 다이"라는 뜬금없는 명령문이 되어 버렸습니다.

제임스 본드는 제임스 본드 1편에서 입수한 전설적인 "본드총" 월터PPK 대신 그 개조형이라 할만한 월터 P99를 사용합니다. 월터 P99는 모양이 재미없게 생겼습니다. 한편, 이안 플레밍이나 원작과 거의 상관 없는 제목이 쓰인 첫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이기도 합니다.

악당 총 두목을 맡은 조나단 프라이스는 "캐리비언의 해적" 시리즈에서 훨씬 어울리는 역할로 나옵니다.

이 영화에서 1974년 이래 "제임스 본드 섬"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진 태국의 유명한 그 섬을 다시 볼 수 있습니다.

피어스 브로스넌 출연작 제임스 본드 시리즈 중에 4위 영화로 꼽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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